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 온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2
알베르토 푸겟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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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엄지영의 해설을 보면 “스페인어 ‘말라 온다Mala onda'는 불만스럽거나 불쾌감이 들 때 쓰는 구어적 표현이다. 이 소설 본문에서도 다양한 상황에서 ’답답하다‘ ’마음에 안 든다‘ ’ 기분 나쁘다‘ ’시시하다‘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단다. 대강 어떤 의미의 은어인지 짐작이 간다.
 책은 1980년 9월 3일, 수요일부터 9월 10일 수요일까지 여드레, 그리고 에필로그를 겸해서 9월 14일, 일요일, 이렇게 9부로 되어 있다.
 9월 3일 수요일은 브라질 리우 해변. 칠레 산티아고에서 수학여행을 온 11학년 열일곱 살 학생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리우 해변에서 알코올과 마약, 해피스모크 등으로 대표하는 젊음과 열정, 자유와 쾌락을 누리면서 마지막 밤을 불태우는 걸로 시작한다. 주인공 마티아스 비쿠냐를 비롯한 산티아고 사립학교 11학년 학생들. 아직 칠레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 전혀 정치 의식이 없는 철부지들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거기다가 전 칠레 인구 가운데 상위 천분의 일에 해당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자제들이기도 하고. 이들의 부모는 피노체트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 자신들의 세습적 권위가 유지되기 바라는 친 정부 집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월등한 이권을 확보한 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극히 일부분의 상류계급만이 입장할 수 있는 클럽의 회원권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자유로이 코카인을 흡입하면서 TV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미녀들과 환각 속에서 섹스를 즐기는 삶을 사는 아버지들과, 아버지의 동업자와 은밀한 관계를 갖는 어머니들 사이에서 태어난 신세대.
 마티아스 비쿠냐의 현실은 가정과 학교에선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는(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속물임이 벌써 드러난) 부모와 교사들에 의해 어디 한 구석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한다. 관심을 갖고 있는(자신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학생 안토니아는 자신과 아무런 교집합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할 뿐이고, 알코올, 마약, 파티, 섹스, 록 음악을 공유하는 남자 친구들 역시 결국 자기의 개똥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멀어져가기만 한다. 딱 이때가 1980년 9월 11일, 칠레의 개헌을 빙자해 피노체트 장기집권을 도모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코앞에 둔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었다. 1980년 10월 22일. 당시 온갖 방법을 써 투표율을 올리려 했던 전두환 정권은 국영방송 KBS에서 송출한 투표 독려 방송에서 탤런트 고 김순철의 입을 통해 “기권은 반대보다 더 나쁘다.”고 열변을 토하던 것이 떠오른다. 그래 결과는 투표권자의 96%가 투표를 해 이 가운데 92%의 찬성으로, 마지막 간접선거에 의하여 장충체육관에서 전두환이 다시 11대 대통령으로 즉위, 7년간 소위 제5 공화국을 열기에 이른다.
 칠레는 그래도 대한민국보다는 덜 했던 거 같다. 전 공군 참모총장이었던 자가 매체를 통해 반대표를 던지라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었으며, 주로 빈민가의 벽엔 ‘독재타도’ 같은 벽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니. 어쨌든 68%의 찬성으로 8년 동안 피노체트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게 되지만, 반대 의견에 투표했을 것으로 보이는 작가 알베르토 푸겟은 당시 국민투표와 정의-불의, 찬성-반대, 파쇼-자유 등의 이분법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오히려 앞으로의 독재를 위한 준비로 기능할 국민투표를 앞에 두고 부르주아 계층의 별세계를 집중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일종의 보색대비를 노렸던 것인지도. 나는 혹시 후자이지 않을까, 하는 심정.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마티아스는 이제 사랑하고 싶은 아가씨에게 외면당한 대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아가씨에겐 일종의 겁탈을 당했으며, 함께 온갖 수난을 겪어가면서도 사이좋게 알코올과 마리화나와 코카인과 외설을 함께했던 친구들도 자기와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끼는 딱 그 순간, 후안초 클럽의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하는 알레한드로 파스가 빌려준 책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책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점점 닮아가기 시작한다. 마티아스는 이 책을 읽자마자, 정치적 측면이 아니라 자아를 찾는 측면에서 단박에 의식화가 되어 버린다. 책 한 권을 읽고. 그래서 좌파 지식인이자 평소 존경했던 학교 국어 교사 플로라 선생의 지극한 리얼리즘적 세계마저 이젠 시시해져 버리는데, 여태 미국 외설잡지, 록 음악 잡지 말고는 책이라곤 거의 읽지 않았던 마티아스한테 갑작스레 벌어진 개안이 좀 그렇긴 했다. 이런 거 시비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 그러나 자연스레 이어지는 가출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방식이 과하게 작위적 아닐까?
 알베르토 푸겟이 처음부터 <호밀밭의 파수꾼>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는데 만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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