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를 벗어나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73
캐런 헤스 지음, 서영승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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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런 헤스. 그러니까 이이의 시댁 식구들이 헤스, 알파벳으로 쓰면 Hesse 집안 사람들이란 얘기다. 시할아버지나 증조 시할아버지 형제 가운데 혹시 ‘헤르만’이라는 이름을 쓰는 양반이 있었을까? 왜 나는 쓸데없이 이런 게 궁금한 지 몰라. 하여간 캐런 헤스는 1952년 용띠 여사님으로 메릴랜드 볼티모어 출신이다. 근처에 있는 토우슨 주립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다가 랜디 헤스를 만나 결혼하는 바람에 학교 때려 치웠다. 이후 메릴랜드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심리학과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 도대체 한꺼번에 몇 가지를 한 거야? 학교를 졸업하고 남편, 두 아이와 함께 버몬트주의 브래틀보로로 이주해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아동문학과 청소년문학에 전념하고, <황사를 벗어나서>를 이이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위 내용은 위키피디아를 참고했다.


​  캐런 헤스가 낳고 자란 메릴랜드 주도 그렇고, 가족을 이루고 산 버몬트도 그렇고, 다 미국의 북동쪽 지역인데 어찌 대표작이라고 하는 <황사를 벗어나서>의 배경을 오클라호마 북서쪽 끄트머리 팬핸들 지역으로 설정을 했는지 궁금했다. 1930년대 초반의 오클라호마라고 하면 우리는 어딘지 벌써 익숙한 기분이 든다. 이건 백이면 백 겉멋이 잔뜩 들어 폼잡기 좋아하는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 <분노의 포도> 때문이다. 안 그런가? <분노의 포도>에서는 주인공 톰 조드가 만기 출소를 하고 오클라호마의 집으로 돌아가 대기근을 견디다 못해 캘리포니아로 갈 준비를 하는 가족과 합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931년의 마지막 풍작 이후 내리 몇 년 동안 극심하게 적은 강우량과 건조한 먼지를 견디다 못한 조드 가문의 오클라호마 탈출, 캘리포니아 생존기가 <분노의 포도>였다면, 죽으나 사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척박한 땅에 박힌 뿌리를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오클라호마 땅에서 곱디 고운, 먼지dust 같은 황사와 황사 폭풍, 이것에 동반하는 황사 폐렴과 모든 결핍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 <황사를 벗어나서>라고 할 수 있다. 조드네 식구들의 고향 탈출이 충분한 이유가 있듯이, 끝까지 헐벗은 팬핸들 고향을 지키며 상실과 가난 속에서 버티고 사는 주인공 빌리 조 켈비네 식구 역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여간 생존해 나간다는 것. 모진 목숨 가뿐하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그 속에서 자신을 형성한다는 것. 그리고 다분히 미국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적? 그렇다. <분노의 포도>도 그렇고 <황사를 벗어나서>도 그러니, 어떤 결말이 날지, 읽으면서 속으로 초조해 하지 마시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터이니.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까 혹시 스포일러 아닐까 싶네.


​  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운문소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읽어본 바 있어서 그리 낯설지 않다. 오히려 푸시킨 보다 <황사를 벗어나서>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훨씬 더 현대적이라서 더 흥미롭고, 무슨 뜻인지 재까닥 알겠고, 호소력 있었다. 운문 소설, 시로 쓴 소설이라 작품의 길이가 짧아졌지, 이걸 스타인벡처럼 산문으로 썼으면 아무리 짧게 써도 5백쪽은 넘지 않겠나 싶다. 그만큼 운문, 시가 독자들에게 더 강하고 즉물적으로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 빌리 조가 우울한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밤 열차를 타고 가출을 하는 한 부part가 있는데,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겪은 에피소드,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 같은 것 가지고도 한 권의 소설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꾸 빌리 조, 빌리 조, 하니까 남자 아이 같지? 아니다. 1920년 8월에 부엌 바닥에서 맨발, 맨 엉덩이로 웅크려 앉은 폴 켈비가, 남편 베이어드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의사가 오기도 전에 출산한 딸이다. 아버지는, 암만해도 오클라호마 농촌지역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큰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아들을 원해 미리 이름을 빌리 조로 지어 놓았는데 딸이 나왔고, 다시 이름을 짓기도 그래서 그냥 빌리 조를 호적에 올려 버린 거였다. 이 빌리 조 켈비로 말할 거 같으면 어려서부터 다리가 길고, 입은 크고, 뺨은 자전거 손잡이처럼 옆으로 벌어지고, 훗날 피아노의 몇 옥타브를 한 손에 거머쥘 큰 손과 빨강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얼굴, 좁은 엉덩이를 가지고 있어서 학교 체육 선생이 농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꼬드길 정도였지만 정작 빌리 조 자신은 피아노 연주하는 것과 사과를 한 볼 가득히 베어 먹는 걸 좋아한다. 여기다가 총명하기도 해서, 다니고 있는 중학교가 오클라호마 전 지역의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성적을 기록하는데, 빌리 조는 여기서도 시험을 치룰 때마다 1등을 먹는다. 비록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 무심하게 말하고 넘어가지만.

