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구지 지게사 - 5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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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주문해서 오늘 도착. 1킬로그램 완료. 이 커피 하나로 스탬프만 스무 개. 산뜻한 향. 진하게 마시는 것이 좋을 듯. 또 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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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13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스무개 진심 부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킬로그램 사면 스무개주는군요! @_@

Falstaff 2021-03-13 10:1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전 귀찮아서 한 번에 500그램씩 사는 겁니다.

새파랑 2021-03-13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시고싶어집니다 ㅎ

Falstaff 2021-03-13 17:35   좋아요 2 | URL
가격에 비해서 착합니다. 추천! ^^
 
제복의 소녀 쏜살 문고
크리스타 빈슬로 지음, 박광자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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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쏜살문고에서 출간했다. 280쪽에 문고판이지만, 문고판이라고 얕잡아보면 큰 코 다친다. 한 페이지에 스물여섯 줄, 한 줄에 원고지로 서른세 자 남짓. 세계문학전집 가운에 이 책보다 더 빽빽하게 갈피를 채우는 시리즈는 거의 없다.
  작가 크리스타 빈슬로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독일 여성으로 어머니가 죽은 뒤 포츠담에 있는 여자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 경험이 <제복의 소녀>를 쓸 수 있게 했다고 본다. 빈슬로는 단지 기숙학교에서의 에피소드를 그린 것이 아니고 자신의 분신이랄 수도 있는 주인공 마누엘라, 애칭 렐라의 출생에서 시작해 어린 시절부터 나타난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성향의 순간을 포착한다.
  렐라는 성탄절에 태어났는데 이때 가족으로 아버지 폰 마인하르디스 중령, 엄마 케테 부인, 알리라고 부르는 열 살의 큰 오빠 알프레트와 베르티란 애칭을 갖고 있는 다섯 살 작은 오빠 베르드람이 있었고, 나중에 렐라의 가정교사 안나 선생과 곰 인형, 렐라의 비둘기 라우라가 합세한다. 전형적인 프러시아의 군인가족.
  처음으로 렐라가 의아했던 것은 집에서 아메리카 인디언 놀이를 하면 베르티 오빠와 오빠 친구 게르하르크는 인디언이 되어 양쪽으로 술이 늘어진 바지를 입고 도끼를 흔들며 뛰어다니는데, 자신은 언제나 여성 인디언 스쿠아 역할만 해야 했던 것. 왜 여자는 멋있는 인디언 바지를 입으면 안 되는지, 체조할 때만 바지를 입게 하는지 불만이었다. 안나 선생이 답을 해주기를, 바지는 여자한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서 그렇단다.
  렐라는 집에서도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가슴에 파묻히는 것을 더욱 좋아했고, 심지어 베르티 오빠가 병이 들어 엄마와 함께 요양을 가야 했던 일을, 오빠가 엄마를 독점한다고 생각해 엄마를 만나러 가는 순간까지 온갖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
  프랑스와의 국경 요새도시인 뮐베르크로 이사를 하고 새로 생긴 학교 친구들 중에서도 때가 꼬질꼬질하고 집에서도 냉대를 받는 아멜리와 자주 어울린다.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된 오빠 베르티가 렐라의 상급생 에바 폰 마르스도르프에게 관심을 가져 렐라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이때 에바의 반응을 말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로부터 숭앙을 받는 에바를 만나게 된 렐라는, 자신도 오빠처럼 바지를 입고 활기차게 에바와 대화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포함해, 오빠는 다음으로 하고 렐라 자신이 자꾸 에바를 연상하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 뮐베르크의 작지 않은 행사에서 바이올린 독주를 하고 능숙하게 스케이팅을 하는 프리츠가 렐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렐라를 어머니에게 소개하는 자리에서, 렐라는 프리츠가 아닌 그의 어머니 레나르츠 부인에게 더 큰 호감을 갖게 된다.
  이런 바지에 대한 경도와 자신보다 더 나이든 여성을 향한 애정은, 어머니가 죽고 호흐도르프의 기숙학교에 들어가 만나게 되는 자애로운 교사 엘리자베트 폰 베른부르크를 대상으로 최고조에 이른다. 더 이상의 스토리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하겠으나, 마누엘라는 엄숙하고 고지식하고 까탈스런 여자 기숙학교에서 예상 외로 처음 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활보하게 되는 절정의 순간을 경험하지만 이어서 곧바로 결말로 치닫는다는 정도는 밝혀도 좋겠다.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소녀 마누엘라 Das Maedchen Manuela>였는데 우리말 제목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유명한 영화 <제복의 처녀>를 본따 <제복의 소녀>로 지었다고 한다. 제복이란 중의적 단어의 선택은, 역자 해설에 의하면, 책의 판매를 위해 널리 사용되어 좀 더 익숙한 것으로 바꾸었겠지만, 정작 이 책을 읽고나면, 청소년 마누엘라가 여자 기숙학교에 입학해 입게 되는 제복만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좁게 얘기해서 바지를 입지 못하는 모든 여성의 옷이며, 넓은 의미로 여성이란 젠더에게 가해진 당대의 모든 율법과 제재를 포함한 일체의 ‘여성답지 못한 행위’를 의미한다고 봐야하겠다. 물론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행위를 포함시켜도 무방하다.
  작가 크리스타 빈슬로는 책에 실은 사진처럼 모직으로 만든 남성 수트에 넥타이까지 맨 복장을 하고 다녔다. 사십대 정도로 보이는 빈슬로의 외모는 여자로 봐도, 남자로 봐도 잘 생긴 얼굴이다. 빈슬로 자신은 비록 고통스럽고 외로웠겠지만 겉으로는 이렇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며 살았으면서 <제복의 소녀>의 결말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빈슬로가 이 책의 주인공 마누엘라의 청소년시절까지만 그렸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이 점이 많이 아쉽다. 마누엘라가 끝까지 마누엘라라는 이름으로 크리스타 빈슬로처럼 당당하게 세상에 자신을 알리며,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살아가는 모습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8년 선배 레드클리프 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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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12 1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복의 소녀> 결말은 저도 참 씁쓸했던 거 같아요. 시대적 한계였을까요. 그나저나 <고독의 우물>의 스티븐은 제가 예전에 읽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주인공은 레즈비언(동성애자)이 아닌 거 같은데.... 싶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이는 트랜스젠더라고 명명하는 게 올바를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래드클리프 홀 참 여러 가지로 대단한 작가.

