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듣고 싶은 노래가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이 곡들에 써놓은 것이 파일에 있군요. 글과 유튜브 영상을 함께 조합해 보았습니다.




비어있는 가슴 속의 긴 공명



 H, 9월의 들판엔 아직 곡식들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햇볕이 아무리 뜨겁다 해도 여름은 이미 황혼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단풍이 들고 어느 새 낙엽이 지겠지요. 그러면 당신은 지난 여름을 추억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우리의 세월은 바야흐로 지난 여름의 태양같이 여전히 뜨겁지만 오늘은 조금 마음을 추스리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가을을 이야기해봅시다. 가을...... 생각만 해도 어쩔 수 없이 가슴 한 구석이 황량해지는 단어지요. 이 가을엔 또 어느 외로운, 그러나 장난끼 많은 요정이 있어 당신 가슴에 치명적인 사랑의 화살을 날릴까요. 그러나 그 화살을 피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사실 피할 수도 없지만.

 고백을 할까요? 당신이 지난 여름에 묻혔던 나른한 추억의 작은 한 구석에 내가 있었듯이 당신의 가슴을 향한 그 화살에 묻힌 치명적인 독이 바로 내 심장에서 비롯하는 갈증의 먹줄로 만들어진 것이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답니다. 그리하여 아주 먼 훗날 이젠 당신의 심장에도 나와 똑같이 그어져있을 먹줄을 서로 맞대고,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고.... 이 가을에마저도 당신이 그 화살을 사양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차마 난감한 일이지만 지난 해 가을에 그랬듯 그 비어있음을 더욱 비어있게 할 수밖엔 없겠군요. 그래서 그 비어있음, 또는 비움을 위해 아마 나는 불란서 노래들을 몇 개 들을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 흐르는 수 많은 음악 속에서 그 음악을 듣고난 다음, 그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곡이나 연주는 사실 그리 많지 않지요. 오늘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비어있음에 어울리는 얘기를 해볼까 해요.


 H. 먼저 이마에 몇 가닥 굵은 세월의 흔적이 지나간 모나코 태생의 레오 페레, 그가 노래하는 <세월의 흐름 속에 : Avec le Temps>를 말하고 싶어요. 레오 페레. 이 백발의 노 가수에 대해서는 뭐라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의 노래야 얘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답니다. 얼핏 귀동냥으로 들은 바에 따르면, 레오 페레는 초기에 경영학과 피아노를 공부해서 처음엔 클래식 영역의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샹송으로 선회했지만 인기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지내다가 에디트 피아프의 도움으로 스타의 반열에 오르고, 71년에 이 <세월의 흐름 속에>를 발표해서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기록했다고 하는군요.

 사실 그의 음반 <Avec le Temps>를 들어보면 첫 곡인 <예술가의 생애 : La Vie D'Artiste>에서 아주 청명한 피아노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어느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즈음 페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마치 시를 읊듯 흘러나옵니다.

 그의 음악은 사람의 감성에 호소합니다. 나같은 보통사람이 아니더라도 샹송은 사실 곡의 내용을 알고 듣는다기보다는 샹송이라는 쟝르 특유의 어떤 서정성, 프랑스어 특유의 발음에서 비롯되는 신비감, 마치 흐느낌 같은 선율에 매혹되기 마련이겠지요. 그러나 페레의 노래는 그것들 외에도 참으로 귀한 것, 혹은 귀했던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답니다.

 역시 어깨 너머로 들은 것에 의하면 그가 노래를 만들때 보들레르나 아폴리네르 같은 프랑스의 대시인의 시를 자주 가사로 인용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노래, <세월의 흐름 속에> 안에는 아무 사변적인 덧붙힘 없이 들으려고 노력해도 기어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관조, 젊은 시절의 모든 열정이 다 사위고 대신 담담하게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는 듯한 쓸쓸함, 여유로움, 아쉬움 같은 것이 배어나와 마치 인생의 만가를 듣는 듯하게 만들어냅니다.

 세월이 더 흐르고, 죽음이 내 앞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때, 나는, H, 당신의 손을 잡고 이 노래만큼의 회한과 아쉬움, 그리고 여유과 관조를 함께 가질 수 있게 되길 진정 바라고 있답니다.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은 가버리고
완전히 지친 말과 같이 나이를 먹었다고 느끼겠지
우연의 침대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느낌
여위어 초췌해지고 고독해진 나를 생각해.
그리고 잃어버린 세월에 속은 듯한 느낌....
그래서 시간과 함께 사람은 이제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거야
가장 멋진 추억마저 다른 것과 같지
토요일 밤, 나는 미술관에서 죽의 이의 선반을 뒤적이고...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은 가버리고
매우 사소한 일로 믿었던 타인
그 사람을 위해 약간의 돈에 영혼을 판 적도 있는....
개를 끌고 갔던 것처럼, 그 앞에서 질질 끌려갔던 타인마저
시간과 함께 모두 가버리지
가버려. 정열을 잃어버린 낮은 목소리와.....



 H. 내겐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불란서 노래가 있어요. 당신도 너무 많이 들어 아마도 "또 이 노래야?"하고 반문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가을만 되면 전 세계 어느 곳이라도 이 노래가 들리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니까. 그래요, 지금 이태리 태생 샹소니에, 이브 몽탕의 <고엽 : Les Feuilles Mortes>를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몽탕은 나이를 먹은 다음에도 그의 모습 자체에 깊숙한 우수가 서려있지요.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었던 무수한 모습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파리의 정사>, <마농의 샘>에서 그의 단면들.... 이러한 것, 그 가운데 <밤의 문>에서는 바로 이 노래 <고엽>이 주제가로 나오기도 하는군요.

