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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 - 도덕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의 정체가 무엇일까. 이렇게 묻는다면 그가 어떤 분야의 공부를 했는가, 하는 물음과 비슷하다. 소위 말하는 전공. 책을 읽다보면 참으로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지 않고는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단정하게 된다. 작가 소개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9세 때 지능지수 170. 15세에 미네소타 대학 화학과 신입생 과정 수료. 이후 생화학 공부 잠깐. 방황 후 군대 입대, 한국 파병으로 근무. 제대 후 미네소타 대학 철학 학사. 인도 바라나시 힌두대학에서 동양철학 수학. 미네소타 대학에서 저널리즘 공부. 중단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집필활동. 다시 미네소타 대학 저널리즘 분야 석사학위. 몬태나 주립대학 영작문 교수.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 중 정신병원 수용. 퇴원 후 아들 크리스와 1968년 모터사이클 여행. 이 여행의 추억과 철학적 사색을 담은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1974년 출간, 세계적 명성을 얻음. 책 출간 다음 해 보트를 타고 수피리어 호수에서 출발해 허드슨 강을 따라 여행.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못다 한 철학적 사색을 보트 여행과 섞어 1991년 <라일라> 출간. 책 두 권이 대박이 나 2017년 4월, 자택에서 88세로 운명할 때까지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편안한 노후를 보냄. 모터사이클 여행을 함께 했던 아들 크리스는 10대 후반 시절에 아빠 닮아 동양의 선(禪)을 공부하던 중 노상강도에게 칼 맞아 죽었으며, 쉰 살이 넘어 딸을 낳았는데 아내와 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음.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정말 재미있게 읽어, 단박에 후속 작품 <라일라>를 사놓고 일부러 두 책 사이에 숨을 죽인 다음 읽기 시작했다. 위에 쓴 피어시그의 간략한 일생을 보면 두뇌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젊은 시절의 철학적 고뇌와 학습, 학문적 논쟁, 정신병원 같은 건 1975년의 책에 다 들어 있다. 이제 1976년에 보트 여행을 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앞의 책에서 못다 한 철학적 논의를 더 확장하기 위해 <라일라>를 쓴다. 앞의 책에서 화자 ‘나’가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주어진 이름 ‘파이드로스’가 <라일라>의 주인공으로 그대로 등장한다. 책엔 파이드로스가 보트 여행을 하는데, 여행을 왜, 어떻게 떠나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모든 여정은 궁극적으로 오디세우스의 긴 모험과 유사하다. 단, 여정을 통해 우연히 만나 일정 구간을 함께 하게 된 여인 ‘라일라’로 인해, 파이드로스가 다시 ‘질quality’과 ‘가치’를 정적인 가치와 동적인 가치, 사회적인 가치와 생물적인 가치, 등등 여러 분야로 사색을 확장하는 철학적 항해, 이것이 오디세우스의 그것과 더욱 유사하다, 라고 말해야겠다.
열여섯에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해서, 열일곱에 딸을 낳았으나, 경험 없는 어린 엄마가 갓난이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가 그만 질식해 죽어버려 정신질환을 앓았고,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에 수많은 남자와 관계를 가지며 되는대로 살고 있는 여자 라일라. 항해 중 잠깐 정박했던 로체스터의 한 술집에서 우연히 어울려 잔뜩 술을 마시고 취한 파이드로스와 라일라. 이들은 함께 배로 돌아와 그때부터 며칠을 함께 지내며 항해를 하고, 격렬하게 싸우고, 라일라가 다시 정신질환의 초기상태에 진입했다가 결국 이별을 하게 되는, 1976년의 경험을, 1990년쯤에 회상을 한다. 파이드로스가 십여 년 전에 골몰했던 화두 ‘가치’를 더 확장하게 되는 이유는, 라일라의 삶을 알고 있었던 라일라의 초등학교 동창인 변호사 라이절이, 그녀와 처음으로 하루를 잔 다음날 아침의 파이드로스에게 묻는 한 의문문에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노형은 라일라 M. 블르윗 양이 질이 높은 여인이라 생각하시오?”
