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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쥐스 1
리온 포이히트방거 지음, 김충남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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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리온 포이히트방어의 책을 자주 읽는다. 2018년 한여름,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을 처음 읽고 포이히트방어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그의 저작은 그것 말고는 번역 출판된 것이 없어서 아쉬웠었다. 작년에 도서관 출입을 하면서 요샌 희망도서라고 해서 특정 책을 사 달라고 신청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득달같이 포이히트방어의 책을 검색해보니 2021년에 <톨레도의 유대여인>이 나왔다. 그리하여 <톨레도의… >가 인생 후반기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며, 생전 처음 도서관을 포함한 국가기관 ‘관청’에 신청해서 허락을 받은 혜택이 된다. 게다가 얼마나 재미 있었는지. 아직 <톨레도의…>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꼭 도서관을 찾으시라.
<고야….>도 그렇고 <톨레도의…>도 그렇고, 이번에 읽은 <유대인 쥐스> 역시 그러한데, 포이히트방어는 전형적인 벽돌공이다. 탄탄하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도 그렇게 조밀하고 서로 긴밀하게 스토리를 연결해가는 솜씨를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뒤를 이어 스페인 궁정화가로 이름을 날린 한 엉뚱하고 엽기발랄하며 성질 고약한 화가 프란시스 고야의 한살이를 그렸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이 책은 다 읽어보니까 완결작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었다. 설사 완결작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만큼 인상깊게 읽었다.
<톨레도의 유대여인>은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를 여전히 무슬림인이 다스리던 이베리아 반도의 톨레도를 무대로 때는 바야흐로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던 시기에 한 천재적인 재무 관리인의 딸과 왕의 연애담, 그리고 이 사랑을 방해하는 종교의 갈등 등을 그린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역시 유대인하면 대표적인 직업이 재무관리, 금융업, 그리고 고리대금업. 나는 이 책의 독후감을 쓸 당시에 <유대인 쥐스> 역시 빨리 번역해 나오기를 바라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고 했었는데, 불과 반년만에 지금 <유대인 쥐스>의 독후감마저 쓰고 있다. 말이 무색하다. 정말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이다.
역자 해설에는, 이 작품을 처음엔 3막 희곡으로 쓰고 뮌헨에서 공연까지 했으나 평이 좋지 않아 4년 후인 1922년 소설로 완성했다 한다. 초판은 6천부를 찍어 수수한 성과를 거두었고, 성공에는 반드시 운이란 것이 따르는 법이라서 때마침 유럽에 들른 미국의 한 출판인이 영역본을 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래 <유대인 쥐스>는 리온 포이히트방어가 쓴 최초의 역사소설인 동시에 대표작으로 자리매김을 했다는데, 내가 읽기로는 앞서 이야기한 <고야…>와 <톨레도의…>하고 호오의 변별 여부를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면 즉시 독후감을 써야 좋다. 이 책을 다 읽은 날 크게 취하도록 마시고 취한 김에 덥다고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고 잤다가 열병에 걸려 며칠간 끙끙 앓아 지금도 정신이 좀 몽롱하다. 이 상태에서 읽기를 금방 마쳤을 때의 감각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스럽게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은 메모를 했다. 메모한 분량이 너무 많아서 탈이지만. 좋다. 어떻게 매번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나.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한 번 스토리 이야기를 해보자.
때는 (조심해서 발음하시기 바람)18세기. 장소는 뷔르템베르크 공국. 실제로 존재했던 궁정유대인 요제프 쥐스 오펜하이머가 주인공이다. 쥐스의 할아버지 살로몬은 프랑크푸르트의 유대교 회당 시나고그의 선고 기도자로 돈독한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아버지는 유대인 배우협회 회장을 지낸 유대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으며 어머니는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연극의 주인공을 도맡는 여배우였다. 여기서 말하는 오케스트라는 예술의 전당 대강당에서 만장하신 신사 숙녀를 모신 백 명이 넘는 연주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녹음시설이 없는 시절이라 뭐든지 생음악을 해야 하니 연극에 필요한 음향과 기분 고양을 목적으로 하는 음악 서비스를 담당하는 소규모 악단을 일컫는다. 아무리 그래도 한 극단의 여주인공이라면 대단히 어여뻐서 젊은 시절의 어머니 미하헬레 쥐스는 볼펜뷔텔 공작 등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어떤 종류의 총애인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고.
