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웨스트
살만 루슈디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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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말 5월초의 긴 연휴가 끝났다. 연휴의 시작은 4월 25일 퇴근시간. 끝은 오늘, 5월 7일 기상시간. 이제 내게 남은 취미라고는 책 읽는 거하고 음악 듣는 일, 두 가지 뿐. 기특하게도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야마하 미니 오디오는 벌써 CDP 기능이 자폭을 해버렸다(반품 후 새 상품으로 교환해 받은 것도 똑같은 장애가 발생했다. 분명 야마하 제품 자체의 CDP 기능이 개떡일 거다). 연휴 동안 19세기를 대표하는 두 명의 동갑나기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와 바그너의 전곡을 대본 확인하면서 들어보려 했는데 초장부터 초쳤다. 이제 남은 건 책 읽는 일.
 그래 25일 저녁, 퇴근하면서 결심했다. 11일 간의 휴가 동안 단 한 페이지의 책도 읽지 않고 지내보겠다, 라고. 기어이 그렇게 해봤다. 음악도 못 듣고, 책도 안 읽기로 하고 11일을 지내? 그거 쉽지 않더라. 그래 노상 하는 일이라곤 낮술 마시고 TV로 영화 한 편 보고, 저녁 먹으면서 또 반주 삼아 한 병 마시고. 이리 한 주일 정도 지내니까, 이러다가 사람 죽지, 싶더라. 영화 본 것 가운데 <말모이>와 <미쓰백>이 인상 깊었다. 두 영화에 동시 출연하는 오종종하고 귀여운 얼굴에 어깨 넓은 여배우 김선영. 왜 있잖아,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마지막 회에서 박보검의 새엄마가 되는 배우. 참 맛있게 연기하더라. 사실은 잘만 킹 감독의 작품을 하나 보려 했다가 내 집 Pay TV에는 레퍼토리가 없었다. 난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가 더 좋거든. 여태 잘만 킹 감독의 영어 이름이 Salman King이고 유색인인줄 알았다. 확인해보니까 백인, Zalman. 이번에 읽은 <이스트, 웨스트>의 작가가 Salman과 헷갈렸던 것.
 다시 휴가 얘기로 돌아오면, 4월 25일 오후에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는 <이스트, 웨스트>를 딱 100 페이지, 네 편의 단편을 읽고 나서, 오늘 아침 통근 버스에서 다섯 번째 단편, 101쪽부터 다시 읽기를 이어갔다. ‘이스트’ ‘웨스트’ 그리고 ‘이스트, 웨스트’ 세 부로 되어 있으며 각 부마다 세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트’는 비유대인이 먹는 빵 만들 때 첨가하는 발효제를 일컫는 단어가 아니라 유럽 백인들이 볼 때 동쪽, 동양 즉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분쟁지역인 카슈미르를 배경으로 루슈디다운 우화적 (짧은)단편들이며, 웨스트는 가상월드 테마파크 ‘웨스트월드’의 미국 서부지역(궁금하신 분은 HBO 드라마 검색하시압)이 아닌 유럽의 문학(아, 불쌍한 요릭!)과 역사(불경한 콜럼버스와 깡패 이사벨여왕) 등을 이스트 출신 지식인의 눈으로 본 것이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이런 책은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하루에 해치워버려야 하는 전형적인 타입이다. 그걸 터울을 무려 열하루를 두고 읽었더니 매끄럽게 스토리가 이어지지가 않았다.
 책 읽는 도중의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느낀 감상을 듣고자 하신다면, 마지막 장 ‘이스트, 웨스트’가 사실 살만 루슈디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는 것. 1988년, 아시다시피 이이가 쓴 <악마의 시>를 읽어본 당시 이란회교공화국의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사형선고를 때려 영국 내 안가에서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몇 년 동안 숨죽이며 살았던 적이 있다. 작가라는 사람들의 천형이, 뭔가를 쓰지 않으면 자신이 사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거. 그래 루슈디 역시 안가에서 짧은 소품을 몇 개 끼적이고, 이중 몇 편은 잡지에 기고도 하고 몇 편은 모아두고 했다가, 지구를 분류하는 단순한 방법, 동양과 서양, 그리고 자신의 처지처럼 동양 출신이지만 서양의 중심지 영국에 사는 인류에 관한 작품을 골라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 이 책 <이스트, 웨스트>다. 그러니 결국 ‘이스트’와 ‘웨스트’는 마지막 ‘이스트, 웨스트’를 쓰기 위한 밑밥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인데, 문제는 맘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의 한 가운데에서 열하루의 간격을 벌렸다는 것. 그래 내 의견이 맞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지막 단편 ‘코터’의 본문 197쪽에서 아버지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아빠한테 묻어 인도에서 영국으로 이민 온 화자 ‘나’는 “사랑하는 모국으로부터 강제로 유배”당했다고 고백한다. 작 속에서는 아버지에 의한 유배, 그러나 아버지와 동행해 유배를 당했던 반면, 이 작품을 쓴 살만 루슈디는 회교 원리주의자 행동대원들을 피해 죽지 않기 위해 유배를 당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 와중에도 작가의 뇌 속에선 무궁무진한 우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
 루슈디 특유의 상징과 도발과 비딱한 시선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으니 궁금하신 분 계시면 확인해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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