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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감정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토성의 고리>와 <아우스터리츠>에 이어 세 번째 읽은 제발트. 이이가 1944년생. 2001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으니 불과 57세. 이 책까지 세 권을 읽고 이이의 생몰 연대를 보니 저절로 나오는 한숨. 나는 무슨 염치로 제발트 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가. 1944년에 태어나 1988년 영국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때부터 유작이 되고 만 <아우스터리츠>까지 겨우 13년간 작가로 활동했을 뿐이다.
<아우스터리츠>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보나파르트가 작살을 낸 전쟁터가 아우스터리츠. 그러나 작품에서 ‘아우스터리츠’는 전쟁터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직전에 영국으로 피신해온 1만 명의 유대인 어린이 가운데 한 명으로, 당시 네 살이었던 아우스터리츠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장소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였다. <토성의 고리>는 영국 남동부 지역을 주로 도보로, 가끔은 버스로 여행(이라기보다 순례)하며 문명과 문화, 인간과 역사 등에 관해 깊은 사색을 보여준다.
이 책 <현기증, 감정들>은 위 두 권의 경향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네 개의 부部가 긴밀하지는 않지만 서로 연결된 내용으로 된 독특한 구성을 가진 소설. 보나파르트의 3대 승전 가운데 세 번째 전투가 아우스터리츠. 첫 번째 큰 승리를 거둔 전투는 수만 명의 프랑스 병사들이 무거운 대포를 끌고 알프스를 넘어 피아몬테 부근에서 오스트리아 대군과 맞장을 떠 극적 역전승을 벌인 마렝고 전투. 이 전투에 직접 참전한 수만 명의 인물 가운데 유명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우리가 아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앙리 벨. 누군지 모르시겠지? 이 젊은이가 나중에 소설가가 되어 작품을 발표한 필명이 ‘스탕달’이다. 나도 처음 알았다. 당시까지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알프스를 넘었다는 것도 극적인 일일 텐데, 마렝고에서도 되치기 한 판으로 역전승을 거둔 경험을 겨우 열일곱 살 때 했다. 이 정도면 역사상 워털루 전투를 가장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으로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을 꼽는 것도 수긍이 간다. 스탕달의 본명이 ‘벨.’ 그리하여 이 책의 첫 장 제목으로 <벨, 또는 사랑의 기묘한 진실>을 붙이는 것. 첫 장에선 벨의 이탈리아에서의 연애사를 중심으로 평생을 괴롭힌 매독 후유증과 이로 인한 사망까지 적고 있다. 그러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로, 사람의 기억에 관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억하고 있는 영상과 사실은 다르다는 것. 나도 간혹 기행문을 쓰는데, 쓰면서 사진을 보며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상과 당시 감정을 위주로 쓴다. 그러다가 나중에 특정 지역이나 사찰의 사진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으면, 기억과 실체로서의 사진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놀라고는 한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소설 <불안의 책>을 보면, 여행에 관해 이야기 하는 바, 상상과 그 상상의 확장 안에서 특정 지역을 수도 없이 가서 보고 느끼고 거닐고 만끽한 것이 진짜 여행이지, 정말로 비행기 타고, 기차로 갈아타고 며칠을 달려 어느 무인역에 내린 다음 또다시 며칠 동안을 피곤하게 걸어 도착한 그곳에 어찌 진실이 있겠느냐는 취지로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페소아의 경우는 직접 특정 장소를 가 볼 필요 없이 방 안에서 사색을 통해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좀 과격한 주장을 하는 반면, 제발트는 여행을 먼저 하고 당시의 기억을 적기는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필터에 의하여 한 번 이상 걸러져 그 결과 다분히 변형된 상태로 타인에게 전해진다는 점이 차이가 난다. 물론 이건 벨, 즉 스탕달의 연애의 경험과 추억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두 번째 장 <외국에서>는 1980년 자신이 살던 영국을 떠나 빈을 거쳐 이탈리아 베니스와 베로나 지역 등을 여행하며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건장한 젊은이 두 명에게 미행을 당하는 듯한 공포감으로 서둘러 영국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첫 장에서 선보인 기억과 사실의 차이점 등에 관해 계속 언급을 한다. 이후 7년이 흘러 1987년 휴가철에 다시 이탈리아를 방문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제발트 특유의 문명비판과 인간 행위 유형(이렇게 쓰니 복잡하게 보이겠지만 쉽게 얘기해 그냥 ‘역사’) 등에 관한 사색, 여행 중 해프닝 등에 관해 써놓았다. 마치 영국 남동부 지역을 순회한 작품 <토성의 고리> 한 장면을 읽는 것과 유사하지만, 영국과 이탈리아, 북해와 지중해의 차이 정도로 감수성이 다른 점이 재미있다.
