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퍼시벌 에버렛 지음, 송혜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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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퓰리처 상과 전미 도서상에 빛나는 작가 퍼시벌 레너드 애버렛 2세하고 이름이 같은 퍼시벌 레너드 애버렛은 미국 육군 상사 시절에 조지아주에서 도로시를 만나 1956년에 아들을 낳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컬럼비아로 이사 가서, 놀랍게도 치과 의사가 되었다. 미국 육군의 상사가 제대하면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르겠는데 중사도 아니고 상사가 다시 공부를 해서 치과의사? 이 정도면 지역과 커뮤니티에서 입지전적 인물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아들은 작가에다 대학 석좌교수로, 딸은 의사로 키웠으니 거 참, 열심히 살았네. 부러워? 뭐 별로. 뭔가를 이루지 않고 그냥 편하게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거든.

  아버지를 닮았는지 아들 퍼시벌 에버렛 주니어도 마이애미 대학에 진학해 생화학과 수리논리 등을 연구하다가 학위는 철학 학사를 취득했다. 생화학을 위하여 생물학, 물리, 화학, 수학, 통계학을 공부해야 했을 터인데 철학 학위를 받았으니 학문 전반을 싹 훑었다는 얘기다. 졸업하고 브라운 대학 대학원에서는 문학창작으로 석사를 했고, 지금은 L.A.에서 살며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영문과 석좌교수로 있단다. 아직 생일이 며칠 남아서 예순여덟 살.


  위키피디아를 훑다가 인상 깊은 개인사만 추려 소개했다. 에버렛의 작업 가운데 제일 빛나는 성과가 <제임스>인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으로 그는 앞에서 말한 대로 단번에 퓰리처 상과 전미도서상 수상자로 이름을 빛낼 수 있었으며, 미국의 유명 서평 잡지 『커커스 리뷰』에서 수여하는 커커스 상까지 트리플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부커상 최종후보에, 아일랜드의 국제더블린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는데 뭐 그렇다는 거다.

  본문이 4백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 그러나 페이지 수가 많다는 것일 뿐 술술 잘 읽힌다. 글자 수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어서 그랬나? 뭐 그랬을 수도 있고. 일단 스토리가 아는 스토리다. 마크 트웨인의 1884년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시 쓴 작품이다. 민음사세계문학 시리즈 6번을 기준으로 해서 말하자면, 허클베리, 헉이 자기가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미시시피강에 떠 있는 잭슨 섬으로 도망가 몸을 숨기는데, 이때 처음 ‘왓츤 부인’ <제임스>에서는 왓슨 부인의 도망친 흑인 노예 짐을 만난다. 이 장면이 84페이지 정도에 나온다. 전라도 사투리를 겁나게 쓰는 짐. 아마 재즈 보컬이나 거쉬인이 작곡한 오페라 <페기와 베스>에서 흑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전라도 사투리로 표현한 것 같다. 웃기지? 주로 이런 경우에는 세계를 정복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던데 하여간 김욱동은 1998년에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했다. 이 짐이 오늘 소개하는 퍼시벌 에버렛이 쓴 <제임스>의 주인공, 왓슨 부인의 도망 노예 제임스이다.

  이런 플롯이 낯설지는 않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남주인공 로체스터의 법적 아내 버사 메이슨의 시각으로 다시 쓴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다니엘 디포의 작품 <로빈슨 크루소>를 프라이데이 입장에서 쓴 미셸 트루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 먼저 떠오른다. 나는 원작들보다 다시 쓴 진 리스와 미셸 트루니에의 책이 더 좋다. 그럼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제임스>는? 어떨 것 같으셔? 내 의견은 둘 다 별로. 에버렛이 좀 억울하겠다. 원작을 내가 좋아하지 않으니 그걸 잘 각색했다고 해도 어디 쉽게 좋아할 수 있겠어?


  나는 이 작품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리메이크한 것인 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첫 장면에 두 백인 소년들, 헉과 톰이 제임스, 짐을 장난감 삼아 악당이나 먹잇감으로 설정해두고 일종의 역할놀이를 하는 걸 모른 척하는 걸로 시작한다. 짐은 아내 세이디와의 사이에서 딸 리지를 두고 있다. 왓슨 여사는 적어도 앞부분에서는 괜찮은 주인이다.