  1920년생 빌리 조가 중학교 다닐 열네 살. 1934년 갑술해. 엄마는 빌리 조 이후로 처음 임신을 하고, 지난 세계대전 당시 말도 못하는 곡물 가격 상승에 힘입어 떼돈을 번 미국의 농부들이 초지와 산림을 무분별하게 개간하여 농지로 만들었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한 순간에 전장에서 농지로 변한 유럽 땅에서 새롭게 농사를 시작해 미국의 농부들은 거덜이 나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개간은 토지를 건조하게 만들었고, 1930년대 들어와 큰 가뭄이 들자 오클라호마, 아이오와 등등엔 건조한 먼지들이 폭풍과 함께 사람의 일상에 공격적으로 침입하기 시작했다. 고운 흙먼지는 농기계와 자동차 뿐만 아니라 집안의 세밀한 틈새를 뚫고 들어와 모든 세간 위에 뽀얗게 쌓이고 농부들의 코와 귀와 기도와 식도까지, 점막의 습기에 엉겨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 남고, 소년소녀들은 사춘기를 맞고, 누구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그러나 모든 가족들이 다 그런 건 아니라서 어떤 집엔 특별히 개별적이고 치명적 불운이 쳐들어오고, 어떤 집은 이 와중에도 별 어려움 없이 지나가기도 하는데, 우리의 주인공 빌리 조네 집은, 아무래도 주인공 집안이다 보니까, 다른 집보다는 그래도 좀 특별한 불운을 맞이하며, 그 불운이 어떤 건지는 내가 차마 지금 이야기할 수는 없다.

  작품은 1934년 1월부터 1935년 12월까지 2년 동안 켈비 집안, 식구들에게 벌어지는 일이다. 캐런 헤스의 본역이 아동문학과 청소년 문학이라 했다. 굳이 그렇게 구분을 하자면 이 작품도 청소년 문학으로 나누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청소년 문학은 성인이 읽어도 재미있는 경우가 수다하다. <황사를 벗어나서>도 그렇다. 때로는 윌라 캐더의 지방주의적 건강함과 생명력을 보는 듯하고 때론 가슴이 찡, 한 장면도 나오고 그렇다.

  대체적으로 미국적이고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청소년 문학적이다. 이 정도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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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7-20 0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소년 문학 맞네요. 뉴베리 메달 수상작이니까요. ^^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3-07-20 14:07   좋아요 1 | URL
옙. 재미납니다! ^^

잠자냥 2023-07-20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작품 그 감동 포인트에서 울컥해가지고 별 다섯 줬던 거 같아요. ㅋㅋㅋㅋ
아니면 스무살 잠자냥이라 아직 뉴베리상 수상작에 꽂히는지도?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7-20 14:08   좋아요 1 | URL
저는 어느 장면인 줄 알지요. 그런 장면은 여기다 못 올립니다. ㅋㅋㅋㅋ

coolcat329 2023-07-22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클라호마에 남은 가족들 이야기군요. 분노의 포도에도 떠나지 않고 남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보려면 이 책을 읽으면 되겠어요~

Falstaff 2023-07-22 13:28   좋아요 1 | URL
넵. 운문 소설이라서 읽는 속도도 훨씬 빠릅니다.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