 세월은 모든 것을 추억으로 만듭니다. 추억은 아름다운 낡음일 거예요. 다미아, 쥴리엣 그레코, 에디트 피아프, 조르주 브라상스.... 이들과 마찬가지로 몽탕 또한 예전의 영화를 뒷전으로 하고 이젠 대지에 차분히 누워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만 살아 있군요.

 샹송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에디뜨 피아프 마저 그에게 몰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몽탕은 피아프를 이용해 성공한 다음에 그녀를 배신한 전력도 있지요. 어렸을 적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불우한 소년시절의 각인이 그런 이력을 만들었겠지만, 어떻게 그런 사람이 이다지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 <고엽>을 노래할 수 있었을까요.

 <고엽>은 자크 프레베르의 시에 곡을 붙힌 것이지요. 그러나 추억과 회환 또한 고엽과 같다는 가사를 몽탕 만큼 온유한 쓸쓸함으로 노래할 수 있는 가수는 없답니다.

 수많은 남성 샹송 가수들이 음유시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나 진정 자신있게 음유시인이라는 계관을 쓸 수 있는 샹소니에는 이브 몽탕과 그리스 출신의 조르쥬 무스타키 정도 아닐까요. 피아프마저도 자신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던 깊숙한 곳의 매력을 이 몽탕은 가지고 있으니까. 이 가을에도 전 세계 무대와 방송에선 여전히 "난 잊을 수 없어..."가 울리겠지요.




난 잊을 수 없어.
추억과 회환 역시 고엽과 같은 것을....
인생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조금씩 떼어 놓았고
그리고 바다는 모래 위에 찍은
맺어지지 않은 연인들의 발자국마저
지워버려.....

 

 H. 내 가슴의 비어있는 곳에 이 가을날, 샹소니에의 부드러운 목소리들만이 들어와 메워지게 내버려두지 않기를 소망한답니다. 그들의 노래와 더불어 당신의 손끝에서 불어오는 훈훈한 입김을 나는 기다릴테요. 이 서신을 읽은 한 달 후, 그래서 정말로 가을이 처들어왔을 때, 또다시 당신이 이 부끄러운 글을 찾아 읽어 내가 말한 음악을 듣고난 다음, 당신의 가슴 속에도 그때 까지 비어있는 곳이 있다면, 내가 그 속에서 울리는 공명이 되게 해주겠소?