Falstaff 2021-03-12 10:20   좋아요 1 | URL
아, 댓글 읽자마자 팍 떠오르네요. 스티븐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트랜스젠더... 그렇군요. 그게 더 맞겠습니다.
당시에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구분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할머니(1901년~10년 사이 생)한테 들은 이야기들 중에 여자들끼리 연애하면 그 질투가 남녀 사이보다 훨씬 어마어마 하답니다. 여자들은 무조건 혼인을 해야 했던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가본데, 아하, 그런 이들도 트랜스젠더 쪽이 아니었나 싶군요.

잠자냥 2021-03-12 1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책 표지가 참 말랑말랑해서 폴스타프 님이 전철에서 이 표지에, 이 제목에, 이 크기의 책을 읽고 있다고 상상하니(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상상하니) 웃음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전철에서 읽으시지는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Falstaff 2021-03-12 10:2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저도 될 수 있는대로 표지가 안 보이게 몸 비틀고 막 그랬습지요.ㅋㅋ

새파랑 2021-03-1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보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ㅎㅎ 북커버 사용을 추천드립니다~!

Falstaff 2021-03-12 11:07   좋아요 2 | URL
걍 내놓고 읽는 거지요 뭐. ㅋㅋㅋㅋ 저도 알고보면 마음은 말랑말랑합니다. ^^

잠자냥 2021-03-12 11:16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께 추천합니다. ㅎㅎ
 
