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4
윌리엄 골딩 지음, 안지현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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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뜬 밤하늘 달이 꽉 차면 정여사 제사다. 정여사 살아생전 고등학교 훈장질을 하셔서 그랬는지, 퇴직은 중학교에서 했지만, 소년들 이야기인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그리 상찬을 했었다. 골딩이 노벨상을 탄 1983년에 번역 출간된 책을, 나는 일 년 후 지긋지긋한 군대생활을 마치고야 읽었던 바, 군역을 마치고도 이런 내용을, 그러니까 매일 밤 인간이 인간에 대한, 같은 병졸이 병졸에 대한 구타와 비인간적 대우에 아직도 학을 질려하는 아들한테, 인간본성 속의 야만과 상호의 이리상태에 대한 책을 권하시다니, 정여사께서 벌써 노망이 들기 시작한 건 아닌지 의심하며, 그저 몇 페이지 읽다가 치워버렸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정여사가 천국의 즐거움을 찾아 가시고도 일곱 해가 더 흐른 2014년에 드디어 <파리대왕>을 정식으로 읽게 되는 바, 이게 과연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소설가의 대표작으로 합당한지 의아했었던 것이, 너무 노골적으로, 침을 튀며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약시로 두꺼운 오목렌즈를 끼고 다니는 아이의 안경알로 태양광을 집중시켜 불을 얻는다고? 이게 웬일이야? 옥스퍼드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했던 골딩이 이렇게 썼다면, 실수가 아니라 극한 은유, 아니면 우화일 것인데 나는 그 비의를 밝히지 못했던 바, 차라리 이 우화 또는 극한 은유를 비난하는 치사한 방법을 택했었다.
  그리하여 한참동안 골딩을 선택하지 않았다가 36개월이 흐른 뒤에 <상속자들>을 읽었다. 참신하게도 주인공이 네안데르탈인. 평화를 사랑하는 네안데르탈인들이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사냥을 당한다는 내용. 이 책을 읽고 다시는 윌리엄 골딩을 읽지 않겠다고 했는데, <상속자들>이 후진 책이란 뜻은 ‘절대’ 아니었고 다만 나하고는 극한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런 작가들이 몇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읽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껴야 했던 작가 쿳시. 그러나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상속자들>을 읽고 또다시 36개월이 흐른 2020년 11월에 내 선택은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표지에 실은 <피라미드>였다. 세 권의 골딩은 삼 년 터울로 매 11월에 읽은 꼴이니 2023년 11월에는 어떤 골딩을 읽게 될까. 그때까지 책을 읽을 정도로 시력을 유지할 수 있기는 할까.
  <피라미드>는 기본적으로 계급에 관한 이야기다. 무대는 영국의 소도시 스틸본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지역. 비가 오는 여름. 주인공은 18세. 여름이 끝나면 옥스퍼드로 화학을 공부하러 떠나야 하는 나, 올리버가 아마추어치고는 매우 뛰어난 실력으로 쇼팽의 연습곡 12번 다단조를 연주하고 있다. 온 종일. 당연히 작품 10의 12번 <혁명>인줄 알았는데, 저 뒤로 가면 작품 25의 12번 <대양>이었음이 밝혀진다. 나는 <대양Ocean>이란 곡이 있는지도 몰랐다. 올리버는 이 곡을 연주하며 18세 남자의 넘치는 리비도가 필요 이상의 성녀로 승격시켜놓은 여인에 대한 희망 없는 격정적 사랑을 표현하고 있던 거였다. 18세의 남자가 어떠냐고? 당신이 여성이라면 이순원이 쓴 <19세>를 읽어보시라. 우리나라 19세면 만으로 18세니까. 그 시절의 남자들은 참 어렵다. 나는 결코 소년시대로 돌아가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은데, 물론 군대 가기 싫어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것보다 사춘기를 한 번 더 보내기가 죽기보다 싫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모젠 글렌틀리가 그만 약혼을 해버렸던 것. 이모젠은 스물세 살. 물론 이모젠 아가씨가 올리버의 생각처럼 우아하고 고결한 여성이기는커녕 머리가 비었고 무감각하며 허영심이 충만한 여성이란 건 독자들이 나중에 발견하겠지만 그건 독후감이 끝나고 직접 읽어봐야 아실 터.
