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이면 을유세계문학전집 122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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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소설로는 두 번째 읽는 작품이다. 만일 버마 출신 중국인이면서 태국에서 대학에 다니며 농민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농민운동에 뛰어든 민퐁 호가 쓴 <아버지의 쌀알>을 태국 문학이라고 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걸 빼면 <그림의 이면>이 처음 읽는 태국 소설이다.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작가 씨부라파는 (이하 위키피디아 및 해설/연표를 참조했음) 1905년 철도청 1등 서기 쑤완 싸이쁘라딧과 쏨분 싸이쁘라딧의 맏아들 꿀랍 싸이쁘라딧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다. 청소년시절엔 부유층 자제들이 주로 다니는 데브시린 학교에 들어갔지만 대부분의 학생과 달리 1등 서기관이었던 아버지는 여섯 살 때 일찌감치 세상 하직을 해 싸이쁘라딧 가문의 맏아들이자 외아들인 꿀랍의 교육비를 위해 엄마는 재봉사가 되어 자기는 입어보지 못할 여성복만 죽어라 만들어야 했고 여동생마저 손가락을 이상하게 비틀며 포즈를 취하는 태국 전통 무용수를 해야 했다. 아직 중등학교에 재학중이던 1923년, 열여덟 살 때 신문에 ‘선언’이란 사설을 발표하면서 본명 꿀랍 싸이쁘라닷을 버리고 씨부라파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근데 씨부라파 보다 꿀랍이 그래도 어감이 더 좋지 않은가? 내 귀에만 그런가? 하여간 이후에도 신문기자 등 신문newspaper인으로, 진보적 소설가로 활발한 작품생활을 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문학인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한다.

  진보 문학인답게 1952년에는 한국전쟁(에 태국이 연합군을 파병한 일)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동하다가 평화 반란죄를 범해 13년 4개월 형을 선고받고 57년 2월 불교나라 태국답게 불기 2,500년 기념으로 사면되기까지 4년 이상을 복역하고, 같은 해에 태국의 대표적 좌파 문인 자격으로 러시아혁명 4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소련을 방문한다. 이듬해에는 고리키의 <어머니>를 태국어로 번역 출판도 했다. 8월엔 태국의 “문화교류진흥단”을 이끌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초청을 받아 베이징을 방문하기도 했으니 당시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유행하던 우파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씨부라파는, 이왕 베이징에 간 김에 그냥 중화인민공화국, 중공으로 망명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16년 후, 그 좋은 태국의 공기만 마시다가 베이징에서 황사 섞인 스모그를 장복해서 그랬는지 폐렴과 관상동맥질환으로 사망하니 향년 69세. 하긴, 1974년에 69세면 죽어도 그리 아까운 나이는 아니었다.


​  <그림의 이면>에서 ‘그림’은 훌륭한 아마추어나 딜레탕트 수준의 화가(지먕생)이 그린 수채 풍경화로 일본의 미타게 산 근처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들과 오솔길, 물돌물 돌물돌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걸 그린 평범한 그림으로, 주인공 놉펀이 자기 서재에 책상에 앉았을 때 등 뒤 벽에 걸어놓은 “작품”이자 결혼 축하 선물이다. 그림에 관해 조금의 감식안만 있어도 차마 돈을 주고 사게 되지 않는 그림이지만 내가 이걸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비록 객관적 시각에 의하면 평범할지언정 놉펀의 입장에서 그림을 바라보면 이 그림의 이면에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이 자신의 마음에 새겨져 있어서 만일 정면에 걸어 둔다면 신경을 몹시도 건드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놉펀, 사람 좋다.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는 그림을 앞이건 뒤건 뭐하러 걸어 둬? 눈 앞에 보이면 신경을 그것도 “몹시” 건드릴 거 같다며? 그럼 뒤에다 걸면 그림 속에서 귀신이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려고. 나 같으면 안 건다. 작가의 인생이 놉펀의 마음에 새겨질 정도라면 더 그렇지. 뭐 좋은 기억/추억인 모양이지?