민촌 - 이기영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8
이기영 지음, 조남현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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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네 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책. 앞뒤 따지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게을러서 다 늦게 대표작 이기영의 <고향>을 읽어보고 언젠가 단편집도 꼭 찾아보겠다, 결심했다가 이번에 읽었다. 열네 편 어느 하나 빠짐없이 말 그대로 카프 문학이다. 크게 나누어 소작을 짓는 빈농, 도시 소시민 가운데서 억지로라도 먹고는 사는 쁘띠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공장 노동자 등의 프롤레타리아 계급, 이렇게 세 부류의 주인공이 등장해 소작쟁의를 일으키거나 도모하고, 도시 소시민의 삶을 자조하고, 파업을 준비한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진한 감흥은 없지만 1920년대, 30년대에 읽었다면 짜릿한 의식화 교재로 사용했을 수도 있겠다. 카프 문학이 흔히 그렇듯이 무산자와 동경유학을 다녀온 인텔리겐치아는 거의 조건 없이 선하고, 부르주아 가운데 인텔리겐치아를 제외한 모든 족속들은 무산자들이 생산한 것을 수탈해 배를 불린다. 배만 불리는 것을 넘어 무산자의 딸과 유부녀의 성을 착취하기도 한다. 카프 문학 자체가 사회주의적 시각으로 봐서 다분히 계몽적인 성격을 띠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런 단순한 이분법은 책 읽기를 식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소작인 가운데 주인공을 맡은 이는, 경성유학을 한(이상도 하지, 경성유학생은 악랄한 아비 지주보다 한 술 더 뜨는 악독한 세습지주인 반면, 동경유학생은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한 준 혁명가 같다. 이이가 동경유학을 해서 그런지는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지주 아들하고 같은 보통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지주의 아들보다 더 총명했으며, 시류에 밝고, 무엇보다 체격과 체력이 걸출하고 생각하는 바가 애초부터 정의파다. 정의파로 말할 거 같으면 첫 번째로 실린 <농부 정도룡>의 주인공 정도룡이 특히 그런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새 세상을 만든다는 정감록의 정도령이라도 되는 듯이, 소작이 떼인 이웃에게 자신의 소작논을 짓게 하고 지주에게 쫓아가 새 땅을 내놓으라고 닦달을 할 정도의 뱃심이 있는 자다.
  많은 주인공들이 지주에 대항해 그들이 저지른 비행을 탄핵하거나 소작쟁의를 선동하지만 어쨌든 당시의 율법과 법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폭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장리쌀 두 섬에 동생을 지주의 첩으로 보내야 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민촌>), 가뜩이나 병든 몸이 먹지를 못해 굶어죽기도 한다(<아사>).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이 어떤 내용인지는 짐작하실 수 있을 것. 소작쟁의든 공장 파업이든, 그것들이 발생하는 과정과 굳건한 단결의 필요를 이야기하는 것들. 지주와 도시 부르주아들에 의한 노동자, 농민의 노예화 현상을 스케치한 작품들, 사회주의자를 등장시킨 운동 소설, 그리고 생계 능력에 관한 한 별 볼일 없는 인텔리 이야기로 구분할 수 있겠다.  물론 읽으면 안 읽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이기영이 그리도 소원했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70년의 생명을 끝내고 안녕을 고한 지금, 설마 이 책을 아직도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의 책이라 주장할 사람은 없겠지? 식민지 시절의 국민의 노예화 과정과 현상, 도시에서 지식인들의 좌절을 알고 싶다면 좋을 듯하다.
  이기영의 시각도 좀 문제가 있다. 무대가 1920년대 이후라고 한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소작인들이 좋았던 시대라고 여러 작품에서 자주 언급하는 시절이 구한말이다. 비록 무너지고는 있었지만 봉건 양반들과 지배계급에 의한 수탈이 저질러지던 신분사회를 그리워하는 것도 의아스럽다. 아무리 검열 때문이라고 해도 그렇지 농민들이 최악의 환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인 식민지 현상에 관해서도 입도 벙긋하지 않는 건 유감스러울 뿐이다.
  어쨌든 <고향>과 단편집을 읽었으니 이것으로 이기영 졸업장을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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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인간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4
