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블루스 창비시선 149
신현림 지음 / 창비 / 199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신현림의 시는 SNS 여기저기서 볼 기회가 많아 시집을 읽은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이런 시인이 꽤 있다. 소설은 이런 경우 없는데 시는 짧아서 그런지 검색만 하면 시 전편을 통째로 읽을 수 있다. 물론 SNS에 아무 생각없이 시 전문을 올리는 일은 매우 조심할 일이다. 시인들이 마음이 좋아서 그렇지 분명히 그이들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나도 통째로 올리는 편으로 그럴 때마다 한 구석에선 찜찜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나마 시인이 사용한 띄어쓰기, 구두점과 기호, 철자법, 단어 같은 것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기려고 애쓰는 편이다. 근데, 신현림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동안 건성으로 노작勞作을 읽었는지 여태 남자인 줄 알았지 뭐야.

  이 시집의 표지 하단을 보면 “창비”가 아니라 “창작과비평사”에서 1996년에 초판을 찍은 책이다. 그러면 시는 1994년에 나온 시인의 첫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이후인 1994~96년까지 쓴 시 위주로 실었을 것이다. 간혹 하여간 마음에 차지 않아 첫 시집에 싣지 않은 습작시대와 데뷔시대의 작품도 몇 편은 있었을 것이다. 아니겠지만 예를 들어 이런 시.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빈민가 담벼락 같은 가슴을 뚫고 겨울이 온다

  슬픔은 미친 종처럼 울고 슬픔은 끝없이 날으는 연

  저 환장한 연을 잡았으면

  내가 너 대신 아팠으면 너를 안고 날으는 갈매기였으면

  아우야, 추운 너를 안고 어머니가 금강산을 날으셨구나

  애인아, 그리운 너를 안고 나는 바닷속을 달렸더구나


  마음으로라도 날고 뛰지 않으면 살 수 없던 날들

  열린 차창처럼 비명을 지르고 싶던 날들

  불탄 아현동 사람들이 무덤으로 던져진 어제

  저녁이 오기도 전에 식탁의 빵들은 부패했다

  장송곡보다 무거운 원피스를 입고 너는 꿈 속 강변을 헤매고

  버림받은 자들이 부르는 유행가가 싸락눈으로 날린다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다

  우리는 토실토실한 쓰레기나 불리며 살고

  작별의 꽃을 던지며 사나니

  술잔은 자꾸 죽음을 향해 기울어지더라


  기나긴 밤마다

  아무 위로 없이 남겨진 나의 너여

  더이상 탄식의 나팔을 불지 마라

  현세가 지옥인 때는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무자비한 세상, 지옥의 슬픔을 월경하기 위하여   (전문)



  이 시를 이 시집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창비시선’ 149번의 첫번째 시로는 어울린다. 근데 내가 읽었던 포스트 모더니스트 신현림하고는 시풍이 좀 다르다. 이 시는 1994년 겨울에 있었던 아현동 가스 폭발 사건 다음 날 쓴 거 같다. 워낙 큰 폭발이었고, 내가 살던 지방도시에서도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에 LPG 가스 저장소 폭발 사건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첫 연에 난데없이 어머니가 금강산으로 “날으셨구나” 해서 잠시 헷갈렸다. 시인의 어머니가 평안북도 분이라 금강산이 툭, 튀어나왔나 싶었다. 난데없기는 난데없다. 그래 처음엔 통일을 염원하는 시인가보다, 생각하기도 했다. 시가 어렵지 않다. 그래도 시인한테 하나만 묻고 싶다. 마지막 행에 “지옥의 슬픔을 월경하기 위하여”에서 “월경”을 한자어로 쓰면 月經인가, 越境인가? 月經이라면 지옥의 슬픔을 탄생시키지 않기 위하여, 슬픔을 몸 밖으로 쏟아내기 위하여, 라는 뜻일 터이고, 越境이라면 지옥의 슬픔의 경계를 넘어가기 위하여,라는 뜻일 터이기 때문이다. 좋다. 내가 시인이면 이렇게 답하겠다. 독자가 알아서 생각하라고. 그렇지? 어떤 의미가 됐든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거 같긴 하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니까. 나는 경계를 넘는다는 越境에 한 표, 만원 건다.


