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의 야간열차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8
다와다 요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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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생 일본 아줌마. 와세다 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했으나 1982년에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책 가게에 취직해 함부르크에 거주. 도쿄에서 함부르크까지 이사를 해야 했던 1982년, 다와다 요코가 선택한 이동 방법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이때의 경험이 다와다의 작품세계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쳤다고 책 뒤에 따라 붙은 연표에 쓰여 있다. 일종의 버킷 리스트에 나도 겨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리스본까지 가는 항목이 있었으나 삭제했다. 두 주일 가까이 걸리는 동안 시원하게 샤워 한 번 못하고, 샤워는커녕 머리감는 일도 며칠에 한 번씩이나 가능하다는데 근질거리는 머리통이며 등짝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동양인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막지하다는 러시아 사람들의 겨드랑이 냄새를 인내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여간 함부르크에 정착한 다와다는 이주 5년 후부터 독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9년 뒤에는 일본어로도 글을 써 독일, 일본의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어버린다. 우리나라에 다와다의 책이 세 권 번역이 되었다는데, 앞선 두 권은 독일어 버전이라 하고, 이 <용의자의 야간열차>는 일어 버전이며, 책의 해설은 서울대 독문과 교수 최윤영이 썼다. 뭐 거의 언제나처럼 해설은 별로 들춰보지는 않았지만. 이쯤 되면 다와다 요코더러 코스모폴리탄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작가는 분명히 일본 태생이며, 유년기와 청소년기, 성년기의 앞부분을 일본에서 보냈다. 22년 동안 일본의 전래동화나 조부모로부터 들은 옛이야기 같은 것들 속에 든 특성은 작가의 의식 저변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라쇼몽>, <고야산 스님> 같은 이야기 말이다. 검은 색조의 옛 일본 목조 주택의 음산한 분위기와 그 어떤 나라보다 다양한 귀신들이 배회하는 분위기.
 나는 책의 제목 <용의자의 야간열차>를 보고 추리소설 아닌가 싶었다. 근데 아니다. 일본 말로 하면 용의자는 Yôgisha로 발음하고, 야간열차는 Yogisha로 한단다. 그러니 제목은 책의 무대가 되는 야간열차를 이용한 언어유희일 뿐이다. 책엔 용의자 비슷한 인간들이 몇 명 등장하기는 하지만 국경선을 넘을 때 청바지나 커피 원두 같은 소소한 품목의 밀수를 제외하고 진짜 범죄라고 할 것들은 주인공 ‘당신’의 상상 속에서만 비칠 뿐이다. 주인공이 ‘당신’이라고? 그렇다. 2인칭 소설이다. 당신은 함부르크에 주로 거주하면서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현대 무용을 공연하는 예술인이며, 간혹 인도나 중국 등을 방문해서도 밤 열차를 타곤 한다. 그러니 영화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Murder on the Oriental Express>같은 미스터리 영화 비슷한 걸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수 있다. 무용가 ‘당신’은 몇 십 년에 걸쳐 차례로 파리, 그라츠, 자그레브, 베오그라드, 베이징, 이르쿠츠크, 하바롭스크, 빈, 바젤, 함부르크, 암스테르담, 뭄바이 이렇게 열두 도시를 향해 야간열차에 오르는 동안 백댄서에서 유망한 현대무용가로 성장한다. 따라서 각 도시와 각각의 열차여행은 서로 관련성이 거의 없어 마치 모자이크 조각, 모자이크 조각은 조각인데 이쪽저쪽에 흩어져 있는 각 파편으로 읽힐 뿐이다. 나는 오히려 밤 열차 특유의 외로움, 낯선 사람과의 반갑지 않은 조우, 나그네가 가질 수밖에 없는 두려움, 어두운 긴 복도, 음산한 바람, 일본인 특유의 수다한 유령, 이런 것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여러 번 이야기했듯 일본소설 비애호가로 별 공감 없이 읽었을 뿐이다. 물론 당연히 편견에 찬 한 아마추어 독자의 지극히 사적인 감상이니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내 잡스러운 글 때문에 일어 원본을 출간한지 불과 14년 만에 대한민국의 유수한 출판사에서 간행하는 “세계문학전집”의 한 자리, 그것도 장 자크 루소의 바로 뒷자리를 차지한 ‘고전 급’ 요새 흔한 말로 ‘월드 클래스’ 급 소설책을 멀리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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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와 바틀비들
