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맨발의 완 선생 - 그때가 우리에게 가장 자신만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ㅣ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4
판샤오칭 지음, 이경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원제목이 적각의생만천화赤脚醫生萬泉和. 만천화萬泉和는 사람의 이름으로 고유명사. 의생醫生은 책에선 ‘선생’으로 일정한 지위에 오른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했다. 그러니 의사선생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럼, 적각赤脚을 ‘맨발’이라고 번역한 것. 글쎄, 이거 말 그대로 하면 맨발이 아니라 ‘맨다리’를 일컫는 거 아냐? 긴 바지를 걷어 알종아리가 보이는 상태. 당연히 맨다리라면 맨발을 포함해서 말할 테니 뭐 까탈이야 하겠느냐만, 20세기 중반 중국에서 성인이 맨다리를 드러낸 채 다닐 수 있던 지역은 시골, 즉 농사짓기 위해 맨다리를 내놓을 수 있는 장소였겠지. ‘의생’도 의과대학 졸업해서 면허증 가진 의사선생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의학‘漢’醫學, 즉 화타華陀와 편작扁鵲의 후예로서 대를 이어 중국의술을 사용해 농민들의 질병을 보살피기도 하고, 이것만 가지고 먹고 살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틈틈이 알종아리를 내놓고 논농사, 밭농사도 짓던 이들을 말하는 것으로 짐작했다. 뭐 대강 맞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저 촌구석의 한의사들 있었다. 면소재지의 비싼 한의사들과 달리 한 마을에 누가 병이 났다 하면 냅다 뛰어가던 반쯤 아마추어 의사, 그런 거. 시골구석에는 ‘약방’이란 간판을 달고, 정식 면허증이 없으나 워낙 오랜 세월 약을 팔아와 약사 비슷하게 약을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을 내준 적이 있고, 동네에 갑자기 토사곽란을 하면 아이들더러 빨리 뛰어가 약 사오라 심부름시키던 약 판매소, 약방이 있었다. 그런 ‘약방’ 아들이 나 빌어먹고 사는 회사의 부장으로 있다가 뛰쳐나가 회사 하나 만들어 지금 잘 먹고 잘 산다. 그래서 안다. 여기까지가 ‘맨발의 의사선생’ 완취안허의 정체에 대한 설명. 이해가시지?
다음은 시대적 배경.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다 맨발의 의사선생이지만 정작 목수가 장래희망인 열 몇 살의 완취안허가 동네 어린 왈짜의 귀 속에서 벌써 싹이 난 썩은 콩 한 알을 집게로 꺼내 아무도 고치지 못했던 말썽장이 ‘완완진’의 병을 낮게 해주면서, 자신의 희망사항과 전혀 관계없이 ‘맨발의 의사선생’의 길로 들어설 때가 중국혁명사의 가장 어리석었던 문화혁명 시기. 이때부터 완취안허가 점점 나이 들어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어라 어떻게 중풍 맞은 아버지가 여길 다 오셨네, 라고 당시 자기 아버지의 나이만큼 시절을 보내고 났을 때까지다. 중국 근대사의 가장 굴곡이 많았던 20세기 가운데 중반부터 후반까지. 딱 생각나는 중국 작가들 몇 명 있다. 이 시기를 작품의 주요무대로 정해서 한없이 궁상맞고, 처절하고, 격변하는 중국의 인민들을 그린 작가.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중국의 작가를 대면 다 이 시절 범주에 든다. 문화혁명 시절에 몰두했던 다이허우잉, 2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두루 중국현대사를 무대로 한 모옌, 문화혁명 시절부터 현대까지 아우른 위화와 옌롄커, 수퉁 등등.
작가 판샤오칭
책의 분위기도 딱 그렇다. 다이허우잉은 주로 당시 지식인의 신념과 사랑과 진실과 실천에 관한 책을 써서 이들과 좀 다른데, 나머지들은 전부 이 55년생 아줌마 판샤오칭과 비슷한 계급의 등장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래 <맨발의 완 선생>을 읽어보면 인물들이 이미 익숙한 느낌이 들 수밖에. 가난하고, 힘겹고, 무식하고, 본능적인 인간들의 비빔밥. 이들이 서로 얽히고설키고, 그러면서 참으로 대륙적으로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체념하고, 인생사라고 넘기면서, 때로는 그것도 복수라며 심각하지 않은 지질한 보복을 해가면서 그냥 살아내는 군상들. 그 속에서 사랑이 있고 배신이 있고, 남의 애인 빼앗고, 후안무치 아니면 도무지 할 법하지 않은 일을 전 약혼자에게 버젓이 맡겨버리기도 하는 일도 일어나니, 이런 장면이면 우리의 순박한 바보 완취안허의 체념적인 게으름에 마구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 같이 착한 바보 비슷한 인간이 마지막 장면에 잘 풀린다는 믿음 하나로 끝까지 읽어나가게 되는데, 그게 정말 잘 풀리는 것인지 아닌지는, 이것도 현대소설이라고 분명하지 않게 끝나고 만다. 책 뒤에 해설 없이 본문만 478쪽에 이르는 장편소설. 마음먹고 읽으려면, 하루에는 좀 힘들고 넉넉잡아 하루 반이면 충분한데, 지금 품절 상태라 구하기도 쉽지 않고, 보시다시피 표지 디자인도 우습고 그래서 뭐 굳이 읽어보실 분은 읽어보셔도,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