  그래도 짐은 모든 백인 앞에서 일부러 엉망인 문법으로 말한다. 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흑인 노예들이 마찬가지. 백인들이 흑인 노예가 특유의 엉망인 말투로 말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백인이 우월감을 느끼지 못하면 괜히 노예만 고통받는다는 것을 세대를 통해 충분히 학습했다. 백인과 이야기할 때는 눈을 맞추지 말아야 하며, 절대 먼저 말하지도 말고, 다른 노예들과 이야기할 때 그 어떤 주제로 절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노예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면서 즐거워하니까.

  근데 노예들끼리 있을 때는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도 정확한 문법으로 된 문장을 구사한다. 예를 들어 헉과 짐의 대화를 인용해보자.


  헉: 너는 노새도 다룰 줄 알고 수레바퀴도 고칠 수 있지. 이제는 여기 현관 바닥도 고치고 말이야. 그런 건 다 누가 가르쳐준 거야?

  짐: 필요해서여. 필요하면 사람이 먼가를 하게 대여. 그러지 안으면 기둥으루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거나 강으루 끌려가 팔려버리니까여. 헉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엄는 일이지만여.


  이 책의 역자는 흑인이 백인이 들을 때 지방 사투리가 아니라 뜻을 알 수 있는 비어를 사용했다. 비어卑語 말고 비어非語.

  그런데, 짐의 경우는 놀랍다. 놀랍다 못해 까무러칠 수준이다. 과부인 왓슨 부인의 집안 사정을 잘 보살펴주는 대처 판사. 두 집안끼리 사이가 좋아 서로 사정을 잘 알고 지낸다. 그래서 판사가 순회재판 같은 일로 오래 집을 비우면, 짐이 슬쩍 서재에 침입해 구석 그늘진 곳에서 책을 무한정으로 읽었다. 그리하여 오히려 책을 쌓아 두기만 했지 별로 읽지 않은 판사보다 짐이 훨씬, 훨씬 더 높은 지적 소양을 지녔다는 전제이다. 18세기 말, 19세기 초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상도 훤히 꿰고 있어서, 뒤에 짐이 방울뱀에 물려 사경을 헤매거나 꿈 속에서 디드로는 아니고, 백과전서파 가운데 풀 네임을 기억하는 사람이 세상에 거의 없는 철학자들, 몽테스키외, 볼테르 같은 사람들과 자유스러운 토론이 가능할 정도이다. 놀랍지? 너무 놀라워 짐이 신적 존재이거나, <제임스>가 초현실주의나 극단적 포스트 모더니즘 작품 같기도 하지? 하다못해 꿈 속에서 <깡디드>의 여주인공 퀴네공데까지 나온다니까. (근데 <깡디드>는 볼테르보다 오페라로 만든 L. 번스타인의 <캔디드>가 더 좋지 않나?) 하여간 책에 등장하는 모든 백인들 가운데 짐을 능가하는 지적 능력을 지닌 인간은 하나도 없다. 아니, 백인 가운데 진짜 인간, 선한 인간은 한 명도 없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허클베리, 헉도 그래? 아이쿠, 이걸 말해드려야 하나? 참하, 그것은 차마 가르쳐드릴 수 없다. 미리 알면 재미가 반감될 것이 틀림없어서.

  이제 선한 노예 소유주인 왓슨 아주머니 집에서 도망가게 된 일을 말할 차례다.


  미주리주 해니벌에 봄이 왔다. 시속 60마일로 네 시간을 달려도 그저 밀밭인 평야. 그러나 1861년에는 곳곳에 사람이 들어가면 찾기 쉽지 않은 숲이 있었던 곳이다. 이런 평야는 대륙성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여름엔 혀가 쭉 빠지게 덥고, 겨울엔 무지하게 춥다. 춥디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그런 줄 알았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왓슨 아주머니가 짐에게 장작을 패 쌓아 놓으라고 지시했다.