  그런데, 무대가 어디? 그렇다, 스틸본. 원문은 Stilbourne 이지만, 사산死産을 뜻하는 Still born과 발음이 같다. 아니면 적어도 매우 비슷하다. 아, 짜증나. 누가 골딩 아니랄까봐. 이랬다. 한 번 이런 마음이 드니까, 이어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아직 말도 한 번 붙여보지 않은 열여덟 살 아가씨 이비 베버컴이 과감하게 자신의 창문에 작은 돌을 던져 잠을 깨워 아직 비가 줄줄 내리는 밖으로 불러내는 것도, 옆집 사는 크랜웰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간 로버트 이완이 그녀와 함께 차를 몰고 가다가 얕은 연못에 빠져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이제 조금 후면 또다시 골딩 표 엽기 사건이 벌어지리라 예상할 수밖에. 그러나 아니었다. 올리버가 이비를 따라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달려간 작은 연못엔 바지도 못 입고 신발 한 짝도 없어진 채 이들 득득 부딪히며 와들와들 떨고 있는 의사 댁 아드님 로버트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 동네 최고 계급이랄 수 있는 돌리시 부인의 2인승 자동차를 훔쳐 타 으슥한 연못가에 와서 둘이 비비적대는 것까진 좋았는데, 누군가의 엉덩이 놀임에 의하여 브레이크가 풀리는 바람에 만유인력에 이끌려 내리막에 있던 연못에 빠져버렸다는 것.
  그러니까 이게 로버트, 올리버, 이비의 삼각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고, 또한 독자가 이들로 대변되는 스틸본 지역의 계급 상황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로버트의 이완네 식구들과 올리버의 식구들은 서로 데면데면하다. 로버트와 다른 의사의 아들들이 올리버에게 ‘너는 내 노예다.’라고 선언한 적이 있고, 선언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 그들은 의사의 아들인 반면 올리버는 의사의 지시에 의하여 약을 조제해야만 하는 약사의 아들이라는 점으로, 당연히 아이들은 이 때문에 서로 투닥투닥 싸웠고,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져 공기총으로 상대방의 머리위에다 대고 위협사격까지 하는 선까지 갔다가, 비즈니스를 계속해야 하니까 다시 정상을 찾았던 것. 여기에 이비는, 일단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역인 챈들러스 크로스에 산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처지는데다가, 아버지 베버컴 중사로 말하자면 시청관리인이며 울타리와 교구의 관리인이자 18세기 의상을 걸친 채 마을의 정리, 그러니까 잡부보단 좀 나은 자리에 있었으니, 알기 쉽게 부등호를 사용한 식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로버트 > 올리버 >>> 이비
  근데 어찌하여 로버트와 이비가 차 안에서 서로 부비적댈 수 있었느냐고? 서로 눈이 맞을 때까지는 계급이 없다. 이들의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풀린 걸 알아챘을 때는 로버트의 바지가 발목까지 내려와 있는 상태였고, 이비의 발이 차창 위에 올려 있었기 때문에 눈을 뻔하게 뜬 채 그대로 연못에 잠겨야 했던 것. 이런 상태에서 수습을 위해 올리버가 도착해 성공적으로 이들을 위기에서 구하지만, 다음날 이비의 눈엔 베버컴 중위에 의하여 시퍼런 원이 그려져 있었고, 베버컴 씨는 마을을 돌면서 “호, 와, 호, 와, 호, 와! 찾습니다. 챈들러스 레인에서 채플로피즈와 챈들러스크로스 사이에서 금 십자가 목걸이. 이니셜 E와 B가 있어요. Amor Vincit omnia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라고 새겨져 있고요. 찾은 사람에겐 보상금이 있습니다.” 라고 외치며 다닌다. 어제 와중에 목걸이를 잃어버린 거다.