  우리의 주인공 놉펀은 현재 일본 릿교 대학에 유학중이다. 아버지는 나 같은 서민이 보자면 재계에서 무지하게 빵빵한 거물이고, 장남이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거기서 직장을 얻어 장가들어 일본인으로 살까 걱정이 되어 놉펀을 말도 몇 번 못해본 부잣집 아가씨 쁘리와 약혼시켜버렸다. 지금은 스물두 살 청년이지만 스무 살 때. 나 참. 내가 놉펀 아빠면 쁘리하고 결혼시켜 둘 다 유학시켜버리겠네. 그러면 씨부라파로 하여금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되게 할 수 있었지 않은가 말이지. 하여간 놉펀이 이제 스물두 살의 여름을 맞아, 당시 태국까지 가는 뱃삯이 보통이 아니라 도쿄 시내에서 빈둥거려야 할 때, 아버지의 친한 친구이며 평소 놉펀도 존경해 마지않던 아티깐버디 공(公)이 홀아비 생활을 마치고 두번째 장가를 들어 국왕의 증손녀인 끼라띠 여사와 도쿄로 허니문을 와, 그들의 관광 가이드 및 도쿄에서 8주 이상 묵을 숙소 임차 등을 맡기도 했다. 아티깐버리 공은 태국에서 손꼽히는 재벌 가운데 한 명이라, 비용은 얼마가 들든지 간에 하여간 자기는 호텔이 싫으니 독채 살림집을 빌리라 해서 도쿄 교외에 있고 철도와도 멀지 않은 아오야마 지역에 외관은 서양식, 실내는 다다미방으로 된, 일본식 정원으로 잘 치장한 집을,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보통보다 두 배는 비싼 하녀 한 명과 함께 임대해 놓았다. 이에 만족하는 아티깐버디 공. 그리고 끼라띠 여사.

  끼라띠 여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번 대강이나마, 원문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특징을 소개해보면, 예상외로 젊은 여성으로 눈부시게 빛나 보인다. 자그마한 하얀 꽃송이가 있는 남색 복장에 흰 모자, 그리고 하얀 신발. 통통하지만 체구가 크지는 않으며, 풍만하고 피부가 부드러워 빛이 났다. 그래, 1930년대에는 “통통하고… 풍만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미인의 척도였다. 하, 정여사 생각나네. 비단 있지? 그걸 쓰다듬을 때 느낄 수 있는 손의 감촉. 정여사 피부가 딱 그랬다는 거 아녀?

  놉펀은 끼라띠 여사를 보고 급하게 머리를 굴려보니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스물여섯이나 일곱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아티깐버디 공은 쉰 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젊고 싱싱하고 아름답고 귀한 가문의 여성이 쉰 살 먹은 쉰 늙은이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했을까? 처음엔 이게 궁금했다. 하여간 관심이 생겼다. 독자는 21세기를 살고 있어서 까질대로 까진 상태. 한 눈에 척 보고 놉펀, 얘가, 얘가 사고 한 번 치겠구나, 딱 감을 잡는다. 다만 문제는 끼라띠 여사가 왕가의 숙녀이며 거대 부를 보유한 공公의 아내로 쉽게 놉펀에게 마음을 주겠느냐, 하는 건데, 여기에 시절이 1930년대, 동남아 출신이 유교국인 일본에 와서, 이게 되겠냐, 하는 거. 어려서부터 엄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학교 대신 서양에서 온 노처녀 독선생을 모셔놓고 서양식 교육을 받은 끼라띠 여사는 서양 여인으로부터 각종 미용, 패션 잡지를 섭렵하며 젊음을 조금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관리를 받아서 겉으로만 스물여섯, 일곱이지, (어차피 조금만 더 읽으면 나오는 거니까 밝히는데) 알고 보면 서른다섯 살, 당시 기준으로는 중년 여성이었으니 우리의 놉펀과는 열세 살 차이. 그런데도 이게 되겠어? 여사와 공의 열다섯 살 차이를 심한 터울로 봤는데, 놉펀과 여사 역시 열세 살 차이니까 말이지.