*************


크하하하하....핰

몇 십 년만에 읽어보니 간질간질하고 오글거려서 도무지 못 읽어주겠습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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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르타의 태양 - 제101회 공쿠르 상 수상작
로랑 고데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1890년 남부 이탈리아 몬테푸치오 마을로 가는 가르가노 고원의 오후 두 시. 땅은 태양에 의하여 화형에 처해지고 있었다. 한 조각의 그늘을 찾을 생각도 않고 당나귀 등에 앉아 묵묵하게 태양을 견디는 사십대 사내 루치아노 마스칼조네. 이미 노인처럼 홀쭉하게 팬 두 뺌. 완전히 예전과 딴 판이 된 얼굴로 쉽게 이이를 알아볼 사람이 설마 있겠는가만, 15년 전, 가르가노 고원을 중심으로 악행을 일삼았던 도둑이자 건달 불량배. 그가 시에스타 시간을 맞추어 잔잔한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다닥다닥 하얀 집들이 붙어 있는 조그만 마을 몬테푸치오의 가리발디 거리에 들어서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마스칼조네는 곧바로 비스코티 씨의 집으로 향했고, 당나귀에서 내려 문에 노크를 한다. 그의 앞에 등장하는 잠옷 차림의 여인. 사랑도 미움도 담지 않은 시선. 이미 그녀는 그의 것. 무엇이든 다 주리라고 다짐한 듯한 여인이 그를 집 안으로 들이고 긴 주랑을 걸어가다 남자를 향해 뒤돌아선다. 마스칼조네는 서슴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가 잠옷을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게 한 다음 깊게, 깊게 포옹하며 속삭인다. “필로메나!”
  15년의 감옥 생활 동안 마스칼조네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동경이 되었던 여자. 단 한 번의 바라봄을 통해 평생 한 여자의 노예가 되었으며 오직 그녀를 취할 일념으로 호흡도 했고, 심장도 뛰었던 악당 마스칼조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몬테푸치오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의 눈에 띄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감옥을 나오자마자 선택한 길이었고, 필생의 여인을 안았으며, 이제 평생소원이던 필생의 여인을 안아봤기 때문에, 차분하게 죽음의 길로 향한다. 다시 당나귀를 타고 마을 바깥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선 마스칼조네를, 사람들은 드문드문 알아보았고 어느덧 큰 무리를 지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을 어귀에 당도하자 누군가가 마스칼조네에게 큼지막한 돌을 던져 관자놀이에 피가 흐르고, 피를 본 주민들은 더욱 흥분하여 또다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뛰어 도착한 성당의 돈 조르지오 신부가 루치아노의 머리를 가슴에 안은 채 주민들에게 호통을 치며 꾸짖었지만, 마스칼조네는 마지막 숨을 내쉬기 위한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 주민들 속에서 들려온 호통소리.
  “임마콜라타가 네가 능욕한 마지막 여자가 될 거다!”
  아, 자신이 품었던 여인은 꿈에도 잊지 못한 필로메나가 아니라 필로메나의 동생 임마콜라타였던 거다. 언니에게 추근대던 루치아노를 생각할 때마다 야릇한 쾌감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했던 동생. 차라리 죽음이 조금만 더 빨리 찾아와주었다면. 그리하여 필로메나를 안았었다고, 그렇게 알고 죽었더라면, 돌을 맞아 숨을 거두더라도 행복했을 것을. 루치아노 마스칼조네는, 이렇게 운명이 한 인간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니 뭐 어쩌겠어. 이게 인생이지. 루치아노는 그렇게 인생을 깨우치고 죽음 속으로 깊이깊이 파 들어간다.
  늦은 나이까지 처녀로 지내던 임마콜라타는 한 번의 떨리는 사랑으로 아들 로코를 낳고는, 노산의 충격으로 출산의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루치아노의 뒤를 따른다. 임마콜라타를 묻고 온 날, 동네의 나이 든 아낙이 신부에게 묻는다.
  “신부님이 해주실 거지요?”
  “자매님, 무엇을 말씀입니까?”
  “루치아노 마스칼조네의 악의 씨를 없애는 일 말입니다.”
  격노한 돈 조르지오 신부는 그길로 성당 문을 닫아걸고 주민들을 꾸짖은 다음, 로코를 몬테푸치오에게 적대적인 마을인 산 지오콘도의 스코르타 씨에게 위탁해 키운다. 이후 로코의 이름이 로코 스코르타 마스칼조네가 되는 것.
  루치아노 마스칼조네가 그냥 일개의 도둑이자 건달이라고 한다면, 로코는 남부 이탈리아를 벌벌 떨게 만드는 진정한 악당, 강도, 강간범, 살인마, 방화범의 반열에 오른다. 세상의 모든 악을 집대성한 로코가 어느 날, 귀머거리 여인과 함께 몬테푸치오 성당의 돈 조르지오 신부 앞에 서서 혼인미사를 올린다. 이날 이후 몬테푸치오 사람들은 적어도 로코로부터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고, 로코는 미친 듯이 돈과 귀금속과 보물을 자루로 실어 오면서 두 아들과 딸을 낳아 기른다. 돈, 재물에 경배한 주민들. 어느새 주민들은 로코를 경외하기 시작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아이들이 로코의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라파엘이라는 사내아이는 유달리 이들을 좋아해 해가 질 때까지 함께 어울려 놀다가 해가 지면 집에 가서 부모한테 두드려 맞는다. 나중엔 부모가 포기할 때까지. 로코의 아이들은 순서대로 ‘미미’ 도메니코, ‘페페’ 주세페, ‘미우치아’ 카르멜라.
  어느 날, 로코가 다시 돈 조르지오 신부에게 들러 밤새도록 자신이 살면서 저지른 죄악을 고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성당에 헌납하기를 제의하지만 거절당한다. 로코는 말한다.
  “로코가 몬테푸치오 주민에게 재산을 나눠주면 더러운 돈을 주는 겁니다. 성당과 돈 조르지오 신부의 손을 거치면 선한 돈이 되는 겁니다.”
  돈 조르지오 신부는 거절할 방법이 없다. 로코는 조건을 건다. 대신 스코르다들이 죽을 때는 가장 성대한 장례식을 지내주기로. 승낙한 돈 조르지오 신부, 문서 두 부를 만들어 서명을 하고 한 부를 로코에게 전한다. 새벽에 집에 도착한 로코는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막내 카르멜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그날 밤에 자연사한다. 이제 남은 건 가난한 유가족, 벙어리 여인과 도메니코, 주세페, 그리고 카르멜라.
