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거운 육아 일기 위픽
오한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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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우리 문학계의 문제아들의 모임 “후장사실주의”의 일원인 오한기의 단편소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오한기에게 청탁을 해서 단편소설 한 편을 받아, 단편 딱 하나로 책을 엮어, 그러니까 본문 페이지는 68 쪽이나 되긴 하지만 손바닥 만한 페이지에 편집이 가능한 한 최소의 글자 수로 채워 한 권의 책을 만들었으니 세상의 나무들에 대하여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불손한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 정가 1만3천 원을 때려버렸다. 내가 정말, 정말로 심심하면 글자 수가 몇 개나 되며, 그래서 한 글자 당 얼마의 정가를 매겼는지 세 보고 싶지만 내일이 한가위인데 그런 짓을 하느니 곧 들이닥칠 아이들, 며느리, 손주들 보기 창피하지 않게 청소기나 돌리는 편이 좋겠다. 근데 걔들은 올 필요 없다니까 왜 자꾸 오겠다고 그려? 여행이나 가지.


  오한기가 1985년생이다. 서른여덟 살. <나의 즐거운 육아 일기>에 나오는 ‘나’의 가족 이야기 가운데 비교적 믿을 만한 서술을 근거로 말하자면, ‘나’는 비트코인에 투자해 평생 먹고 살 정도의 재산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가 FTX가 파산하는 바람에 쪽박을 찼고, 가명이겠지만 아내 진진은 남편의 코인만 믿고 다니던 직장에서 팀장한테 “짜식아, 그만 두면 될 거 아냐!” 호기롭게 사표를 던졌으나 결혼을 잘못했다는 거의 분명한 사실을 깨달아 경주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에 경력직 사원으로 입사해 졸지에 주말부부가 되어 버렸다. 부부 사이에 유치원 다니는, 물론 가명일 것이 분명한 아이 주동主動이가 있었으니 ‘나’의 하루 일과는 주동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시작하며, 일주일의 마지막 일정은 이사온지 얼마 안 되는 고덕동에서 KTX 종착역인 서울역까지 주동이를 태우고 가서 진진을 싣고 오는 도중에 괜찮은 식당에 들러 저녁 한 끼를 먹는 것으로 끝난다. 물론 주말부부가 주말 밤에 정기적으로 뭘 하는 지는 어차피 다 아는 처지에 그냥 생략하기로 하자.

  근데 오한기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이름을 왜 하필이면 주동이라고 했을까? 아버지인 ‘나’처럼 빌빌대지 말고 세상을 주동적으로 살아보라고 그랬다고 책에 쓰여 있다. 나같으면 죽어도 아이에게 “주동”이란 발음을 아무리 가명이라도 주지 않을 거 같다. <수호지>의 양산박 호걸 가운데 ‘주동’이란 멋진 수염을 지닌 영웅이 있다. 이이가 정의의 사자라, 절친 뇌행이 죄를 지어 유배를 가는데 호송하는 일을 맡았다. 뇌행이 가난한 노모를 모신 터라 친구를 도망하게 하고 자신이 그 죄를 받아 창주라는 곳으로 귀양을 갔다. 창주 시장이 주동의 됨됨이와 인품을 흠모해 아들의 교육을 맡겨 주동과 아이가 매우, 아주아주 사이가 좋아 보기에 마땅했다. 이때 양산박의 도적떼들이 주동을 영입하고자 해서 도적떼의 책사 오용선생이 꾀를 내어 쌍도끼 이규를 보내 설득을 하였으나 관신關神 비슷한 주동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오용 선생은 미리 이럴 것임을 알고 이규에게 비밀리에 지시를 했던 바, 이규는 창주 시장의 아들을 유괴하여 배를 가르고 간을 꺼내 참기름 소금을 찍어 먹는다. 시신은 빨래줄에 널어 놓고. 아이를 잃어버려 창망 간에 아이를 찾는 주동이 이 장면을 보고 이규를 죽이려 했으나, 때마침 등장한 친구 뇌행이 주동을 설득해 함께 양산박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어찌 ‘주동’을 가명일지언정 아이의 이름으로 쓸 수 있겠는가. 중국의 식인 풍습은, 일반 서민이 사람 고기를 먹을 경우엔 고기를 다져 만두소 같은 것으로 만들어 익혀 먹고, 상류층은 고기는 쳐다보지도 않고 주로 간이나 심장을 날 것으로 소금 찍어 먹었다. (‘주동’과 식인 일화는 이문열 역 <수호지> 내용을 기억해서 썼음. 조금 착오가 있을 수도 있음)


  잡기가 길어진 건, 이 책이 말이 좋아 한 권이지 단편 한 편에 대한 독후감이라 쓸 게 별로 없기도 해서인데, 본론을 이어가자면, 서른다섯 살의 팔팔한 청춘, 아니다, 청춘 까지는 아니고 젊은 작가가 어째 쓰는 방식이 환갑은 지난 것 같다. 독자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자신, 어차피 1인칭 화자 ‘나’를 채용하였으니 ‘자신’이라고 여겨도 그리 어색하지 않긴 하지만, 하여튼 자신을 둘러싼 일상과 소설 쓰기를 시니컬하고 이제 거의 다 산 것처럼 적고 있다. 마치 농담을 하는 것처럼.

