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그냥 일반적인 독자입니다. 그냥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좋은 것도 있고 언짢은 것들도 있고, 심지어 세계적인 명작 대작 걸작의 반열에 오른 책들도 정작 읽어보면 저하고 극적으로 맞지 않아 책값 아까운 적도 있습니다. 근데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이란 타이틀을 달고 찍은 것들이라면 출판사의 핵심부서에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한 번 읽어보십사 권유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서 전적으로 제 취향상, 기호상 맞지 않아 도무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지 못하는 것들의 리스트입니다.
왜 이런 리스트를 쓰는가 하면, 추천하는 책들의 정보만 넘쳐흐르지 반대의 것은 보질 못해서 그렇습니다. 비추천 리스트도 독자들에겐 유용할 수 있는 정보란 것이 제 생각인데 그렇지 않나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첫번째로 우리나라에서 세계문학전집의 가장 많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민음사 세계문학을 골랐습니다. 다만 제가 읽어본 책들에 한정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완전히 배제했습니다. 번호는 시리즈의 번호와 같습니다.
6.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핀의 모험>
어려서 숱하게 읽었으나 한 번도 완역을 본 거 같지 않아 선택해 어른이 되어 읽어보니,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악동들이 얼마나 악마와 비슷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 외엔 별로 없다. 하는 짓이 동양의 어린이들하고 서양의 어린이들하고 많이 다른 거 같다.
괜히 읽었다.
21.22,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아무리 세계 최고의 명작이라도 나하고 맞지 않으면 개떡이란 진리.
이거 정말 재밌나? 왜?
이거 정말 교훈적인가? 왜?
내 무식한 질문에 실소 및 냉소하실 분 무척 많은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평양 감사도 내가 싫으면 싫은 거. 난 <파우스트>를 포함해 모든 괴테를 이 목록에 올려놓고 싶다.
혹시 해서 괴테 하나 더 읽은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마찬가지.
46.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프랑코 개자식에 반대해서 스페인 내전에 뛰어든 거 까진 좋았는데 오웰의 논점은 어떻게 프랑코 군대를 극복하고 혁명을 쟁취하는가에 있지 않고 공산주의의 내분을 밝히는 데 있다. 더 괘씸한 건 노골적으로 전쟁을 지지한다는 점. 세상에 정의로운 전쟁이 어딨나. 추악하지 않았던 전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내 신념에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의 조지 오웰. 내 눈엔 조지 오웰이나 스탈린이나 거기서 거기다.
71. 가오싱젠, <버스 정류장>
중국인 쓴 현대희곡이라서 관심을 갖고 읽어본 바, 기본적으로, 재미없다. 희곡 안에 음악적 화성을 집어넣으려고 한 거 같은데 성공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뭔 얘긴가 하면, 음악극에서 이중창, 사중창, 팔중창, 합창 같은 걸 연극에 도입하려 했던 건 아닌가 싶다는 뜻. 언어에 사성체계가 있는 중국어일 경우와 그게 없는 한국어 사이의 간극 때문일까? 난 동의하기 힘들었다.
76. 노발리스, <푸른 꽃>
서양 소설을 읽어보면 <푸른 꽃>이 <오디세이아> 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인용된다. 서양인에겐 질풍노도, 찬란한 낭만주의의 시발점(발음주의!)이 대단히 중요한 거 같은데 정작 읽어보니 뭐 별 재미도 없고 격동하는 청춘의 염통도 뭐 그냥 그렇고, 무엇보다 나서부터 지금까지 주로 문장이 "...다."로 끝나는 언어권에서 살아 그런지 공명도 없었다.
109.110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이것도 중1 때 읽고는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봤더니 개떡. 빅토리아 시대 초기에, 지금부터 170년 전에 쓴 건데 당시 수준으로 봐서는 모르겠으나 지금 동아시아 독자가 읽기에는 좀.
이 책 속의 등장인물을 다시 주인공으로 한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라면 내가 즐거이 추천을 하는데 조건이 <제인 에어>를 먼저 읽어본 사람에게. 그래서 이걸 추천한다는 거야 뭐야? 하시면 좀 그렇지만 하여간 이 작품 하나만 가지고 말하자면 적극적 비추.
150.151.152 단테 알레기에리, <신곡>
지옥의 입구에 이렇게 써있다.
"이곳에 들어온 자, 희망을 모두 버리라."
이 책을 집어든 자, 희망을 모두 버리라고 하고 싶다. 서양 운문을 읽는 거 자체가 대단히 힘든 일이며, 더구나 기독교하고 전혀 친하지 않은 내가 읽기엔 더욱 힘들었던 일이었고, 그것도 끝까지 읽느라 하마터면 지옥구경을 할 뻔했다.
팍 때려주고 싶은 인간 있으면 점잖게, 이거 한 번 읽어봐, 그래야 지성인이지, 하고 권해주고 싶은 책.
158 노먼 킹슬리 메일러, <밤의 군대들>
저널리스트. <밤의 군대들>을 써서 퓰리처 상을 받은 작가.
미국인들이 자국 내에서 얼마나 완강하게 집회 시위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책. 전적으로 기자의 입장에 의해 썼다. 근데 대한민국이 유구한 근대사를 통틀어 국민의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탄압했는지 경험해보지 못해 이 책에 퓰리처 상을 줬다고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책.
천상 신문기자. <벌거벗은자와 죽은자>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건 재미나 있지, 이건 뭥미?
185. 앙드레 브르통, <나자>
초현실주의 작품.
우선 나는 초현실주의 '문학'을 싫어한다. 초현실주의 회화나 영화 같은 건 즐겨 보지만 도무지 브르통을 대표로 하는 이 계파가 쓴 책은 못 읽어주겠다.
혹시나, 해서 사봤더니, 역시.
189. 장 폴 사르트르, <말>
이거 굳이 돈 들여 책 사서 읽으면서까지 사르트르의 잘난 척을 꼭 들어줘야겠어?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라.
"20세기가 사르트르인줄 알았더니 사르트르가 20세기더라."
그럼 난 20세기 사람이 아님을 인정한다.
사르트르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난다면 그에게 딱 하나를 묻고싶다.
"도대체 뭘 주장한거야?"
263. 잉에보르크 바흐만, <말리나>
이 책 읽느라 죽을 똥을 쌌다.
내가 대단한 것이, 적어도 다른 사람한테 얼마나 인내심이 강한 인종인지 증명하려면, 이 책을 무려 완독, 끝까지 읽었다는 거 하나만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궁금하셔? 그럼 시도해보시든지.
27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책 좀 읽었다 하는 사람들한테 비웃음 받기 가장 쉬운 것 가운데 하나가 보르헤스 책을 읽고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다, 안 좋다, 뭐 이런 얘기 하는 거란 것쯤은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읽으면 읽을 수록 오리무중인 것을 어떻게 좋다고 하나.
난 일찌기 보르헤스를 필두로 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소위 말하는 환상문학을 하는 일단의 작가들을 "나몰랑 주의"라고 일컬은 바 있으며 지금도 그렇다. 보르헤스를 읽으면 읽을수록 더 깊은 늪 속에 빠지는 느낌.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다른 읽을 것도 차고 넘치는데 이런 얇은 책 한 권 때문에 괜히 뇌를 괴롭힐 생각 없다. 가뜩이나 잘 돌아가지도 않는데 잘 관리하면서 남은 삶을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