여자의 빛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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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맹 가리는 남자. 그의 책 <여자의 빛>을 우리말로 번역한 사람 김남주는 여자. 김남주,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쓰는 한국어 문장이 아주 좋다. 또 뭐가 좋은가 하면, 전에도 한 번 얘기한 것 같은데, 책 앞날개에 쓰인 옮긴이 소개가 조금 웃겨서.
 “서울에서 태어나 자아를 의식할 무렵 사르트르와 카뮈, 랭보를 통해 프랑스 문학을 만났다.”
 흠. 난 자아를 의식할 무렵 뭐했나? 하긴 뭐해, 만날 미적분 풀고, 상춘곡賞春曲 외고, 종합영어에 실린 지문 해석하고, 간간히 헤세, 말로, 레마르크 이런 사람들이 쓴 문고판 읽고 그랬지. 그래 이 모양 이 꼴이지, 안 그래? 그렇다고 뭐 후회하는 건 아냐. 일단 세상에 나오면 주어진 날들을 살아가는 거 자체가 참 대단한 거니까.
 로맹 가리의 책 <여자의 빛>에도 어쨌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미셸과 리디아. 미셸은 남자이자 화자. 왜 남자인 걸 밝히느냐 하면, ‘미셸’이란 이름의 여자도 간혹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미셸은 에어 프랑스의 자회사에서 지금 반년짜리 휴직을 한 상태인 항공기 조종사. 카라카스로 출발하는 항공편을 예약하고, 가지고 있는 돈도 샤를드골 공항에서 달러로 다 바꾼 다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냥 취소해버리고 택시를 타고 파리 부르고뉴가 담배 가게 앞에 도착해 택시 문을 왈칵 열어젖혔는데, 에구머니, 슈퍼에서 장을 봐오던 마흔 살 가량의, 벌써 반백의 머리를 한 여자 리디아를, 하필이면 그녀가 장 본 종이봉지를 툭, 쳤고, 그래 꾸러미에서 빵, 달걀, 우유가 인도 위로 흩어져버린다. 달걀이 땅에 떨어지면서 깨졌는지 멀쩡한지, 우유팩이 터졌는지 안 터졌는지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이런 의문이 있을까봐 우리나라 소설가 같으면 절대로 포장된 인도 위로 떨어진 품목에 ‘달걀’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데 만 원 건다.) 이 장면에서 땅에 떨어진 식료품을 다시 꾸러미에 담고 각자 갈 길 가면 얘기는 끝나버리는데, 소설이 되기 위해 작가는 애초에 공항에서 미셸이 가지고 있던 프랑화를 전부 달러로 바꿔버리게 해버렸다. 택시 운전수가 어이 여보, 여긴 프랑슨데? 라고 똬리를 붙자 어쩔 수 없이 마음 착한 리디아가 택시비를 내 주고, 신세 진 건 꼭 갚아야 하는 서양 예의범절에 충실한 상류계급(비행기 파이로트면 동서를 불문하고 상류계급이라 할 수 있겠지? 영화 <Catch me, if you can>의 잘 생긴 청년 디카프리오를 보신 분은 아시리라.) 미셸 역시 리디아에게 돈을 갚기 위해 수표를 써주겠다고 하고, 준 돈 받는 거에 관해선 다른 어떤 민족보다 악착같은 유대인 리디아 역시 당연하게 그러라고 하며 찻집에 들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드디어 이 두 불행한 남녀의 관계가 시작한다.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두 중년 남녀가 어떤 식으로 불행한지 좀 보자. 왜냐하면 톨스토이의 명문,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이유로 불행하다는 게, 아주 가끔은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미셸.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14년 동안 회사 동료인 아름다운 야니크와 동거 중. 그동안 둘은 숱한 말다툼과 갈등을 거쳐 서로의 악습과 결점과 비루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해 이젠 진정한 서로의 빛 속에 자신들을 가둘 수 있는 지경에 와 있는 상태. 올림포스 산 위에 있는 아름다운 전당에서 넥타르를 마시고 사는 신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짧은 행복만 허여하는 것이 아주 오래된 전통이라, 야니크에게 회복할 수 없는 암종을 보내 이제 죽음의 침상에 오르도록 만들어버렸다. 고통과 질병의 가혹한 품 안에서 거의 완벽하게 망가진 야니크는 미셸과 합의 하에 스스로 죽음에 이르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미셸이 하루 혹은 이틀 정도, 자세한 건 나오지 않지만 야니크가 자신이 마련한 스스로의 방법에 의해 죽음에 이를 시간 동안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카라카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가 취소하고, 다시 부르고뉴로 돌아오는 길에 리디아를 만나, 그날로 8층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섹스를 하고, 하루를 더 지낸 다음날 리디아와 함께 야니크가 죽어있는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윽. 너무 많이 얘기했나?
 마흔 살의 리디아 토바르스키는 어느 재수 없는 날, 남편 알랭 토바르스키가 뒷자리에 딸을 태우고 드라이브 중에 큰 교통사고가 나서 딸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남편은 뇌에 충격을 받아 지금은 러시아 출신 백만장자 시어머니 올가 토바르스카야와 함께 살며 간호를 받고 있다. 물론 최고의 의료진이 끊임없이 최선의 치료를 하는 덕택에 실어증이 많이 호전되기는 했으나 고부갈등이 심한 리디아는 남편의 사고나 치료보다는 딸의 죽음에 남편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
 근데 두 사람의 경우, 먼저 미셸을 보면, 동거녀 야니크는 명쾌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의 죽음을 결정한 거고, 그 결과 스스로에게 가장 짧은 시간 동안만의 고통을 갖게 한다. 리디아는 딸의 죽음으로 일단 (무정하다고 비난해도 소용없다. 난 이렇게 얘기해야겠다.) 깔끔하게 끝난 슬픔이다. 진짜 비극은 말이지, 야니크-미셸 커플의 경우, 야니크가 죽음에도 이르지 못하고 그렇다고 살지도 못한 상태에서 끈질긴 삶의 본능으로 심각한 고통을 오래 오래 겪는 경우이고, 리디아의 경우도 굳이 말은 안 하겠지만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미셸과 리디아의 고통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독후감의 첫머리에 주어진 삶을 사는 자체가 참 대단한 일이라고 밑밥을 깔아놓은 것. 내 말이 조금 과격했더라도 이런 의미에서 용서하시기 바람.
 여기에 늙은 개를 데리고 다니며 자기도 심근경색 기미가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동물조련공연가 세뇨르 갈바가 등장한다. 이이가 소설을 이끄는 중요한 스티어링steering 기능을 하는데, 이 사람에 대한 설명을 하면 말 그대로 책을 통째로 옮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건 직접 읽어보시라는 뜻에서 생략한다.
 로맹 가리. 이이가 1980년에 파리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걸로 봐서, 특히 말년에는 우울증이 심각했으리라. 이 책은 그가 죽기 3년 전에 쓴 소설. 소설은 병과, 예정된 죽음과, 어둠과, 아침에 우울하게 돋보이기 시작하는 여인의 주름살과, 8층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섹스와, 느닷없는 죽음까지 온갖 우울증 증세를 엿볼 수 있다. 책 한 권이 소금물에 담긴 배추처럼 우울증에 푹 절여 있는 느낌. 매우 세련되고 의미심장한 문장을, 자아를 의식할 무렵부터 사르트르, 카뮈, 랭보를 통해 프랑스 문학을 만난 김남주가 섬세하게 한국어 문장으로 돋보이게 바꿔 썼으나, 만의 하나, 당신 역시 우울증 증세가 있는 인류 가운데 한 명이라면, 권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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