  아내 진진은 신라의 고도 경주까지 내려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 반면에 ‘나’는 꼴에 전업작가라고 집에서 빌빌거리는 처지라 아르바이트를 하나 얻어 “괴담창작”을 하는 기상천외한 일을 시작하게 된 터에, 곧 출간되어 나올 단행본 <산책하기 좋은 날> 속지에 작가의 친필 서명을 첨부할 것이라고, 출판사로부터 속지 5백장이 도착한다. ‘나’는 공사다망해서 도무지 5백장에다 서명을 할 시간이 없어서 시급 1만2천원을 주고 사인 알바를 급하게 구하게 된다(이 책 <나의 즐거운 육아일기>의 속지에 작가 서명이 들어 있다). 그래서 나타난 인간이 sb.

  sb. 작가가 누군가? 오한기다. 오한기는 sb를 service boy라고 주장하지만 설마, 후장사실주의를 주창하는 문단의 문제아가 sb를 service boy라고 주장하는 것이 말이 돼? 나는 욕설 ‘씨b’ 아니겠느냐,에 한 표. 이 sb가 비록 시간제 알바지만 명문대 졸업에 삼성전자를 다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찾아 때려치우고 알바를 전전하고 있단다. 정말로 sb한테 일을 시켜보니 ‘나’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작업의 포인트를 찍어 ‘나’에게 막대한 도움을 주기 시작해, 이제는 작업은 ‘나’가 하고 해놓은 작업이 어떤 정도의 성취를 이루는지 sb에게 먼저 보여야 할 판이 된다. 척하면 척이지? 그렇다. Sb는 서서히 ‘나’의 모든 작업을 장악하는 것을 초월해 주동과 진진에게도 ‘나’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나한테는 이 책이 두 번째 오한기로 전에 작품집 《의인법》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 실린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엄청 순화된 오한기다. 그래서 읽기가 좋기는 한데, 이번엔 혹시 과하게 냉소적이지 않나? 물론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 것 같기는 하고, 냉소적인 작품이라도 얼마든지 명작이 될 수 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책을 만드는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 기획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지만 작품은 재미있게 읽었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세상은 오한기 같은 문제아들의 반란을 통해서 발전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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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0-27 05: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위니프리드 홀트비 <불쌍한 캐럴라인>
화요일, 지넷 윈터슨 <프랭키스슈타인>
목요일, 다와다 요코 <별에 어른거리는>
금요일, 김언희 《보고 싶은 오빠》

독서괭 2023-10-27 0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단편 하나에 13000원이요?? 재밌다고 해도 빌려보고 말지.. 너무하네요ㅡㅡ;;

Falstaff 2023-10-27 20:17   좋아요 0 | URL
심하지요? 그죠? 에휴....

stella.K 2023-10-27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 한가위 아닌디요. 혹시 지난 추석 무렵에 읽으셨나요?
근데 이 책 정말 좀 거시기하네요. 출판사 불경기인건 알겠는데 손바닥 책 요즘 7,8천원 하는 거 같던데 이렇게 때려버리면 누가 살까 싶네요. 혹시 중고샵에 나오면ᆢ 그래도 전 안 볼거 같습니다. 후장이고 전자이고 지간에 재미가 있어야죠. 저는 폴님의 공신력을 신뢰합니다. ㅎㅎ

Falstaff 2023-10-27 20:20   좋아요 2 | URL
달력 보니까 이게 한달 전에 쓴 거네요. 좀 자주 올려야겠습니다. -_-;;
이 책은 저도 안타깝지만 비추. 본문에 원래 들어 있었는데.... 편집 생각하면 별 하나 더 뺀다, 하는 게 제 마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벽돌 애자인 모양입니다. 흑흑...

꼬마요정 2023-10-28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픽 시리즈는 위즈덤하우스인가 신청하면 메일로 단편들이 와요. 물론 이주일인가 있으면 비공개로 돌리는데 그 전에 읽을 만한 것들 읽어요. 솔직히 만 원 넘게 주고 사기는 너무 비싸요ㅜㅜ 위픽 시리즈 여러 편 묶어서 내 주면 몰라도… 흑흑
아, 세레나데 샀습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10-28 16:22   좋아요 1 | URL
메일로 단편 ˝들˝이 온다고요? 그거 놀랄 노잡니다!
근데 종이 책으로 보면 이야기하신 대로 이건 상도의가 아니지 않나 해요.
요새 참 너무들 합니다. 식당에 납품하는 업소용 소주 한 병이 1,700원입니다. 그걸 5천원도 받고, 7천원도 받고...
세레나데는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

꼬마요정 2023-10-28 21:51   좋아요 1 | URL
메일함을 보니 한 달에 한 편씩 오는 것 같네요. 신청 기간이 지났나 모르겠는데, 저는 제법 괜찮더라구요. 1년 기획인 것 같은데 이제 1년이 다 되어가서 좀 서운해지려고 하네요.
세레나데 기대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