궈스싱 지음, 오수경 옮김 / 연극과인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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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궈스싱에 관해서는 2018년에 간략하게 소개한 적이 있다. 1952년에 중국의 대표적인 바둑 명가에서 태어났으나 바둑에는 별로 자질을 보이지 않았던 궈스싱은 1979년에 북경만보에 수습 기자로 들어가 연극비평을 쓰기 시작해 15년간 천여 편의 연극을 관람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극에 관한 일가견이 생긴 궈스싱은 자연스럽게 직접 희곡을 쓰기에 이르러 현재는 중국을 대표하는 부조리극 작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 <물고기 인간>과 <청개구리>는 우리나라에서 낭독공연 형식으로 무대에 올려진 바 있으니 현대 동아시아의 대표 희곡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불러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해설을 보면 궈스싱의 작품 가운데 <물고기 인간>, <새 인간> 그리고 <바둑 인간> 이렇게 세 편을 한량閑良 시리즈라 하는 모양이다. 대개 한량이라고 하면 “일정한 직업 없이 놀고먹는 말단 양반계층” 즉 룸펜 부르주아를 말한다. <새 인간>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는데, <물고기 인간>과 <바둑 인간>만 보고 얘기하자면, 한량 시리즈라기보다 초절정 고수 또는 초절정 마니아 시리즈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물고기 인간>에선 큰 저수지 대청호에서 30년에 한 번 기회가 있다는 전설적인 물고기 대청어를 낚기 위한 ‘낚시의 신’이, <바둑 인간>에선 바둑에 미쳐 사랑하는 여인이 떠나가는 줄도 모르고 이제 그 여인이 낳은 새로운 바둑 영재와의 마지막 한 판 승부를 겨루는 최고의 바둑 고수 허윈칭이 등장하는데, 암만 봐도 이들이 룸펜인 건 맞지만, 부르주아 비슷하지는 않다.
  궈스싱의 작품을 부조리극이라고 해도, 베케트나 이오네스코, 엘비 같은 극작가를 연상할 필요는 없다. (이 사람들의 작품을 읽어봐 극작가들의 이름을 인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뭐 이들을 연상한다고 해도 이제 부조리극이란 타이틀 때문에 미리부터 쫄 독자도 없을 터이긴 하지만.
  큰 줄거리는 위에서 잠깐 짚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배역은 역시 중국 최고의 바둑 고수로 보이며 이제 갓 60세에 진입한 허윈칭(何雲淸 구름이 어찌 맑으랴?). 이이의 상대역은 30년 전 옛사랑이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스무 살 먹은 아들 쓰옌(司炎). 이름 옌炎, 불이 아래위로 두 개나 있다. 그러니 얼마나 뜨겁겠는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 많아 병이 된 청년. 겨우 스무 살에 산더미 같은 책을 다 독파하고도 사는 의미를 별로 찾을 수 없는 고독하고 불행한 천재. 과학연구소에서도 머리 좋은 건 알겠지만 쓰옌이 생각하는 걸 너무도 좋아해서 받아주지 않았을 정도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뇌세포가 자꾸 증식하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기 위해 복잡한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한단다. 그래 쓰옌이 생각해낸, 가장 복잡하게 경우의 수를 따지는 작업이 바로 바둑.
  그러나 쓰옌의 엄마 쓰후이(司慧)는 이름 후이慧같이 전혀 지혜롭지 못해 평생 30년 전의 첫애인 허윈칭이 바둑에 너무 몰두해 자신을 위한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은 것을 한으로 지니고 살았다. 그러니 아들이 아무리 뇌세포가 무한 증식한다고 해도 바둑을 허락하지 않을 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쓰후이는 그걸 넘어서 옛 애인과 죽은 남편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돌봄을 아들에게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쓰후이가 허윈칭을 찾아와 아들에게 바둑을 가르쳐주지 않도록 요구하자, 허윈칭은 쓰옌과 바둑 대결을 벌여 (쓰옌이 먼저 두 점을 깔고), 자신이 이기면 쓰옌은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고 어머니를 지성껏 돌보기로 맹세를 한 후 드디어 마지막 대국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이 마지막 대국의 장면이 흥미롭다. 두 바둑 기사가 단기필마로 장창을 빗겨 들고 단판 승부를 벌이는 걸 관람하는 등장인물, 바둑광인 작가 '마구잡이'의 말 그대로 장판파에서 헌 칼로 조조의 친조카 하후은을 비롯한 조조군 병사 도륙내는 광경을 그리는 듯이 흥미진진하다. 허윈칭이 궁지에 몰리자 급격하게 신경을 쓰는 바람에 코피가 터지고, 필살기를 구사하는 초절정 고수들의 칼부림이 흥미진진 긴박하다.
  이 장면이 마지막 막인 4막 1장. 여기까지 오느라고 독자는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부조리극이란 걸 잠깐 잊었을 수도 있다. 부조리 극작가, 이오네스코나 올비, 그리고 베케트의 작품이 행복하게 마감하는 거 보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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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 왕이 되려 한 남자 외 24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6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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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꼰대다. 꼰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고정관념이 한 번 박혔다하면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는 것. 키플링의 작품으로는 딱 한 권의 장편소설 <킴>을 읽었을 뿐. 그리고 곧바로 이이를 식민주의자, 국가주의적 애국자 정도로 생각했다. 물론 <킴>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런 낌새가 마땅하지 못했던 것. 그리하여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친애하는 서재 친구 잠자냥 님의 낚시에 걸려서였을 뿐이다. (원래 이이의 낚시 기술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라서 '꾼'을 넘어 도사의 경지이긴 하지만.)
