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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계절 ㅣ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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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씨와 동갑인 82년생 페르난다 멜초르.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항구도시이지만 제일 위험한 곳으로도 꼽히는 베라크루스 시에서 출생해 베라크루스 대학을 졸업하고 저널리즘에 종사하면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한다. 현대 작가 답게 이이의 바이오그래피 같은 건 찾기가 쉽지 않다.
베라크루스 시는 2010년에 카테고리 3급의 허리케인에 의해 크게 외상을 입어 외신에도 소개가 된 적이 있었지만 제목의 “태풍”하고는 거리가 있다. 문학하는 사람한테 태풍이 반드시 기상 현상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베라크루스에 사는 사람들의 무차별적인 열정, 증오, 사랑, 폭력 같은 것을 통틀어 그냥 태풍이라고 못할 이유도 없는 것처럼. 작가 페르난다 멜초르는 자신의 고향인 베라크루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살인 사건, 마녀라고 불리던 여성이 살해당한 일에 집중하여 그것을 한 편의 장편소설로 엮었다. 게다가 베라크루스라고 하는 지역이 선주민, 아프리카 이주민, 스페인인들의 문화가 복합적으로 어지럽게 뒤섞인 곳이어서 ‘마녀’라고 하면 인중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고 적그리스도나 악마와 침상에 오르기를 즐기는 유럽형 마녀 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부두교 식으로 생 닭의 목을 쳐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고 운세를 점치는 마녀일 수도 있다.
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거론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이 2020년 맨부커-인터내셔널 상의 최종심까지 올라 장렬하게 미역국을 먹었으며, 작품 속에 폭력과 혐오, 노골적인 성애 묘사로 ‘빈곤 포르노’라는 지적까지 받았을 정도로 노골적인 장면이 많다는 거다. 정말 그렇다. 내가 읽기에도 좀 난처한 장면이 자주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빈곤 포르노 운운하는 건 좀 오버 아닌가 싶다. 반드시 있어야 할 장면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해당 씬에 전혀 불필요한 장치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씬이기에 그런지 궁금하시지? 알고 싶으면 읽어봐야 할 걸?
작품의 무대는 베라크루스 해안에서 멀지 않은 라 마토사 마을이다. 이곳에 무려 1백 헥타르, 즉 백만 제곱미터, 또는 30만2천5백 평의 경작지와 목초지를 가지고 있으나 나쁜 놈으로 악명을 떨치던 마놀로 콘데 씨가 살았는데 저 먼 몬티엘 소사에 본처와 이미 학업을 마친 장성한 두 아들을 거느렸으면서도 동부해안에서 홀로 거대 목장을 거느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외지에서 매춘부 한 명을 데려와 함께 살았다. 분명히 백인은 아니고 그러면 인디오나 아프리카 계이겠지만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이 여인은 생각지도 않게 들판과 언덕배기에서 자라는 온갖 약초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서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혼합, 가공해 동네의 가난한 이웃들을 치료해주고 간혹 주술 행위도 해주어, 자연스럽게 마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누엘 콘데가 죽었다. 사실은 급성 심근경색이었으나 동네 사람들은 마녀가 유적지의 풀에서 추출한 무색무취의 독으로 독살했다고 소문을 내고 스스로 그것을 믿었다. 장례식을 할 때 몬티엘 소사에서 내려온 두 아들이 장례의 선도 차량에 탑승했다가 묘지로 가는 길에 크게 교통사고를 만나 악마가 나타나 데려가는 바람에 이 믿음은 2 곱하기 2가 4인 것처럼 확실해졌고, 이후 마녀는 집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 않고 지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동네 여인들이 마녀의 집에 드나들며 사고뭉치 아들이 교도소에 들어갈 것인지, 임신한 딸이 언제 도망갈 것인지, 남편의 바람기가 잠잠해지기는 할 것인지를 물으려 오면서 먹을 것을 가져다주어 연명했다.
마녀는 콘데 씨와 살면서 당연히 소생 하나를 낳았다. 사람들이 “새끼 마녀”라고 부른 이 아이는 동네 여인들이 올 때마다 부엌의 식탁 아래에 숨어 마녀의 치마자락을 쥐고 있었으며 어릴 적부터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병약해 보였다. 아무도 아이의 이름을 몰랐으니 금요일마다 그 집에 가던 단골들도 어미 마녀가 새끼 마녀를 너, 이 멍청아, 너 이 망할 년아, 이 악마의 딸년아, 라고 부르는 것 말고 다른 호칭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말 다 한 거다. 이 호칭도 내가 그대로 옮겨 쓴 것이 아니라 독후감을 순화할 목적으로 자체 검열한 표현이니 알아서 상상하시라.