  그리고 다시 계급이야기. 올리버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로버트는 다음날 아침 올리버에게 약간의 비웃음을 받고는 곧바로 싸움을 청해 투닥투닥 주먹다짐을 벌여 코가 깨진다. 베버컴 씨는 딸의 눈에 안와골절을 입혔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단단한 주먹을 날린 반면에 마을의 유일한 가톨릭 신자인 베버컴 부인 생각엔, 로버트 이완 군은 도무지 올라갈 수 없는 나무이지만 그래도 올리버 집안 정도는 적어도 넘볼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 여겨 올리버를 볼 때마다 호의 가득한 웃음을 보낸다.
  그럼 이비는? 로버트에겐 대단히 유리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오토바이. 날씬하고 키가 크다는 거. 올리버는 단단하지만 투박하다. 1920년대에 오토바이가 있는 젊은이가 그리 흔했을까. 그러나 로버트는 크랜웰로 돌아가야 했고, 아직 옥스퍼드에 입학하려면 시간이 남아 있는 올리버는 시시때때로 이비에게 돌진하는데, 어떻게 됐을까? 이들의 나이 18세. 이비로 하여금 올리버의 깊은 상흔, 이모젠의 그림자를 지우게 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안 알려줌.
  골딩의 작품으로는 예외적으로 재미있기까지 하다. 뒤에 해설엔 리얼리즘 작품이라고 설명했지만 그깟 사조야 무슨 관계가 있으랴. 여태 이야기한 건 전체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먼 훗날 이제 중년 또는 노년을 맞은 올리버가 고급 승용차를 몰고 스틸본 시로 돌아와 추억이 서린 장소를 돌아볼 때까지 굵직한 에피소드 세 개가 들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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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페터 바이스 지음 / 한국문화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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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잇.

독자가 책 읽고 독후감 쓰면 그걸로 끝이지, 역자, 출판사가 구질구질하게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이 짜증나 내용은 다 삭제해버렸다.

한 번 책을 내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거, 모르시나?

 

독자여, 도서관에 가서 직접 읽어보시고 판단해보시라. 내가 뭐라 썼겠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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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꽃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이용악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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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악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1914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경성이 청진 바로 아래에 있긴 하지만 심지어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삼수, 갑산보다 높은 위도에 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 정도의 위도라면 고구려-당-거란-여진-원-고려-조선이 땅 주인 노릇을 했을 터.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내 귀로 듣기엔 참 독특한 방언을 쓰는 지역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보면 이용악의 집안이 대대로 두만강변에 터를 잡고 소금 밀수를 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용악이 어린 시절에 부친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래 고학으로 경성고보, 지금 이름으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부터 역시 극도의 궁핍 속에서 동경의 상지대 신문학과를 다녔는데, 22세인 1935년에 “신인문학”이라는 잡지를 통해 식민지 경성에서 등단했고 36년엔 도쿄에서 김종한과 동인지 “이인二人”을 간행, 37년에 역시 도쿄의 출판사에서 첫 시집 《분수령》, 38년에도 같은 출판사에서 《낡은 집》을 출간하고 39년에 귀국하니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다.
  34년에서 38년까지를 온통 도쿄에서 있었다는 것은 이용악이 당시 경성의 문학판을 흔들던 카프에서 자유로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기, 특히 1935년에 경성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카프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임화처럼 고문 끝에 죽음의 위협을 견디지 못해 조선문인보국회에라도 가입해 명을 이어갔을까? 이 질문은 1942년 이용악이 아예 붓을 꺾어버린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얻어터지고 서대문에 다녀왔어도 문인보국회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거 같다. 대신 1942년에 그렇듯 함경북도 경성의 고향집에 틀어박혀 조용히, 언제 올지 모르는, 결코 올 것 같지 않은 해방을 기다렸겠지.
  그런데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는데 어떻게 경성고보에 진학할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대단히 총명했던 거 같다. 어디서 읽을 듯한데 이이를 우리나라 3대던가 5대던가, 하여간 몇대 천재 가운데 한 명으로 꼽는 것 같다. 함께 꼽힌 사람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천재 수준이 아니면 째지게 가난한 집에서 아이가 노동을 해 먹을 것을 벌어야지 어떻게 학교엘 다닐 수 있었겠나. 1930년대에.