  근데 이 책으로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에 관해 생각이 바뀐다. 나는 처음엔 당연히 키플링이라고 하면 <정글북> 같은 아동 소설가로 생각했다가, <킴>으로 위에 쓴 고정관념까지 갖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진짜 예상 외로 키플링의 이 단편소설집을 읽고 생각을 좀 바꾸기로 했다. 이이가 정치적으로 국수주의자에다가 제국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식민주의자인 것은 맞지만, 소설가로 그의 작품에 한해서 얘기하자면, 키플링은 아동 소설가는 물론 아니고, 작품 속에 애국주의적인 분위기가 좀 있는 그냥 소설가, 장편보다는 단편소설에서 자신의 반짝이는 재능을 더욱 꽃피운 작가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은 키플링이 열아홉 살 때 쓴 작품 <백 가지 슬픔의 문>에서 시작해 작품을 쓴 순서대로 예순한 살 때의 작품 <알라의 눈>까지 스물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그러니 그의 전 생애를 걸친 작품 경향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텐데, 가장 놀랐던 것은 참 다양하다는 것. 저 잉글랜드의 전통 고딕소설부터 시작해 언뜻 에드가 포를 연상할 수 있는 괴기극도 있다가, 인간 본성 속에 든 권력욕을 조망하기도 하고, 순진한 어린아이의 심성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비뚤게 만들어버리는 교조적 기독교 교육 같은 것도 있고, 헨리 제임스가 쓴 <나사의 회전>과 유사한 혼령이 등장하는 어려운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그야말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명멸했던 온갖 소설장르를 한 권의 책으로 다 즐길 수 있다.
  이 가운데 재미있게 또는 공감이나 감정이입을 해가며 읽은 작품 세 개를 꼽는다면 첫째가 <매애, 매애, 검은 양>, 둘째가 <‘그들’>이요 셋째가 표제작이기도 한 <왕이 되려 한 남자>이지만 다른 것들도 이들과 견줄 수 있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단편집 좀 읽은 독자들도 키플링의 이 단편집처럼 고르게 수준 있는 것들만 골라 실은 책은 발견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키플링의 단편들이 내 취향은 아니다. 단편의 경우에 나는 작년에 우연히 발견한 독일 여자 유디트 헤르만의 《단지 유령일 뿐》 같은 지극한 심리소설을 좋아한다. 키플링은 헤르만과 거의 반대편에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단편소설의 결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키플링은 충분히 즐길 만했고, 즐겼다.
  이이는 인도에서 태어나 유소년 시절을 보내고, 부모와 떨어져 영국에서 학교를 다닌다. 이때 자신의 경험 일부를 <매애, 매애, 검은 양>에서 묘사한 것일 수도 있을 텐데, 학교를 마치고는 기자 신분으로 다시 인도로 가 7년을 보낸다. 그래서 그랬는지 작품에서도 인도나 아프리카의 원시성이 뚝뚝 떨어지는 날것의 단어들이 곧바로 시각을 자극하기도 하는 반면, 영국을 무대로 해서는 문제적 작가 피터 애크로이드를 읽는 것처럼 삶의 비의나 역사 이면의 오리무중(알라의 눈)을 헤매는 혼돈을 그려내기도 하니, 그의 다양한 문법은 말 그대로 종횡무진이다.
  그건 책을 구성하고 있는 작품이 19세에서 61세까지 무려 42년에 걸쳐 쓴 것으로, 식민지와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전쟁 중에 아들을 먼저 보낸 작가의 파란만장이 다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야 짧은 시간에 세월을 휙 지나갈 수 있으나 작가는 한 시간, 한 시간 속에 자신의 모든 성취와 실수와 후회와 안타까움과 사랑과 질투와 미움과 그냥 그런 순간들로 채웠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사실 독자라는 것, 책을 사서 읽는 일이 얼마나 큰 특권이냐는 말이지. 작가라는 이름의 인간들은 오직 독자를 위해 그리 오랜 세월의 경험과 축적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면 우리는 그냥 읽고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
  이 독후감을 읽어주신 분들이여, 오랜만에 만나는 일품 뷔페,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 왕이 되려 한 남자 외 24편》의 일독을 미루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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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08 09: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 단편집 정말 물건이죠? ㅎㅎ 저의 낚시에 걸려서 좋은 책을 만나신 듯하여 뿌듯합니다. 제 낚시 솜씨도 인정해주시니 참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아무튼 저도 이 단편집으로 키플링을 다시 봤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 단편집을 만나서 그런 행운을 누리시길~!

Falstaff 2021-03-08 09:41   좋아요 3 | URL
ㅋㅋㅋ 이런 책만 미끼로 걸어주시면 황공무지입지요!
덕분에 좋은 책,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