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 어른거리는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2
다와다 요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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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다와다 요코. 이이의 삼부작 가운데 <지구에 아로새겨진>에 이은 두 번째 작품. 일본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다 마친 후 독일 유학 후 정착, 이국의 말과 모국어 두 개의 언어로 창작생활을 하는 극히 일부의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니 당연히 문자와 언어에 관하여 대단한 숙고를 할 수밖에 없을 터. 전작 <지구에 아로새겨진>에서 모어(母語: 일본어)를 잃어버린 주인공 Hiruko는 덴마크 오텐세에서 살며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는 일종의 공용어 '판스카'를 개발해 사용하면서, 모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찾기 위하여 독일의 트리어로 향하고 다시 프랑스 남부 아를까지 내려간다. 드디어 만난 같은 모어를 가진 사람 Susanoo(우리말로 '수사노오' 비슷하게 읽자),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청년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Susanoo는 언어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여 Hiruko와 친구들은 Susanoo가 아니라 Hiruko를 위해 그의 실어증 치료를 목적으로 코펜하겐의 대형병원의 실어증 전문의 베르마 박사에게 보낸다. 여기서 2부는 시작한다.

  <지구에 아로새겨진>에서 주인공 Hiruko는 일본 창세신화의 여신과 남신, 이자나미와 이자나기가 낳은 맏딸로, 날 때부터 신체 허약하여 부모에게 조금도 귀여움을 받지 못해 추방당해버린 히루코(蛭子: 거머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래도 창세신의 맏이라 그런지 작품의 2부 <별에 어른거리는>을 시작하자마자 충실한 친구들이 주위에 모이는 바, 코펜하겐에 사는 언어학 전공 대학원생 크누트, (이하는 독일 트리어 거주자) 유학중인 인도인이자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성 전환을 결심하고 은근히 크누트를 연모하는 눈치인 아카슈, 그린란드 출신 에스키모로 덴마크 유학중에 어학연수가 끝나자마자 여행을 떠나 트리어에서 자리를 잡고 일본인 행세를 하며 스시 요리사를 하던 나누크, 마르크스 박물관 학예사이며 나누크를 사랑하는 노라, 이렇게 네 명의 친구가 Hiroko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 위해 조건 없이 Susanoo를 돕기로 했고, 즉 치료행위를 Susanoo가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크누트가 대학원에서 같은 강의를 한 번 들었을 뿐인 성질 더러운 베르마 박사에게 보낸 것도 모자라, 함께 지낸 시간이 그토록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Susanoo하고도 애틋한 우정이 솟구쳤는지 독일 남서쪽, 거의 프랑스 국경에 붙어 있는 트리어에서 모두, 그러니까 아카슈, 나누크, 노라가 멀고 먼 길을 히치하이크를 하거나 바이크의 뒷자리에 타고 가서 페리로 갈아타는 우여곡절을 거쳐 코펜하겐 병원에 집합시켰다.


  전작을 읽으면서 내가 끙끙거리다가 좋다, 수용하자, 했던 것이 이제는 지도에서 지워졌을 지도 모르는 열도, 즉 일본이 수면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는 가정은 뭐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몇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젊은 모습을 지니고 있는 Susanoo였다. 공상 소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기 때문에.

