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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5월
평점 :
평생, 적어도 서른 살 넘어서는 헝가리 말로 작품을 쓴 헝가리 작가. 이 책의 번역은 독문학자 김인순이 했다. 중역본이란 얘기다. 하긴 우리나라에 헝가리 어 전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마음 넓은 독자들이 이해해주자. 게다가 헝가리라면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 왕을 겸직한데다가, 산도르 마라이의 조상이 작센에서 이주해온 독일인이면서도 19세기에 있었던 헝가리 독립운동에서는 적극적인 헝가리 독립군 편을 들었는데, 그러면서도 집구석에선 또 독일어를 사용했단다. 이런 이유로 이왕이면 영어 중역보다 독문학자가 독일어 버전을 번역한 것이 조금은 더 바람직하겠지. 다 좋다. 소비에트가 헝가리를 점령하는 바람에 자유로운 창작활동에 대단한 장애물이 생기자 유럽 각지와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89세에 캘리포니아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 이런 것도 다 좋은데(작가 스스로가 평소부터 ‘지나치게 오래 사는 건 분별없는 짓이다’라고 주장했다니까 279쪽, 역자해설), 아시다시피 헝가리는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나중에 쓴다, 그래서 ‘산도르’라고 불러야 할 거 같지만 역자 해설 보면 줄창 ‘마라이’라고 칭하는 것이 무척 신경 쓰이고 헷갈리는 거, 이거 어쩔겨? (구글 검색하면 '마라이'가 성姓이고 '산도르'가 이름이다)
좋아. 시작하기 전에 이 정도 구라를 풀었으면 일단 됐고, 책 이야기로 들어가면, 마라이가 1942년에 발표한 소설 <열정>이 1989년 이탈리아에서 다시 발행된 다음부터 폭발하기 시작해서, 물론 광고문구 특유의 과장이 큰 역할을 하겠지만, 거의 최고 수준의 20세기 작가로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책 뒤표지 보면, “이미 고인이 된 거장巨匠을 20세기 문학에 선물했다. 우리는 앞으로 토마스 만,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과 나란히 이 거장 산도르 마라이를 거론할 것이다.”라고 어마어마하게 뻥을 쳐놓았다. 대단하지?
근데, 정가 11,000원으로 솔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 웬만하면 한 번씩 읽어보심이 어떠하실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와 친밀한 관계를 이룬 헝가리의 막강한 귀족 가문의 외아들 헨릭. 말이 쉬워 귀족이지 이 정도면 수준이 귀족 중에서도 저 꼭대기, 가문대대로 정승판서 안 한 조상 없는 그런 집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근데 이런 집안의 외아들 헨릭은, 얘네 헝가리 아빠하고 프랑스 엄마 사이에 극복하기 힘든 성격상 차이가 있어서 그랬는지 아주 어려서부터 자신의 곁에 누군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신체적, 그리고 당연히 정신적 공황상태로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소년기엔 열여섯 살 위의 유모 니니가 없으면 당장 체온이 급상승하고 정말 며칠 안으로 짧은 생을 마칠 것 같은 위험한 지경에 이르다가, 저 헝가리 벌판에서 열차를 삼박사일 타고 파리를 거쳐 북부 해안까지 유모 니니가 달려오자 금방 병에서 낫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인 적도 있다. 물론 전적으로 믿을 필요는 없겠지. 그 일화는 소년기에 접어들어 사관학교에 입학한 다음에 절친한 친구, 진정한 우정으로 운명(난 분명히 ‘운명’이라고 했지 ‘죽음’이라고는 안 했음!)이 이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형제보다 더 가까운 정을 나누는 폴란드 출신의 가난한 귀족 집안의 자제 콘라드와의 친교가 헨릭에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강조하기 위한 연출일 확률이 높기는 하다. 하여간 책의 주인공 헨릭이란 캐릭터가 그렇다는 말씀.
헨릭. 놀라운 인물이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용감하지도 않고 비겁하지도 않게 전투에 임하면서 오직 하나,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적을 어떻게 해서든지 달성하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 저 헝가리 촌구석, 자신의 영지, 자신의 저택에 칩거하기를 무려 41년 43일째에 이른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퇴역 장군. 이제 아흔한 살이 된 니니와 여전히 함께 살며, 노파에게 오늘 41년 만에 손님이 올 터이니 저녁식사를 준비해줄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이 집안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 모든 자그마한 소란 등을 온전하게 기억하고 있는 니니. 비록 한쪽 눈은 백내장으로 하얀 막에 싸여 보이지 않지만, 나머지 하나,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 같은 파란 눈을 초롱이면서 기꺼이 41년 전, 저택에서 있었던 마지막 만찬과 비슷하게 식탁을 차리겠노라 응한다.
한 인간이 41년이 넘도록 넓은 영지와 저택 안에서 전화나 TV, 라디오조차 설치하지 않고, 오직 사색과 가끔가다 사냥으로만 소일하며, 많고 많은 주어진 시간을 다 바쳐 깊은 숙고를 거듭했으니, 어찌 이 인간을 우리는 ‘도사’ 또는 ‘신선’으로 칭하지 못할까. 모르긴 몰라도 이 양반 죽은 다음에 화장하면 몸에서 사리 같은 건 좋이 나오리라. 실제로도 소년 헨릭은 이미 일흔다섯 살의 오늘 낼, 하는 노인으로 늙어갔다. 그건 그와 필생의 우정을 나눈 콘라드도 마찬가지. 둘이 동갑이니까. 말은 오늘 낼 한다고 썼지만, 이들은 나이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이쯤에서 스포일러 하나 꽝. 41년 전, 이들 사이에 비극적인 일이 생겨 콘라드가 장교직을 사임하고 해외로 떠나게 됐는데, 두 사람 다 당연히 비극적인 일의 당사자이며, 헨릭은 틀림없이 콘라드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한 번은 자신을 방문할 것을 믿어 평생 영지와 저택을 떠나지 않았고, 콘라드 역시 자신이 죽음의 부드러운 손길을 받기 전에 언젠가는 한 번 헨릭을 방문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잊지 않아, 둘 다 그때를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생존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가 서로를 만났을 때를 위하여 보통 이상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이런 이상 상태의 생명유지와 건강은, 이들이 만난 다음이면 급격하게 쇠퇴할 수 있다는 전제다. 오직 하나, 둘이 언젠가 만나 41년 전에 있었던 비극에 대한 비밀, 바꿔서 얘기해 진실을 밝히면, 그 일 한 번으로 더 이상 생을 이어갈 목적이나 이유가 소멸된다는 뜻. 그럴 만큼 41년을 묵힌 진실은 두 인물한테는 절대적이다.
나는 당연히 저 먼먼 시절의 비극적인 일에 관해서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조금도 귀띔해주고 싶지 않다. 다만, 41년을 저 광활한 헝가리의 영지와 저택에서 인생을 관조하고 한 사건을 집중해 사색한 헨릭, 그의 묵은 사색이 중첩하여 인간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에 관한 놀라운 성찰을 읽을 수 있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이 책을 선택하는 이유일 수 있다는 점만 강조하겠다. 거기다가 전편을 걸쳐 차분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문장들까지.
책을 읽고 산도르 마라이의 다른 저작들을 검색해봤지만 거의 다 절판 아니면 품절이다. 매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