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사랑할 때 1
딩모 지음, 남혜선 옮김 / 현암사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1권 114쪽까지 읽었다. 등장인물이 화려하다. 두 명의 여성 신입경찰이 경찰학교를 각각 우등과 수석으로 졸업하고 시 경찰서에 부임하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한 명은 미모와 늘씬한 체격에다 뛰어난 운동능력을 보유한 매력 넘치는 여성이고, 다른 한 명이 이 책의 주인공인 ‘쉬쉬’인데 경찰학교 수석졸업자이며, 범죄심리학에 도가 튼 것으로 묘사되고, 딱 한 가지 운동능력이 젬병이라 이게 지금 뛰는 건지, 기는 건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달팽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누가 이런 연체동물 성 별명을 지어주었느냐 하면 쉬쉬의 사수이자 스승이자 부팀장이자 최근 10년 간 중국의 모든 서남부 경찰서에서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하는 살아있는 전설 지바이. 지바이는 집이 베이징에 있는 거대한 저택이며, 재벌 2세임에도 불구하고 독립해 혼자 사는 데 만족하고 (홍콩이라는 설명이 책 뒤표지에 나오긴 하지만) 중국 서남부의 가상 도시 린 시市 경찰서에 강력계 같이 보이는 팀의 부팀장으로 근무한다. 잠깐, 아무리 천재 수사관이라도 그렇지, 여자 별명으로 ‘달팽이’가 뭐니. 지나가면서 자기가 남긴 자취를 미끈한 액체로 남기는 연체동물 말이야. 작가가 여자라서 그렇지 남자면 벌써 공개재판 받았다. 쉬쉬는 오빠하고 아빠, 이렇게 남자 둘하고만 살았는데 스물일곱 살 먹은 오빠 쉬쥔은 벌써 자수성가해서 넘쳐넘쳐 흐르는 돈의 유입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성공한, 회계법인의 설립자로 쉬쉬의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이 책엔 20대 거부들이 왜 이리도 많이 나오는지! 건물 옥상에서 돌 던지면 기막히게 잘 생긴 남녀 20대 부자가 맞는다.) 물론 우리의 꼬맹이 느림보, 그러나 대단한 수재를 가지고 있는 쉬쉬는 결코 오빠의 배경을 누리고 싶어 하지 않지만. 쉬쉬가 경찰학교 수석, 몸매 빵빵한 야오멍은 우등. 아쉽게도 야오멍이 아무리 노력하고 절차탁마하고 서른 개의 벼루를 갈아 없애도 결코 따라갈 수 없는 탁월한 수석. 이런 인간들 정말 있다. 나도 몇 명 봤다.
 또 등장하는 인물이 시내 공원에서 사촌 남동생 예쯔샤오와 담소하다 날이 하도 좋아 잔디밭에 누우려는 찰나, 누군가가 녹색 페인트칠을 한 커터 칼날에 손 동맥이 잘라져 곤경에 처했다가 때마침 달팽이처럼 조깅을 하던 쉬쉬의 눈에 띄어 생명을 구하는 예쯔시. 예쯔샤오는 재벌집 넷째 아들로(근데 당시 중국에서 한 부부가 네 명의 자녀를 낳을 수 있었다, 이거지?), 소위 재벌 2세다. 예쯔시는 또 어마어마한 거부로 등장한다. 거기다가 둘 다 신체 건강하고 그것도 모자라 피트니스에서 근육 키우는데 몰두하고, 재벌 2세만 가는 클럽의 단골에다 미국 유학파다. 커터 칼날을 몇 개 모아 별 모양으로 서로 이은 다음 녹색 페인트칠을 해 풀밭에다 묻어 놓으면 그 칼날에 베어 손목 저 속에 있는 동맥이 결딴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베는 칼은 대개 칼이 무겁고 휘어져 있다. 삼국지에서 관운장이 쓰는 청룡언월도가 대표적이다. 82근이 나가고 큼지막하게 휘어져 베는 길이가 매우 길다. 관우는 이 도를 이용하여 안량과 문추의 목을 뎅거덩, 잘라버린다. 근데 시멘트에 고정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잔디밭에 묻힌, 그것도 페인트 칠을 한 커터 칼에 손목 저 깊은 곳에 있는 동맥이 잘려? 손목과 손을 이어주는 힘줄도 함께 잘렸겠네?
 책을 쓴 ‘딩모丁墨’라는 사람이 누군가 검색해봤다. 이렇게 생겼더라.

 

(작가의 사진은 삭제합니다.)

 

