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 온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2
알베르토 푸겟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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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엄지영의 해설을 보면 “스페인어 ‘말라 온다Mala onda'는 불만스럽거나 불쾌감이 들 때 쓰는 구어적 표현이다. 이 소설 본문에서도 다양한 상황에서 ’답답하다‘ ’마음에 안 든다‘ ’ 기분 나쁘다‘ ’시시하다‘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단다. 대강 어떤 의미의 은어인지 짐작이 간다.
 책은 1980년 9월 3일, 수요일부터 9월 10일 수요일까지 여드레, 그리고 에필로그를 겸해서 9월 14일, 일요일, 이렇게 9부로 되어 있다.
 9월 3일 수요일은 브라질 리우 해변. 칠레 산티아고에서 수학여행을 온 11학년 열일곱 살 학생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리우 해변에서 알코올과 마약, 해피스모크 등으로 대표하는 젊음과 열정, 자유와 쾌락을 누리면서 마지막 밤을 불태우는 걸로 시작한다. 주인공 마티아스 비쿠냐를 비롯한 산티아고 사립학교 11학년 학생들. 아직 칠레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 전혀 정치 의식이 없는 철부지들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거기다가 전 칠레 인구 가운데 상위 천분의 일에 해당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자제들이기도 하고. 이들의 부모는 피노체트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 자신들의 세습적 권위가 유지되기 바라는 친 정부 집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월등한 이권을 확보한 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극히 일부분의 상류계급만이 입장할 수 있는 클럽의 회원권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자유로이 코카인을 흡입하면서 TV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미녀들과 환각 속에서 섹스를 즐기는 삶을 사는 아버지들과, 아버지의 동업자와 은밀한 관계를 갖는 어머니들 사이에서 태어난 신세대.
 마티아스 비쿠냐의 현실은 가정과 학교에선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는(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속물임이 벌써 드러난) 부모와 교사들에 의해 어디 한 구석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한다. 관심을 갖고 있는(자신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학생 안토니아는 자신과 아무런 교집합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할 뿐이고, 알코올, 마약, 파티, 섹스, 록 음악을 공유하는 남자 친구들 역시 결국 자기의 개똥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멀어져가기만 한다. 딱 이때가 1980년 9월 11일, 칠레의 개헌을 빙자해 피노체트 장기집권을 도모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코앞에 둔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었다. 1980년 10월 22일. 당시 온갖 방법을 써 투표율을 올리려 했던 전두환 정권은 국영방송 KBS에서 송출한 투표 독려 방송에서 탤런트 고 김순철의 입을 통해 “기권은 반대보다 더 나쁘다.”고 열변을 토하던 것이 떠오른다. 그래 결과는 투표권자의 96%가 투표를 해 이 가운데 92%의 찬성으로, 마지막 간접선거에 의하여 장충체육관에서 전두환이 다시 11대 대통령으로 즉위, 7년간 소위 제5 공화국을 열기에 이른다.
 칠레는 그래도 대한민국보다는 덜 했던 거 같다. 전 공군 참모총장이었던 자가 매체를 통해 반대표를 던지라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었으며, 주로 빈민가의 벽엔 ‘독재타도’ 같은 벽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니. 어쨌든 68%의 찬성으로 8년 동안 피노체트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게 되지만, 반대 의견에 투표했을 것으로 보이는 작가 알베르토 푸겟은 당시 국민투표와 정의-불의, 찬성-반대, 파쇼-자유 등의 이분법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오히려 앞으로의 독재를 위한 준비로 기능할 국민투표를 앞에 두고 부르주아 계층의 별세계를 집중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일종의 보색대비를 노렸던 것인지도. 나는 혹시 후자이지 않을까, 하는 심정.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마티아스는 이제 사랑하고 싶은 아가씨에게 외면당한 대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아가씨에겐 일종의 겁탈을 당했으며, 함께 온갖 수난을 겪어가면서도 사이좋게 알코올과 마리화나와 코카인과 외설을 함께했던 친구들도 자기와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끼는 딱 그 순간, 후안초 클럽의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하는 알레한드로 파스가 빌려준 책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책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점점 닮아가기 시작한다. 마티아스는 이 책을 읽자마자, 정치적 측면이 아니라 자아를 찾는 측면에서 단박에 의식화가 되어 버린다. 책 한 권을 읽고. 그래서 좌파 지식인이자 평소 존경했던 학교 국어 교사 플로라 선생의 지극한 리얼리즘적 세계마저 이젠 시시해져 버리는데, 여태 미국 외설잡지, 록 음악 잡지 말고는 책이라곤 거의 읽지 않았던 마티아스한테 갑작스레 벌어진 개안이 좀 그렇긴 했다. 이런 거 시비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 그러나 자연스레 이어지는 가출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방식이 과하게 작위적 아닐까?