  로코가 전 재산을 헌납한 행위. 이건 주민들로 하여금 로코의 피붙이에 내려진 저주, 미치광이 사생아의 피를 타고 물려받아야 하는 저주를 전 재산으로 해소하는 의식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이제 가난뱅이, 그것도 최악의 가난뱅이가 된 유가족을 위해 돈 조르지오 신부는 시내 오래된 골목길에 작은 집을 한 채 구해 벙어리 여인을 살게 하고, 남매를 위해서는 나폴리를 출발해 뉴욕으로 가는 정기선 배표 석 장을 건네준다. 몬테푸치오 마을에서 최초로 배를 타고 이국의 땅으로 향하게 된 삼 남매.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정열, 우애, 극진한 대접, 복수. 태양을 닮은 기질을 물려받은 남매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카르멜라는 엘리아와 도나토를 낳고, 엘리아는 또 안나를 낳아, 안나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이렇게 건조하게 스토리를 이야기하니까, 한 거친 집안 내력에 관한 소설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 빠른 이야기 전개와 달리, 독자로 하여금 괜스레 가슴이 찡하게 공감하게끔 만드는 것이 또 하나가 있다. 바로 문장. 원래 로랑 고데의 문장이 이런 것인지, 아니면 우리말로 바꾼 김민정이 남부 이탈리아 지방의 태양처럼 뜨거운 이야기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바꾸어 쓴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책을 단 한 번의 마음 저림도 없이 읽어치울 수 있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인간일 수도 있다. 공쿠르 상이 아무 작품에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101회 공쿠르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걸려 있어 그냥 ‘읽어본 것’이지만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많은 좋은 작품들이 이 책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흘러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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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일
짐 크레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이리저리 다니다 <사십일>이 눈에 번쩍 띄었다. 짐 크레이스. 근 4년 전 그가 쓴 <그리고 죽음>을 읽고 산다는 것이 참 덧없다고, 결혼 30년을 맞은 갱년기 또는 초기 노년기 부부가 이들이 처음 몸을 섞었던 해변을 방문해 그때를 기념하다가 악당에게 살해당한 시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심각한 수준으로 드라이하게 그려놓았던 걸 읽고 독후감을 쓴 적이 있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엔 분, 이어서 시간, 날짜 단위로 시신이 변하는 과정과 이들로부터 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몰려드는 파충류, 조류, 곤충, 갑각류,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이해하실 듯하다. 근데 문제는 끔찍하게 끔찍할 거 같고, 사실 내용도 그러한데 뭔가 삶이, 인간이라는 직립보행체가 중뿔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잘 강조해놓아서 읽어가며 점점 빠져들게 된다는 점. 아니나 달라 1999년 부커상 최종 후보short list에 올랐던 작품이며, 뉴욕 포스트가 올해의 최우수 소설로 선정했다고 해서 깜놀, 했던 적 있다.
  하여튼 그래서 고른 책인데, 웃긴 건, 이 책 <사십일>은 품절, 이 책을 고르게 만든 <그리고 죽음>은 판매 중. 둘 다 당시 영어책, 일어책 직역, 기타 나라에서 나온 책을 중역했던 자타가 인정하는 번역기계 김석희가 우리말로 바꾸었다.
  하여튼 이 책 <사십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가톨릭, 개신교를 불문하고 성서에 나와 있는 예수의 생애는 무조건 진리라고 믿는 신자, 신도, 형제자매들께서는 읽다가,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고 혈압 180을 상회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니 애초에 읽기를 포기하시라. 이런 거 미리 일러드리는 것도 선독자(먼저 읽어본 놈)의 친절이니 조금은 고마워하셔야 할 듯. 내 비록 신약성서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일찍이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로 가 40일 동안 온갖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금식기도는 아니고 하여튼 수도를 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 성공회의 나라 영국 사람인 짐 크레이스는 그러나 책이 서문에 엘리스 윈워드와 마이클 솔 교수의 저서 <생존의 한계>를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평균적인 체중과 체력을 가진 보통 남자가 완전한 단식 ―단식기간 중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는 단식―을 하면 30일 이상 생존할 수도 없고, 25일 이상 의식을 유지할 수도 없다. 이 남자가 성서에 기술된 40일 단식을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신이 도와준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역사는 그런 종류의 개입을 기록하지 않고, 의학은 거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럼 눈치 채셨나? 일단 이 이야기는 좀 뒤로 미루고 책의 스토리를 시작해보자.
  유대 땅의 황무지. 일 년에 비가 단 하루 정도 오는 척박한 대지라서 대상들이 낙타를 몰고 와 간이천막에서 며칠 묵다 가는 곳이기도 한데, 거구의 장사꾼이 하필이면 이 황무지, 한 시절 유대의 어버이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사랑하는 아들 이사악의 심장을 향해 번쩍, 잘 드는 단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던 성지이기도 해서 해마다 봄을 시작하는 달이 뜨면 많은 수도자, 기원자들이 모이는 성지이기도 한 이곳에서, 덜컥 열병에 걸려 혀가 숯이나 검댕처럼 새까맣게 변해 오늘 아니면 내일 죽을 것처럼 누워 있다. 환자의 이름은 무사. 무사의 젊은 아내는 임신 5개월로 아이의 발길질이 심해지는 시기였던 바, 하필이면 이런 때 남편이 숟가락 놓게 생겼으니 어찌 큰 근심이 아니겠느냐고? 아니다. 뼈만 남은 아내와 달리 거대, 비만한 체구의 무사는 덩치가 너무 커 앉았다가 빨리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이었음에도 아내 미리에게 하는 짓이라고는 거칠고, 거칠고, 또 거친 잠자리와 툭하면 눈가를 퍼렇게 멍들이고 마는 구타와 심한 노역이어서, 미리 입장에서 남편이 빨리 죽어주는 것이야말로 신의 은총이라 여길 정도. 남편이 맞은 죽음의 침상에서 미리는 결혼 후 처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같은 대상인 무사의 삼촌, 사촌들이 부부에게 당분간 먹을 것, 마실 것, 그리고 약간의 보물을 남겨두고, 장사를 오래 쉴 수 없어 떠나버린 날, 미리는 그래도 남편이니 그를 위해 맨손으로 남편을 위한 무덤을 파는데, 이 날이 올 봄 들어 처음으로 초승달이 뜨는 날이어서 다섯 명의 기도, 수도자들이 이 황무지로 오고 있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첫 번째 사람은 금발의 미남. 그리스 인. 나선형으로 휜 지팡이 소지. 이름은 심. 자신을 빼고 모든 사람을 숭배하는 범신주의자.
  두 번째 남자의 이름은 예루살렘 출신 석공이자 간암 환자인 노인 아파스. 40일 기도를 통해 신에 의탁하는 마지막 기회로 여김.