  이이는 대학에 다닐 때 방학이면 집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만주, 아라사, ‘우라지오’라고 부르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여러 곳을 답사하며 식민지 조선의 인민들이 겪는 고초를 많이 경험했다고 한다. 이때 직접 보고 느낀 것이 시집 《오랑캐꽃》에서 여러 편 시화되고 있으며 동시에 깊은 호소력을 확보한다. 나는 이용악의 시를 처음 읽는 바, 애초에 공산주의자로 알고 있던 이용악이 아무런 운동의 메시지 없이 간도에 흘러든 조선의 유민들을 이리 노래할 수 있었는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어쩌다가 이제야 이 사람의 시를 읽게 됐는지 한탄을 할 수밖에. 그리하여 인용하기엔 조금 길지만 전문을 옮긴다.



  전라도 가시내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승냥이 또는 범)도 인젠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 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궈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전문)



  그냥 시를 읽으면 시인이 어떤 노래를 하고 있는지 그대로 알 수 있다.
  문제는 4연인데, ‘불술기’는 “기차를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라고 한다. 옛 시를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가 모르는 단어가 속출하면 그게 어떤 뜻인지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새롭게 배우는 거다. (참고: 3연의 ‘방자’는 “남이 못되거나 재앙을 받도록 귀신에게 빌어 저주하거나 그런 방술을 쓰는 일”) 시를 읽으면 그냥 사정이 눈에 그려지니 새삼스레 내가 읽은 감상을 쓸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 마디만 하자면, 저 먼 북국에서 마주친 동포 처녀를 바라보는 시, 이런 건 처음 봤다.
  총 50편의 시가 실려 있다. 내 정서엔 위에 인용한 <전라도 가시내> 같은 간도 땅 혹은 러시아 지역까지 널리 퍼져 있던 조선인들을 그린 시가 제일 좋았다. 이용악 자신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해 그런지 없는 사람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는 장면을 스케치 한 시편들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 그들 전부 다는 아니지만 거의 다는 슬픈 사람들이다. 그들이 불가에 모였다.



  슬픈 사람들끼리


  다시 만나면 알아 못 볼
  사람들끼리
  비웃이 타는 데서
  타래곱과 도루모기와
  피 터진 닭의 볏 찌르르 타는
  아스라한 연기 속에서
  목이랑 껴안고
  웃음으로 웃음으로 헤어져야
  마음 편쿠나
  슬픈 사람들끼리  (전문)


  비웃은 겨울에 제철인 생선 청어, 타래곱은 곱창의 함경도 사투리고, 도루모기는 도루묵이다. 가난해 슬픈 사람들이 조그맣게 피운 불 주위에 모여 싸구려 생선인 청어와 도루묵, 곱창과 닭 머리를 구워 먹는다. 이 밤에 또는 날이 새자마자 서로 갈 길 떠나야 할 사람들이. 시를 읽는 독자마저 슬프고 쓸쓸한 웃음 웃게 만드는 시.
  그러나 해방을 맞아, 오랜 절필을 끝내고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시들은 오직 혁명을 위하여 복무할 뿐이라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의 신념에 의한 시작詩作이었겠으나 작게는 이용악의, 크게는 우리 국문학을 위해 작지 않은 손실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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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조정연구소 아모르문디 세계문학 5
아흐멧 함디 탄피나르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모르문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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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이름의 작가이지만 터키에선 ‘근대문학의 거장’이라거나 ‘터키문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작가라고 한단다. 탄피나르가 터키의 로컬 작가로만 명성을 유지하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이 그의 수필에서 탄피나르를 “네 명의 외롭고 슬픈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는 바람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역자의 해설에 적혀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간조정연구소>는 1954년 작품으로 1962년 작가가 죽은 후 출간이 된 장편소설이다.
  아흐멧 함디 탄피나르는 1901년생. 완전한 20세기 사람. 이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터키 공화국 수립 와중의 혼란과 이어지는 독재정치를 온통 다 겪었다는 의미인데, 1962년에 세상을 떴으니 평생 좋은 꼴 한 번 못 보고 이런 와중 속을 살다 간 인물이다. 탄피나르는 다른 지식인, 작가 등과 달리 체제에 대놓고 저항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게 큰 까탈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구나 다 투사가 될 필요는 없으니.