  참혹한 시들이 많다. 물론 이 시집을 냈을 때 신현림은 겨우 35세. 그러나 본인은 세상을 다 살아서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을 때. 그리하여 고통스럽고, 그의 말대로 실제로 눈물도 많았고, 정처 없고, 고독하고, 사랑으로 갈증하고, 심지어 신경정신과 신세도 지고 그랬던 모양이다. 이후 세월은 능률능률 흘러서 어느덧 27년이 흘러 시인은 62세가 됐다. 자기가 젊은 시절에 쓴 시를 읽는 나이든 시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 시를 읽어보자.



  비 오는 밤



  나는 구정물이오


  발버둥칠 수도 없이 도무지

  알 수도 없이 뒤퉁대며 어른이 되었소

  밤마다 비 오는 방에선

  책과 이불과 외투가 흐느끼오

  모든 흐느낌은 욕된 기억의 하혈을 하고

  조금씩 미치게 숨막히게 하오


  사랑의 벽은 일렁이오 벽 속에 하얀 여인들이

  유령처럼 뜨거운 춤을 추고 뜨거운 병을 흘리오

  나약한 에고이스트의 병

  정서불안 욕구불만인 자의 습관된 병

  신경쇠약 강박편집 허기 우울


  온갖 정신병증후군은 비 오는 방에서 출산되오

  조심하오 이 방면에 나는 전과자 통달한 전문가

  당신도 중독되기 전에 깨어 있으오 여우 있으오

  고통의 정열로 사막을 밀쳐내는 태양숲과

  푸른 말을 찾으오 어쨌든,   (전문)



  시인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청춘시절을 보냈을까? <나의 이십대>에서 말하기를, “나는 의지박약증 환자였고 지지리도 못난 울보였다 / 나와 식구들은 야당정치가 아버지 운명의 새끼줄에 끌려 다닌 / 궤짝 안의 고달픈 사과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청춘시절을 고백한다.

  만 19세였던 1980년 재수. 삼수, 사수. 그동안 아버지는 국회의원 낙선하고 신현림은 인터넷 책방 “응24”의 작가정보에 의하면 모 미대 디자인과에서 수학하고, 4수만에(3수 이후엔 퉁 쳐서 그냥 ‘장수’라고 하는데) 아주대 국문과에 입학한다. 그동안 나름대로 고독하고, 힘들고, 미칠 것 같은 청춘의 병을 앓았겠지. 그래서 입학하자마자 시작해 4년 동안 신경정신과 신세도 지면서 천주교에 귀의하기도 했겠지. 훗날 국회의원을 한 번 하고 마는 아버지는 양 김씨가 주동이 되지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결국 노태우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민추협 활동을 했고(누군지는 안 알려줌), 연애도 두 번 하고, 시대가 원하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딸이 모두 거리에 나가 이한열 죽음에 항의도 한다. 이후 늦깎이지만 대학 졸업하고, 아버지 역시 1988년에 13대 국회의원에 당선을 했다. 시인이 만 29세면 몇 년이야? 1990년. 드디어 『현대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해에 대전 엑스포 홍보부에 입사도 한다. 오 시인이여, 고소하지 마시라, 혹시 국회의원 아버지 빽으로 들어간 거 아냐? 그땐 그게 흠도 아니었다. 물론 아니겠지. 믿으면서 살자. 그리고 만 30세, 드디어 독립을 하는데, 어머니가 주신 천만원을 들고 나간 거다(좋았겠다. 부럽다, 씨). 다시 말하거니와, 시인이 겪은 고통과 고독과 사랑의 아픔과 문학적 어려움과 가족과 사람사이의 갈등은 충분히 존중하건만, 시인과 같은 시대를 산 사람 가운데 그리 유별난 건 아니……지 않나? 이미 활자로 찍힌 것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신현림의 시집을 처음 읽으며 위안이 되는 것은, 이이가 시집을 마무리하면서 따듯한 위안이 되는 전망을 갖는 시를 마련했다는 거였다.



