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삶
피에르 미숑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거참 희한한 사람일세. 1945년 중부 프랑스 크뢰즈 지방의 샤틀뤼르마르셰에서도 촌동네인 작은 레카르 마을에서 태어난 것도 좋고, 만으로 서른아홉 살이던 1984년에 자기가 하여튼 엮여서 살아온 집안 사람들과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존경할 만한 주정뱅이와 농투성이, 사제, 장난꾸러기 아이들에 관한 기억,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이었다면 노인들이 해주던 이야기에다 그랬을 것이라는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연작 장편소설을 쓴 것도 좋다. 작가는 그럴 권리가 있는 직업인이고, 가문에 작가가 한 명 생겼다 하면 자기들이 살아온 방식이 어떻게 해서든지 결국은 죄다 까발려지게 되는 것이, 가족 구성원 가운데 재수없게 작가가 된 식구를 거느린 가족의 숙명이니까. 미숑이 제목을 “사소한 삶”이라고 했지만 세상에 “사소한” 삶이 어디 있니? 남들 보기에 조금 사소해 보일 망정 당사자들은 즐겁기도 하고 목이 메기도 하고 정말로 목을 매달기도 했던 일상사 가운데 한 번이라도 사소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사소한 삶”은 반어법이겠지. 남 보기에 사소하지만 자기 마음 속에는 중요하기 그지없는 가족의 삶을 피에르 미숑은 천연덕스럽게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숑의 가족사 정도면 장소가 중부 프랑스이건 가난한 동부 튀르키예이건, 경상북도와 강원도를 접경한 남동쪽 봉화나 영양쯤 대한민국이건 흔하지는 않지만 동네에 적어도 한 집구석은 있을 법한, 그리 유별난 삶도 아닌데, 현대 프랑스에서 이름을 휘날리는 소설가인 피에르 미숑의 유별난 화려체 문장 덕에 사소하기는커녕 데뷔작 한 편으로 하여금 시작부터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걸작 A genuine masterpiece in contemporary French literature”이라고 상찬을 받았단다. 나는 이런 표현을,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위키피디아도 찾아보고, 옮긴이 윤진의 해설도 읽어보면서 알았기 망정이지, 만일 처음부터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걸작이라는 등의 말을 미리 읽었더라면, 제일 앞 장인 “앙드레 뒤푸르노의 삶”에서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이후부터 조금씩 고개를 외로 꼬았을 듯싶다. 왜냐하면, 이건 꼭 알아 두셨으면 좋겠는데, 후진 가족의 뚝뚝 떨어지는 궁상이 지겨워지는 것이 아니라, 앞 장chapter에서 감탄하며 읽었던 화려한 은유와 감각적 수사와 현학적인 차용과, 낡고 누추해서 더욱 아름다운 추억이란 조미료의 놀라운 문장들이, 아오, 지겹도록 계속되는지라, 우리 조상님이 말씀하신 대로, 꽃노래도 삼세번이라고, 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 스테이크가, 참돔 회가 맛나더라도 삼시 세끼, 일주일에 일곱 번, 한 달에 서른 날 같은 걸 먹으면 그게 식도락이니, 고문이니? 피에르 미숑의 글이 후졌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절대로, 한 번 더 강조해서 절대로 아니다. 서양의 권위 있는 평론가 집단이 “현대 프랑스 문학의 마스터피스”, 그것도 genuine masterpiece 라고 강조했다시피 글 좋고, 꼬질꼬질해서 더욱 추억 같은 (성공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누선자극 의도도 괜찮았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까지 이 작품에 열광할 수 없었던 것은 첫째가 여태 이야기한 과도한 미문, 그것도 겁나게 화려한 수식과 뭐 하나 그냥 이야기하고 지나가지 않는 (조금 과장해서)탐미주의적 은유의 능선이 그걸 넘기 힘들게 했고, 둘째 이유로, 복잡한 가계도, 저 먼 옛날, 앙투안이라는 남자를 끝으로 아들을 생산해내지 못해 “대가 끊긴” 플뤼셰 가족의 한 시골 여자가 역시 시골 농부와 결혼해 외동딸 마리를 낳았고, 마리는 팔라드 라는 성姓의 남자와 결혼해 또 두 딸을 낳았는데, 맏이 카틀린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둘째 필로멘은 레카르 마을(이제야 나온다, 레카르 마을이)의 폴 무리코와 결혼해 외동딸 엘리즈를 낳는다. 