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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 푸시 ㅣ 작가정신 소설향 20
이명랑 지음 / 작가정신 / 2005년 10월
평점 :
여성 화자에 의한 일인칭 전지적 시점의 중편 소설. 일인칭 소설은 쓰기가 쉽지 않다고 어디선가 읽은 거 같다. 그건 세계를 자신(작중 ‘나’)의 세계관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편집하고,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정확히 이렇게 쓰여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취지로 읽었다. 일인칭 소설의 경우에 독자도 마찬가지로 작가가 만들어놓은 화자 ‘나’의 시선으로 (작품의)세계를 보기 때문에 어떤 때엔 과하게 ‘나’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할머니의 손에 길러져 자연스레 어머니와 사이가 껄끄러운 여자.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나쁜 영향이 제일 컸으리라 짐작이 가는 자연스러운 성장으로의 비행소녀 출신. 비행이라 해야 그리 큰 비행도 아니고 그저 가벼운 절도와 며칠 만에 다시 돌아오는 몇 번의 가출. 가출을 끝내고 귀가할 때마다 어머니는 열일곱 딸의 손을 잡고 산부인과로 직행해 임신여부를 검사하고, 그때마다 엄마는 딸이 임신하지 않았다는 데, 그렇게까지는 인생을 망쳐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실망을 한 것처럼 ‘나’의 눈에 보인다. 다시 강조하는 바, 작품이 일인칭 시점이라 정말로 어머니가 자기가 낳은 딸이 가출을 해서 무절제한 성관계의 결과로 임신하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을 효과적으로 비난하지 못하는 것에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나’의 서술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심지어 작가 자신도 모른다.
다른 거 다 빼고, <삼오식당>과 <나의 이복형제들>을 쓴 이명랑이 왜 이런 작품을 썼는지 의아했다. 영등포시장의 악착같은 상인들이 만들어내는 비극적 코미디 <삼오식당>과 이후 세월이 흘러 다국적 외국인(들)과 장애인(들)을 향한 애틋한 시선의 <나의 이복형제들>을 읽다가 갑자기 고급 백화점 문화강좌 가운데 하나인 ‘라틴 댄스’ 수강생들과, 지극히 비정상적인 한 가정의 외동딸이 가정을 이루어 사는 모습은 어찌됐든 내겐 불편했다. “겨울 밤, 시장에 인적이 뜸해지면 빈 가게 아무데나 들어가 엉덩이가 타는 줄도 모르고 화투판에 앉아 있는 시장놈”이었던 ‘삼오식당’ 주인 여편네의 딸(소설의 관찰자)의 남편은, 이번엔 OO공업고등학교 졸업 학력의 육군하사로, 많아봐야 서른 살의 나이에 생식기 신경절단과 보형물 삽입 시술을 받는 근육질의 조루증 기질이 농후한 마초로 변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삼오식당>을 해설했던 평론가 강상희의 말대로 영등포시장의 건강한 원시적 생명력을 가진 무수한 인물들로부터 배운 다양한 ‘경험의 언어’로 무장하기는 했으나, 원시적 생명력이란 것이 악의적인 동적動的인 에너지로 작동을 하기에 그친다. 그러니 더 이상 건강하지는 않다, 라고 하면 내가 의미하고자 하는 것과 유사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 ‘나’가 불편했던 것. 21개월 된 아들아이를 키우는 스물일곱 살의 여자. 그럼 30개월 전에 임신을 했고, 몇 년 동안 주말부부 비슷하게 떨어져 살며 남편이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결혼 4년차로 쳐도 스물세 살에 혼인을 한 거다. 책의 앞쪽에 분명히 삼류대학에 다녔다고 했으니 졸업과 동시에 육군하사와. 부부 사이에 섹스를 끝내고 곧바로 욕실로 향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이 남자를 사랑하는 날이 오게 될까?”를 생각하는 여자. 관계 중에 엑스터시 비슷한 것이 찾아오면 자기도 모르게 첫사랑의 남자 ‘찬’을 발음해 소리 내는 나쁜 습관이 있는 여자. 남편이 아무리 동물 같고, 조루증 기운이 있고, 배꼽과 허벅지에 사정을 하고, 고리타분하다 해도 이 정도면 ‘나’도 남편을 조금은 불쌍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혀 시각을 타인의 입장으로 돌릴 수 없는 일인칭 시점의 ‘나’는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자신이 피해자가 되고, 설득당하는 자가 되어 어쩔 수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무생물의 삶으로 살고 있다. 몸만 다 큰 성인일 뿐 의식은 분명히 미성숙의 상태에 머무는 삶.
만일 이명랑의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아서, 이이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능청스런 생명력에 축복을 내릴 줄 아는 작가인지 모른다면 이 책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불행하게 나는 그렇지 못해 <슈거 푸시>는 내가 읽은 이명랑 가운데 D를 줄 수밖에 없다. 220쪽에 달하면 장편 아니냐고? 큼지막한 글씨에 넓은 자간과 행간. 널럴한 편집으로 반나절이면 다 읽고 독후감까지 쓴다. 물론 D란 학점은 (하필이면!)요즈음 내가 외국의 장편 명작들을 계속해 읽은 여파일 수도 있을 터. 이명랑.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시라. 난 여전히 당신의 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