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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달린 두약 ㅣ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32
구레이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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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늦가을에 구레이를 처음 읽고 1년만에 또 구레이를 읽는다. 전에는 멀리 떨어져 살지만 이젠 고속열차가 생겨 80분이면 도착하는 허베이성의 늙은 아버지와 베이징에서 전동칫솔 사업을 하는 아들과의 관계, 참 오랜 세월지지고 볶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그린 <물이 흘러내린다>이었고, 이번엔 아버지가 죽어 제사를 지내는 와중에 왕년에 춤선생을 하던 병든 어머니와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온 아들 나생羅生의 서걱거리는 관계를 묘사한 <날개 달린 두약>이다. 두약杜若은 어머니의 이름 ‘방두약’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75세의 모친. 반백 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한 집에서 산 부부답지 않게 모친은 죽어 누워 있는 고인에게 별로 정도 없고, 애틋하지도 않고, 애도하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으며, 전혀 슬프지도 않다. 오히려 조문객이 올 때마다 빈소 위에 향을 살라 향 연기를 맡을 때마다 눈물도 나고, 콧물도 나고, 조금만 심해도 기침을 콜록거리는데 이때마다 요실금으로 요도에서 티스푼 두 개 이상의 오줌이 질금, 새 나온다. 심할 때는 한 큰 술 15cc까지 왈칵. 그리하여 방두약 여사가 입을 만한 바지는 다 냄새가 나고, 젖어 있어서 입을 것도 없다. 75세라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 재채기할 때마다 화장실 드나들기도 힘들어 딸도 아닌 아들을 부른다. “나생아! 얘가 어디 갔어? 나생아, 내 말 안 들리니?” 그래서 대답을 하면, “요강 좀 가져와라.” 요강을 침대 뒤편에 놓으면 내려와서 졸졸졸, 한 시절 수돗물을 쏟던 것 같은 맹렬하고도 맹랑한 음향 대신 이젠 일흔다섯의 노파답게 졸졸졸 흘리다가 바지 올린 힘도 없어서, 나생아, 다시 아들을 불러 바지를 추켜달라고 하는 방여사.
평생 아내한테 다정다감하게 이야기해본 적도 거의 없고 그저 방에 틀어박혀 책과 신문과 잡지와 하여간 뭔가를 읽고, 뭔가를 쓰기만 하던 남편이 죽었는데 뭐 내가 슬퍼하거나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어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방두약 여사는 자신이 생전에 부조, 부의금을 특정 집안에 얼마를 했으니, 그이도 이번에 적어도 몇 위안의 부의금을 내야 마땅할 터, 얼마나 가져왔나, 이것이 궁금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것도 있겠지. 오랜만에 아들이 왔으니 오히려 더 힘이 없어 보이고 싶고, 실제보다 훨씬 약해 보이고 싶은 마음. 지 아비를 닮아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이런 어미한테 무뚝뚝한 친절이라도 지가 도리상 베풀지 않을 수 있어? 하는 마음. 거기다 하나 더. 문상객이 오면 문상이나 하고 부의금 내고 그냥 가면 되지, 꼭 여사를 찾아서 애도를 전하는 인간들한테는 자신이 얼마나 깊은 슬픔에 싸여 있고, 평소에 늙은 부부가 서로 얼마나 의지를 하며 살았는지, 또한 죽어 누워있는 남편과 방두약 여사와 아들 나생이 지극하게 화목한 가정이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때문에 문상객이 오면, 주로 방여사 젊은 시절에 여사한테 춤을 배우던 학생들이었는데, 춤이라 해도 정식 중국춤이나 현대춤 말고, 공장 다니던 여공들 가운데 제일 나이도 많고 춤도 잘 추던 여사가 어린 또는 젊은 여공들에게 춤을 가르쳐준 수준이기는 하지만, 제자 앞에서 아들 나생이 자기한테 얼마나 잘 해주는지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깊다. 그리하여 자기가 오줌 눈 요강을 씻어 오라고 부탁이 아닌 지시를 하고, 이를 짐작한 아들도 아무 대꾸 없이 씻으러 가는 걸, 이렇게 씻어라, 저렇게 씻어라, 요강 앞에 표시난 곳을 위로 해서 두어라, 별의별 사소한 것까지, 차마 식모한테라도 그러지 않을 잔소리마저 쏟아낸다. 나생은 장례식만 끝나 훌쩍 떠날 것이니 이 지긋지긋한 잔소리와 의무를 후딱 해치우기는 하는데, 이게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지?
그런데 극작가 구레이로 말할 것 같으면, 베이징공과대학과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후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무대의 꿈을 버리지 못해 극작과 연출의 세계로 뛰어든 인물이다. 자기가 쓴 극작을 자기가 연출해 무대에 올리기 위해 직접 극단도 만들어서. 나도 대학 다닐 때 물리학과에 다니며 연극에 빠져 살던 친구한테 힌트를 얻어 희곡을 읽기 시작했지만, 21세기의 소장 작가군에 든다는 구레이는, 내가 단 두 작품만 읽어보아 확언할 수는 없지만, 처음엔 그리 심각하지 않게 시작했다가 점점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것까지는 당연한데) 도무지 설핏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방두약 여사는 일흔다섯 살을 만나 뇌졸중을 겪고 있는 상태라 의식이 좀 혼미하다. 문상객이 가져온 부의금 봉투를 열어 금액을 확인하며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화려했던 젊은 시절이 눈에 보이고, 그때 그 장면이 젊은 배우들이 나와 (상중임에도) 젊은 두약과 함께 실제로 춤을 추기도 하며, 당시의 멤버이지만 이미 고인이 된 아가씨 역시 등장하는 등, 관객과 독자 입장에선 눈 앞에, 머리 속 무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매우 애매해진다. 눈알을 크게 뜨고 활자를 하나하나 다시 읽어봐도 마찬가지. 이럴 때는 얼른 책 뒤로 넘어가서 해설을 읽어보는 것이 제일 낫다.
작품은 두 가지 스토리로 나뉘어 전개된다. “하나는 젊은 방두약의 춤, 친구들, 딸의 죽음, 그리고 남편의 이야기. 다른 하나는 아이(어린 시절 죽은 딸 나잉잉)가 읽어주는 소설 속 노인과 모친의 오버랩이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상가집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것들, 내가 앞에서 말한 향냄새, 요실금, 부의금 금액 같은 거 말고, 후반부 들어 관객과 독자를 헛갈리게 만드는 요인이 두 가지라는 것인데, 이게 굳이 관객과 독자를 이해시키고자 하지 않는다. 관점은 오직 하나. 작품의 주인공인 방두약 여사의 관점이다. 그래서 결국엔 돌이키지 못하게 망가져버린 가족간 관계이기는 하지만 한때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까지 포기했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거다.
대개 이런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옆에서 함께 연극을 본 친구가 “어땠어?” 하고 물으면 도무지 할 말이 없다. 분명히 한 편 잘 보고 재미도 있었는데 그걸 언어로 만들어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경험은 다들 한두 번씩 가지고 계실 듯. 이 작품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구레이는 한 작품을 공연할 때마다 디테일을 계속 수정해간다는데, 아마도 대본을 수정할 때마다 관객들은 조금씩 더 미궁에 빠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연극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장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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