  짐은 하루 온종일 장작을 패서 창고 가득 쌓았지만 노예들의 오두막에는 장작이 하나도 없어 그저 잔가지를 모아 때우며 추위를 버텨야 했다. 먹을 것도 별거 없고, 노동을 많이 해 일찍 늙은 노인들 한테는 더욱 혹독한 추위였다. 짐은 이를 짐작해서 장작 조금을 몰래 숨겨 두었다가 그걸 밤에 가지고 와서 노인들 사는 오두막에 주고는 했다. 근데 이 꽃샘추위가 갈 생각을 안 하는 거다. 짐은 들키기만 하면 자기 등에 떨어질 채찍 맛이 어떤 줄 뻔히 알면서도 이젠 왓슨 부인을 위한 장작도 훔쳐올 수밖에 없었고, 아뿔싸, 꼬리가 길었나?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랬던 것 같다. 늘 인자한 미소를 짓던 부인은 후견인 비슷한 지위의 대처 판사와 뭔가를 속삭이는 것까지 짐이 보기는 했다. 그러나 해가 지고 부인의 집안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짐의 아내 세이디가 전해주는 말이, 짐을 미시시피강 하류, 일반적으로 뉴올리언스를 말하는 거 같은데, 그곳 농장에 팔려고 한단다. 말이 나왔으면 그건 시간이 문제다.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모레일 수도 있다. 일단 팔려가면 이제 처자식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건 뻔한 일.

  짐은 당장 그날 밤을 도모해 탈출을 해서, 북쪽 자유주인 일리노어로 간 다음에 돈을 벌어 시이디와 리지를 해방시키겠다는 말을 남기고 정말로 떠나버린다. 당장 북쪽으로 가면 추적대에게 발각날 확률이 높으니 일단 조금 남쪽에 있는 미시시피강의 잭슨 섬을 첫 피신처로 정했다.

  이후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일화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자유를 찾아 모험을 감행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백인 가운데 선한 백인은 오직 죽은 백인 뿐이다. 올해 하반기에 유난히 흑인 노예시절 이야기를 많이 읽어서 별로 즐겁지 않았다. 퓰리처 상을 받았다고 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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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1-27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라도 사투리를 겁나게 쓰는 짐
웃기지? 웃겨욬ㅋㅋㅋㅋㅋㅋㅋ
주로 이런 경우에는 세계를 정복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던데
웃깁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음. 그렇군요. 저도 딱히 읽을 것 같지는 않아서 리뷰는 다 읽었습니다! ㅋ

Falstaff 2025-11-28 05:05   좋아요 0 | URL
자냥 님은 이 책에 만족 못 하실 듯. 좋은 선택입니다.
사투리보다 송혜리처럼 비어로 대체하는 게 훨씬 낫더라고요. ㅎㅎ

얄리얄리 2025-11-27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길래 들었다놨다 하다가 결국엔 다음으로 미루었는데..
음.. 다음에 들고 와서 읽어야 할지 갈등되네요. 조금 더 기다려 볼까봐요..

Falstaff 2025-11-28 05:05   좋아요 0 | URL
시민들의 세금으로 사 올 텐데 조금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다 읽으셔야지요. ㅋㅋㅋ
저도 자주 그런답니다.

다락방 2025-11-27 2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이 책 읽고 싶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 읽었거든요. 그런데 허클베리가 별로더라고요? 그래서 ‘제임스는 무조건 이것보단 좋을것이다!‘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허클베리 에서 짐이 무식한 설정으로 나오는게 되게 걸렸거든요. 그래서, 바로 그 부분에서 ‘짐의 입장에서도 소설이 쓰여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리뷰를 읽어보니, 바로 그 부분에 집중된 것 같아요. 저는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5-11-28 05:09   좋아요 1 | URL
아하, 다락방 님이 원하는 방식대로 에버릿이 썼군요! 그러면 읽어보셔야겠네요.
저는 오히려 너무 박식한 노예로 만들어 불만이 컸습니다. 19세기 중반에 벌어진 일을 ˝과하게˝ 21세기 현재 관점에서 보는 것도 몰입에 조금 방해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