​  그래도 <그림의 이면>은 연애소설이다. 내가 줄창 연애소설은 궁극적으로 이별소설이라고 주장한 거 기억하시나?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정말 연애소설이라면 열다섯 살 차이는 억지 결혼이고 열세 살 차이는 자연스런 연애가 되어야 하고, 이별 또한 해야 하는데, 문제는 얼마나 독자가 앙가슴을 치게 만들 수 있는 이별을 연출하느냐,에 연애소설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필생의 소원이 연애소설 한 편 써보고 죽는 건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뻔하기 때문에. 남녀가 (요새는 남남하고 여여도 포함해서) 만나고, 사랑하고, 점점 뜨거워지다가 몽땅 불사른 다음 이별하는 일과성이자 일방통행을 그리 쉽게 절절하게 쓸 수 있겠어? 이미 그려놓은 보드 위를 달리는 말들인데. 이 책도 그게 아쉽다. 이야기의 배경, 달달한 문장과 애절한 사연, 구성 같은 거 다 좋다. 하지만 결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애소설이 쉬울 거 같아? 그럼 전부 셰익스피어고 괴테고 톨스토이게?

  (톨 백작의 <안나 카레리나>가 정말 명작인 건, 자식새끼, 늙은 영감 버리고 뛰쳐나온, 인류의 문학 역사상 가장 우아하게 아름다운 여인 안나가 미치게 사랑한 브론스키 백작을 결국 배 나온 대머리 술주정뱅이로 만들었잖여? 톨 백작 말고 이 비슷하게라도 끌고 간 인간이 누가 있는지 가르쳐주시면 만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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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4-06 0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졸라 남주들도 외모는 별루에요… (만원 대신 리뷰 만개 부탁 드림)

Falstaff 2023-04-06 20:00   좋아요 0 | URL
윽. 졸라는 연애소설이 아닌 걸로..... ㅎㅎㅎ ^^;;;

유부만두 2023-04-06 20:51   좋아요 1 | URL
아… 제겐 “제르미날”도 연애소설이었어요;;;

다락방 2023-04-06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잠자냥 님의 리뷰 읽고 이 책 사두었는데 골드문트 님의 이 리뷰를 읽으니 사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이천번 드네요. 으하하하하. 주말엔 이 책 읽어야겠어요. 와 너무 쫄깃쫄깃 재미있을 것 같아요!!

Falstaff 2023-04-06 20:01   좋아요 0 | URL
거의 백년 전 작품이니 넘 기대를 많이 하시지는 마세요. 전 러브씬 안 나오는 연애소설은 ㅋㅋㅋ 아주 조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락방 2023-04-06 20:50   좋아요 0 | URL
러브씬 제대로 수시로 나올 설정인데, 아니라구요?????

Falstaff 2023-04-06 21:20   좋아요 0 | URL
넵. 이게 20세기 초 아시아 작가에 의하여 쓰여진 작품입니다. 러브씬이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냥 입술 박치기 한 번 나옵니다. 설왕설래舌往舌來도 없습니다.

yamoo 2023-04-06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톨 백작의 <안나>가 연애소설의 원탑이라는 야그군요! 집에 판본이 2개인데, 일단 눈에 띄는 범우사본으로 일독하야겠습니다! 마지막 괄호 문장이 아주 강력하군요! ㅎㅎ

Falstaff 2023-04-06 20:03   좋아요 0 | URL
옙. <안나....>를 따라올 작품이 동서고금을 통해 몇 개나 있겠습니까. 전 오랜 세월 ˝D > T˝ 즉 도스토옙스키 > 톨스토이 였는데요, 이게 점점 바뀌고 있는 거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