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이라면 창비시선 434
유이우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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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여름, 중앙신인문학상 시부문에 당선해 등단을 하고 3년 후인 2019년 창비에서 낸 첫 시집. 나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완전 공개 독후감을 쓴다. 유이우. 본명은 김소연. 아마 유이우에겐 자신의 본명을 밝히는 것도 그리 기분 좋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찾을 수 있는 유이우에 관한 정보는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는 것,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러나 특히 영화배우들이 간혹 그러듯이 신비주의 캐릭터를 고수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유이우를 검색해 예스24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볼 수 있었으니까. 확실히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시인으로 등단한 기쁨, 처음 시집을 내서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포토그래퍼, 옛말로 하자면 ‘찍사’, 하시시박한테 찍었을 정도로 젊은 사람들 특유의 솔직한 기쁨을 발산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시인이라는 직업이 이제 부모한테 독립해 원룸 하나 얻어서 먹고 살기에도 얼마나 팍팍한 직업인지는 다음으로 하고, 다른 곳도 아니고 중앙신인문학상, 예전 이름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을 하고, 다른 출판사도 아니고 창비에서 첫 시집을 찍었으니 얼마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겠는가. 그리하여 유이우는 첫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의 표지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유명 타투이스트 카와요니한테 부탁해 자신의 몸에 지울 수 없게 그려놓았다.

  이 인터뷰를 읽고 나는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을 읽은 감상을 쓸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게다가 별점까지 하나 더 보태줬다. 못할 게 뭐 있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감상을 쓸 수 있겠는가? 자신의 첫 시집에 대한 애착이 이 정도로 심각한 시인에게, 틀림없이 단어의 칼날이 되어 깊숙한 자상을 낼, 그것도 아마추어의 무딘 칼날이라 오히려 더 심한 고통을 줄 것이 뻔한 허튼 독후감으로 젊은 시인에게 함부로 상처낼 수 없다. 그저 내가 읽고 그 중에 좋다, 생각이 든 시 한 편을 어디가 좋다, 어디는 언짢다 일언반구 없이 그냥 소개한다.




  이루지 못한 것들



  오후를 타고

  쿠션은 떨어져내린다


  너는 화가가 되었구나

  너는 화가를 포기했구나


  꿈이 널브러진 햇빛

  퍼져 사라지는 빛


  좋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완전히 다른

  좋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전문. P.10)




  대신 나는 이우성이 쓴 시집의 발문 “안녕, 단어”를 읽고 현대시를 읽는 방법에 대하여 힌트를 받았다. 이에 대해 얘기해보자.


  시인이 “자유로운 항해”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것이 시화詩化 한다. 떠올린 걸 시로 쓰지 않으면 시인이 아닐 터이니. 근데 “자유로운 항해”라고 하면 ‘항해’에 힘이 팍 가서 별로 ‘자유’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자유와 항해”라고 적어보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 이번엔 “자유”라고 하는 것보다 움직임/흐름이 자유와 비슷한 이미지를 주는 ‘구름’ 혹은 ‘오후’라고 하면 어떨까, 라고 사고가 확장되어 이제 “구름과 항해”와 “오후와 항해”라고 썼다. 이러고 나서도 시인은 이것들 위에 두 줄을 그어 버린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오후의 빛”이라고 쓴다.

  이제 거의 모든 독자는 “오후의 빛”을 읽으면서 이것이 “자유로운 항해” 또는 “자유와 항해” 개별적인 단어 “자유” 그리고 “항해”와 어떤 연결이 지어지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이우성은 여기서 말한다. “오후의 빛”을 읽고 시의 본질, 어떤 시인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할 것이라고. 아울러 반드시 본질을 발견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본질을 발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의 단어들, 문장들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혹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를 떠올리는 편이 훨씬 유익"하단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안단다. 나는 아닌데. 하여튼 이우성은 같은 시인이라서 그런지 그게 가능하단다. 자칭 똑똑해서. 똑똑한 이우성은 애당초 눈에 보이는 단어와 문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모여서 어떤 의미를 만드는지에는 관심이 없으며, 단어란 마침내 도착한 어떤 것, 더 멀리 가게 될 어떤 것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어떤", "어떤"."어떤"..... 염병할. 그 "어떤"이 도대체 뭔데? 비겁하게 자기도 모르니까 그냥 "어떤", "어떤" 그리고 "어떤", 한 번 더 "어떤".