  세 번째는 부잣집 남자의 두 번째 아내 마르타. 첫 번째 아내가 불임으로 이혼당해 결혼했으나 마르타 역시 9년 동안 불임. 올해 임신 못하면 이혼 당할 예정.
  네 번째는 남쪽 사막에서 온 바두족 사내로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음. 사냥에 능한, 한 마디로 야만인 비슷함.
  다섯 번째는 위의 네 명과 한참 떨어져, 한참 늦게 도착한, 이제 갓 사춘기를 지난 청년 예수.
  그래서 예수는 네 명이 전부 동굴 하나씩을 선택해 자리에 들은 이후에야 황무지에 들어오는데, 다른 네 명과 달리 어떻게 하다 보니까 무사의 천막으로 향하게 된다.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금식기도에 접어들어야 해서 오늘 마지막으로 그저 입술을 축일 정도의 물과 작은 양의 빵을 얻으려 천막을 방문했는데, 무덤 파러 간 미리는 보지 못했고 무사만 혼자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것. 예수는 딱딱한 빵 껍질 조금을 먹고, 자기가 원했듯이 겨우 입술이나 축일 정도의 마지막 물 약간을 마신 다음, 무사의 침상으로 가, 그의 입술에 물을 적셔주고는, 정작 예수 자신은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는 순간이지만, 가슴을 퍽퍽 눌러 무사의 몸에 거하고 있던 열병의 악령을 물리치고 나서, 갈릴리 지역에서 늘 인사말로 쓰는 “그럼 다시 건강해지기를.” 하는 인사말을 마지막으로 천막을 뜬다. 이어 쉽게 오르내리지 못하는 절벽 아래로 내려가 십자 모양의 입구가 있는 동굴에 자리를 잡는다.
  놀랍게도 짧은 시간에 거의 완치가 되는 무사. 그가 정신을 차려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라니. 절구 공이를 집어 들더니 삼촌, 사촌이 남기고 떠난 병든 당나귀를 때려죽여버렸다. 그럼에도 무사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모습. 갈릴리 청년. 무사가 예수를 갈릴리 청년이라고 알아볼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하여튼 그는 그런 뜻으로 진짜 예수의 별명이기도 한 ‘갈리’라고 예수를 칭하기에 이르면서 그를 찾는데 공을 들인다. 어떻게?
  예수를 뺀 나머지 네 명의 기도자들. 무사는 이들 앞에 나타나 대단한 뻥을 친다. 타고난 장사꾼이라 대담하고 일면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하는데, 이 일대의 땅이 모두 자기 것이니 지금 당신들이 든 동굴의 세를 내라는 것. 그렇게 돈을 받고 한편으로 아내 미리를 시켜 음식을 만들어놓고 40일 금식기도라는 건 낮에 금식하라는 의미니까 밤이 내리면 천막에 와서 음식을 사먹으라 제의한다. 청년 예수는 철저하게 하느님을 믿는지라 절벽 아래 동굴에 박혀 오직 기도만 하고 있어서, 질병 치료사인 예수와 동업을 하고 싶어 애가 타는 무사는 긴 끈을 달아 음식과 물을 그의 동굴 앞에 가져다 놓고 이야기나 한 번 하자고 유혹하는 것. 바로 무사가 신약성서에 나온 사탄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고? 좋다. 어차피 책은 품절이고 당분간 복간되지 않을 것이며, 복간한다 하더라도 리커버 에디션이나 그 비슷하게 껍데기만 바꿔 핑계 김에 가격을 올릴 터라 이 독후감은 노출이 되지 않을 것이니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자면, 청년 예수는, 저 위의 윈워드와 솔 교수의 의견에 맞추어 단식 31일차에 세상 하직하고 만다. 이 정도면 기독교 신자, 신도, 형제자매들은 열 받을 만하겠지? 물론 제일 마지막 장면에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라서 얼굴을 지하 쪽에다 둔 상태, 그러니까 엎드린 형태로 묻힌 청년 예수가 벌거벗은 몸으로 부활한다는 팁은 있지만, 그럼 예수의 생애에 부활이 또 두 번이니까 그것도 문제거니와, 딱 꼬집어 부활이라고 선언하지도 않은 채 그냥 문학적 의미로 마감을 해버리고 만다. 하여간 40일에 열흘이 모자란다. 과학에 입각해서. 사전 정보 하나 없이 읽은 나는 다섯 번째 기도자가 예수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고, 이후 계속 흥미진진하다가,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내용, 예수를 만나고, 암 환자와 불임에 시달리는 이들이 예수 덕에 치료를 기대하는 장면에 이르러 좀 지루해졌다. 그래도 이 책 역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E.M 포스터 상은 받았다고 하니 혹시 기억나시면 일독을 하셔도 나쁘지 않을 듯. 근데 웬만하면 뭐든지 일독하기만 하면, 나쁘진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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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이상화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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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에 이시우李時雨라는 명문가 서방님이 숙녀 김신자 여사와 금슬이 좋아 아들 네 형제를 낳았는데, 첫째가 중국에서 장관급 대우를 받았던 독립투사 상정相定이요, 둘째가 민족의 해방을 위해 탄압을 무릅쓰고 저항의 노래를 그치지 않았던 시인 상화相和요, 셋째가 사학자, 사회학자로 서울대 교수를 지내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까지 지낸 상백相伯이고, 막내가 문필가이자 수렵인으로 이름을 낸 상오相旿였으니 비록 이시우 선생이 네 살 먹은 막내 상오를 남기고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아야 했다 하더라도 아들 농사 하나는 알뜰하게 하고 간 셈이다. 그러나 이 네 형제가 하나같이 고급한 공부를 마치고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이오, 나아가 해방을 위해 무력투쟁에까지 투신할 수 있었던 것은 대구 일대의 큰 부자였던 큰아버지 이일우李一雨의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일우 선생은 조카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집에서 사숙을 시켰고, 경성 유학을 거쳐 일본 유학까지 뒷바라지를 해주었을 정도의 부와 혜안이 있었던 거였다. 심지어 둘째 상화는 더 나아가 프랑스 유학을 바라보고 일본의 대학 대신 아테네 프랑세라는 아카데미에 보냈는데, 그만 1923년의 관동대지진으로 꿈을 접고 귀국선에 오를 수밖에 없었단다.
  이상화는 열일곱 살 당시에 벌서 현진건, 백기만 등과 동인지를 만드는 등의 문학 활동을 시작한 바 있고, 스물두 살 때 인 1923년엔 홍사용, 박종화, 박영희, 김기진 등 당대의 쟁쟁한 젊은 시인들과 함께 「백조」에 동인으로 참가한다. 1922년. 3.1운동의 실패를 당한 창백한 인텔리겐치아들이 좌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낭만 또는 퇴폐적인 경향의 시를 발표했을 때로, 일 년 후 발간한 「백조」 3호에 이상화도 <나의 침실로>를 게재하니 같은 동인지에 실린 시의 편편을 보자 하면, 박영희의 <월광으로 짠 병실>, 박종화의 <사의 예찬> 등이 있다. 훗날 대하역사소설 <금삼의 피>와 불멸의 <월탄 삼국지>를 쓴 월탄月灘도 처음엔 시로 시작한 것은 다들 아실 터. (<월탄 삼국지>하니까 저 먼 추억이 떠오른다. 내가 처음 읽은 삼국지가 바로 <월탄 삼국지>였다.) <나의 침실로>는 인용하기에 많이 길어서 비슷한 경향의 상화의 대표적 퇴폐 시 <말세의 희탄> 전문을 소개한다.