 알베르토 푸겟이 처음부터 <호밀밭의 파수꾼>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는데 만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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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웨스트
살만 루슈디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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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말 5월초의 긴 연휴가 끝났다. 연휴의 시작은 4월 25일 퇴근시간. 끝은 오늘, 5월 7일 기상시간. 이제 내게 남은 취미라고는 책 읽는 거하고 음악 듣는 일, 두 가지 뿐. 기특하게도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야마하 미니 오디오는 벌써 CDP 기능이 자폭을 해버렸다(반품 후 새 상품으로 교환해 받은 것도 똑같은 장애가 발생했다. 분명 야마하 제품 자체의 CDP 기능이 개떡일 거다). 연휴 동안 19세기를 대표하는 두 명의 동갑나기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와 바그너의 전곡을 대본 확인하면서 들어보려 했는데 초장부터 초쳤다. 이제 남은 건 책 읽는 일.
 그래 25일 저녁, 퇴근하면서 결심했다. 11일 간의 휴가 동안 단 한 페이지의 책도 읽지 않고 지내보겠다, 라고. 기어이 그렇게 해봤다. 음악도 못 듣고, 책도 안 읽기로 하고 11일을 지내? 그거 쉽지 않더라. 그래 노상 하는 일이라곤 낮술 마시고 TV로 영화 한 편 보고, 저녁 먹으면서 또 반주 삼아 한 병 마시고. 이리 한 주일 정도 지내니까, 이러다가 사람 죽지, 싶더라. 영화 본 것 가운데 <말모이>와 <미쓰백>이 인상 깊었다. 두 영화에 동시 출연하는 오종종하고 귀여운 얼굴에 어깨 넓은 여배우 김선영. 왜 있잖아,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마지막 회에서 박보검의 새엄마가 되는 배우. 참 맛있게 연기하더라. 사실은 잘만 킹 감독의 작품을 하나 보려 했다가 내 집 Pay TV에는 레퍼토리가 없었다. 난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가 더 좋거든. 여태 잘만 킹 감독의 영어 이름이 Salman King이고 유색인인줄 알았다. 확인해보니까 백인, Zalman. 이번에 읽은 <이스트, 웨스트>의 작가가 Salman과 헷갈렸던 것.
 다시 휴가 얘기로 돌아오면, 4월 25일 오후에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는 <이스트, 웨스트>를 딱 100 페이지, 네 편의 단편을 읽고 나서, 오늘 아침 통근 버스에서 다섯 번째 단편, 101쪽부터 다시 읽기를 이어갔다. ‘이스트’ ‘웨스트’ 그리고 ‘이스트, 웨스트’ 세 부로 되어 있으며 각 부마다 세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트’는 비유대인이 먹는 빵 만들 때 첨가하는 발효제를 일컫는 단어가 아니라 유럽 백인들이 볼 때 동쪽, 동양 즉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분쟁지역인 카슈미르를 배경으로 루슈디다운 우화적 (짧은)단편들이며, 웨스트는 가상월드 테마파크 ‘웨스트월드’의 미국 서부지역(궁금하신 분은 HBO 드라마 검색하시압)이 아닌 유럽의 문학(아, 불쌍한 요릭!)과 역사(불경한 콜럼버스와 깡패 이사벨여왕) 등을 이스트 출신 지식인의 눈으로 본 것이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이런 책은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하루에 해치워버려야 하는 전형적인 타입이다. 그걸 터울을 무려 열하루를 두고 읽었더니 매끄럽게 스토리가 이어지지가 않았다.