 쉬쉬가 고참 자오한에게 약식 심리검사를 한 내용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14쪽엔 “최근에 왼쪽 어깨를 다치셨고요.” 근데 불과 네 페이지를 건너 18쪽에 이르면 또 이리 나온다. “자오한은 글씨를 오른손으로 쓰는데, 몇 번인가 물건을 들 때 잠깐씩 멈췄다가 왼손을 많이 쓰는 걸 보고 오른쪽 어깨 부상을 알았다.”
 이 책을, 헌책도 아니고 정가에서 10% 깎아주는 새 책을 왜 샀는가, 하면, ‘현암’에서 찍은 소설책이라는 것 하나 때문이었다. 난 열여덟 살때부터 현암사를 많이 좋아했다. 이 회사에서 나온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멸>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원래 소설책은 별로 찍지 않는 회사였다. 그래, 고르고 골라서 책을 선정해 번역을 해 출간을 했겠지, 라고 믿어 샀다가, 똥 밟았다. 이 책을 찍은 때가 2014년. 이미 4년 이상 팔아먹었으니까 이젠 솔직하게 이 책이 우라질 거, 개판이라고 말해도 되겠지. 아, 미치겠는 것은, ① 책이 두 권짜리인데 출판사 믿고 두 권을 몽땅 샀다는 거, ② 오늘은 이 책 한 권만 가지고 출근해서 마음에 안 들더라도 계속 읽지 않으면 할 일이 멍하게 앉아 있으면서 ‘자리를 빛내주는 것’ 말고는 없다는 거.
 다만 한 마디만 하자.
 유명 드라마 작가 김수현은 초대박 히트 영화 <아바타>를 보고 졸았단다. 이 얘기 했다가 인터넷에서 수없이 두드려 맞았다. 무엇이 인기 대중작가 김수현을 졸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나도 <아바타>를 극장에 가서 봤다. 정말 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김수현이 대단한 건, 그렇게 시끄러운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들으면서 졸 았다는 사실. 난 하품은 쩍, 쩍 하면서도 잠은 오지 않던데. 어쨌건 완전 서부영화. 서부영화는 서부영화인데 아메리카 인디언의 시각으로 본 서부영화. 굳이 비교할 작품으로는 <늑대와 함께 춤을> 정도. 즉, 아무리 유명하고 재미있는 영화라도 보는 사람 마음대로라는 뜻. 이 책 <달팽이가 사랑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독자 서평의 별점은 다섯 개 만점에 네 개 한 명, 다섯 개 두 명. 100점 만점으로 평균 93.3점이다. 그러니 위에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똥 밟았다.’라고 하는 건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라는 것.
 이 책 말고는 오늘 할 일이 없으니, 일단 계속 읽어나가겠다.


 

 1권 286쪽까지 읽었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책의 두 주인공, 쉬쉬와 그녀의 부팀장 지바이의 나이는 각 24세와 28세. 근데 지바이가 최근 10년간 범인 검거율이 제일 높아? 경찰학교 졸업하면 나이는 24세, 5년차밖에 안 되는데? 이런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배회했다. 근데 268쪽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지바이는 형사팀에 들어온 뒤에 골초가 되었다. 20대 초반에 시체를 한 구 한 구 볼 때마다, 사건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며 밤잠을 설칠 때마다 담배가 얼마나 보물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는지 모른다.”


 아하, 지바이는 경찰학교 졸업생이 아니라 고졸 출신으로 순경시험에 합격해, 또는 막강한 집안 배경으로 하필이면 경찰에 입문했는데, 그게 좀 찜찜해서 집이 있는 베이징이 아니라 서남부 지역의 작은 도시 린 시에 와 있는 거라고 추리할 수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능력이 있어서 자기 신입 때 사수 역할을 했던 우형사의 상관이 되고, 나이 많은 우형사도 스스럼없이 28세 상사에게 보스라고 부르는, 신공의 보유자였다. 그럼 10년이 맞다. 그게 가능하면 말이지. 또, 재벌급 부모가 가문의 망신을 무릅쓰고 경찰학교를 포함한 대학에 보내지 않았다면 말이지. (고졸 학력 분들께 미안하다. 그러나 어쩌랴. 돈 많은 집에서 아이들이 공부 못하면 하다못해 외국으로 유학이라도 보내더라. 중국도 당연히 재벌가의 '고졸' 자제를 자랑스러워 하지 않으며 그런 영애, 영식들의 처리방법 역시 한국과 이하동문이다.)
 중간에 살인 현장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보실래?


 “기나긴 복도를 지나니 이미 말라붙은 핏자국이 보였다. ...... 말라붙은 핏자국이 끔찍한 꽃처럼 명치에서부터 활짝 피어났다. ...... 오른쪽 다리 옆에는 하얀 코트가 팽개쳐져 있었다. 가장자리가 선홍색 피로 물들어 화려하면서도 기괴해보였다.”  (1권 178쪽)


 와우. 책은 비록 범죄심리학, 소위 프로파일링 기법에 의해 진행되지만, 작가 딩모가 미국 과학 수사 드라마 좀 본 거 같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끔찍한 광경이다. 핏자국이 말라붙으면 그 색깔은? 예, 혈중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해 내는 짙은 갈색입니다. 그게 아무리 하얀 코트 가장자리에서 말라붙어도 하얀 코트는 결코 선홍색 피로 물들어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들만도 아니고 무수하게 자잘한 에러들이 속출한다. 불이 붙은 담배를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거하며, 매사에 빈틈없는 전설적 두뇌의 수사팀 부팀장이 내일 오겠다고 출장을 갔다가 2박 3일 만에 복귀하는 거 등등. 이 책 더 읽으면 이런 것들 분명 눈에 들어올 텐데, 그것들 여기다 다 쓰면 읽으시는 분들이 나더러, 인간성 안 좋다, 라고 할까봐 겁나 더는 못 읽겠다.
 이게 중국에서는 진짜 드라마로 만들어져 TV 광고비 깨나 벌었다고 하는데, 드라마는 모르겠지만, 책으로 읽기는 참 힘겹다. 그동안 그토록 믿어왔던 현암사는 이거 찍어서 돈 좀 벌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다 좋은 건 없는 법. 대신 충성심 강한 독자 한 명 잃어버린 건 확실하다. 오죽하면 아직 퇴근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 읽기를 마치겠느냐고. 그리고, 걱정이다, 걱정. 이 책 두 권, 이거 어떡하나. 띠지만 벗긴 새 책인데. 버리긴 아깝고, 에잇, 아파트 도서관에 기증이나 해야겠다. 올해도 기증하려고 모아놓은 책들이 꽤 있다. 마음이 좀 아프다. 내 책을 버려서? 아니, 절대 아니. 마음에 들지 않는 걸 다른 사람 읽으라고 기증하는 심보가 괘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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