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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2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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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헌등사>를 포함해 다섯 편의 중단편을 실은 작품집. <헌등사>는 185쪽 분량이라 우리나라 출판계의 분류에 따르면 장편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긴 분량으로 따져서 장, 중, 단편으로 구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는 이 《헌등사》에 나오는 작품들을 읽고나서 2018년에 시작하는 다와다 요코의 소위 Hiruko 3부작의 배경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 “Hiruko 3부작”은 일본 열도가 태평양 상에서 사라졌는지, 침몰했는지 하여간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진 상태에서 모어mother tongue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일본인 여성 Hiruko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체류하며 같은 모어를 쓰는 Susanoo를 찾는 이야기가 1부 <지구에 아로새겨진>이고, Hiruko와 친구들이 Sunanoo의 실어증을 치료하는 것을 돕다가 이미 침몰해 없어졌을 지도 모르는 Hiruko와 Sunanoo의 고향으로 떠나는 <별에 어른거리는>이 2부, 아직 번역 출간해 나오지 않은 <태양제도>가 3부로 되어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서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강의 지진(강도 9.0~9.1)이 발생한다. 이어 평균 10미터, 최대 소상 높이 40.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지진해일이 닥쳐 도호쿠와 간초 지방의 태평양 연안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이로 인해 1만8천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40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이것 외에도 도호쿠 지역의 원전 29기 가운데 11기가 운전 중단이 되었으며, 이 가운데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1호기부터 3호기에 멜트 다운이 일어나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레벨인 7단계 사고로 분류되었으며 2012년부터 “귀환곤란지역” “거주제한구역”으로 설정되었다.
당시 오에 겐자부로를 위시한 사회, 문화 등 각계의 인물들은 1945년에 원자폭탄 피폭을 직접 경험한 기억이 남아 있어 1만 8천명의 사망/실종보다 방사능 오염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 대규모 반핵 시위에 접어들게 된다. 다와다 요코는 당시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위에 참가했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이 역시 경제적(싼 값)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대형 재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공황에 접어든 것 같다.
그래서 이 책 《헌등사》의 단편들을 보면, 일본 공군 자위대의 전투기가 (당연히) 폭탄을 싣고 비행하다가 기체 결함으로 추락을 하는데, 하필이면 그게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꼭대기로 정확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일본 전역이 마치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방사능에 오염되어, 이에 피폭된 사람들이 강이나 개울 같은 하천을 찾아가 몸을 담구는 장면까지 묘사한다. 피폭자들의 하천행은 분명히 오타 요코가 1945년 히로시마 피폭을 직접 당하고 쓴 소설 <시체의 거리>에 나오는 장면을 리메이크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원자로 파괴에 의한 방사능 유출의 피해를 원자폭탄으로 인한 타격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정도로 여긴 셈이다. 또는 또다시 대형 지진이 발생해 원자력 발전소가 여기저기에서 파괴되어 일본의 거의 모든 지역의 토지는 물론이고 인근해 해수까지 전부 방사능에 오염되었거나, 지진의 여파로 지금의 위치에서 더 동쪽으로 밀려나가 유라시아 대륙과 아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상태가 《헌등사》 출간 4년 후에 나올(나오기 시작할) Hiruko 3부작의 기본 개념이 되는 거였다.
그런데 한자어와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多和田葉子, 다와다 요코 여사는 위 문단에서 길게 쓴 다분히 디스토피아 적 미래관을 소설로 쓰면서도 일본어와 한자어를 오가며 현란한 문자 또는 언어유희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 한자어와 일본어, 가끔은 영어와 일본어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것들을 깔고 간다. <헌등사>을 보면, 일본은 국토가 유라시아 대륙과 완전히 분리된, 즉 쿠릴열도와 이어진 대륙과의 연결 끈에서 완전히 떨어진 이후, 오염되어 야생동물이 거의 몽땅 멸종한 토지와 해양수 때문에 자의반타의반으로 쇄국정책을 벌이고 있어서, 외국어 사용조차 금지했거나 금지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못쓰게 된 전자제품에 영어로 쓰인 Made in Japan이란 글씨를 보고, Made? 마데? 재팬, 일본까지? 라고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Made를 ‘마데’라 읽는 건 그럴 수 있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은 “A부터 B까지”를 일본어로 하면 “AからBまで” 즉 ‘A가라B마데’로 읽는다는 걸 알아야 웃을 수 있다. 한자어와 일본어로 하는 언어유희는 생략한다. 이런 식이다. 일본어도 할 줄 아느냐고? 조또. 우리말로 ‘조금’이란 뜻이다. 라떼 일본어 독해를 못하면 마르크스를 읽을 방법이 없어서 시쳇말로 얻어 터지면서 배웠다.
원래 쉽지 않게 소설을 쓰는 다와다 요코가 이런 언어 유희까지 벌이고 있으니 정말로 《헌등사》를 읽으실 분은, 구간이 절판이라 틀림없이 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2번으로 나온 책을 읽으실 터인데, 신중하게 결정하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기준으로 드리는 말씀이니 심각한 고려사항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이야기했으니 됐다.
근데 "현혹" 또는 "선동"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보자. 아, 먼저 전제로 깔아야 할 것이 있다.
1 > 0.9999999999999……
이 부등식이 맞다고 생각하시면 안 읽으셔도 된다. 괜히 오해만 불러올지 모르니까.