  말세의 희탄



  저녁의 피 묻은 동굴 속으로
  아, 밑 없는 그 동굴 속으로
  끝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나는 꺼꾸러지련다.
  나는 파묻히련다.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다
  아, 꿈꾸는 미풍의 품에다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나는 술 취한 몸을 세우련다
  나는 속 아픈 웃음을 빚으련다. (전문)


  상화의 시 속에도 당시 창백한 지식인들의 허무의식이 숨어 있고, 또 스물세 살의 청년에게 이런 감각이 유난히 빨리 스며드는 경향이 있다. 「백조」 자체가 동인들이 특정한 문학적 취향이나 정치적 목적을 공유했던 동인지라기보다 훗날 소위 청록파처럼 그냥 얼굴을 알고 지내고 가끔 만나 술잔 깨나 기울이던 ‘자칭 문인’들이 모여 서로의 작품을 실어 폈던 것이니. 어쨌거나 한 집단, 정확하게 말하자면 식민지 조선에서도 문학이 발전하기 위해서 이런 종류의 승화되지 못한 거친 슬픔이나 죽음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을 피할 수는 없었을 터, 라고 넘어가면 될 듯하다. 솔직히 살면서 왕년에 이런 종류에 한 번, 물론 잠깐, 몰두해보지 않은 청춘 있으면 두 명만 손들어 보시라.
  도쿄에서 아테네 프랑셰라는 아카데미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한 이상화는 다음 해인 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 발기인으로 참가한다. 세상에나 가장 부르주아 적인 시인 이상화가 카프 발기인이라니. 당시에는 진짜 무산자 가운데 카프에 가입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은 당대의 천재로 일컫던 이용악 정도밖엔 없었을 것이니까 그것도 그냥 넘어가자. 애초부터 그들이 프롤레타리아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희망하는 문학 장르가 그것이라는 말이니까. 이 당시 발표했음 직한 시 한 편을 읽어보자.



  구루마꾼


  ‘날마다 하는 남부끄런 이 짓을
  너희들은 예사롭게 보느냐?‘고
  웃통도 벗은 구루마꾼이
  눌 붉혀 든 얼굴에 땀을 흘리며
  아낙네의 아픔도 가리지 않고
  네거리 위에서 소 흉내를 낸다.  (전문)


  구루마는 요새는 보기 힘든데 양쪽에 고무타이어가 달린 바퀴 두 개가 달린 손수레로, 흔히 이야기하는 손수레보다는 크고, 전에 ‘리어카’로 불렸던 이송수단이다. 시장이나 역에서 사람들의 짐을 날라다 주고 삯을 받는 사람들을 구루마꾼, 나중엔 리어카꾼으로 불렀으며 거의 대부분 빈민으로 알았지만, 흠, 나중에 알고 보니 동대문 시장 리어카꾼은 30여 년 전 화폐가치로 권리금이 1억을 넘었다고 한다. 물론 1920년대엔 틀림없이 빈민이었을 거 같다.
  이렇게 살던 이상화에게 1926년은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된다. 바로 그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개벽」에 발표하고, 이 시 때문에 개벽은 판매금지라는 불벼락을 맞는다. 이 시가 좀 길다. 소싯적에 시에 곡조를 붙인 노래 깨나 목이 터지라고 불렀던 거라, 길더라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작이기도 하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게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갑부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로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잡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전문)