  책의 제목이 <시간조정연구소>. 나는 책을 읽기 전에 혹시 오스만 투르크의 위대한 전통과 문화에 입각한 ‘시간개념’ 또는 ‘시간철학’이 소설 속에 담겨 있지 않을까 궁금했고, 한편으론 SF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조금쯤은 기대했지만, 정작 읽어보니 전적으로 이런 내용이 아니라고는 하지 못하겠으나, 그것보다는 20세기 초중반까지 작게는 터키 사회, 넓게는 당대 문명, 체제, 문화 등에 대한 풍자 또는 희화화라고 읽는 것이 타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내가 지레짐작했던 시간 개념 또는 20세기 초반에 주로 독일어를 상용하는 과학자들이 밝힌 ‘시간도 변한다!’는 새로운 발견에 과도하게 집착했기 때문에 환갑, 진갑이 지난 늙은이 하이리 아르달이 등장해 자신이 쓴 책 <세이흐 아흐멧 자마니와 그의 업적>이란 책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주 조금 어리둥절했다. 심지어 읽기를 중도에서 그만 두고 몇 시간을 흘려보낸 다음에야 다시 읽기를 시도했을 정도로.
  ‘세이흐’를 굳이 번역하자면 ‘maestro’ ‘장인’ 정도로 할 수 있다. 아흐멧 자마니로 말할 것 같으면, 17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 술탄 메메트 4세 시대의 인물로 세계최초로 시간을 초 단위로 세분한 시간 과학자. 일찍이 그의 어록을 보자 하면, “신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자신이 되고 싶은 모범을 따라 시계를 만들었다.”라든지, “시계는 인간의 내적 우주와 공존하고 있다.”, “시계와 시간이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적인 역할을 한다.” 비슷한 명언, 명구가 가득하다. 물론 많은 부분이 20세기 초반을 살다 간 걸출한 시계공 누리 에펜디가 평소에 즐겨 쓰던 말과 상당한 유사점이 있기는 하지만.
  화자이자 주인공 두 명 가운데 한 명인 하이리 아르달은, 숱한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자주 그러하듯이 무진장한 거부의 가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할아버지가 재산의 거의 모두를 거덜 냈고, 이어 쥐꼬리만큼 남은 나머지 재산도 아버지가 말짱 말아먹어 이제 성당의 생쥐처럼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다. 어려서부터 읽기와 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나중에 자그마치 18개 언어로 번역되고 비평을 받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세이흐 아흐멧 자마니와 그의 업적>의 저자가 되는 별자리를 타고 났는데, 사실 알고 보면 어릴 때부터 공부에 관심이 없어 최종학력이 중학교 중퇴에다가, 동네 시계수리공 누리 에펜디의 공방에 놀러가 어깨너머로 시계 만드는 법이나 고치는 기술을 좀 배우려 했지만 손재주와 한 가지 태스크에 집중하는 힘이 천부적으로 부족해 전형적인 아마추어임이 금방 드러났다. 하지만 이이의 관심은 온통 시계에만 집중되어 있었으니 이 아니 비극이랄까.