  따뜻한 다리를 꿈꾸며



  꽃상여 같은 가슴 뒤흔들고

  오래 함께 있어야 할 사람들이 사라진다

  언제 무엇이 산산조각난 시계가 될지 모른다

  겨울나무만큼 여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가 기울 때처럼

  발 아래 땅이 허물어지는 기분을 어찌 견뎌야 할지

  삐걱거리는 다리마다 문마다

  저승으로부터 울려오는 오열이 흐른다

  죽음보다 뼈아픈 슬픔을 이기려는 울음소리가


  창밖 강물이 깃발처럼 굽이친다

  사라진 자들이

  희망의 호롱불을 켜라 한다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듯

  삶을 이어주고 만나게 하는

  부드러운 다리를 만들라 한다

  따스해서 끊어지지 않는 다리

  헤어져도 헤어지지 않는 다리를


  뭐든 다시 시작돼야 한다   (전문)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algial 2023-12-25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랬던 사람인데,
아주 희한하게 바뀌었습니다.
절대 사서 보시지 마시고, 혹 서점이나 도서관에 있거든
21년에 나온 <울컥, 대한민국>을 훑어 보십시오. 태극기 부대가 되어 있습니다. 뭐 지구는 돌고 사람은 더 확확 변하니까 많이 아쉽지도 않습니다.

Falstaff 2023-12-25 08:51   좋아요 1 | URL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야당 출신 국회의원이라고 유독 강조했으나 이 시집이 나오기 전에 5공 이후 가장 수구정당이었던 자유민주연합, 김종필의 수하로 들어갑니다. 심지어 5공 핵심이었던 김복동도 뜻을 같이했던 정당입니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이이 가족들 역시 입으로만 진보였던 것이지요.
아예 아빠, 집구석 이야기를 하덜 말든지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dalgial 2023-12-25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아 그랬었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12-25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사는 집 딸래미가 내적 고뇌는 빼애액!!! 하게 되는 개인사 ㅋㅋ그래서 제가 왠만하면 작가 연보는 안 봐요..그래도 시는 몰라도 소설은 좀 읽어보면 어떻게 자랐나 대충 견적 잡힘 ㅋㅋㅋ

Falstaff 2023-12-25 20:06   좋아요 1 | URL
아오, 저도 나이 서른에 엄마가 천만원 줘서 독립했다는 거 읽고 괜히 심술이 빡!
ㅋㅋㅋㅋ 아직도 이런 얘기 들으면 심통난다는 말입지요. ㅋㅋㅋㅋ 저도 인간 되려면 멀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stella.K 2023-12-26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비슷한 이름의 남성 시인이 있었는 말입죠. 그래서 참 헷갈리게 생겼네 했습니다. 팔님도 그분하고 헷갈리는 거 아니셨나요? 아주 오래 전 모처에서 그분 특강을 들었는데 자그만한 분이 강의는 잘한다 싶은데 전 그때나 이때나 시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니...
이 양반 시집 보낼 돈 받아서 독립하겠다는거 아니없나요? 지금은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운데 30년 전만해도ᆢ

Falstaff 2023-12-26 18:21   좋아요 1 | URL
앗, 신경림 선생이요? 아이고, 그 양반은 제가 존경하는 경지까지 오른 분이고, 으, 그런데 정말 그분 때문에 남자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네요.
국회의원 따님 시집 보낼 자금이 아무리 1991년이라도 천만 원 밖에 안 된다고요? 한 다섯 배 더 쓰세요. 가능하면 열 배도 좋고요. ㅎㅎㅎㅎ

stella.K 2023-12-26 19:5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그런가요? 30년전 천만원이면
혼자 살 집 전세거리쯤은 되는 줄 알고 있는데...ㅋㅋㅋ

맞아요. 신경림. 전 꼭 헷갈리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