 책 읽는 도중의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느낀 감상을 듣고자 하신다면, 마지막 장 ‘이스트, 웨스트’가 사실 살만 루슈디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는 것. 1988년, 아시다시피 이이가 쓴 <악마의 시>를 읽어본 당시 이란회교공화국의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사형선고를 때려 영국 내 안가에서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몇 년 동안 숨죽이며 살았던 적이 있다. 작가라는 사람들의 천형이, 뭔가를 쓰지 않으면 자신이 사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거. 그래 루슈디 역시 안가에서 짧은 소품을 몇 개 끼적이고, 이중 몇 편은 잡지에 기고도 하고 몇 편은 모아두고 했다가, 지구를 분류하는 단순한 방법, 동양과 서양, 그리고 자신의 처지처럼 동양 출신이지만 서양의 중심지 영국에 사는 인류에 관한 작품을 골라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 이 책 <이스트, 웨스트>다. 그러니 결국 ‘이스트’와 ‘웨스트’는 마지막 ‘이스트, 웨스트’를 쓰기 위한 밑밥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인데, 문제는 맘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의 한 가운데에서 열하루의 간격을 벌렸다는 것. 그래 내 의견이 맞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지막 단편 ‘코터’의 본문 197쪽에서 아버지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아빠한테 묻어 인도에서 영국으로 이민 온 화자 ‘나’는 “사랑하는 모국으로부터 강제로 유배”당했다고 고백한다. 작 속에서는 아버지에 의한 유배, 그러나 아버지와 동행해 유배를 당했던 반면, 이 작품을 쓴 살만 루슈디는 회교 원리주의자 행동대원들을 피해 죽지 않기 위해 유배를 당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 와중에도 작가의 뇌 속에선 무궁무진한 우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
 루슈디 특유의 상징과 도발과 비딱한 시선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으니 궁금하신 분 계시면 확인해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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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감정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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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성의 고리>와 <아우스터리츠>에 이어 세 번째 읽은 제발트. 이이가 1944년생. 2001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으니 불과 57세. 이 책까지 세 권을 읽고 이이의 생몰 연대를 보니 저절로 나오는 한숨. 나는 무슨 염치로 제발트 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가. 1944년에 태어나 1988년 영국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때부터 유작이 되고 만 <아우스터리츠>까지 겨우 13년간 작가로 활동했을 뿐이다.
 <아우스터리츠>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보나파르트가 작살을 낸 전쟁터가 아우스터리츠. 그러나 작품에서 ‘아우스터리츠’는 전쟁터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직전에 영국으로 피신해온 1만 명의 유대인 어린이 가운데 한 명으로, 당시 네 살이었던 아우스터리츠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장소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였다. <토성의 고리>는 영국 남동부 지역을 주로 도보로, 가끔은 버스로 여행(이라기보다 순례)하며 문명과 문화, 인간과 역사 등에 관해 깊은 사색을 보여준다.
 이 책 <현기증, 감정들>은 위 두 권의 경향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네 개의 부部가 긴밀하지는 않지만 서로 연결된 내용으로 된 독특한 구성을 가진 소설. 보나파르트의 3대 승전 가운데 세 번째 전투가 아우스터리츠. 첫 번째 큰 승리를 거둔 전투는 수만 명의 프랑스 병사들이 무거운 대포를 끌고 알프스를 넘어 피아몬테 부근에서 오스트리아 대군과 맞장을 떠 극적 역전승을 벌인 마렝고 전투. 이 전투에 직접 참전한 수만 명의 인물 가운데 유명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우리가 아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앙리 벨. 누군지 모르시겠지? 이 젊은이가 나중에 소설가가 되어 작품을 발표한 필명이 ‘스탕달’이다. 나도 처음 알았다. 