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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작년 10월부터 1년을 두고 읽기로 작정을 했었다. 이제 1년 기한이 점점 가까이 와 8월에는 5권을 읽어야 10월까지 끝을 볼 수 있겠구나, 작심을 하고, 하필이면 염천지옥 지구 기상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8월의 여름에 손을 대 혀를 빼물고 헉헉대며 읽다 말다, 일 주일이 걸려 한 권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도 내가 재미있어 하지 않는 그리스도교 역사는 퉁쳐서 빼먹고 읽어도 그랬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4권에 이르러 서로마제국의 황제 통치는 완전히 결딴이 났고, 겨우 교황청에 의한 정신적 지배, 물론 아무리 교회라도 그들이 다스리는 병력이야 없지는 않았더라도, 동고트족을 필두로 이탈리아 영토를 완전 정복한 이방인들도 당시엔 철저하게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교황청을 멸망시키면 침략군이 죽은 다음에 불지옥에 떨어질까봐 어마 뜨거라, 오히려 로마 제국보다 더 열성으로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등을 향해 “아빠”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보호해주었다.

  이로써 로마 제국은 온전히 동로마제국만 남았고, 비록 이들이 이미 힘 빠지고, 이도 빠지고, 무릎뼈 녹작지근해졌다 하더라도 썩어도 준치, 부자집 망해도 삼 년 가는 것처럼, 겉으로는 여전히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북아프리카, 그리스를 넘어 마케도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지역, 동으로는 예루살렘까지 영토를 확장시켰는데, 이런 것들도 이미 4권에서 다 거덜이 나버린다.


​  5권으로 넘어오면 동로마제국에서는 아무런 영광이 없다. 북쪽 야만인들인 프랑크 족엔 샤를마뉴라는 위대한 왕이 장딴지에 힘을 잔뜩 주고 있고, 독일 지역엔 또 오토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칭하고, 아라비아인들은 동로마의 동쪽부터 시작해 예루살렘까지 싹 깔고 앉아 있으며, 남쪽으론 사라센 무슬림들이 기껏 정복해 놓은 북아프리카를 땅 한 점 남겨두지 않고 완전히 먹어 치운 것으로도 모자라, 서고트족이 정복해 함포고복하며 살고 있던 이베리아 반도까지 싹 쓸어버렸던 거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 오래 전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스의 미궁에 살고 있던 괴수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크레타 섬과 부속도서까지 몽땅 회교도들이 점령을 해버렸다는 거 아닌가 말이지. 이것만 해도 헛김 빠지는데, 바로 코 밑에선 투르크 족이 만만치 않게 알통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발생하지는 않았다. 몇 백 년에 걸쳐 이합집산을 거듭해서 끊임없이 동로마제국을 괴롭히기도 하고, 나중에 비잔티움으로 축소된 이후엔 그까짓 것, 가깝지도 않고 큰 땅도 아닌데 건물이 세련되고 보화가 좀 있다고 거기까지 귀찮아서 원정을 어떻게 가니? 하고 일부 포기할 때까지 이 이민족들은 동로마와 좋았다 나빴다 하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끔은 자기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기도 했다. 다 그런 것이지 뭐. 국가 간의 일이나 사람 사이의 일이나 다 그게 그거다.

  그러니 아무리 글 좋은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를 썼다고 하더라도 위대한 영웅이나 황제가 나타나 단기필마에 장창을 옆구리에 끼고 적진을 향해 눈썹을 휘날리며 돌진하는 장면이 1도 없으면서도 길고 길어서 6백 쪽이 넘어가는 시대를 서술하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번은 5권에 들어와 어떤 의미에서는 로마 “제국”에 대하여 쓰는 것보다 더한 열정을 당시 발호하기 시작하여 후대에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국가를 형성할 조상들의 움직임 포착에 쏟지 않았는가 싶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저 먼 동아시아의 독자는, 하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읽을 때는 그럴 듯하지만 읽고 나서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의 호적관계가 왕창 얽혀버리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아닌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100퍼센트 아니다, 그래서 거의 틀림없이, 라고 말하는 바, 그냥 재미있는 소설책 읽듯이 휙, 일독을 하고 지나갔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식으로 공부를 하고 싶으면 옆에 공책이나 메모지를 두고, 볼펜 또는 만년필을 꼬나잡고, 프랑크, 독일, 헝가리, 불가리아, 투르크, 아라비아, 사라센, 노르만, 러시아와 기타등등, 기타등등의 내력, 종교와 개종과 혼인관계를 메모하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메모에 그치지 말고 책을 읽은 후에 내용을 기억하며 메모 내용을 달달 외워야, 하나? 아이고, 난 그런 거 못한다.


  어쨌든 <로마제국 쇠망사 5>를 읽었다. 이제 마지막 6권 남았다. 로마는 커도 너무 크다. 부잣집 망하는 데 3년 걸리는 건 아는데, 참 나, 망하는데도 이렇게 복잡하게 망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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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22 0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제 마지막 6권!! 힘내라 힘!!! ^^
로마제국정도면 망하는데도 3년 정도가지고는 안되죠. 역시 부자집이 좋은거 같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망하려면 한방에 훅이잖아요. ㅠ.ㅠ

Falstaff 2023-08-22 15:52   좋아요 0 | URL
한권 남았는데 6권도 5권처럼 사실 이미 다 망가진 집구석, 아마 콘스탄티노플 함락 만 남았을 거 같습니다.
ㅋㅋㅋ 전 한 방에 훅 망한 경험이 있어서 말입죠.

stella.K 2023-08-22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칙입니다, 반칙! 기독교사를 통으로 빼시다뇨.ㅠ ㅋㅋ 하긴 올여름은 증말! 근데 그런 벽돌책을 일주만에 독파하시다닛! 👍 오늘부터 숨 좀 쉴 것 같네요. 앞으로 점점 더 책읽기 좋은 날이 오겠죠? 완독을 응원합니다.^^

Falstaff 2023-08-22 15:57   좋아요 1 | URL
교회사는 교회의 역사, 즉 성직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술할 수 밖에 없는데요, 그들도 결국 사람이어서 온갖 지저분한 이야기가 흘러 넘칩니다. 절대 아름답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위하여 안 읽었습니다. ㅎㅎㅎ
우리나라 교회사도 마찬가집니다.

그레이스 2023-08-22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염천지옥 무더위에 쇠망사를 읽다!
^^;;
워낙 다민족 다문화에 로마제국에 욕망을 연결시킨 인간들이 많으니 망하는것도 복잡하고 오래걸리겠죠^^
당대 서민들은 로마가 망했는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싶네요.
역사가들의 진단이 어느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는것이지...^^

Falstaff 2023-08-22 16:00   좋아요 0 | URL
옙. 로마 후기로 가면 속지 출신, 순종 로마 입장에선 야만인 출신 황제들도 좌르륵 등장합지요. 그리하여 신성˝로마제국˝을 참칭하기도 하고, 러시아 황제는 로마 황제보다 두 배 훌륭하고 고귀하다는 의미에서 대가리 두 개인 기형 독수리를 문장에다 넣기에 이릅니다. 어쩌면 로마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