  즉 단어와 문장의 본질이 아니라 시 안에서의 방향성과 운동성이 더 중요하다고, 물론 어떤 시인의 어떤 시에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이를 유이우는 위에서 말한 인터뷰를 통해 시의 "리듬감"이라고 표현했다.

  인터뷰어가 질문한다. “연을 짧게 치는 시가 많더라고요?”

  인터뷰이 유이우가 답한다. “빨리 써서 그런 것 같아요. 후루룩 쓰고 막히면 저는 그 시를 버려요. 리듬감에 성공한 시만 살리고요.”

  그렇구나, 유이우는 시를 잔치국수 먹듯 후루룩 쓰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인이구나.


  유이우의 시를 읽는 암호해독기는 “리듬감”이었다. 유이우를 읽으면서 리듬감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는 그러니까 온전히 독자 책임이다. 하여간 시를 읽는 일도 점점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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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29 0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W.G 제발트 <이민자들>
목요일, 하워드 진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금요일,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6>

잠자냥 2023-09-29 09: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목요일 거 왠지 별점이 예상되긴 합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9-29 10:40   좋아요 0 | URL
별 셋입니다. 모노 드라마 희곡인데, 만일 편집까지 감안하면 별 둘이고요. ㅎㅎ

잠자냥 2023-09-29 10:4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맞혔다! ㅋㅋ 저도 예전에 읽었는데 아무리 진 선생이지만 역사책 쓰는 거하고 문학 쓰는 건 다르구나! 했습죠.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9-29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책 내지 말아야 겠어요 팔백작님한테 걸리면 말 다 안 하고도 디지게 맞는 거임…

Falstaff 2023-09-29 10:21   좋아요 1 | URL
그래도 내셔요. 한 번 보게. ㅋㅋㅋㅋ

독서괭 2023-09-29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 시는 분명히 감동을 주지만.. “어떤, 어떤, 어떤…” 이거 보니 왜 모르겠는지 좀 알 것 같네요 ㅋㅋㅋㅋ

Falstaff 2023-09-29 10:39   좋아요 1 | URL
저는 ˝어떤˝이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합니다. ㅎㅎㅎㅎ
물론 쓰는 사람 마음입니다만. 왠지 좀 자신이 없거나, 비겁해보이지 않으셔요? ^^

Falstaff 2023-09-29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 쓰려 했는데..... 참지 못하고 꽝!

˝시의 단어들, 문장들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혹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이게 시의 본질을 발견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발문을 쓴 시인 이우성은 이 말을 쓰고 콱 막혔을 겁니다. 아니면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잊었거나. 그러니까 자꾸 ˝어떤˝을 남발하게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의견입니다. ˝어떤˝을 자주 쓰는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마세요.
˝어떤˝은 틀림없이 언어의 전염병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29 12:14   좋아요 2 | URL
제가 또 이런 거에 걱정이 많아가지고 자기 검열 차원에서 블로그 검색 해 보니 제 어떤은 281개 백작님은 700개여서 휴우 이 정도면 나 합격이네 오히려 상위권이야 이러고 안도하고 갑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9-29 12:1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내가 밋쵸요!

반유행열반인 2023-09-29 12:26   좋아요 1 | URL
저는 하여간에 를 너무 많이 쓴다 싶어 이거도 돌려보니 80여개로 생각보다 양호하고 팔백작님 하여간은 500개가 넘어서 부사어는 그냥 글 개수에 비례하는 구나 싶어 넘어갑니다 ㅋㅋㅋㅋ

2023-09-30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30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30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30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