엔리께 빌라―마따스 지음, 조구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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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에서 말쑥하고 가난하고 점잖고 조용하고 성실하지만 많이 음울한 바틀비 선생께서 어느 날 갑자기 해탈을 하셨는지 그를 직접 채용한 변호사가 내리는 지시사항마다 꼬박꼬박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선언하며 일체의 작업을 거부하는 장면부터, 바틀비를 바틀비로 만드는 대사, “하지 않으려 합니다.”만 나오면 성질 급한 독자들은 컥컥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심지어 마음씨 착한 변호사가 적지 않은 위로금을 쥐어주면서 “당신은 해고니까, 내일부터 안 나오셔도 괜찮습니다.”라고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이니 말 다했다. 해고당한 사무실에서 밤까지 보내는 바틀비 때문은 아니지만 변호사 사무실은 이사를 해버리고, 그래도 텅 빈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바틀비 속에도 작가 멜빌의 한 부분은 들어 있었을 것. <모비딕>은 서점 해양수산 분야에 꽂혀 있고, 청교도적 분위기가 여전히 시퍼렇던 아메리카에서 근친상간 요소가 살짝 가미된 <피에르 혹은 모호함>은 평론가들에게 사정없이 두드려 맞아 자신이 더 이상은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고 단정한 그가, 먹고 살기 위해 세관의 말직에 취직해. 하기 싫은 사무직으로 남은 평생을 지내게 되었으니 멜빌 자신 역시 세관장을 위시한 윗것들에게 하루에도 열댓 번씩 “하지 않으려 합니다.”라고 말해버리고 싶었지 않았을까.
 이렇게 바틀비와 멜빌에 대해 서두를 길게 쓰는 건, ‘글을 쓰지 못하거나 않으려고 하는, 부정적인 충동 또는 무無에 대한 이끌림’을 바틀비 증후군이라 한다고 책의 표지에 작은 글씨로 써놓았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바틀비들’ 원문엔 Bartleby y compania, 즉 ‘바틀비와 일당들’이라 하고, 일당들, 즉 절필을 했거나 책을 내지 않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찍이 로베르토 볼라뇨가 쓴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을 보면, 남북 아메리카에서 2차 세계대전 전후해서 나치를 옹호한 작가들의 명단을 몽땅 까발린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을 때, 요새 우리나라에서 쓰는 말로 대대적 적폐청산을 위한 정리 작업인줄 알았다가, 진도를 더해감에 따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의 대부분 혹은 전부 다 사실이 아니라 볼라뇨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인물이란 결론 낸 적이 있었다. 이 책 <바틀비와 바틀비들>과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의 공통점이라면 스토리가 없다는 것. 볼라뇨의 책은 마치 인명사전을 펼친 듯한 느낌 속에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반면, <바틀비....>는,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운이 좋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처량한 곱사등이 상태를 받아들여 견뎌내고 있으며, 가까운 가족은 모두 죽었고, 섬뜩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행복한 남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는 외톨이 늙은 남자가 1999년 7월 8일부터 약 한 달간에 걸쳐 작업한 결과물인데, 문학적 성과와는 관계없이 어느 순간 글쓰기를 더 이상, 결코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인물들과 그들이 당시 빠지게 된 부정적 충동 같은 것에 관해 조사한 내용이다. 1번 로베르트 발저 (책에서는 ‘로버트 발저’로 표시)부터 86번 레프 톨스토이 백작각하까지 참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있으나,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특별한 스토리가 없다. 86개의 항은 전부 주석으로 사용하고자 한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지만 그걸 그대로 믿을 독자는 별로 없을 걸?
 빌라-마따스, 이 양반이 이 책으로 2000년 스페인에서 ‘올해의 소설상’을 받았다고 한다. 읽어보면 정말 다양한 독서와 작가들의 연혁을 꼼꼼하게 공부해, 하필이면 붓을 꺾은 인물들에 관해 집중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독자들은 모르겠으나, 나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전 지구적으로, 아니다, 시각을 좁혀 우리나라 책방에도 숱하게 새로운 출판물이 나오고 있다. 수천의 작가 지망생들은 별것도 아닌 선배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손으로 옮겨 쓰는 필사작업에 목을 매며 자신도 조만간에 ‘등단’이란 관문을 통과해 필명을 나부낄 희망을 부여잡고 있을 것이다. 표지를 넘기면 이렇게 쓰여 있는 걸 보게 된다.
