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1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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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 아프리카의 내륙지방에 사는 소년 유수프 이야기. 이슬람도 에덴과 노아의 방주와 기타 기독교의 오랜 약속 또는 계약인, 구약과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소년 유수프. 이 꼬마의 이름을 기독교 식으로 쓰면 “요셉”이다. 나 이거 몰랐다. 알았다면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꽤 고민하다가 읽더라도 아주 나중에 읽지 않았을까 싶다. 요셉과 관련해서는 토마스 만이 쓴 걸작 한 편으로도 내게는 너무 충분했으니까.

  앗! 이거 괜히 말했다. 소년 유수프가 소년 요셉하고 같은 이름이라면, 벌써 눈치 채실 분은 앞으로 벌어질 유수프의 팔자 사나운 앞날을 다 그릴 수 있을 듯하니. 요셉은 야곱이 낳은 많고 많은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 아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엄마 닮아 잘 생긴데다가 야곱이 그렇게 아끼던 둘째 아내 라헬이 직접 낳은 아이라서 남들 눈에도 유별나게 총애하는지라 형제들의 시기를 많이 받았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형들 나이가 많아지고 야곱이 늙어가니까 열 명의 형들이 야곱을 마른 우물에 내던져 버린다. 지나가던 상인이 야곱을 구해 그를 데리고 애굽으로 가 큰 관리에게 노예로 팔아버렸지만, 잘 생긴 외모가 어디 가? 관리의 아내가 그만 요셉에게 반해 유혹하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허위로 요셉을 고발하여 유치장으로 보내버린다. 여기까지만 알면 된다. 우리의 주인공 유수프가 족장의 아들 요셉만큼 성령 가득한 이스라엘 소년도 아니고 게다가 아마 케냐 몸바사에서 내륙으로 쑥 들어간 곳에 사는 가난한 여관집 흑인 소년에 불과하니 요셉만큼 휘황찬란한 기록은 남기지 못한다.


  그럼 유수프의 아버지는 여구부? 야곱은 아내를 얻기 위해 무려 14년 동안 외삼촌이자 장인이 될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반면, 유수프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아버지는 유서 깊은 아랍계 킬와 가문의 아가씨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반도주해 버렸다. 아버지는 이 집안을 위해 토기 물단지를 탁송해주는 대리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위가 되는 건 언감생심이었으니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려면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이후 인도인 소유의 상아 창고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다가 일을 똑소리 나게 잘 해서 사환으로, 임시직 상인으로 승진 비슷하게 했으며 이동안 두 아들을 낳아, 향수병에 시달리는 아내를 위해 두 손자를 앞세우고 8년 만에 칼와로 갔다가 처자식을 빼앗기고 홀로 도망쳐 나왔던 적이 있다. 물론 천사하고 씨름을 하다 엉치뼈를 부러뜨리지도 않았다.

  유수프의 친엄마는 타이타 오지의 시골 산지 부족의 딸이지만 아버지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면 지참금으로 콩 두 자루와 염소 다섯 마리만 주면 그냥 등 떠밀어 시집보내는 지역이라고 했다. 유수프의 아버지는 그동안 여러 사업을 하다가 거참 이상도 하지, 하는 일마다 어떻게 그렇게 말짱 다 말아먹는지. 나중에 머리를 굴려보면 바닷가에서 크게 장사를 하는 아지즈 아저씨의 대리점 비슷하게 상품을 보관도 하고 빚도 얻어서 사업도 했지만 그리 성공을 보지는 못했다.  이 가족이 사는 곳이 소도시 ‘카와’라는 곳인데, 독일인들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내륙의 고지대로 가는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전진기지로 사용하면서 신흥도시로 부상한 곳이다. 그러나 정작 철도가 놓이자 이제 카와는 목재와 물을 얻기 위한 중간계류지에 불과하여 이동인구가 없어지는 바람에 도시 전체가 지옥으로 바뀌어 버렸다.

