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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유목제국사 744~840 - 막북 초원에 고립된 위구르의 발전 모색 ㅣ 유목제국사
정재훈 지음 / 사계절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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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솔직한 이유는, 에드위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의 마지막 부분, 동로마제국마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하여 멸망하는 장면이었다. 오스만 투르크. 이제 마지막 한 방이면 위대한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쪼개놓을 찰라, 난데없이 몽고군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아 영광의 시기를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민족. 튀르키예의 조상들은 로마사를 읽으면서도 갑자기 튀어나왔다. 로마 제국사에서 로마의 가장 큰 적수는 제국 초기엔 라인강변 주변의 갈리아족과 게르만족, 중기에는 골족과 고트족, 서로마가 망한 이후에는 페르시아였다. 역사가의 서술에 황제가 직접 적군의 창이나 칼에 맞아 전장에서 목숨을 다했던 건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있었을 뿐이다. 제국사 내내 거의 이름을 내지 않았다가 난데없이 등장해 기어이 동로마제국의 숨통을 끊어놓은 오스만 투르크, 투르크 족. 이들은 15세기까지 지금의 튀르키예 동쪽 황야지대에서 유목을 하던 투르크 사람들을 조상으로 한단다. 이 투르크 족은 유라시아 대륙의 저 동쪽 다싱안링(대흥안령)산맥부터 고비사막의 북쪽을 따라 서쪽의 알타이 산맥까지를 일컫는 막북 지역에 거쳐했던 다양한 유목민족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은 흉노, 돌궐, 위구르처럼 하나의 제국을 건설하지는 않았고, 각 유목 제국의 일원에 포함되어 생활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13세기를 전후해 몽골이라는 거대국가에 밀려 위구르 시대에 이미 ‘튀르키’라는 부족을 이루어 서쪽으로 밀리고 밀리면서, 대륙을 횡단하는 동안 다양한 인종과의 혼혈도 이루어지며 튀르키예 동쪽에 거의 최초로 정주하게 된 민족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는 몰랐다. 여태 유럽에서는 사납기로 이름이 난 타타르 족의 한 가지로 그 지역에서 유목을 하고 있었는 줄 알았을 뿐. 그러다가 다른 소소한 민족처럼 훈족이나 몽고족에 의하여 밀리고 밀리다 결국 서방에 압력을 가해 발칸쪽으로 옮겨 동로마제국과 국경을 맞닿게 된 것쯤인 줄 알았다. 여기서 궁금증을 조금, 많이도 아니고 조금 풀어볼 셈으로 <위구르 유목 제국사>를 읽기로 했던 것.
또한 가지가 현대 중국의 큰 골치거리 가운데 하나인 신장∙위구르 지역에 관한 것. 내가 알기로는 티벳 고원을 장악했던 토번 족이 세력을 떨친 신장하고, 고비 사막 이북, 윈깡 동쪽을 장악한 위구르. 이게 연결이 잘 안 되더라는 것. 토번과 위구르를 알기 쉽게 말해 견원지간이라고 알고 있었다. 근데 그들이 언제 신장 지역에 합류해서 뜻을 합해 신장 위구르의 자치 독립을 주장하게 되었는지,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도 궁금했다. 물론 이건 이 책 <위구르 유목 제국사>가 다루는 744~840년까지의 연구에서는 밝히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기미는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론 혹시 했다가 역시 했지만.
흉노와 말갈, 위구르 등 유목민족은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먹고 살 것이 부족했다.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건 유목의 대상인 가축과 가축들이 줄 수 있는 몇 가지, 그리고 거의 바랄 수 없을 정도의 수렵과 채집뿐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거친 땅에서 나오는 양질의 철, 즉 만들어봤자 쓸모도 없는 농기구가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칼과 창과 화살촉을 만들 수 있는 철. 두고두고, 천 년을 넘는 동안 세상 어느 인종도 넘볼 수 없는 전쟁기술인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백발백중의 실력은 인구 수보다 더 많은 말과 좋은 철로 만든 화살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먹고 살기 팍팍하고, 입을 것도 없고, 누릴 것도 없다. 이래서 그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심정으로 물자가 풍부하다못해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 땅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해. 그러다가 자신들도 조금 누려보려고. 나중엔 최고급의 중국산물(비단이나 차, 도기, 장신구 같은 사치품)을 노략질하거나 자기들 말과 교환해 오아시스 지역의 나라들에 내다 팔아 자기들의 부를 키워보려고.
사람이란 다 마찬가지다. 아예 해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우연이라도, 한 번 제대로 된 밥상을 경험해보면 그걸 한 번 더 받아보고 싶고, 어느 집에 불을 싸질러 옥가락지를 하나 뺏아 손가락에 끼워봤으면 두 손가락, 다른 손의 손가락에도 끼워보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게다가 기동력있게 타고 다닐 말도 있지, 스나이퍼를 능가하는 활도 있는데 뭐가 무서워서.