  이 시는 읽을 때마다 참 먹먹하다. 유신시대, 5공 시절에도 막걸리 한 잔에 빼놓을 수 없는 노래였기도 했다. 하여튼 이상화는 이 일이 있을 후에 본격적인 요시찰 인물이 되고, 다음 해인 1927년에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테러가 벌어지자 또다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웬만하면 본격적인 룸펜 시대로 접어들어야 하건만, 백부 이일우 씨 일가가 워낙 막강해서 그랬는지 학교에서 교직을 맡기도 하고 조선일보 경북 총국을 경영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서른여섯 살이 되던 1936년, 맏형 이상정 장군을 만나기 위해 남경, 북경, 상해 등지를 유랑하고 돌아와 다시 한 번 일제에 의해 고초를 겪는 등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다가 해방 두 해를 남겨둔 1943년, 위암으로 생을 접는다.
  이렇게 또 한 명의 강직한 저항 시인은 역사 뒤로 사라지고, 해방이 온다. 분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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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12-02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덕분에 까마득한 옛날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를 다시 읽게 되었네요. 시인 이상화가 이렇게 강직한 분이셨음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Falstaff 2020-12-03 09:1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솔직히.... 요새 시의 개별화, 파편화 현상에 도무지 적응하기 힘들어 옛 시를 다시 찾기 시작했답니다. ㅋㅋㅋ 다 인생입지요.
 
파저란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진혜.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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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하게 몇 년 전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열여섯 살의 소년일 때, 그는 대단한 첫사랑을 했다. 상대의 이름을 ‘사라’라고 하자. 소년과 사라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을 했고, 키스를 나누었지만 더 이상은 없었다. 소년은 동정이었고 사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믿는다. 사라는 자신의 풋풋한 마음을 부모에게 알렸다. 호기심이 생긴 부모는 외동딸의 남자친구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 그를 저녁 만찬에 초청했다. 사라의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소년은 다림질한 흰 셔츠와 넥타이, 양복을 차려입고 사라의 현관문을 들어섰다. 광을 낸 구두를 신은 발을 응접실 마루에 들여놓자 소년의 코에는 마루 광택용 왁스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사라의 부모는 소년을 꽤나 마음에 들어 하여, 어머니는 자꾸 생선요리를 접시에 담아주었고, 아버지는 진짜 백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백포도주 네댓 잔을 곁들인 만찬이 끝나자 이미 깊은 밤이었다. 사라의 아버지는, 결코 소년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전히 점잖게 너무 늦은 시간이니 하루 자고 가라 은근하게 권했고, 소년 역시 정중하게 마음은 그러고 싶으나 초면에 그리 신세를 질 수 없다고 거절을 했다. 잠시 후 사라의 아버지가 다시 한 번 자고 갈 것을 권했을 때 소년은 마침내 그러하기로 했다.
  방문 앞에서 사라의 키스를 받고 침실에 든 소년은 꿈만 같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고 기뻐 어찌할 줄 몰랐다. 고양된 기분에 고급 백포도주의 취기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그리고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깊은 밤인지는 몰랐다. 자면서 뭔가 축축한 느낌. 방이 온통 물에 젖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소년은 한 순간에 잠이 확 깨면서, 아차, 하필이면 몽정을 했구나, 라고 당황했다. 적신 리넨 위에 남을 흔적에 대한 집중으로 잠깐 고통스럽던 소년은 곧이어 그것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고, 그것이기는커녕, 차라리 몽정이었으면 귀엽기라도 했을 텐데, 배불리 먹은 저녁식사와 백포도주 전부를 침대 위에다가 토해놓은 거였다. 심지어 똥까지 싸놓았으니 이 불쌍한 소년을 어찌할까. 그의 나이 겨우 열여섯 살, 고1 정도에 불과한데. 소년은 벌떡 일어나 의자 위에 벗어놓은 셔츠와 양복과 양말을 들고, 구두를 신은 채 살금살금, 사라의 부모가 눈치 채지 못하게 집을 벗어나 벌판을 뛰기 시작했다. 수치심으로 울부짖으면서. 이후 소년은 단 한 번도 사라와 마주치치 않았다.
  <파저란트>는 이 소년이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의 성인남자가 된 후 연이은 여행을 떠났던 이야기다. 나는 두 번째 장chapter에 나오는 위의 에피소드를 주목했다. 열여섯 살 때 저런 경험을 당했다면, 이 소년, 이젠 소설의 화자 ‘나’가 평생 짊어지고 다녀야 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작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독일 각지에 친구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독일의 모든 곳을 다녀본 것도 아니고 아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자신이 벌었는지, 가문으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소년, ‘나’는 고급 호텔에 숙박하며 비싼 술을 마시고 싶을 때까지 마실 수 있는 부르주아이며, 심지어 프롤레타리아들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물론 친구들 가운데는 프롤레타리아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없는 건 아니어서 일부러 다 해진 옷과 신발을 신고 다니기도 한다. ‘나’와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 역시 최고급 승용차인 S시리즈 메르세데스 벤츠에 카폰을 달고 다니고, 거대한 집을 몇 채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초라한 카페나 아파트에서 열리는 파티를 찾아다니며 프롤레타리아들과 마약에 취하기도 한다. 대단한 재산의 상속자 자격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인텔리나 부르주아 떨거지들을 불러 파티를 열어주기도 해야 한다. ‘나’는 이미 상당한 단계까지 알코올 의존증에 도달해 있으며 고급 담배를 거의 체인처럼 물고 다니는데 결코 아름답지 않은 담배연기를 비행기 금연석에 앉아 뿜어내는 취미가 있기도 하다. 책에서 일관되게 보여주는 ‘나’의 대표적인 경향은 남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는 것.
  책을 열면 ‘나’가 있는 곳이 독일 최북단, 누드 비치로 유명한 쥘트 섬이다. 한때 몸이 대단히 비대한 괴링이 여름을 보내곤 한 휴양지. 한 번은 그가 ‘피와 명예의 단도’를 분실해 포상금을 걸고 해변을 샅샅이 뒤져 보이 자르센이란 젊은 농부가 포상금을 탄 적도 있는 곳. 이젠 늙은이들의 누드 비치. 이렇게 곳곳에서 ‘나’는 과거 나치의 흔적이나, 이제 나치의 적어도 일부를 계승한 것처럼 보이는 사민당-나치를 곳곳에서 불쑥 발견하기도 한다. 일찍이 나치를 탄생시켜본 경험이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 이건 마치 열여섯 살 때 겪었던 치명적인 수치스러움을 평생 지녀야 하는 ‘나’의 원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상대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오직 하나의 꿈을 가지고 산다. 여배우 이사벨라 로셀리니와 결혼 해 아이도 두엇 두고, 저 북쪽의 황량한 섬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겨울 내내 두꺼운 옷을 입은 채 세상과 연을 끊고 사는 일.
  그건 그냥 희망이다.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나’하고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아마 없을 거 같다. 그러면 희망이라기보다 꿈이다. 독일의 몇 군데를 다니면서, 당일치기로 그리스의 동성애자 해변이 있는 섬에까지 다녀와 봐도 ‘나’는 뚜렷한 정체도 없고, 목적도 없고, 그저 술을 마시고, 구토하고,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에도 어쩔 수 없이 마약 또는 신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알약도 한 번 먹어보고, 무엇보다 정처가 없다. 스위스 취리히에 닿기 전까지. 하이델베르크와 비슷하지만 보행자 전용도로도 없고 아직도 전차가 다니는 취리히.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아하, 토마스 만이 취리히에 묻혔다는 것. 그리하여 ‘나’는 취리히 근교, 토마스 만이 잠든 공동묘지를 찾아가지만 날이 어두워져 만의 무덤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어서, 독자인 나는 뻥! 머리가 어질어질. 결말이 이런 거였어?