  유수프의 아버지가 한 사업은 호텔업. 말이 좋아 호텔이지 이층 객실에 침대 네 개를 놓고, 아래층에선 밥을 파는 식당을 운영할 뿐이었다. 당연히 이 호텔이라는 곳도 카와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지옥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상인 아지즈 아저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원래 산골 카와에 아지즈 아저씨가 뜨면 종종북, 탐부리, 뿔피리, 시와 같은 지역 전통악기를 두드리고 크게 부는 악대를 선두로 이어서 경비원과 짐꾼들이 줄을 잇고 제일 나중에야 아지즈 아저씨와 저승사자같이 생긴 음냐파라(경비대장) 모하메드 압달라가 도착했다. 아지즈 아저씨가 올 때마다 아버지와의 일을 끝내고 유수프의 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슬쩍 유수프에게 10안나짜리 동전을 쥐어 주었다. 그런데 이 날은 아지즈 아저씨 혼자 와서 점심을 먹었다. 없는 살림에 엄마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 음식을 했는지 읽으면서도 군침을 꿀떡 삼켰으니, 닭고기와 저민 양고기로 만든 두 종류의 카레, 건포도와 아몬드가 점점이 박히고 버터를 발라 반짝이는 최고의 페샤와르 쌀밥, 천으로 덮인 바구니에 가득 담긴 향긋하고 불룩한 번, 만다지와 마함리, 코코넛 소스로 버무린 시금치, 물콩 한 접시, 잔불에 구운 말린 생선. 아쉽다, 쐬주 한 병이 빠졌다.

  식사가 끝나고 아지즈 아저씨는 위층 객실에 올라가고, 아버지는 방에서 시에스타를 즐긴 후에, 아빠가 먼저 깼다. 그리고는 하나밖에 안 남은 아들 유수프를 불러 놓고 하는 말이, 이제 너도 열두 살이니 제법 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렸다. 그리하여 넓은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는 것이 당연, 오늘 당장 아지즈 아저씨와 함께 가서 세상 사는 법과 장사하는 법을 배워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기를 게을리하지 말지어다. 그리고 무려 기차를 타고, 해변, 바닷가까지 가는 일정이라는 데도 유수프는 이상하게 즐겁거나 기쁘지가 않았다. 엄마가 벌써 작은 보따리를 준비했으니 속에는 반바지 두 벌, 지난 이드 축제 때 사서 아직 새것인 칸주(무릎까지 내려오는 무슬림 옷), 셔츠 하나, 쿠란 한 권, 그리고 어머니가 쥐어 준 낡은 묵주. 이게 다다. 그리하여 유수프는 아지즈 아저씨와 함께 기차를 타고 (뭄바사로 여겨지는) 해변가 도시에 도착했다. 어머니의 묵주는 기차간에 떨어뜨려 영영 잃어버리고. 상단에 팔린 요셉이 생각난다고? 뭐, 나도 그랬다.


  아지즈 아저씨는 이제 주인님이라는 뜻의 “사이드”라고 불렸다. 유수프는 아저씨가 입에 붙어 도저히 사이드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소년이 일해야 하는 상점의 열일곱 정도 먹은 청년 점원 칼릴에게 구박도 받았다. 칼릴은 이복 여동생과 함께 이 집에 들어와 상점과 아지즈 아저씨 부재 시의 장부 관리까지 다 도맡아 하는 일꾼이었다. 칼릴은 잘 생긴 유수프를 동생이라 칭하며 여러가지로 그를 돌보게 된다. 딱 하나 아쉬운 건 워낙 말이 많은 수다꾼이라는 점. 칼릴은 냉정하게 현실을 읽어준다. “유수프, 네가 여기 있는 것은 네 아버지가 사이드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야. 네 아버지는 형편없는 사업가가 틀림없어.” 칼릴의 아버지도 사업을 하다 사이드 아지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죽어버렸다. 그래서 칼릴과 여동생을 (법적으로 노예제도가 없어졌으니) 담보로 데려와 일을 시키고 있었으며, 여동생은 후에 아지즈의 두번째 아내가 된다.