당시까지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알프스를 넘었다는 것도 극적인 일일 텐데, 마렝고에서도 되치기 한 판으로 역전승을 거둔 경험을 겨우 열일곱 살 때 했다. 이 정도면 역사상 워털루 전투를 가장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으로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을 꼽는 것도 수긍이 간다. 스탕달의 본명이 ‘벨.’ 그리하여 이 책의 첫 장 제목으로 <벨, 또는 사랑의 기묘한 진실>을 붙이는 것. 첫 장에선 벨의 이탈리아에서의 연애사를 중심으로 평생을 괴롭힌 매독 후유증과 이로 인한 사망까지 적고 있다. 그러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로, 사람의 기억에 관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억하고 있는 영상과 사실은 다르다는 것. 나도 간혹 기행문을 쓰는데, 쓰면서 사진을 보며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상과 당시 감정을 위주로 쓴다. 그러다가 나중에 특정 지역이나 사찰의 사진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으면, 기억과 실체로서의 사진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놀라고는 한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소설 <불안의 책>을 보면, 여행에 관해 이야기 하는 바, 상상과 그 상상의 확장 안에서 특정 지역을 수도 없이 가서 보고 느끼고 거닐고 만끽한 것이 진짜 여행이지, 정말로 비행기 타고, 기차로 갈아타고 며칠을 달려 어느 무인역에 내린 다음 또다시 며칠 동안을 피곤하게 걸어 도착한 그곳에 어찌 진실이 있겠느냐는 취지로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페소아의 경우는 직접 특정 장소를 가 볼 필요 없이 방 안에서 사색을 통해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좀 과격한 주장을 하는 반면, 제발트는 여행을 먼저 하고 당시의 기억을 적기는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필터에 의하여 한 번 이상 걸러져 그 결과 다분히 변형된 상태로 타인에게 전해진다는 점이 차이가 난다. 물론 이건 벨, 즉 스탕달의 연애의 경험과 추억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두 번째 장 <외국에서>는 1980년 자신이 살던 영국을 떠나 빈을 거쳐 이탈리아 베니스와 베로나 지역 등을 여행하며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건장한 젊은이 두 명에게 미행을 당하는 듯한 공포감으로 서둘러 영국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첫 장에서 선보인 기억과 사실의 차이점 등에 관해 계속 언급을 한다. 이후 7년이 흘러 1987년 휴가철에 다시 이탈리아를 방문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제발트 특유의 문명비판과 인간 행위 유형(이렇게 쓰니 복잡하게 보이겠지만 쉽게 얘기해 그냥 ‘역사’) 등에 관한 사색, 여행 중 해프닝 등에 관해 써놓았다. 마치 영국 남동부 지역을 순회한 작품 <토성의 고리> 한 장면을 읽는 것과 유사하지만, 영국과 이탈리아, 북해와 지중해의 차이 정도로 감수성이 다른 점이 재미있다.
 세 번째 장 <K 박사의 리바 온천 여행>은 “1913년 9월 6일, 프라하에 있는 노동자 상해보험회사의 부사무관인 K 박사는 응급처치와 위생에 관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빈으로 향하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생각해보시라. 프라하 출신 1913년에 보험회사 다니던 유명인물 K. 누구? 그렇습니다. 카프카. 카프카라는 말이 아니라 카프카를 생각나게 한다. K 박사는 가르다 호수 남쪽에 있는 데센차노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작은 마을 데센차노에선 그를 영접하기 위해, 라기 보다 오랜만에 보는 외지인 높은 양반이 온다기에 사람들이 광장에 집결해 있었는데, K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만다. 그래 데센차노에 방문하는 대신 온천으로 유명한 ‘리바’라는 고을로 가서 ‘물 치료’를 받게 된다. 여기서 한 퇴역 장군을 만나 전투 얘기를 하던 중, “감각으로 잡히지 않는 사소한 요인들이 항상 (전투의)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법이라고, “세계사를 뒤바꾼 주요 전투들이 바로 그런 요인들의 작용을 받았던 것”이라며, 워털루 전투도 “전사한 오만 군사와 말들의 생명과 비견될 정도로 비중 있는 요인들,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비중의 문제”이며 “그 점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사람은 어떤 유명한 장군도 아닌 바로 스탕달”이었다고 단언한다. 1부의 유령인줄 알았던 벨 선생이 다시 등장하기에 이른 것. 위에서 언급한 <파르마의 수도원>의 워털루 전쟁 묘사에 이 “생사를 결정짓는 사소하면서 특별한 비중의 문제”가 등장하니 관심 있으신 분은 일독을 권함.