 “어떤 이의 영광 또는 장점은 글을 잘 쓰는 데 있다. 어떤 이의 영광 또는 장점은 글을 쓰지 않는 데 있다.”
 2019년 현재 대형 서점에 깔려 있는 시, 소설, 희곡, 평론 등의 문학작품 가운데 몇 종류가 30년 후인 2049년에도 읽힐 것 같은가. 거꾸로 지금부터 30년 전인 1989년 이전에 나온 책 가운데 여전히 읽히는 책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문학을 하는 일은 확률이 거의 없는 패에 배팅을 하는 도박 아닐까? 글쎄, 선택은 당신들 몫이니까 뭐. 확실한 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작가들이 훨씬, 훨씬 더 많다는 거. 자의건 타의건 간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붓을 꺾은 작가들을 추적하는 일은 살아남아 이름을 떨친 극소수의 작가들에 천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토록 많은 작가들에게 문장을 거두어가게 했는지.
 작품의 진정한 위대성은 일단 제쳐두고, 붓을 꺾은 작가들은 어떠한 이유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참 다양한 그림들.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주던 외할아버지가 죽어 더 이상 남은 소재가 없어 붓을 꺾는다는 말을 남긴 <뻬드로 빠라모>의 작가 후안 룰포. 자신이 점점 가구처럼 되어 가는데 가구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클레망 카두. 지독한 은둔생활을 하며 과작만을 생산했던 <시르트의 바닷가>를 쓴 쥘리앙 그라크, <호밀밭의 파수꾼>의 제롬 데이비드 셀린저, <제49호 품목의 경매>와 <바인랜드>를 쓴 토머스 핀천. 또 플로베르의 문하생으로 스스로 불사신을 자처하다 면도날로 자신의 목을 그어버린 기 드 모파상, 아주 나중이지만 문학이 도덕적인 타락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선언하고 가출해 죽어버렸으나 스스로가 젊은 시절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바람둥이 출신 톨스토이 백작 등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데, 마구 읽어나가다 잠깐 정신이 들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건 바로 소설. 픽션이란 뜻. 우리가 늘 읽어왔던 진짜 작가들도 등장하지만 빌라-마따스가 창조한 등장인물이자 작가도 무수하게 나오리란 걸 깜빡 잊고 있었구나!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91페이지에 쓰여 있는 의문문들은 이 책의 지은이 빌라-마따스를 비롯한 (거의)모든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고민해야 하는 숙제가 아닐까?
 “하지만 실재적으로 내 예술은 무엇인가? 내 예술은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가? 나는 예술을 함으로써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글을 써내면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일까? 그건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야망이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이것이 바로 내가 알아내기 위해 은밀하게, 오랫동안 탐색해야 할 문제다.”


 팁. 어느 정도 독서력讀書歷을 쌓은 독자들에게 권하겠다. 숱한 책 제목이 나온다. 그럴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더 재미있을 터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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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온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2
알베르토 푸겟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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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엄지영의 해설을 보면 “스페인어 ‘말라 온다Mala onda'는 불만스럽거나 불쾌감이 들 때 쓰는 구어적 표현이다. 이 소설 본문에서도 다양한 상황에서 ’답답하다‘ ’마음에 안 든다‘ ’ 기분 나쁘다‘ ’시시하다‘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단다. 대강 어떤 의미의 은어인지 짐작이 간다.
 책은 1980년 9월 3일, 수요일부터 9월 10일 수요일까지 여드레, 그리고 에필로그를 겸해서 9월 14일, 일요일, 이렇게 9부로 되어 있다.