물론 파이드로스는 라이절에게 이 질문을 받기 전부터 인류학적으로, 특별히 규정된 한 집단, 이 책에선 아메리카 인디언의 예를 들고 있으나 독자들은 굳이 그렇게 특정시킬 필요는 없으리라 보는 집단의 사회적, 생물적, 질적인 가치를 동적인 것과 정적인 구분해, 새로운 체계랄까, 철학이랄까 하는 통섭의 작업을 하기 위해 수많은 카드를 작성하고 분류했던 참이었다. 여기에 라일라라는 한 개체의 인간이 틈입해 다시 피어시그 특유의 집요한 질적 구분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당연히 피어시그가 주장하는 것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곳곳에서 터지는 피어시그 특유의 사회현상에 대한 명쾌한 정의 또는 근본을 설명하는 문장들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보자.
“파이드로스는 이 운동에 대한 이해가 그처럼 어려웠던 것은 정적인 지성에 해당하는 ‘이해’ 자체가 이 운동의 적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 시기의 문화 전달자 역할을 하는 책인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지성에 대항하여 펼치는 일종의 노상 강연이었다. ‘뉴욕에 거주하는 나의 모든 친구들은 사회를 폄하하고 그네들의 진부한 학구적 또는 정치적 또는 정신분석학적 이유를 주워대는 소극적인 위치에, 악몽 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케루악의 서술은 이렇게 이어졌다. ‘하지만 딘(소설의 주인공)은 다만 빵과 사랑을 얻기 위해 사회를 질주했다. 그는 방법이 어떤 것이든 개의치 않았다.’” (569쪽)
내가 좋아하는 책,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가 미국의 어떤 상황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에 대한 반응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률이 무너지고 대신 지식인들의 도덕이 세계를 지배했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는 지식인들이 계속 지배는 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도덕률을 주장하는 비트 문화와 히피 문화가 대두되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들의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그런데, 나는 이런 사회해석적인 것보다 정말 애정하는 책 『길 위에서』의 성격을 이리 잘 설명해놓았다는 것이 반가웠다. 누가 나더러 왜 이 책을 좋아하는지 얘기해보라면 사실 할 말이 막막했기 때문에.
이런 것도 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를 가든 그를 기다리는 것은 족쇄다.’라는 생각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다. 모든 아이들은 생물적 필요성이라는 족쇄에 묶인 채 태어나며, 태어날 때부터 그를 묶고 있는 이 족쇄보다 더 악랄한 족쇄는 따로 없다. 원래 사회가 존재하게 된 것은 이 같은 생물적 족쇄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할 목적에서였다.” (580쪽)
물론 위에 예를 든 두 문단은 이 책 <라일라>의 핵심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이 아니다. 애초 얘기한 것과 같이 곳곳에서 터지는 피어시그의 명쾌한 정의 같은 매혹적인 문장들일 뿐이다. 고생물학과 생물학, 양자물리학, 화학, 당연히 철학, 인류학, 문학,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 등 정말 다양한 학문에 관하여 일정 수준 이상이 아니면 서술할 수 없는 높은 차원의 것들을 서슴없이 통합할 수 있는 이런 작가의 역작을 어찌 필부에 불과한 내가 이해했다거나 평가할 수 있겠는가. 다만, 전작에 비해 과하게 철학적이어서, 특히 390쪽에 달하는 1부에 집중된 철학적 논의가 많이 힘들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척추 역할을 하는 스토리 역시 전작에 비해 다양하지 않아 그리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이제 피어시그는 끝냈다. 그는 이미 죽었으며, 그의 책 두 권을 모두 읽었으니. 물론 내가 책을 읽고 그걸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별개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