원자력 발전을 포기한다면? 그러면 남은 것은 화석연료, 수력, 태양광, 풍력 등이다. 화석원료를 이용한 전기발전은 필연적으로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어서 적어도 2차 함수 곡선을 타고 급격화할 지구 온난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은 경제성 문제가 걸림돌이고. 게다가 우리나라 같은 지형은 지독하게 태양광과 친하지 못하다. 일본도 마찬가지. 이 두 나라가 원자력 발전소의 문을 닫고, 앞으로 원전을 더 짓지 않기 위하여는 그래도 태양광의 효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과학적, 산업기술적 발전에 박차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적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내 의견이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그렇다. 당장 내일부터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고 치자. 그러면 전기료는 지금보다 적어도 3배 이상으로 오르지 않을까? 3배가 뭐야, 최소한 그렇다는 것이지. 거리는 어두워지고, 점포는 해 떨어지면 문을 닫아야 하며, 부잣집 청소년들도 대학입학을 위한 학원 순례를 멈추어야 한다. 왜? 전기 없는 어둠 속에 틀림없이 범죄가 도사리고 있을 터이니. 앞으로 더욱 뜨거워질 것이 분명한 여름 밤의 열대야도 에어컨 없이 지낼 각오를 해야 하고, TV 사이즈도 작은 것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지 모른다. 나머지 집에 있는 필수 가전제품은 전부 신제품, 작은 사이즈로 개비해야 할 터이고, 적지 않게 내다 버려야 할 걸?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농담 같지? 천만의 말씀. 30년 넘게 밥 먹고 살던 직장이 태양광 근처 산업이다. 그래서 전기산업에 관해 좀 안다. 말로만 원자력 발전 반대 집회 가서 투쟁, 투쟁, 투쟁, 목이 터지게 외치고나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에어컨 빵빵 돌리시는 분들은 정말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원자력 발전을 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을 이용한 전기 생산이 지금보다 훨씬 효용이 좋아질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참아주는 게 어떠냐는 제안일 뿐. 지금은 전기 없이 또는 비싼 전기료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 편함을 맛본 후에는 불편을 견디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특히 해 진 다음의 범죄를 또다시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면 원자력 발전을 당장 멈추어도 설마 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참고로, 나는 원전 중단보다 화력발전 중단에 의한 지구온난화 예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 1인이다. 원전사고는 국지적 피폐화이고, 지구온난화는 전지구적 멸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파리 기후협약을 가비얍게 탈퇴한 트럼프, 거 참.
원전 오염수 방출에 관한 진보적 과학자가 TV에 나와서 문제없다고 한 적 있다. 그 양반 말이 맞다. 몇 백만 톤의 오염수가 해발 몇 백 미터 아래의 파이프 라인을 통해 곧바로 해류에 합류한 다음 태평양을 한 바퀴 돌고, 남극해를 거쳐 아프리카 남단을 기점으로 일부는 대서양으로 빠져나가고, 일부를 뺀 좀 더 많은 나머지가 인도양을 통과해 다시 태평양으로 와서 우리나라 황해에 머물기도 하고, 동해로 빠지기도 하고, 다시 일본 동쪽 태평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무려 몇 백만 톤의 오염수가. 그럼 바닷물 속에 오염 성분이 들어 있겠지? 맞다 들어 있다. 얼마만큼이냐 하면 0.000000…퍼센트. 이게 TV에 출연한 진보성향 과학자가 한 말이다. 한 TV 방송에서 그래픽으로 설명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하, 거참, 그런 현혹이라니. 바닷속 파이프라인 배출구의 직경이 한 100미터 이상이다. 그러니 그래픽을 보는 시청자는 당장 “오염수가 저렇게 많이 배출되는 거구나!” 경악을 할 수밖에 없지. 오에 겐자부로도 그랬고, 오늘 《헌등사》를 쓴 다와다 요코도 그랬다. 그들이 하는 말이 0.000000…퍼센트도 오염은 오염이지 않느냐, 하는 것. 다시 부등식 하나.
0.000000…퍼센트 > 0
이 부등식은 틀렸다. 수학적으로 0.000000…퍼센트 = 0. 통계학적으로 0.000000…퍼센트와 0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TV에 나왔던 진보 성향의 과학자가 한 말이 바로 이거다. 통계학적으로,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몇백만 톤의 오염수 방출은 그것만으로 바다를 오염시킬 수 없는 거다. 수학적으로 어떻게 저 부등식이 틀렸는지 설명해드릴 수 있는데, 너무 길어진다. 정 궁금하면 개별적으로 연락주시라. 과녁에 절대 도달하지 못하는 화살의 패러독스도 깨 드리겠다. 이해하건 못하건 그건 내 책임이 아니고.
다와다 요코는 독일인인지 일본인인지, 아니면 이중국적자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태생의 일본인으로 태생적 원자폭탄과 원자력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사고가 외골수로 치닫고 말았다. 공군 자위대 전투기가 추락을 하는데 그게 일본에 10기밖에 남지 않은 원자력 발전소 지붕 위로 정확하게 떨어져 폭발한다고? 당연히 그럴 수 있지. 다만 확률이 0.000000…퍼센트 = 0 이라서 그렇지. 이건 소설이다.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전혀 가능하지 않은 전제를 깔 수도 있다. 그게 작가의 권리이니까. 불만은 없는데 책 한 권을 몽땅 같은 주제로 해 놔서 내가 심통이 좀 났던 거 같다.
생각보다 우리 주위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진복자가 진짜, 진짜 많다. 그걸 신념처럼 믿는 진복자들. 진짜로 복받은 이들. 좋겠다. 그저 1찍이나, 2찍이나, 정치가 과학적 진리 위에 있다니까. 신도들을 보는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복, 진복 많이 받으시라.
지난 초봄에 건강검진 받고 근 30년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지방간이 싹 없어졌다는 결과를 듣고 너무 기분이 좋아 다시 만날 쐬주를 장복했다가, 12월 들어 또다시 절주 중이다. 그랬더니 시간이 많이 나는 바람에 요즘 독후감이 길어지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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