 9월 3일 수요일은 브라질 리우 해변. 칠레 산티아고에서 수학여행을 온 11학년 열일곱 살 학생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리우 해변에서 알코올과 마약, 해피스모크 등으로 대표하는 젊음과 열정, 자유와 쾌락을 누리면서 마지막 밤을 불태우는 걸로 시작한다. 주인공 마티아스 비쿠냐를 비롯한 산티아고 사립학교 11학년 학생들. 아직 칠레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 전혀 정치 의식이 없는 철부지들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거기다가 전 칠레 인구 가운데 상위 천분의 일에 해당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자제들이기도 하고. 이들의 부모는 피노체트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 자신들의 세습적 권위가 유지되기 바라는 친 정부 집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월등한 이권을 확보한 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극히 일부분의 상류계급만이 입장할 수 있는 클럽의 회원권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자유로이 코카인을 흡입하면서 TV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미녀들과 환각 속에서 섹스를 즐기는 삶을 사는 아버지들과, 아버지의 동업자와 은밀한 관계를 갖는 어머니들 사이에서 태어난 신세대.
 마티아스 비쿠냐의 현실은 가정과 학교에선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는(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속물임이 벌써 드러난) 부모와 교사들에 의해 어디 한 구석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한다. 관심을 갖고 있는(자신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학생 안토니아는 자신과 아무런 교집합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할 뿐이고, 알코올, 마약, 파티, 섹스, 록 음악을 공유하는 남자 친구들 역시 결국 자기의 개똥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멀어져가기만 한다. 딱 이때가 1980년 9월 11일, 칠레의 개헌을 빙자해 피노체트 장기집권을 도모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코앞에 둔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었다. 1980년 10월 22일. 당시 온갖 방법을 써 투표율을 올리려 했던 전두환 정권은 국영방송 KBS에서 송출한 투표 독려 방송에서 탤런트 고 김순철의 입을 통해 “기권은 반대보다 더 나쁘다.”고 열변을 토하던 것이 떠오른다. 그래 결과는 투표권자의 96%가 투표를 해 이 가운데 92%의 찬성으로, 마지막 간접선거에 의하여 장충체육관에서 전두환이 다시 11대 대통령으로 즉위, 7년간 소위 제5 공화국을 열기에 이른다.
 칠레는 그래도 대한민국보다는 덜 했던 거 같다. 전 공군 참모총장이었던 자가 매체를 통해 반대표를 던지라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었으며, 주로 빈민가의 벽엔 ‘독재타도’ 같은 벽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니. 어쨌든 68%의 찬성으로 8년 동안 피노체트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게 되지만, 반대 의견에 투표했을 것으로 보이는 작가 알베르토 푸겟은 당시 국민투표와 정의-불의, 찬성-반대, 파쇼-자유 등의 이분법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오히려 앞으로의 독재를 위한 준비로 기능할 국민투표를 앞에 두고 부르주아 계층의 별세계를 집중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일종의 보색대비를 노렸던 것인지도. 나는 혹시 후자이지 않을까, 하는 심정.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마티아스는 이제 사랑하고 싶은 아가씨에게 외면당한 대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아가씨에겐 일종의 겁탈을 당했으며, 함께 온갖 수난을 겪어가면서도 사이좋게 알코올과 마리화나와 코카인과 외설을 함께했던 친구들도 자기와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끼는 딱 그 순간, 후안초 클럽의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하는 알레한드로 파스가 빌려준 책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책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점점 닮아가기 시작한다. 마티아스는 이 책을 읽자마자, 정치적 측면이 아니라 자아를 찾는 측면에서 단박에 의식화가 되어 버린다. 책 한 권을 읽고. 그래서 좌파 지식인이자 평소 존경했던 학교 국어 교사 플로라 선생의 지극한 리얼리즘적 세계마저 이젠 시시해져 버리는데, 여태 미국 외설잡지, 록 음악 잡지 말고는 책이라곤 거의 읽지 않았던 마티아스한테 갑작스레 벌어진 개안이 좀 그렇긴 했다. 이런 거 시비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 그러나 자연스레 이어지는 가출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방식이 과하게 작위적 아닐까?
 알베르토 푸겟이 처음부터 <호밀밭의 파수꾼>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는데 만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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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웨스트
살만 루슈디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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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말 5월초의 긴 연휴가 끝났다. 연휴의 시작은 4월 25일 퇴근시간. 끝은 오늘, 5월 7일 기상시간. 이제 내게 남은 취미라고는 책 읽는 거하고 음악 듣는 일, 두 가지 뿐. 기특하게도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야마하 미니 오디오는 벌써 CDP 기능이 자폭을 해버렸다(반품 후 새 상품으로 교환해 받은 것도 똑같은 장애가 발생했다. 분명 야마하 제품 자체의 CDP 기능이 개떡일 거다). 연휴 동안 19세기를 대표하는 두 명의 동갑나기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와 바그너의 전곡을 대본 확인하면서 들어보려 했는데 초장부터 초쳤다. 이제 남은 건 책 읽는 일.