 4장 <귀향>은 역자 배수아에 의하면, 드물게 자전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서 그의 고향인 남독일 알고이 지방 베르타흐를 방문한 일지를 적고 있단다. 책에선 딱 잘라 ‘베르타흐’라고 하지 않고 ‘W’라고만 표시하고 있다. 고향을 떠난 뒤 처음으로 다시 찾은 W,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집이 하숙 또는 여인숙으로 변한 것을 발견했고, 자기의 태가 묻힌 집에서 약 40일간을 머물며 자신의 유년의 기억에만 있는 추억을 반추한다. 여기서 독자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저 앞에서 제발트가 스스로 이야기했듯 기억과 사실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이라는 점. 독자 스스로 제발트가 쳐놓은 덫에 빠져 지금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아마추어인 내 생각이지만, 수원 밑에 병점 찍고, 오산이다. 제발트는 소설가이고, 소설가라는 직업은 프로페셔널하게 거짓말을 꾸며대는 인간이어서, 제발트 역시 거짓말 쓰는 대가로 인세를 받는다. 더구나 일찌감치 스스로 고백했으니, 유년의 기억이란 사실이 아니고 자체가 허구란 점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근데, 문제는 이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거. 이 위에 쓴 네 개의 장에 대한 요약은 그냥 요약일 뿐, 이 책의 매력을 설명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발트를 제발트로 읽는 것은 작품 안에 든 압축공기를 흡입하는 일이다. 절제되고 응축되어 수은처럼 똑 떨어지는 듯한 문장 속에 든 사색과, 글을 쓰기 위해 미리 치밀하게 준비한 내용물을 받아들이는 것. 문장과 내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현 시대에 이리 충만한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제발트의 이른 죽음이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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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임레 케르테스 지음, 정진석 옮김 / 다른우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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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레 케르테스의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 <운명>과 <좌절>은 전에 독후감을 올렸다. <운명>에선 열네 살 소년 죄르지가 노동봉사대 일원으로 작업을 나갔다가 버스에서 단체 검문에 걸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10개월 만에 부다페스트로 귀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다섯 살 죄르지의 일인칭 시점의 눈을 빈 마흔다섯 살 케르테스. 근 삼십년의 세월이 지나, 당시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에서의 존재를 사색해보는 작품이라, 유대인 수용소를 다룬 소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던 나치에 의한 잔혹한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독자들은 <운명>을 읽으면서 아우슈비츠에서도 역시 사람은 다만 존재의 문제였다는 것을 조금 밋밋하게 읽었을 수 있다. 삶과 죽음이 머리털 한 가닥 차이로 결정되는 와중에 삶을 이어가기 위한 의지를 잃지 않는 것을 행운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곳에서의 생멸이 운명이라면, 운명이 삶을 지배할 때 그곳에선 자유가 없으며, 자유(즉 선택의 가능성)가 있는 곳엔 운명이란 없는 것임을 자각한다. 그러하여, <운명>은 독자가 책 속의 이런 메시지를 포착하지 못하더라도 열네 살의 죄르지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다시 생환하는 스토리가 있어 색다른 체험기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2부인 <좌절>을 읽으면 좀 복잡해진다. <좌절> 역시 일인칭 시점의 작품이다. 주인공 ‘노인’은 아우슈비츠 생환 후 30년이 지나, 당시의 체험을 책으로 쓰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를 하지만 출판사는 그의 작품을 출간하기를 꾸준히 거절하고 있는 상태. 자신의 경험을 타인에게 설득시킬 수 없는 불통의 상태를 견디다 못해 노인은 결국 현실과 타협해서 현대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을 만한 소설을 쓰기에 이르고, 그렇게 나온 소설이 작품의 뒷부분이 된다. <좌절>은 앞의 작품 <운명>을 읽지 않으면 노인의 고민, 유대인에 대한 정의,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생과 사를 가르는 운명, 운명의 당사자가 받을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 등을 이해하는데 조금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의 작품보다 읽기가 수월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이번에 읽은 3부작의 마지막 작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읽으면서 이것이 소설인지 아니면 거대한 에세이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사변적이라 전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노년의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유년시절 가부장적 절대 권위를 누리는 아버지로부터의 애정결핍, 부모의 이혼, 기숙학교의 권위주의적인 규율, 아우슈비츠 수용소 체험, 결혼과 이혼을 겪었다. 헝가리의 한 휴양소에서 험악하게 생긴 철학자 오블라트 교수를 만나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질문인 “혹시 당신의 아이가 있나요?”란 질문을 받고 즉각, 본능적인 반발력으로 “아니오.”라고 대답하면서 이 읽기 힘든 소설은 시작한다.