세 번째 장 <K 박사의 리바 온천 여행>은 “1913년 9월 6일, 프라하에 있는 노동자 상해보험회사의 부사무관인 K 박사는 응급처치와 위생에 관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빈으로 향하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생각해보시라. 프라하 출신 1913년에 보험회사 다니던 유명인물 K. 누구? 그렇습니다. 카프카. 카프카라는 말이 아니라 카프카를 생각나게 한다. K 박사는 가르다 호수 남쪽에 있는 데센차노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작은 마을 데센차노에선 그를 영접하기 위해, 라기 보다 오랜만에 보는 외지인 높은 양반이 온다기에 사람들이 광장에 집결해 있었는데, K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만다. 그래 데센차노에 방문하는 대신 온천으로 유명한 ‘리바’라는 고을로 가서 ‘물 치료’를 받게 된다. 여기서 한 퇴역 장군을 만나 전투 얘기를 하던 중, “감각으로 잡히지 않는 사소한 요인들이 항상 (전투의)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법이라고, “세계사를 뒤바꾼 주요 전투들이 바로 그런 요인들의 작용을 받았던 것”이라며, 워털루 전투도 “전사한 오만 군사와 말들의 생명과 비견될 정도로 비중 있는 요인들,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비중의 문제”이며 “그 점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사람은 어떤 유명한 장군도 아닌 바로 스탕달”이었다고 단언한다. 1부의 유령인줄 알았던 벨 선생이 다시 등장하기에 이른 것. 위에서 언급한 <파르마의 수도원>의 워털루 전쟁 묘사에 이 “생사를 결정짓는 사소하면서 특별한 비중의 문제”가 등장하니 관심 있으신 분은 일독을 권함.
4장 <귀향>은 역자 배수아에 의하면, 드물게 자전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서 그의 고향인 남독일 알고이 지방 베르타흐를 방문한 일지를 적고 있단다. 책에선 딱 잘라 ‘베르타흐’라고 하지 않고 ‘W’라고만 표시하고 있다. 고향을 떠난 뒤 처음으로 다시 찾은 W,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집이 하숙 또는 여인숙으로 변한 것을 발견했고, 자기의 태가 묻힌 집에서 약 40일간을 머물며 자신의 유년의 기억에만 있는 추억을 반추한다. 여기서 독자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저 앞에서 제발트가 스스로 이야기했듯 기억과 사실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이라는 점. 독자 스스로 제발트가 쳐놓은 덫에 빠져 지금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아마추어인 내 생각이지만, 수원 밑에 병점 찍고, 오산이다. 제발트는 소설가이고, 소설가라는 직업은 프로페셔널하게 거짓말을 꾸며대는 인간이어서, 제발트 역시 거짓말 쓰는 대가로 인세를 받는다. 더구나 일찌감치 스스로 고백했으니, 유년의 기억이란 사실이 아니고 자체가 허구란 점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근데, 문제는 이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거. 이 위에 쓴 네 개의 장에 대한 요약은 그냥 요약일 뿐, 이 책의 매력을 설명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발트를 제발트로 읽는 것은 작품 안에 든 압축공기를 흡입하는 일이다. 절제되고 응축되어 수은처럼 똑 떨어지는 듯한 문장 속에 든 사색과, 글을 쓰기 위해 미리 치밀하게 준비한 내용물을 받아들이는 것. 문장과 내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현 시대에 이리 충만한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제발트의 이른 죽음이 더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