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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니츨러 작품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8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신동화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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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레오폴트슈타츠에서 출생한 유대계 (단편)소설가 겸 극작가. 그리고 놀랍게도 의사다. 1885년 비엔나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종합병원에서 의사의 길을 갔으나,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돈 잘 버는 의사의 길을 포기했다. 그러려면 미쳤다고 힘든 의학공부를 했는지 참. 하긴 자기가 싫으면 평양 감사도 안 한다니 다 지 팔자이긴 하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죄로 의학을 공부했지만 넘쳐흐르는 창작의 기질을 감추지 못해 나름대로 불행했던 작가. 그러나 유대인이 1931년에 죽었으면, 그것도 오스트리아에서 그랬다면, 아이고, 그것 하나 가지고도 복 받았던 거 아니야? 이이가 서쪽 스위스 건너의 프랑스에서 명성을 떨친 인상주의 음악가 클로드 드뷔시와 동갑인데, 그래서 그런지 작품의 내용도 슬쩍 드뷔시의 주제와 비슷하게 다분히 성적이다. 요즘 한자어로 性的이라 쓰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그래서 굳이 번역해드리자면, sexual 하다는 뜻. 정말? 그렇다. 내가 처음 읽은 슈니츨러가 《라이겐》이었는데, 줄줄이 짝을 바꾸면서 추는 무도곡을 일컫는 단어이지만 동시에 줄줄이 엮이는 열 쌍의 성적 대상에 관한 소설이었다. 워째? 좀 혹 하셔?
이번에 민음사에서 낸 《슈니츨러 작품선》에는 세 편의 단편과 두 편의 노벨레 혹은 중편소설을 실었다. 두 중편은 내가 그동안 틈틈이 어떤 책을 읽을까 나름대로 뇌를 쓴 <엘제 양> 또는 <엘제 아씨>와 <꿈의 노벨레>라서 하마터면 두 권의 책을 살 뻔했는데, 물론 두서너 해 전에 그랬다는 말이고 은퇴 이후엔 책을 거의 사지 않아 고려 대상이 되지도 않았지만, 그게 한 권의 책에 모두 들어 있어서 비록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 읽었더라도 그간 기다려온 것이 참 보람찼다. 살다 보니 별 게 다 보람차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거의 모든 작품이 이성 사이의 야릇한 끌림과, 흠흠, 독자의 이해를 바라는 바, 꼴림을 숨기지 않는다. 이는 슈니츨러의 비엔나 의과대학 6년 선배이기도 하고 더구나 같은 유대인인 지기스문트슐로모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거나, 아니면 우연히 그와 비슷한 성향을 갖게 되어 발현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프로이트도 슈니츨러의 작품을 읽고 깊이 공감하여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형제의 의를 갖자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나, 어쨌다나?
읽어 보시라. 다섯 작품 모두 주제는 섹스와 죽음이다. 하긴 세상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제일 궁금하고, 무엇보다 유혹적인 주제가 섹스와 죽음이기는 하다. 이 둘에 비하면 어느 주제가 있어서 발꿈치에나 따라 오겠느냐고. 게다가 일찌감치 섹스와 죽음에 관한 한 흥미롭게 천착한 슈니츨러이니 말이지.
다 재미있다. 그간 <엘제 양>과 <꿈의 노벨레>를 과하게 기대했는지는 모르기는 하다. 그래서 읽은 다음 팍, 느낀 건, 재미는 있으나 낡았다는 거. 당시에는 프로이트 박사가 의형제를 맺자고 할 정도로 (말이 그렇다는 거다, 설마 믿지는 않으실 테지?) 센세이셔널했겠지만, 그럴 수도 있었겠으나, 이야기를 억지로 끌고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진심인데, 나도 아쉬웠다.
독후감을 더 써서 괜히 고 슈니츨러(편히 쉬기를…)의 영혼에 불편을 안겨주지 말고 이쯤에서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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