 신에 의하여 특별한 선택을 받은 이 민족에 내려진 축복 가운데 하나가 “생육하고 번성하라”인데 유대인으로, 유대인이기 때문에 경험해야 했던, 유대인 아버지의 가부장적 훈육, 나중에 아우슈비츠의 굴뚝으로 연기가 되어 날아가고 만 유대인 교장에 의한 엄격한 교육과정,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운명에 대한 복종 등은 자신의 복제품 생산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한 건 아닐까. 한 모임에서 자신이 아우슈비츠 체험에 관해 색다른 이야기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아름다운 유대인 아가씨와 많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맺어진 후에도, ‘나’를 압박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집착하고 있던 것. 제목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주인공 ‘나’가 스스로 만들기를 거절한, 그래서 아이를 낳고자 하는 젊은 아내와 결국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인공불임 또는 자의적 불임 때문에 태어날 수 없었던 미지의 자기 아이를 뜻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해 기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내가 읽은 책은 출판사 ‘다른우리’에서 나왔지만 지금 절판. 그러나 올해 하반기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 예정이라니, 미리 결론을 가르쳐드리는 실례를 범하지는 않겠다.
 책은 참 읽히지 않는다. 200 페이지를 살짝 넘기는 얇은 장편소설임에도 한 문단을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 철학적, 수사적 표현들은 힘들었다. 예를 들어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이렇게 묘사하기도 한다.
 “나의 존재를 너의 존재의 가능성으로 간주한다면, 간주한다면, 너의 없음을 나의 현존재의 필연적이면서 근본적인 자기청산으로 간주한다면, 간주한다면.” (119쪽)
 즉 아이를 태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 지금 나의 근본적인 자기청산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 이런 생각을 가진 주인공 ‘나’는, 이미 늙은 ‘나’는 피부과 의사인 전처를 정기적으로 만나 처방전을 건네받으며 의식의 변화를 받았을까, 안 받았을까. 책이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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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 말로센 시리즈 1
다니엘 페낙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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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이이가 쓴 <산문팔이 소녀>를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이야기 하나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든다는 것. 괜찮은 이야기꾼이 있어 자기 머리에서 마구 쏟아지는 거짓말을 주체하지 못하고 줄줄 흘려내는데, 그 이야기를 읽는(또는 듣는) 재미가 밤을 꼴딱 새우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이런 소설책들을 두고 소위 ‘문학성’ 운운하는 건 염병을 하다가 갑자기 땀이 뚝 그칠 말이다(숨이 꼴딱 넘어갔다는 말씀). 현존하는 가장 오랜 소설책이 로마의 네로 시대에 페트로니우스가 썼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소설책이 독자에게 줄 수 있었던 가장 큰 효용이 과연 ‘문학성’일까 아니면 ‘재미’일까. 나는 ‘재미’라는 쪽에 만원 건다.
 내가 전에 읽은 페낙의 <산문팔이 소녀>를 보면 앞부분에 거구의 우락부락한 남자가 출판사 사무실에 난입해 사무집기와 비품을 때려 부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 자보 여왕이라 불리는 문학팀 팀장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지고, 우리의 뱅자맹 말로센 씨가 등장해, 출판사에 원고를 몇 편이나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해 꼭대기까지 열이 뻗은 남자보다 더 난리굿을 쳐, 책꽂이의 책들을 쏟아내고 책상 위 서류, 집기들을 몽땅 훑어내다가 난데없이 자기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자신의 불운을 호소하는 방법으로 그를 가라앉게 만든다. 이것이, 이번에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를 읽어보니까, 무대는 출판사가 아니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대형 백화점이지만, 거의 비슷한 직업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화난 사람의 (물론 100%는 아니지만) 성질을 가라앉히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인물이다. 백화점 내 맡은 직무는 품질관리 담당. 백화점에서 팔리는 모든 제품에 관한 품질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제품의 불량으로 피해를 입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구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고객 앞에서 객장 책임자가 (과하게)사납게 말로센 씨에게 불이익을 가함으로써 고객으로 하여금 말로센 씨를 불쌍하게 여겨 보상 규모를 대폭 축소시켜주게 만드는, 일종의 희생양 노릇이다.