 그래 25일 저녁, 퇴근하면서 결심했다. 11일 간의 휴가 동안 단 한 페이지의 책도 읽지 않고 지내보겠다, 라고. 기어이 그렇게 해봤다. 음악도 못 듣고, 책도 안 읽기로 하고 11일을 지내? 그거 쉽지 않더라. 그래 노상 하는 일이라곤 낮술 마시고 TV로 영화 한 편 보고, 저녁 먹으면서 또 반주 삼아 한 병 마시고. 이리 한 주일 정도 지내니까, 이러다가 사람 죽지, 싶더라. 영화 본 것 가운데 <말모이>와 <미쓰백>이 인상 깊었다. 두 영화에 동시 출연하는 오종종하고 귀여운 얼굴에 어깨 넓은 여배우 김선영. 왜 있잖아,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마지막 회에서 박보검의 새엄마가 되는 배우. 참 맛있게 연기하더라. 사실은 잘만 킹 감독의 작품을 하나 보려 했다가 내 집 Pay TV에는 레퍼토리가 없었다. 난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가 더 좋거든. 여태 잘만 킹 감독의 영어 이름이 Salman King이고 유색인인줄 알았다. 확인해보니까 백인, Zalman. 이번에 읽은 <이스트, 웨스트>의 작가가 Salman과 헷갈렸던 것.
 다시 휴가 얘기로 돌아오면, 4월 25일 오후에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는 <이스트, 웨스트>를 딱 100 페이지, 네 편의 단편을 읽고 나서, 오늘 아침 통근 버스에서 다섯 번째 단편, 101쪽부터 다시 읽기를 이어갔다. ‘이스트’ ‘웨스트’ 그리고 ‘이스트, 웨스트’ 세 부로 되어 있으며 각 부마다 세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트’는 비유대인이 먹는 빵 만들 때 첨가하는 발효제를 일컫는 단어가 아니라 유럽 백인들이 볼 때 동쪽, 동양 즉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분쟁지역인 카슈미르를 배경으로 루슈디다운 우화적 (짧은)단편들이며, 웨스트는 가상월드 테마파크 ‘웨스트월드’의 미국 서부지역(궁금하신 분은 HBO 드라마 검색하시압)이 아닌 유럽의 문학(아, 불쌍한 요릭!)과 역사(불경한 콜럼버스와 깡패 이사벨여왕) 등을 이스트 출신 지식인의 눈으로 본 것이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이런 책은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하루에 해치워버려야 하는 전형적인 타입이다. 그걸 터울을 무려 열하루를 두고 읽었더니 매끄럽게 스토리가 이어지지가 않았다.
 책 읽는 도중의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느낀 감상을 듣고자 하신다면, 마지막 장 ‘이스트, 웨스트’가 사실 살만 루슈디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는 것. 1988년, 아시다시피 이이가 쓴 <악마의 시>를 읽어본 당시 이란회교공화국의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사형선고를 때려 영국 내 안가에서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몇 년 동안 숨죽이며 살았던 적이 있다. 작가라는 사람들의 천형이, 뭔가를 쓰지 않으면 자신이 사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거. 그래 루슈디 역시 안가에서 짧은 소품을 몇 개 끼적이고, 이중 몇 편은 잡지에 기고도 하고 몇 편은 모아두고 했다가, 지구를 분류하는 단순한 방법, 동양과 서양, 그리고 자신의 처지처럼 동양 출신이지만 서양의 중심지 영국에 사는 인류에 관한 작품을 골라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 이 책 <이스트, 웨스트>다. 그러니 결국 ‘이스트’와 ‘웨스트’는 마지막 ‘이스트, 웨스트’를 쓰기 위한 밑밥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인데, 문제는 맘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의 한 가운데에서 열하루의 간격을 벌렸다는 것. 그래 내 의견이 맞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지막 단편 ‘코터’의 본문 197쪽에서 아버지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아빠한테 묻어 인도에서 영국으로 이민 온 화자 ‘나’는 “사랑하는 모국으로부터 강제로 유배”당했다고 고백한다. 작 속에서는 아버지에 의한 유배, 그러나 아버지와 동행해 유배를 당했던 반면, 이 작품을 쓴 살만 루슈디는 회교 원리주의자 행동대원들을 피해 죽지 않기 위해 유배를 당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 와중에도 작가의 뇌 속에선 무궁무진한 우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
 루슈디 특유의 상징과 도발과 비딱한 시선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으니 궁금하신 분 계시면 확인해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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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감정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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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성의 고리>와 <아우스터리츠>에 이어 세 번째 읽은 제발트. 이이가 1944년생. 2001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으니 불과 57세. 이 책까지 세 권을 읽고 이이의 생몰 연대를 보니 저절로 나오는 한숨. 나는 무슨 염치로 제발트 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가. 1944년에 태어나 1988년 영국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때부터 유작이 되고 만 <아우스터리츠>까지 겨우 13년간 작가로 활동했을 뿐이다.