영생하면 사람이 아니니까 마녀도 죽었다. 1978년 멕시코만을 휩쓸었던 허리케인이 라 마토사 마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산사태가 일어나 유적지가 완전히 붕괴될 때 마녀 역시 이에 휩쓸려 짧고 드런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얼핏 생각하면 유적지 붕괴와 더불어 마녀의 집까지 파괴되었을 것 같은데, 집은 멀쩡한 걸 보니 그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밖에 나갔다가 휩쓸린 거 같다. 허리케인의 위력이 태평양의 태풍과 비교해 네 배 정도 더 크다고 하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틀림없었다. 검색해보니까 1978년에는 기록적인 허리케인이 발생하지 않은 해인데도 그랬다. 다 팔자지 뭐.
아무리 마녀라도 죽었으니까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몇 주 후, 큰 마녀가 죽고 이제 새끼 마녀가 정식 마녀로 등극해야 하는 순간이 왔고, 드디어 라 마토사를 품은 도시 비야 가르보사에 등장한 새끼 마녀는 검은 스타킹, 긴 소매 검정 블라우스, 검정 치마, 검은 색 하이힐, 검은 베일 차림이었다. 병색이 완연했던 새끼 마녀는 책 읽기가 가능했고,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했으며 커다란 발의 사나운 모습을 그렇게 감추면서 라 마토사의 유일한 마녀로 등극한다.
마녀가 죽으면 미신을 만든다. 여인네들이 자신의 기구한 운명, 육신의 고통과 불면증, 꿈에 나타난 죽은 식구나 친척, 산 사람들과 티격태격한 일, 아니면, 이게 대부분이지만 돈 문제나 남편과 도로변의 매춘부와의 관계 때문에 마녀 앞에서 눈물을 질질 짠 대가로 돈 몇 푼이나 먹을 거리 조금을 건넸을 뿐이면서도 악마와의 거래를 지속한 마녀가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2층에 막대한 돈과 보석 그리고 금이 쌓여 있을 거란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새로운 마녀는 게으르기가 한정이 없어서 이게 집구석인지 야채시장 장바닥인지 헛갈릴 정도에다가 밤이면 밤마다 반지하 식당에서 동네 젊은 건달, 날나리들이 모여 마리화나, 가벼운 마약을 겸한 노래잔치가 벌어지는 일종의 해방구로 기능하는 동시에 주로 공개 동성애 장소로도 알음알음 널리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마녀에 관해서는 여기까지 하자.
작품을 시작하는 광경을 소개한다.
5월 초, 다섯 명의 남자들이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새총을 단단히 쥔 채 농수로에 도착한다. 빨간 수영복을 입은 이가 이들의 우두머리였으며 나머지는 반바지 차림으로 그를 따랐다. 강에서 고른 돌멩이를 양동이에 한 가득 채운 이들은 언제든 온몸을 바칠 각오를 한 것처럼 잔뜩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이때 “등 뒤의 나무에 척후병처럼 숨어 있는 작은 새의 울음소리도, 갑자기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그이 얼굴 앞으로 공기를 가르며 휙 하고 날아가는 돌멩이 소리도, 하연 하늘에 콘도르들이 새까맣게 날아다니는 가운데 얼굴에 모래를 한 주먹 맞은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냄새, 그러니까 곧바로 뱃속으로 들어와서는 발걸음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구역질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후덥지근한 바람”을 참아가며 농수로를 따라 살금살금 가다가, 그들의 눈에 뜨인 것이 있었다. 갈대와 길에서 바람에 날려 온 비닐봉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죽은 이의 부패한 얼굴. 한 무더기 검은 뱀들 속에서 거무죽죽한 빛깔의 가면처럼 꿈틀거리는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어때? 살벌하지, 처음부터. 이미 새들의 공격으로 인해 눈알이 빠져버린 시신의 얼굴이 웃고 있었는데, 당연히 소설은 죽음 또는 살해의 전모를 밝히려 할 것이고 또 그렇다. 이런 작품을 소개하면서 등장인물을 많이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 마녀 이야기는 왜 했느냐고?
멕시코. <백년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 <썩은 잎>, <족장의 가을>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죽은 곳이다. 이 작품을 쓴 페르난다 멜초르도 마르케스 혹은 붐문학, 마술적 사실주의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 350 페이지에 모두 여덟 챕터로 되어 있으며, 각 챕터는 딱 하나의 문단이다. 즉 여덟 문단으로 쓴 장편소설. 얼핏 보면 읽기 지겨울 거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으니, 문장 읽는 맛이 대단하다. 당연히 마르케스처럼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만연체도 아니면서 저절로 라틴 아메리카 작품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재미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마녀를 소개했다고 “환상”이라는 측면으로 기대하면 오산이다. 작가는 실제로 있었던 마녀 살해 사건을 쓰기 위하여 사실에 개입할 수 있는 주관적 시각을 배제하려 노력한다. 이 작품을 어떻게 읽을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 마음이다. 처음에 말했듯 포르노 혹은 빈곤 포르노로 규정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고, 나처럼 문장을 읽는 맛과 작품의 독특한 구성을 즐기는 독자도 있다. 독자-작가의 합에 따라 호오가 극명하겠지만 분명한 건 호기심을 대단히 자극하는 작가이며 작품이란 거다. 당신과도 맞는 작품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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