  아지즈는 그냥 평범한 똘똘한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못생겼지만 엄청나게 부자인 과부가 수많은 청혼자를 물리치고 아지즈에게 결혼하자고 중매를 넣었다. 과부는 못생긴 것도 모자라 미치기까지 했다는 풍문이 돌았다. 인간의 손에 다친 상처가 아니라 뭔가 나쁜 영이 손을 댄 것이라 과부는 아지즈와 결혼한 후에도 사람들 눈으로부터 숨어서 지냈으며, 아지즈는 단박에 큰 부자가 되어 큰 상단을 꾸려 내륙으로 카라반을 시작했다. 원래 과부는 상선을 거느리고 무역을 하던 집이었지만 아지즈는 바다 대신 시야를 내륙으로 돌린 것인데, 이게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직접 읽어보셔도 모른다.

  우리의 유수프는 해가 갈수록 점점 빼어난 미남으로 다시 태어난다. 설마 야곱의 아들 요셉만 하겠는가만 하여간 근동의 최고 미남으로 꼽아도 군소리가 없을 정도였으며, 실제로 나이 든 처녀 한 명이 노골적으로 남편을 삼겠다고 껄떡대기 시작했다. 이럴 즈음 유수프는 마님의 예전 노예 출신 정원사 음지 함다니가 가꾼 정원에 흠뻑 빠져 살았고, 벽 뒤에서 유수프를 본 마님은 다 큰 청년이 자신의 정원을 들락거린다며 불평을 했으며, 아지즈 아저씨는 다음 해 상단이 출발할 때 유수프를 데려 가, 산악지대에서 자신의 대리점과 창고를 하고 있는, 아이고 이름도 길다, 알함둘릴라히 라빌 알라민의 집에 유수프만 달랑 남긴 채 카라반을 계속한다. 유수프는 졸지에 사로잡힌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후 유수프는 더 멋있는 청년으로 자라 다시 해변가 저택의 상점으로 돌아오고, 이번엔 진짜 상단을 따라 험하고 고단한 카라반에 동행하며, 금단의 정원에서 정원사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세상의 모든 불행은 가장 행복할 때 들이닥치는 법이라서, 천상의 낙원처럼 보이는 금단의 정원, 이곳이 낙원이 아닌 이유는, 차마 말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직접 확인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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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12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저도 읽어서 아는 내용인데(성경 포함)^^
폴스타프님 글은 너무 재미있네요~

Falstaff 2024-02-12 08:5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애초에 재미있게 읽어주시려 각오하고 읽어주시니 그렇지 별 거 있겠습니까. 그저 고마울 따름입지요. ^^

moonnight 2024-02-12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흥미진진한데 끊어버리시네요ㅠㅠ직접 확인해야겠습니다^^; Falstaff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4-02-12 11:18   좋아요 2 | URL
이 책 재미있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단발머리 2024-02-12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끝내시면 어떡합니까, Falstaff님!!
˝애굽으로 가 큰 관리에게 노예로 팔아버렸지만, 잘 생긴 외모가 어디 가?˝ 에서 빵 터졌습니다. 저도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 중에서 요셉을 참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요셉이 잘생겨서가...... 아니라 똑똑해서입니다, 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나 잘생겼는지 궁금해하며 조심스레 차은우 떠올려봅니다.
저도 읽어보려고요. 차은우 떠올리며 읽는 유수프 이야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2-12 16:26   좋아요 1 | URL
ㅋㅋㅋ 실존은 의식보다 강합니다! 차은우가 누구여? 마누라한테 물어봤다가 오지게 얻어 터지고, 그래 내가 뭐랬어, 책 좀 그만 파고 테레비 좀 보라 그랬지, 검색해보니까 예쁘장하게 생겼네요. ㅋㅋㅋㅋ
꿈 해몽한 것도 쓰려다가 아무래도 길어질까 싶어 관뒀습지요, 유수프 역시 그만큼 똑똑하지는 않고요. 그만큼이라니, 발꿈치에도 미치지 못하니까요.
재미있습니다. 즐기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