이 엘리즈가 피에르 미숑이라고 읽는 화자 ‘나’의 외할머니다. 엘리즈는 펠릭스 게오동과의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외동딸인 내 어머니 앙드레를 낳고, 어머니는 에메 미숑과 결혼해 역시 맏딸 마들렌을 낳지만 마들렌은 어려서, 불과 두 살도 되지 않아 백혈병으로 숟가락 대신 젖병을 내려놓고, 이후에 다시 ‘나’, 피에르 미숑을 낳는다. 그리하여 ‘나’는 앙투안 플뤼셰(의 누이), 마리, 필로멘, 엘리즈, 앙드레, 피에르의 계보에 따라 5대 만에 처음 태어나는 아들인 셈. 엄마 앙드레의 처녀 적 이름이 앙드레 게오동이고, 에메 미숑과 결혼하며 앙드레 미숑이라는 이름이 생겨 ‘나’ 피에르 미숑을 낳았지만, 피에르가 소년들의 투견장인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마치고, 조현증 증세가 가볍지 않은 천재 극작가/연출가 앙또냉 아르또의 극단에서도 일하는 한편, 열심으로 술과 약물에 절어 있다가, 그리하여 두 여자로부터 이별을 당한 후에, 드디어 처음 발표한 소설 <사소한 삶>을 엄마는 엄마지만 ‘앙드레 미숑’이 아니라 ‘앙드레 게오동’에게 헌정했다는 것은, 피에르 미숑이 아버지를 부정했다, 엄마 앙드레 게오동의 혼인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비록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인 클라라와 외젠의 사랑을 받았던 것과 그들의 친절은 기억하지만, 어려서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는 이유가 아니고, ‘나’ 피에르의 알코올 의존과 약물 장복이 아버지인 외눈박이 에메로부터 드러운 유전자를 내려 받았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이다. 어떠셔? 정말 아버지 쪽, 그러니까 미숑 가의 핏줄이 깨끗하지는 않지? 비단 할아버지 외젠은 사람이 부드럽고 유약하고 아내 클라라한테 찍소리 한 마디 못하고 살지만, 외눈박이 아버지로부터 알코올과 약물 의존의 유전자를 받은 거 하나만 가지고도 치가 떨렸을 거다. 내가 언젠가 이야기했다. 알코올 의존의 80%는 유전이라고.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이 술을 끊는 것이며, 스스로 알코올 의존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후세의 안녕과 복지와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후손의 생산을 포기하는 걸 한 번 진지하게 생각들 해보시라고. 아버지 에메도 자신의 알코올 의존을 알아채고 처자식이 조금이나마 자유스럽게 살라는 깊은 뜻에서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건 아닌지,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난 서른아홉 살의 아들 피에르는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아비가 되어 처자식을 나몰라라 했던 것이 그토록 서럽고 분해서였을까? 정신없이 이야기하다 보니 이 작품이 조금 유감스러웠던 둘째 이유와 셋째 이유가 호박넝쿨처럼 한꺼번에 나왔는데, 둘째가 복잡한 가계도를 너무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실명을 그대로, 족보에 관계없이 그냥 사용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남의 집구석 이야기를 과하게 듣는 마당에 족보 여하가 마구 헷갈렸기 때문이며, 셋째가 나 스스로가 비록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알코올 의존 성향이 있어서 피에르 미숑의 알코올 의존과 약물 의존에 관한 묘사가 심장을 너무 콕콕, 바늘로 찌르듯이 아팠던 것이 이 책에 후한 점수를 매길 수 없었던 이유였다. 마지막 이유는, 사실 이걸 세번째로 넣었으면 좋겠지만 알코올 의존과 가계도를 따로 떼기 쉽지 않아 마지막에 놓았을 뿐으로, 시와 소설, 극작, 회화 같은 것들을 마구 인용해, 동아시아 독자는 마치 인용한 것을 모르는 것이 이 책을 충분하게 감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인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현학적 태도였다. 