 아무리 더러워도 직업을 그만둘 수 없는 건 바로 철없는 엄마 때문. 엄마의 취미는 아이 낳기. 열다섯 살도 되지 않아 첫사랑의 아이를 배에 집어넣은 것이 바로 우리의 뱅자맹 말로센. 뱅자맹은 겨우 걸음마를 시작하자마자 이웃에 있는 아랍인 음식점 주인 내외에게 맡겨지고 버릇처럼 엄마는 가출을 되풀이 한다. 가출이 끝나고 귀가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산만하게 배를 부풀리고 있어서, 이 책에선 다섯 명과 반half의 씨 다른 동생을 두었는데(엄마는 초장부터 가출 중이고 책이 끝날 때에야 역시 산만한 배를 부여잡고 귀가한다), 동생들을 끔찍하게 사랑해 자신이 기꺼이 다 부양하고, 보호하고, 가능한 한 최대의 복지상태를 누리게 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진, 천사다, 천사. 심지어 여동생 클라라를 낳을 때, 산파는 술에 잔뜩 취해 떡이 되어 엄마 옆에서 자빠져 자기만 했고, 의사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어, 뱅자맹이 직접 받아야 했을 정도다. 당신 같으면 이렇게 하겠어? 할 수 있겠어? 뱅자맹이 천사인 거 맞지?
 책에서는 모두 여섯 명이 사제 폭탄에 의하여 터져 죽는데, 기존의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가 읽는다면 어째 좀 수상하게 죽는다, ‘가능하지 않는 살해법인걸?’ 비슷하게 불만을 표출할 수 있겠다. 이 책이 나중에 6편까지 나올 소위 ‘말로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작가도 6편까지 쓸 수 있을 줄 몰랐을 테니까. 한 번 써봤더니 이게 대박을 쳤는데, 얼마만큼 대박이냐 하면 프랑스에서만 백만 권이 팔렸고, 미국 등 영어권을 합해, 다니엘 페낙을 돈방석, 수준을 넓혀, 돈 침대 위에 누워 1893년 남 프랑스 산 상파뉴를 홀짝거릴 수 있게 해주었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 후속 작품을 쓰지 않을 수 있었겠어? 그래 시리즈가 시작되는 것이니, 이게 첫 번째 작품이라 아무래도 구성, 살인하는 방법 등등에서 좀 미숙했겠지. 그래 추리소설 전문독자께서는, 추리소설 전문독자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과 결과예측 같은 걸 조금쯤 양해해주시는 편이 좋겠다. 엽기살해와 범죄의 구성 및 해결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한 페이지에 적어도 한 번 씩 등장하는 유머가 사실 진짜배기니까.
 ‘식인귀’ 하면 딱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프란시스 고야가 그린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그림은 검색해 찾아보시라. 너무 괴기해 업로드 포기했다.) 뱅자맹의 막내아우 프티가 학교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한 그림을 그리라니까, 새빨간 옷을 입은 채 산 사람을 뜯어먹는 괴물을 그렸단다. 뱅자맹은 밤잠이 없는 아우들을 위해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모두 모아놓고 자기 머릿속에서 넘쳐흐르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 해주었던 터라 무수한 이야기 속에 고야의 그림처럼 엽기적인 내용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고, 그걸 기억한 무구한 프티가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새빨간 입을 가진 식인귀를 그렸을 수 있을 것. 근데 막내가 그린 그림 가지고 책의 제목을 정할 수 있지는 않겠지. 때는 19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유대인으로부터 거의 강제로 몰수하다시피 넘겨받은 백화점의 내부를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한 명의 독일인을 포함해 모두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정말로 식인의 의식을 집전하는 종파를 결성했으니 “여섯 식인귀의 오붓한 동아리인 111 사제단.” (366쪽) 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여섯 명은 모두 111명의 아이를 죽여 식인 의식을 행함으로써 유사 기독교에서 악마의 숫자로 불리는 666을 구현하게 된다. 이제 세월이 훌쩍 지나 낼 모레 염라대왕을 배알할 입장에 놓인 노인이 된 이들은 누군가에 의하여 한 명, 한 명이 차례로, 그들이 몇 십 년 전 식인의 의식을 행했던 백화점에서 펑, 펑, 폭탄에 의해 산산이 몸이 찢어진 채 죽는데, 누가 그랬게? 왜 하필이면 자본주의 최대의 전시장인 일류 백화점의 희생양인 뱅자맹 말로센 앞에서 폭발이 일어났게?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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