  하이리 아르달은 1914년에 열아홉 살이었다. 당연히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꼬박 4년을 전쟁터에서 보내고 돌아와, 조국을 위해 싸웠으니 정부가 알아서 잘 해줄 것이라 믿었지만, 정부는 정부대로 알아서 잘 해줄 대상이 너무 많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는 걸 감수해가며, 별 하는 일 없이 빌빌대다가, 첫 번째 아내 에미네와 결혼을 해서 딸 제흐라와 아들 아흐멧을 낳고, 에미네가 젊어서 죽는 바람에 어린 남매를 어미 없이 키울 수 없어 열여섯 살 어린 두 번째 아내 파키제와 처형, 처제와 새 가족을 이루어 이럭저럭, 사실은 지긋지긋하게 살게 되는데, 하이리가 마흔 너머까지 그의 생활에 공통점이라고는 언제나 가난하다는 거. 그래 이런 가난한 터키 인의 이스탄불 광경이 묘사되던 중에, 언제나 자기 코를 꿰고 있는 질곡, 가족들과 될 수 있는 대로 좀 떨어져 있기 위해 커피하우스 단골이 되고, 몇 년이 지나 아내와 처형, 처제의 드레스를 제외한 집안의 거의 모든 살림과 의복을 팔아먹었을 때 쯤, 혜성같이 등장하는 하이리 필생의 은인 ‘할리트 아야르시’를 만난다. 이이는 하이리가 모종의 유산 비슷한 소송에 휩싸여 원치 않게 끌려간 정신병원에서 터키 최초로 정신분석학을 전공한 라미즈 박사의 소개로 만나고, 할리트 아야르시는 하이리, 라미즈 박사를 규합해 정부 연구기관인 <시간조정연구소>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훗날 할리트 아야르시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그에 대한 회상록을 쓰기에 이르니 바로 이 작품, <시간조정연구소>가 되겠다.
  졸지에 <시간조정연구소>의 부소장에 등극한 하이리는 연구소 직원의 절반을 자기 친척이나 친지로 채우고, 나머지 절반은 할리트 아야르시의 친척과 친지로 구성하는데, 처음엔 이스탄불 시와 정부로부터 거액의 예산을 받아 운영하다가, 나중에 연구소의 위상이 커지게 되면서 전 국민으로부터 벌금 또는 범칙금을 받아 운영비로 사용하는 수준에 이른다. 어떤 경우에 범칙금을 내야 하느냐 하면,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시계가 구역의 공식 시계와 맞지 않으면 5 쿠르쉬의 범칙금을 물리고, 인근의 또 다른 시계와 안 맞으면 두 배에 해당하는 범칙금을 내야 한다. 물론 이 법령이 국회를 통과했는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자. 근데 어떤 시계라도 정확한 현재 시간을 측정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잖은가. 이리하여 사람들이 좀 북적이는 거리에서 범칙금을 거두면 순식간에 거액을 모을 수 있어서 이것도 약간의 문제가 되긴 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하이리가 예리한 아이디어를 냈으니, 대다수의 시민들로부터 극적인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한 바, 여러 차례 위반했을 경우엔 10~30 퍼센트의 벌금을 할인해 준다는 것. 정말로 난리가 났다. 이스탄불 시에서만 시행했을 때, 정말로 할인이 가능한지 터키의 온갖 다른 도시 사람들이 이 기적 같은 벌금 할인 제도를 체험하기 위해 이스탄불로 몰려오는 바람에 기차 노선을 증편했을 정도이며,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도 혁신적인 범칙금 규정을 실감하기 위해 너도나도 이스탄불 행을 감행해 때 아닌 숙박, 요식업 등의 관광수지가 폭등했다고 주장한다.
  이거 도대체 뭐야? 풍차를 향해 로시난테에게 전속력 돌격을 명하는 돈키호테. 할리트 아야르시에게 키호테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키호테는 둘시네아 공주도 구하지 못하고 풍차 날개에 걷어차여 늙은 몸이 엉망이 되지만, 능력 있고 행운이 따르는 하이리란 이름의 산초 판사를 거느린 할리트 아야르시는 교통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대단한 <시간조정연구소>의 소장 자리를 향유한다. 참 살다가 보니 성공한 돈 키호테도 다 만난다.
  그런데, 벗들이여, 친애하는 이웃들이여. 잘 나가는, 성공한 돈키호테를 우리는 따로 이렇게 부르기도 하는 것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사기꾼.”
  재미있는 작품이다. 20세기 터키를 제대로 한 번 비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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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씨의 결혼 서문문고 178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 서문당 / 197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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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렌마트를 읽기 위해서는, 당신이 선택한 콘텐츠가 소설이든지 희곡이든지를 떠나서, 앞부분에 어떤 내용이 씌어있던 간에 섣불리 사건이 전개될 방향을 추측하면, 곧이어, 아 뜨거, 코가 깨질 터이니 주의하실 것. 표제작 <미시시피 씨의 결혼>과 <로물루스 대제>, 이렇게 두 편이 실려 있는 《미시시피 씨의 결혼》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만 가지고 결혼, 이라는 단어가 주는 달착지근한 이미지 또는 서로가 서로를 속박하는 지옥,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여지없이 오산인 것처럼, <로물루스 대제>라고 하면 일단 ‘대제’라고 했으니 늑대의 젖을 먹고 로마를 건국한 최초의 왕을 생각하겠지만 예상 외로 마지막 서로마제국의 황제, 보통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작은 아우구스투스)라 불리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주인공으로 한다.