애초에, 자기들 기준에 북쪽에 크고 긴 성을 지어 오랑캐 유목 민족들이 담을 넘어오지 못하게 인프라 건설에 힘을 쏟은 진나라 시황 때부터 중국인들은 벌판에서 오직 싸움만 가지고는 이들을 방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이 즐겨 쓴 방법이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하여금 지들끼리 대가리 터지게 만드는 전술이었다. 정말 다싱안링 산맥부터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거쳐 우크라이나 동부지역까지 진출했던 돌궐도 세가 줄어들자 당나라 조정은 이를 이용해 위구르를 견제했고, 돌궐이 시새푸새해지니 돌궐 대신 토번을 이용해, 토번과 위구르한테, 너네 쟤네하고 싸우면 이겨? 열심히 이간질을 해왔던 거다. 중국도 다 자기들 살기 위해서.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중원과 에그머니, 낙양, 그리고 궁전이 있는 장안까지 점령당하자 당현종은 꽁무니를 빼고 그 자리에 앉은 숙종이 한 일은, 북쪽을 향해 굳게 닫혀있는 문을 열고 위구르 군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안녹산, 안사도 원래 돌궐족, 오랑캐 출신으로 당나라에 와 운이 좋아 현종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더니 허파에 바람이 들기 시작, 그깟 황제, 나도 한 번 해보자, 칭제를 해 나라를 세워 연燕이라 했다. 그러니 안사의 난으로 죽어나간 건 애먼 당나라 사람들이었으나 정작 쌈질은 돌궐+소그드족과 위구르족이 주로 담당했던 거다. 이 한 방으로 사실 당은 제대로 맛이 가서 점점 쇠망의 길로 접어든다.
부록을 빼면 360쪽. 이 분량으로 아무리 96년사에 불과한 짧은 역사를 기록한 것이지만 위구르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뿌듯해지기는 힘들 듯. 근데 그건 이 책을 쓴 사학자 정재훈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도 워낙 부실한 기록밖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유목지역이 워낙 넓고, 인구밀도가 낮고, 종족들이 많아 그만큼 다툼과 파괴가 잦았기 때문에 그나마 기록이 된 것들도 다른 어느 곳보다 결정적인 망실이 많았을 것이다. 유물들의 보존도 그만큼 힘들었으며, 사람 손이 닫지 않는 유적은 그만큼 빨리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자연의 힘이라 변변한 유적 하나 없는 역사학의 황무지가 고비사막을 중심으로 앞뒤에 펼쳐진 거대한 초원지대. 그리하여 남은 역사 자료라 함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에 의하여 기록된 문서일 터이고, 당연히 역사는 기록한 자들의 편집이라, 중국인의 눈, 중국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을 것. 이제 벌판에 묻힌 비석 몇 개에 풍화된 채 남겨진 비석문으로 중화의 서고를 채운 자료를 최대로 반박하며 새롭게 쓰는 역사라는 아쉬움을 모른 척하는 것도 야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구르 유목 제국사>를 읽은 다음에는, 역사책 한 권을 끝냈다는 뿌듯함이 들지 않는다. 처음으로 읽는 유목 제국사이긴 하지만, 짧은 역사이기 때문에 위구르의 스토리가 다양하지 못해 그런 측면도 있겠고, 당연히 있었겠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위구르 문화 역시 유물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며, 사용하는 문자는 있었으되 이들의 생활이나 사상을 기록할 만큼 다양하지 않아 그저 흘러가 잊힌 민족.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사이에서 휘리릭 사라진 하자르 족처럼, 분명 있기는 했지만 남기지 못한 제국을 찾는 일, 결과물을 읽는 것. 어째 좀 짠하다.
중국인들, 당이나 명의 눈에 위구르와 마찬가지로 오랑캐夷로 불린 우리는 왜 사라지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은 내가 낼 수 있는 답은, 정주민이었기 때문에. 즉 스스로 먹고 마시고 기록하고 즐기고, 위계 세우고 문화를 만드는 독자생존이 가능해 국경을 넘어 중국까지 들어가 약탈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랬다. 중국에 새로운 왕조가 생길 때마다 우리에게 보낸 의심은, 저것들이 다른 세력과 연계해 우리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지 결코 우리가 독자적으로 침략하리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태종과 고종이 대를 이어 그리도 죽자사자 고구려를 멸망시킨 이유가, 걔네들은 내버려두면 여진이나 말갈, 몽고처럼 쳐들어올 거 같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하여간 역사만큼 야박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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