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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파르티잔
서정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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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하이고, 세상에나..... 아직도 이렇게 시를 쓰는 사람이 있었을까나?"
사실 오늘 글을 쓰는 목적인, 서정춘 시인의 ≪봄, 파르티잔≫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딱 한 줄의 감탄문을 쓰기만 하면 충분할 겁니다. 도대체 이 작자가 어떤 시를 썼기에 초봄부터 이리 방정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당신이 아무리 콘크리트로 만든 심장을 가졌기로서니 시인이 겨우내 갈아낸 뼛가루를 피에 섞어 울음 울 듯 적어간 단 석 줄의 짧은 시를 읽는다면 초봄의 호들갑을 그래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봄입니다. 어느새 새순이 돋고 꽃도 필 겁니다. 철새들도 날아오겠지요. 그걸,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더군요.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봄, 파르티잔> 전문, 11쪽
글쎄 봄이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꽃을 그렸다는 겁니다. 산과 들을 캔버스, 또는 화선지 삼아서 봄이란 놈이 꽃을 그렸더니, 새는 그 꽃 그림을 보고 가슴이 또 얼마나 아려서 울었겠습니까. 그 가슴앓이를 참지 못한 새는 기어이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는데, 그래서 파르티잔, 소위 빨치산이라는군요. 게다가 운율이 또 기막히지 않으세요? 소싯적에 배운 3,4,3,4 / 3,4,3,4 / 3,5,4,3 뭐 이런 시조의 마지막 장을 읽는 것 같은 절묘한 운율이 입 속에서 뱅뱅 돌지요. 그런데 또 그 운율이 아련한 봄소식, 겨우내 기다려마지 않았던 봄소식을 너무나도 기막힌 애뜻함으로 만드는군요. 제아무리 장편의 소설이 있다고 해도 어찌 이 석 줄의 짧은 시보다 읽는 사람의 가슴을 아리아리하게 만들 공명(共鳴)이겠습니까.
원 참, 석 줄의 시를 감상하는데 원고지 두 장이 꽉 차게 드는군요.
서정춘 시인은 조금 별스런 사람입니다. 이제 환갑을 넘긴 예순 둘의 노인이지요. 전라도 순천에서 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제껏 책 만드는 동네에서 밥을 먹고살았습니다. 스물 여덟 살에 신춘문예에 당선을 해 소위 시인이라는 딱지를 달았지만 여간해서 시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시인의 인생으로는 종을 쳤는줄 알았었지요.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해온 사람들은 전적으로 무죄입니다. 자신의 시집을 처음으로 찍었을 때가 쉰 여섯 살이었으니까요. 시인 딱지를 단지 스무 여덟 해만에 낸 첫 시집 ≪죽편:竹篇≫을 펴내면서 기껏 한다는 말이 이랬습니다.
아 나의 농사는 참혹하구나
흑!
흑! ≪죽편≫ 5쪽, 시인의 말, 동학사, 1996년
≪죽편≫을 펴낸 1996년. 시인들은 아마 그 해를 악몽같이 기억할지 모릅니다. 그때까지 잘 팔리던 시인들은 공장에서 가전제품을 만들어내듯이 시를 찍어내는데 너무 익숙해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지요. 서 시인이 지은 참혹한 농사에 대해 수많은 시인들이 경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편편이 어디 하나 버릴 것 없는, 뼈를 갈아 쓴 시들이었으니, 그간 잘 먹고 잘 놀았던 자신들이 무척 초라했을건 물론이고, 아마 무척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설사하듯이 시를 쓴다면 자신도 그럴 수 있었다고 일갈을 했으니 말이지요.
그러다가 또 육 년의 세월이 지나, 예전의 충격이 조금 가실 만하자 서정춘 시인은 시퍼런 칼날을 서걱서걱 갈아 자신의 뼈를 깍은 두 번째 시집을 발표하였으니 오늘 소개하는 ≪봄, 파르티잔≫인 것입니다.
도대체 그의 시는 조금의 더함도, 덜함도 용납하지 않는 반듯한 서정의 길에 서있군요. 그래서 이 책 ≪봄, 파르티잔≫에 실린 작품들은 아주 짧습니다. 말을 극도로 아낀다는 뜻일 겁니다. 시에 있어서 만큼 서정춘 시인 같은 구두쇠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집을 읽다가 뭐 이딴 시인이 다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시적 구두쇠 기질에 대한 찬탄을 금치 못해 뱉었던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실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읽는 시다운 시들을 우러러 찬미한 것이지요.
그의 시를 하나 더 읽어보겠습니다.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詩를 남겼으랴
기차는, 고향 역을 떠났습니다
하모니카 소리로 떠났습니다 <전설> 전문 33쪽
이 석 줄의 짧은 시 또한 피울음이지요.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시. 그러니까 자신이 떠나온 고향. 고향을 떠나올 때 몸을 실었던 철길이군요.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자신의 시에 대한 모태가 시인에게도 역시 고향입니다. 고향. 자신의 태를 묻은 생물학적인 고향일 뿐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에 먹줄로 새겨진, 너무 그립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겠습니다. 그곳을 떠나 고향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을 시인은 두 줄의 강철로 만든 시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차 얘기가 나오니 전에 그가 썼던 또 하나의 절창을 이야기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의 고향 남도엔 대나무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그에겐 대나무 또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적 도구인 것이 너무 당연하겠지요. 이번엔 대나무를 시인이 노래합니다. 이렇게......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竹篇·1 ― 여행> 전문, ≪죽편≫ 22쪽
아, 어쩔거나..... 이젠 대나무가 기차가 되어버렸습니다. 대꽃이 피는 고향마을로 가는, 대나무 마디마디 하나가 전부 기차 한 칸씩이 되어 시인은 대나무라는 기억의 열차를 타고 어느 외로운 밤, 죽어야 갈 수 있는 고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가려면 백년이 걸리는, 그리하여 이젠 가슴속에만 자리한 고향으로 시인은 대꽃이 피는 늦은 봄 밤 소주라도 한 잔 걸치며 눈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우리 시단에 서정춘 시인이 있다는 것만 가지고도 아직 시인들을 위해 기꺼이 인세를 지불할 수 있을 겁니다. 서정춘 시인은 우리 시대의 보석이지요.
봄 밤. 달뜬 몸뚱이가 가끔 거추장스러울 때, 어느 시인이 자기 뼈를 깍아 그 위에 서슬 퍼런 정을 쪼아 쓴 시를 읽으며 단어 하나 하나를 가슴 깊이 외워보는 것, 이 또한 너무 멋진 봄 나기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의 봄 나기를 위해 정말 즐겁게 이 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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