  두 편 다 뒤렌마트의 독특한 정치관에 입각해 쓴 희곡이고, <로물루스 대제>는 여기에 역사까지 얹어 재미를 더 했다.


  먼저 <미시시피 씨의 결혼>을 보자. 눈치를 보니 1차 세계대전은 확실히 끝나 러시아 땅에는 소비에트 연방이 자리를 잡았고,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은 코민테른을 중심으로 모든 땅의 적화를 꿈꾸고 있는 중이다. 지리적으로는 어디인지 특정하지 않지만 유럽 어떤 나라의 부르주아 집안 응접실이 무대.
  프랑수아라는 이름의 설탕공장 사장이 있다. 프랑수아는 아나스타샤라는 이름의 매력적인 여자와 결혼해 누가 보더라도 매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모범 가장으로 손색이 없었지만 겉으로 보기만 그렇다는 것이고, 알고 보면 겁도 없이 매년 250 명 이상의 형사범들에게 교수형을 구형하고 판결까지 받아내는 능력 있는 검사의 아내 마드레느와 열렬히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거다. 하여튼 바람피우는 남녀들 보면 대단하다. 난 하나 가지고도 힘들어 죽겠는데 둘 이상을 동시에, 그리고 일관된 거짓말을 평생 계속해야 하는 고난을 어떻게 이어가느냐고. 하여튼 길면 꼬리를 밟힌다는 만고의 진리에 따라 프랑수아 사장은 아나스타샤에게, 마드레느는 검사 남편 미시시피 씨에게 그만 증거를 남겼고, 이에 확신을 갖게 된 아나스타샤는, 젊은 시절부터 연인이었지만 여차저차 해서 결혼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의사이자 차베른체 백작이기도 한 보도 폰 위벨로에 선생으로부터 각설탕 비슷하게 생긴 독약 두 정을 얻어 프랑수아의 커피 잔에 진짜 각설탕 두 개와 함께 빠뜨려버리는 데 성공한다.
  대개 독약을 먹고 죽으면 눈으로 금방 알아챌 수 있건만, 당대 최고의 의사인 위벨로에 선생이 심혈을 기울여 제공한 독약이라 육안으로는 도무지 알아챌 도리가 없었을 뿐더러, 이제 과부가 된 아나스타샤 역시 부검을 원하지 않아 그냥 ‘심장마비’라는 사인으로 장사지내고 성당의 묘역에 안치를 해버렸다. 그럼 이제 아나스타샤는 당연히 아직 미혼으로 남아 있으며, 거대한 성을 세 개 보유하고 병원까지 자기 소유로 가지고 있는 위벨로에 선생과 결혼 아니면 적어도 동거의 수순으로 넘어가야 하는 터이지만, 소심한 의사 선생은 일이 발각되어 행여나 콩밥 신세 또는 교수형, 아니면 단두대로 행진해야 할지도 모르는 공포감을 이기지 못해 보르네오 섬으로 가서 여생을 밀림 속 병원을 운영하기로 결심해 떠났다.
  아나스타샤가 남편 장사지내고 몇 주 후 뛰어난 검사인 미시시피 씨가 과부를 찾아옴으로 해서 이야기는 본 괘도에 오르는 바, 알고 보니 미시시피 씨의 아내 마드레느도 우연히 연인사이였던 프랑수아 사장과 같은 병명인 ‘심장마비’로 급사해 장사를 지냈던 거다. 그것도 똑같이 커피 한 잔을 마신 다음에. 알고 보니 미시시피 씨 역시 위벨로에 선생으로부터 받은 흰색의 각설탕 비슷하게 생긴 독약으로 십계명에 의거하여 직접 자기 손으로 아내 마드레느를 처형한 것이고, 이제 살인범이 된 자신과 아나스타샤를 처벌하기 위한 방편으로 둘이 결혼해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을 전하려고 온 것.