  <망자들>을 인상 깊게 읽어 곧바로 크라흐트의 책 두 권을 샀다. <파저란트>는 1995년에 발표했고, 우리나라에선 2012년에야 번역, 출간했다.  이 책 역시 대단히 인상 깊다. 물론 내 취향하고 맞지 않는 것도 자주 등장한다. 출연진들이 너무 자주 술과 마약을 하고, 구토도 한다. 물론 꼼꼼히 읽어보면 정말로 구토한다기보다 일종의 비유법으로 구토를 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여간 구토, 하면 좀 지저분하다. 다른 과한 장면도 있고. 그것만 아니었으면 누구에게나 권할 텐데.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발표한지 벌써 3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참신한데 말이다.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앞으로도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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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2-0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어나가다가 ‘결말이 이런 거였어?‘ 때문에 급 읽고 싶어졌는데요,
저도 마약과 구토..가 너무 싫어서 또 망설여지네요.

제가 오래전에 읽은 책들 중에서도 이런 게 있었어요.
‘에릭 라인하르트‘의 <신데렐라>라는 책인데요, 검색해보니 2010년에 번역되어 나온 책이네요.
여기에 보면 주인공이 연정을 품은 상대의 집에 찾아갔다가(사춘기였던 때로 역시 기억합니다) 그 집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갑자기 설사가 나올 것 같아 그 집 화장실에 찾아갔지만, 옷을 벗는 속도가 다소 늦었던 겁니다. 네...........
그래서 팬티에.... 이 일을 어쩌나,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싶어 난처해 화장실에서 나가지 못하는데 하도 안나오니 바깥에서는 아 유 오케이? 차 준비해놨어, 나와서 마셔~ 하고, 소년은 에라 모르겠다, 냄새나는 팬티를 벗어던지자, 하고는 멍청하게도 그 팬티를 변기에 넣고 돌려버리는 겁니다....


이 책은 이부분만 생각나요. 책이 두꺼웠는데 책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고요. 하하.
으..싫다.

술과 마약, 구토는 너무 싫지만, 머리가 어질어질 결말이 어떤걸까 너무 궁금해서, 저는 또 장바구니에 담으러 갑니다. 그럼 이만..

Falstaff 2020-12-01 09:39   좋아요 0 | URL
으, 술, 구토 싫어하시면 읽지 마세요. 정말 힘듭니다. 소싯적에 술 마시고 똥은 싸본 적 없어도 잠자리에 구토해본 입장에서, 묘사가 너무 리얼해 정나미가 뚝 떨어질 정도입니다. ㅋㅋㅋㅋㅋ
마약 하고 취한 중에 벌어지는 일도 위에다 묘사를 안 해서 그렇지 참 역겹고요. 대신 을유에서 나온 <망자들>을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Falstaff 2020-12-01 09:42   좋아요 0 | URL
결말도 쇼킹한 거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만 팍 공감이 와 닿을 텐데요, 그거 가르쳐드리면 스포일러, 재미가 적어질 거 같아서 제목을 숨겼습지요.

다락방 2020-12-01 09:56   좋아요 1 | URL
망자들 검색해보겠습니다. 아이참, 폴스타프님은 제가 모르는 책을 너무 많이 알고 계셔서 올 때마다 제가 검색하느라 바쁩니다. ㅎㅎ

저는 소설 읽으면서 대부분 잘 공감하는 편이긴한데 유독 마약 얘기는 힘들더라고요. 도무지 공감이 안되고 공감에의 의욕 조차도 안생기는 것 같아요. ㅠㅠ

2020-12-01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