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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의 야간열차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8
다와다 요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1960년 생 일본 아줌마. 와세다 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했으나 1982년에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책 가게에 취직해 함부르크에 거주. 도쿄에서 함부르크까지 이사를 해야 했던 1982년, 다와다 요코가 선택한 이동 방법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이때의 경험이 다와다의 작품세계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쳤다고 책 뒤에 따라 붙은 연표에 쓰여 있다. 일종의 버킷 리스트에 나도 겨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리스본까지 가는 항목이 있었으나 삭제했다. 두 주일 가까이 걸리는 동안 시원하게 샤워 한 번 못하고, 샤워는커녕 머리감는 일도 며칠에 한 번씩이나 가능하다는데 근질거리는 머리통이며 등짝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동양인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막지하다는 러시아 사람들의 겨드랑이 냄새를 인내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여간 함부르크에 정착한 다와다는 이주 5년 후부터 독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9년 뒤에는 일본어로도 글을 써 독일, 일본의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어버린다. 우리나라에 다와다의 책이 세 권 번역이 되었다는데, 앞선 두 권은 독일어 버전이라 하고, 이 <용의자의 야간열차>는 일어 버전이며, 책의 해설은 서울대 독문과 교수 최윤영이 썼다. 뭐 거의 언제나처럼 해설은 별로 들춰보지는 않았지만. 이쯤 되면 다와다 요코더러 코스모폴리탄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작가는 분명히 일본 태생이며, 유년기와 청소년기, 성년기의 앞부분을 일본에서 보냈다. 22년 동안 일본의 전래동화나 조부모로부터 들은 옛이야기 같은 것들 속에 든 특성은 작가의 의식 저변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라쇼몽>, <고야산 스님> 같은 이야기 말이다. 검은 색조의 옛 일본 목조 주택의 음산한 분위기와 그 어떤 나라보다 다양한 귀신들이 배회하는 분위기.
나는 책의 제목 <용의자의 야간열차>를 보고 추리소설 아닌가 싶었다. 근데 아니다. 일본 말로 하면 용의자는 Yôgisha로 발음하고, 야간열차는 Yogisha로 한단다. 그러니 제목은 책의 무대가 되는 야간열차를 이용한 언어유희일 뿐이다. 책엔 용의자 비슷한 인간들이 몇 명 등장하기는 하지만 국경선을 넘을 때 청바지나 커피 원두 같은 소소한 품목의 밀수를 제외하고 진짜 범죄라고 할 것들은 주인공 ‘당신’의 상상 속에서만 비칠 뿐이다. 주인공이 ‘당신’이라고? 그렇다. 2인칭 소설이다. 당신은 함부르크에 주로 거주하면서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현대 무용을 공연하는 예술인이며, 간혹 인도나 중국 등을 방문해서도 밤 열차를 타곤 한다. 그러니 영화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Murder on the Oriental Express>같은 미스터리 영화 비슷한 걸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수 있다. 무용가 ‘당신’은 몇 십 년에 걸쳐 차례로 파리, 그라츠, 자그레브, 베오그라드, 베이징, 이르쿠츠크, 하바롭스크, 빈, 바젤, 함부르크, 암스테르담, 뭄바이 이렇게 열두 도시를 향해 야간열차에 오르는 동안 백댄서에서 유망한 현대무용가로 성장한다. 따라서 각 도시와 각각의 열차여행은 서로 관련성이 거의 없어 마치 모자이크 조각, 모자이크 조각은 조각인데 이쪽저쪽에 흩어져 있는 각 파편으로 읽힐 뿐이다. 나는 오히려 밤 열차 특유의 외로움, 낯선 사람과의 반갑지 않은 조우, 나그네가 가질 수밖에 없는 두려움, 어두운 긴 복도, 음산한 바람, 일본인 특유의 수다한 유령, 이런 것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여러 번 이야기했듯 일본소설 비애호가로 별 공감 없이 읽었을 뿐이다. 물론 당연히 편견에 찬 한 아마추어 독자의 지극히 사적인 감상이니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내 잡스러운 글 때문에 일어 원본을 출간한지 불과 14년 만에 대한민국의 유수한 출판사에서 간행하는 “세계문학전집”의 한 자리, 그것도 장 자크 루소의 바로 뒷자리를 차지한 ‘고전 급’ 요새 흔한 말로 ‘월드 클래스’ 급 소설책을 멀리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