  어떠셔? 골 아프지? 그래서 뒤렌마트를 읽기 위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작가가 이야기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작가가 기대한대로 놀래주어야 한다니까. 물론 위에 써 놓은 내용이 희곡의 전부가 아니다. 아직 미시시피 씨의 진정한 정체나, 첫 장면에 등장해 총 맞아 죽은 상태에서 객석을 향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생 클로드라는 작자에 대해서도 찍소리 안 했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미시시피 씨와 아나스타샤가 결혼하는 것으로 겨우 1막이 끝난다.


  <로물루스 대제>는 실제로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는지는 알려진 바 없고 다만 재위기간이 475년부터 1년에 불과해, 그가 한 일이라고는 고려의 공양왕이나 조선의 고종 말기처럼 그냥 나라를 들어 바치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지 않을까 싶다. 근데 아무리 이런 캐릭터의 황제라고 하더라도 이이의 재위 말기 행적을 뒤렌마트가 변주해 놓으면 극적으로 바뀌는데, 대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겨우 1년 황위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한 일 없는 로물루스조차도 약 천 년에 걸친 로마의 피에 물든 역사를 스스로 마감시킨 현자 비슷한 모습으로 바뀐다.
  서로마제국은 훈족의 왕 아틸라가 침공했을 때인 450년대 중반에 사실상 완전히 거덜이 났다. 아틸라가 로마의 턱밑에까지 짓쳐 들어갔을 당시 로마 황실에선 작은댁이 낳은 황제의 딸을 아틸라에게 첩으로 상납을 했으며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 눈이 돈 훈족의 왕이 얼마나 공주를 못살게 굴었는지 오히려 자신이 골병이 들어 얼마 가지 않아 세상을 하직한 바 있다. 아틸라가 죽어 눈물을 머금고 물러가는 훈족을 쫓아 살육전을 벌이던 장군이 오레스테스인데 그의 아들이 바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이 희곡의 주인공이다.
  뒤렌마트가 그리는 로물루스는 다분히 철학자연 하는 심지 깊은 인물로 젊어서는 책읽기와 예술에 몰두했고 나이 들고는 유럽 각지, 갈리아와 게르만 등 북쪽에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각지에서 수입해 들여온 닭을 키우는 양계에 유일한 취미를 둔 인물로 희화했으나, 극이 진행되면서 차츰 인간살이, 정치, 흥망성쇠에 관해 달통한 현자로 변모한다.
  멸망하는 왕조에서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게르만 인들에게 변변하게 대항하려 하지 않는 황제에 대한 시해 음모가 벌어지는 것도 로물루스는 당연하게 생각해 태연히 시해주동자들과 마주하여 그들의 의견에 맞장구도 쳐가며 고이 게르만 인들에 의한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나 쳐들어온 게르만 족의 왕 오도아케르 역시 로물루스에 비견할 수 있는 현명한 사람(으로 각색한바)이라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역사와 인생이 흘러가는 것에 순응한다는 내용인데, 내가 여태 헛갈리는 건, 위키백과에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생몰연대가 460~511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의 재위 초년인 475에 겨우 열다섯 살. 근데 결혼 적령에 이른 딸이 있고, 그의 약혼자 에밀리안이 5년 전에 전쟁하러 떠나서 게르만 족의 포로가 됐다? 흠. 아무리 뒤렌마트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사실을 비틀 수 있었을까? 경우는 둘 중의 하나겠지. 첫 번째는 그럴 수 있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위키피디아를 어떻게 믿느냐 반문할 수 있다는 것. 나도 그래 저 앞에서 로물루스의 생몰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 건데, 암만해도 뒤렌마트가 좀 오버한 거 같긴 하다. 로물루스의 별명이 소년황제였으니. 십대 소년을 이렇게 매력적이고 인생과 권력과 역사에 통달한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만든 뒤렌마트. 이 사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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