 <아우스터리츠>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보나파르트가 작살을 낸 전쟁터가 아우스터리츠. 그러나 작품에서 ‘아우스터리츠’는 전쟁터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직전에 영국으로 피신해온 1만 명의 유대인 어린이 가운데 한 명으로, 당시 네 살이었던 아우스터리츠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장소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였다. <토성의 고리>는 영국 남동부 지역을 주로 도보로, 가끔은 버스로 여행(이라기보다 순례)하며 문명과 문화, 인간과 역사 등에 관해 깊은 사색을 보여준다.
 이 책 <현기증, 감정들>은 위 두 권의 경향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네 개의 부部가 긴밀하지는 않지만 서로 연결된 내용으로 된 독특한 구성을 가진 소설. 보나파르트의 3대 승전 가운데 세 번째 전투가 아우스터리츠. 첫 번째 큰 승리를 거둔 전투는 수만 명의 프랑스 병사들이 무거운 대포를 끌고 알프스를 넘어 피아몬테 부근에서 오스트리아 대군과 맞장을 떠 극적 역전승을 벌인 마렝고 전투. 이 전투에 직접 참전한 수만 명의 인물 가운데 유명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우리가 아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앙리 벨. 누군지 모르시겠지? 이 젊은이가 나중에 소설가가 되어 작품을 발표한 필명이 ‘스탕달’이다. 나도 처음 알았다. 당시까지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알프스를 넘었다는 것도 극적인 일일 텐데, 마렝고에서도 되치기 한 판으로 역전승을 거둔 경험을 겨우 열일곱 살 때 했다. 이 정도면 역사상 워털루 전투를 가장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으로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을 꼽는 것도 수긍이 간다. 스탕달의 본명이 ‘벨.’ 그리하여 이 책의 첫 장 제목으로 <벨, 또는 사랑의 기묘한 진실>을 붙이는 것. 첫 장에선 벨의 이탈리아에서의 연애사를 중심으로 평생을 괴롭힌 매독 후유증과 이로 인한 사망까지 적고 있다. 그러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로, 사람의 기억에 관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억하고 있는 영상과 사실은 다르다는 것. 나도 간혹 기행문을 쓰는데, 쓰면서 사진을 보며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상과 당시 감정을 위주로 쓴다. 그러다가 나중에 특정 지역이나 사찰의 사진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으면, 기억과 실체로서의 사진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놀라고는 한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소설 <불안의 책>을 보면, 여행에 관해 이야기 하는 바, 상상과 그 상상의 확장 안에서 특정 지역을 수도 없이 가서 보고 느끼고 거닐고 만끽한 것이 진짜 여행이지, 정말로 비행기 타고, 기차로 갈아타고 며칠을 달려 어느 무인역에 내린 다음 또다시 며칠 동안을 피곤하게 걸어 도착한 그곳에 어찌 진실이 있겠느냐는 취지로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페소아의 경우는 직접 특정 장소를 가 볼 필요 없이 방 안에서 사색을 통해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좀 과격한 주장을 하는 반면, 제발트는 여행을 먼저 하고 당시의 기억을 적기는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필터에 의하여 한 번 이상 걸러져 그 결과 다분히 변형된 상태로 타인에게 전해진다는 점이 차이가 난다. 물론 이건 벨, 즉 스탕달의 연애의 경험과 추억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두 번째 장 <외국에서>는 1980년 자신이 살던 영국을 떠나 빈을 거쳐 이탈리아 베니스와 베로나 지역 등을 여행하며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건장한 젊은이 두 명에게 미행을 당하는 듯한 공포감으로 서둘러 영국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첫 장에서 선보인 기억과 사실의 차이점 등에 관해 계속 언급을 한다. 이후 7년이 흘러 1987년 휴가철에 다시 이탈리아를 방문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제발트 특유의 문명비판과 인간 행위 유형(이렇게 쓰니 복잡하게 보이겠지만 쉽게 얘기해 그냥 ‘역사’) 등에 관한 사색, 여행 중 해프닝 등에 관해 써놓았다. 마치 영국 남동부 지역을 순회한 작품 <토성의 고리> 한 장면을 읽는 것과 유사하지만, 영국과 이탈리아, 북해와 지중해의 차이 정도로 감수성이 다른 점이 재미있다.