  <별에 어른거리는>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각 섹션마다 한 명의 화자를 등장시켜 그의 서술로 진행하는데 처음 발언을 하는 화자는 Susanoo가 치료를 받을 병원의 식당에서 설거지 전담 직원 '문문'이다. 문문은 정확하게는 나오지 않지만 일종의 자폐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비슷한 증상이 있는 아가씨 비타와 함께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숙소에서 지낸다. 그래서 문문은 보통사람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닦을 접시를 보면서도 접시를 '납작해진 인간의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문문이 하루는 접시를 닦고 있는데 접시 하나에 쓰여 있는 글자를 보고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손에서 놓쳐 깨뜨리고 만다. 접시에 형이 아를에서 오늘 온다고 쓰여 있어서. 나한테 형이 있었나? 당연히 형은 아를에서 도착한 Susanoo다. 문문은 Susanoo를 실어증 전문 의사인 베르마 박사 실험실에서 만나는데, 박사가 Susanoo와 의사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인 프랑스어를 Susanoo가 문문에게(문문한테만) 말하자 전혀 모르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듣겠는 거다. 그러더니 Susanoo가 문문더러 츠쿠요미, 달의 신이라고 불렀다. 달의 신? 그러면 문문의 형이라고 일컫는 Susanoo는 정체가 도대체 뭐야? 달의 신의 형이면 하여튼 달보다 조금은 더 높은 직위에 있는 다른 신일 터. 혹시 태양의 신? 그건 모르겠다. 하기는 뭐, 그 정도 되어야 수 십 년이 흘렀음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고 젊음을 지니고 있을 수 있겠지. 좋다. 이걸로 의혹은 해소됐다고 치자.

  다음 문제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논의 역시 언어와 민족, 사라진 나라의 언어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고 필요한 일인가, 같은 것이지만 차례로 문문, 베르마, 나누크, 노라, 아카슈, 닐센 부인(크누트의 엄마, 나누크의 후원자, 베르마의 애인), 크누트, Hiruko, Susanoo, 문문, 이렇게 아홉 명의 열 번에 걸친 이야기들이 재미는 있지만 산만하다. 와다다다닥 읽어 나가는 데는 전혀 어색하거나 애매모호하거나 이해불가인 것은 하나도 없이 남의 사생활을 엿볼 때 노상 그렇듯이 그저 재미있고, 흥미롭고, 조금은 자극적이고 심지어 감칠맛도 나지만, 작가가 지금 이 자리에 왜 이런 장면을 삽입했을까, 이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3장 "나누크는 말한다"의 경우엔 히치하이크로 덴마크까지 가는 도중의 이해하기 힘든 여로가 나중에 어처구니없는 또는 경끼할 만큼 서프라이즈를 쏟아 부을 때는 허탈하기까지 했다. 전편에서는 작가가 Hiruko로 체화하여 이국의 땅에서 자기 말을 잃어버린 이방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아쉽게 2부에 와서, 물론 아마추어 독자의 일천한 감상이란 전제에서, 동력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2부에 이어 대미를 장식할 3부 <태양제도太陽諸島>가 이미 출간되었다고 한다. 2부는 Susanoo가 치료를 받고 있는 실험실에 닐센 부인을 제외한 출연진 전부 등장하여 이들 가운데 Susanoo와 Hiruko의 친구들이 이미 침몰해 없어졌을지도 모르고 지도상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Hiruko의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원을 받아 케이프타운에서 배를 내려 간디 해운의 도움으로 배를 갈아타고 인도까지 가서 다시 한 번 배를 옮겨 타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기로 하는 것으로 2부를 마감하여, 여전히 Hiruko와 이젠 Susanoo까지 보태 이들의 오딧세이아는 계속된다. 그런데, 3부까지 다 읽기엔 2부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끝까지 다 읽어야 할지, 그만 두어도 좋을지 이게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말씀. 돈 주고 살 거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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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02 0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리 읽다 보니……. 보관함에서도 살며시 삭제.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11-02 07:16   좋아요 2 | URL
좋은 선택하신 겁니다.

yamoo 2023-11-0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으면서 드럽게 재미없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ㅎㅎ 이런 책을 완독하고 리뷰를 쓰신 뽈님! 대단하십니다요~~~ㅎㅎ

Falstaff 2023-11-02 16:52   좋아요 0 | URL
아구, 취한다. ㅋㅋㅋ 은퇴하니까 이거 하나 좋아요. 하루 스물네 시간이 다 내 맘대로인 거. ㅋㅋㅋㅋㅋ 대단하긴요 뭐.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 그러는 것이지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3-11-02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 ^^ 넘 옛날스타일 ㅎㅎ

Falstaff 2023-11-02 16:53   좋아요 1 | URL
아이 그럼요. 억지로 쿨한 척, 아닌 척하는 게 쉽지 않아서 그냥 생긴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천생 꼰대입지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