하지만 이런 지적질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아름다운 문장으로 일관한다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젊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함부로 이 작품을 필사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감정의 과다한 분비를 의도적으로 하는 작가들은 없다. 아니지. 내 주제에 무슨 단정을 하나, 그리하여 다시 쓰면, 없을 것으로 믿는다.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여 어떻게 미문을 만들어볼까 궁리하다가 드디어 그것들로 촘촘히 날줄과 씨줄을 엮어 한 장의 결 고운 비단을 만든 후, 조금 멀리서 한 마리 누에가 토해 놓은 곱디고운 실의 모음에 과다한 감정 분비물로 질척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지경 바로 앞에서 일단 정지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서 말씀입니다, 하여간 조심하고 조심해서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아름답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이런 작품이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다고 대책 없이 필사했다가 나중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어디서 써먹고는 큰 코 다칠 수 있으니. 그 정도로 문장이 화려하다.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3-04-13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휴 제가 이거 읽다가 질려버렸지 뭡니까! 문트 님 리뷰 다시 봐도 또 절레절레 ㅋㅋㅋㅋㅋ 전 이이 책은 또 안 읽을 거 같아요. 질린다 질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4-13 18:0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 마음 이해 합니다. 저도 굳이 찾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레이스 2023-04-13 0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삶이란 없죠.
골드문트님!
북튜버를 하심이 어떠실지, 입담도 장난 아니실듯 하여... 이 글대로 말씀하시면 정말 재밌을 겁니다.

Falstaff 2023-04-13 18:10   좋아요 1 | URL
아휴, 저는 입담 별로 없어요. 발음도 좋지 못합니다. ㅎㅎㅎ
이 페이퍼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써버린 겁니다. 그리하여, 물론 그러실 리는 없지만, 조금만 꼼꼼하게 읽어보시면 말이 안되는 문장, 소위 비문이 중요한 자리에 있습니다. 고칠까 말까 하다가 독후감을 한 방에 쓴 증거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버려 둔 것입지요.
재미나게 읽어주신 거 같아서 기쁘네요. ^^

stella.K 2023-04-13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들수록 소설 읽는 게 자신없어 지더라구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게 맞나? 자꾸 의심하게되고
되돌아 다시 읽어야할 것 같고.
이책은 읽을 자신이 없어지네요.
문장 좋은 작가들 부럽던데.
몇년 전에 노르웨이 작가가 <나의 투쟁>인가 4권짜리
나왔잖아요. 1권의 반을 읽다가 접은 아픈 기억이 나네요. ㅋㅋ

Falstaff 2023-04-13 18:15   좋아요 1 | URL
그까짓 소설 읽는 거에 무슨 자신이고 뭐고가 있어요? ㅎㅎㅎ 걍 읽고, 뭐 그런 것이지요. ㅎㅎㅎ 너무 심각하십니다.
<나의 투쟁>은 아이고... 저도 한겨레든가 하여튼 신문매체의 평가가 하도 화려하기에 무려 내돈내산했다가 1권 초장에 키 크고 험악하게 생긴 아빠가 수퍼마켓에서 아이들 어깨를 쥐고 앞뒤로 흔드는 것까지 읽고, 도무지 더 읽어줄 수 없어서 확, 방바닥에 팽개친 게 생각나네요. 근데 그게 뭐 어떻습니까. 걍 팍팍 읽으셔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