 세 번째 장 <K 박사의 리바 온천 여행>은 “1913년 9월 6일, 프라하에 있는 노동자 상해보험회사의 부사무관인 K 박사는 응급처치와 위생에 관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빈으로 향하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생각해보시라. 프라하 출신 1913년에 보험회사 다니던 유명인물 K. 누구? 그렇습니다. 카프카. 카프카라는 말이 아니라 카프카를 생각나게 한다. K 박사는 가르다 호수 남쪽에 있는 데센차노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작은 마을 데센차노에선 그를 영접하기 위해, 라기 보다 오랜만에 보는 외지인 높은 양반이 온다기에 사람들이 광장에 집결해 있었는데, K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만다. 그래 데센차노에 방문하는 대신 온천으로 유명한 ‘리바’라는 고을로 가서 ‘물 치료’를 받게 된다. 여기서 한 퇴역 장군을 만나 전투 얘기를 하던 중, “감각으로 잡히지 않는 사소한 요인들이 항상 (전투의)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법이라고, “세계사를 뒤바꾼 주요 전투들이 바로 그런 요인들의 작용을 받았던 것”이라며, 워털루 전투도 “전사한 오만 군사와 말들의 생명과 비견될 정도로 비중 있는 요인들,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비중의 문제”이며 “그 점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사람은 어떤 유명한 장군도 아닌 바로 스탕달”이었다고 단언한다. 1부의 유령인줄 알았던 벨 선생이 다시 등장하기에 이른 것. 위에서 언급한 <파르마의 수도원>의 워털루 전쟁 묘사에 이 “생사를 결정짓는 사소하면서 특별한 비중의 문제”가 등장하니 관심 있으신 분은 일독을 권함.
 4장 <귀향>은 역자 배수아에 의하면, 드물게 자전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서 그의 고향인 남독일 알고이 지방 베르타흐를 방문한 일지를 적고 있단다. 책에선 딱 잘라 ‘베르타흐’라고 하지 않고 ‘W’라고만 표시하고 있다. 고향을 떠난 뒤 처음으로 다시 찾은 W,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집이 하숙 또는 여인숙으로 변한 것을 발견했고, 자기의 태가 묻힌 집에서 약 40일간을 머물며 자신의 유년의 기억에만 있는 추억을 반추한다. 여기서 독자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저 앞에서 제발트가 스스로 이야기했듯 기억과 사실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이라는 점. 독자 스스로 제발트가 쳐놓은 덫에 빠져 지금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아마추어인 내 생각이지만, 수원 밑에 병점 찍고, 오산이다. 제발트는 소설가이고, 소설가라는 직업은 프로페셔널하게 거짓말을 꾸며대는 인간이어서, 제발트 역시 거짓말 쓰는 대가로 인세를 받는다. 더구나 일찌감치 스스로 고백했으니, 유년의 기억이란 사실이 아니고 자체가 허구란 점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근데, 문제는 이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거. 이 위에 쓴 네 개의 장에 대한 요약은 그냥 요약일 뿐, 이 책의 매력을 설명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발트를 제발트로 읽는 것은 작품 안에 든 압축공기를 흡입하는 일이다. 절제되고 응축되어 수은처럼 똑 떨어지는 듯한 문장 속에 든 사색과, 글을 쓰기 위해 미리 치밀하게 준비한 내용물을 받아들이는 것. 문장과 내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현 시대에 이리 충만한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제발트의 이른 죽음이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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