요제프 쥐스는 천성적으로 똑똑하다. 유대인도 한국인처럼 자기들은 못 먹고 못 살지언정 자식은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공부를 시키려 애를 써서, 쥐스 역시 튀빙겐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다. 쥐스는 정말 대강 공부를 해도 모든 과목에, 특히 수학과 언어, 그리고 법학 과목엔 따라올 학생들이 없었지만 학문에 뜻을 두지 않고 공부보다 귀족 학생들과 사귀면서 끈을 만드는데 열심이었다. 자신의 본업인 법학을 열라 공부해 변호사가 되는 것에 뜻이 있지 않고 어차피 유대인이니까 높은 양반들을 접대하고 그들과 교류해 수족이 되어 일하며 현금을 손에 쥐는 것에 있음을 갈파했다. 그래서 학업을 중도작파하고 금융인이자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궁정 유대인이자 팔츠 선제후국의 비용으로 로테르담에 체류하는 오리지널 유대인 이사크 시몬 란다우어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팔츠 선제후국의 인지세 사업, 타름슈타트 시의 화폐주조사업 등을 통해 나이 마흔에 유럽에 손꼽히는 갑부가 됐다. 그리고 작품을 시작할 때, 그러니까 쥐스의 나이 마흔 조금 넘겼을 당시엔 위험한 사업에서 적시에 손을 떼는 민첩성을 발휘해 빌트발트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던 거였다.
이 당시 뷔르템베르크 공국은 쉰다섯 살 먹은 에버하르트 루트비히 공작이 다스리고 있었다. 루트비히 공작은 무려 30년 동안 크리스텔이라는 이름의 백작부인과 연인관계를 맺었는데, 원래 고귀한 출신이라서 백작부인이 아니라 연애를 이어갈 목적으로 보잘것없는 늙고 무능한 남자에게 백작 작위를 주고 크리스텔과 결혼을 시켜버렸던 거였다. 그리고는 내놓고 연인관계를 이어갔지만 당시 정서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공작비 입장에선 속이 뒤집어지고 눈에서 불이 났겠지. 그래도 별 수 있나. 이렇게 수 십년을 지내왔건만 문제는 백작부인 역시 만만한 여자가 아니라서 팽팽 돌아가는 머리로 일단 측근에 늙은 유대 금융업자 시몬 란다우어를 두어 자금을 관리하게 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면으로 돈을 긁었다. 이를 위험스럽게 본 신하들은, 어느날 프로이센 왕에게 백작부인과 결별할 필요성을 설득했고, 왕은 날씨가 아주 좋은 날 루트비히 공작령에 놀러가 평야를 바라보며 이렇게 감탄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저 위에 한 늙은 여자가 해충과 역병처럼 누워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공작은 다 견딜 수 있었지만 크리스텔보고 “늙었다”는 진실을 꼬집는 것은 참지 못했다. 왕에게? 아니,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이미 늙어 풍선같이 살찐 여인을 아직도 애인이라고 데리고 있다는 것이 수치스러워 이별을 결심했고, 일반인이 생각할 수 없는 거금을 희생시켜 크리스텔을 추방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오래 살 줄 알았지? 자신도 얼마 있지 않아 그만 숟가락을 놔버린다.
이제 왕위는 공작 계승자인 어린 아들에게 넘어가야 마땅할 터. 이때 우리의 주인공이자 돈이 많은 요제프 쥐스는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공작이 죽기 바로 전에 때마침 뷔르템베르크에 놀러온 프러시아 황제의 원수great general이며 베오그라드 총독이자 루트비히 현 공작의 사촌인 동시에 공작위 계승서열 4위밖에 안 되는 가난한 카를 알렉산더 왕자의 후원을 지지하기로 결심한 것. 페테르바르다인 전투의 승리자이며 오이겐 왕자의 오른팔이지만 정치적으론 별볼일 없는 방계의 소왕자라서 전혀 위험하지 않은 존재. 그래서 할 수 없이 정중한 신사, 호감가는 동료이자 기분 좋은 친구를 자임하는 신사에게 뭐 볼 일이 있다고 그를 지지하는지. 그러나 사람들은 모른다. 저 먼 옛날 중국에서도 일찍이 여불위라는 인물이 있어, 조나라 한단에 볼모로 잡혀있는 왕족 떨거지 중의 떨거지인 안국군의 서자 이인에게 자신의 재물과 첩을 아낌없이 바쳐 끝내 그의 아들을 진나라 왕이자 훗날 시황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는 것을.
여불위가 그랬듯이 요제프 쥐스도 기꺼이 카를 알렉산더 왕자를 도와 그가 뷔르템베르크의 차기 공작으로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불위가 곱게 죽었나? 천만의 말씀. 모든 재주와 지혜로 유방을 도와 그가 천하의 패권을 쥐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한신은 결국 팔팔 끓는 물에 산채로 던져지는 참화를 겪었다. 이방원을 태종으로 만든 처남 민무구, 민무질은 말로만 유형에 처해졌다가 귀양길 행로에 결국 목매달려 죽었다. 다 그런 거다. 반면에 유방의 손에 천하를 쥐여준 장량은 스스로 역사의 뒤편으로 스르르 사라지며 한 말씀 하셨다지? “한 판 잘 때려 놀았다!”
이제 쥐스를 바라보는 또는 읽는 독자들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쥐스가 자기 손에 쥐어진 권력을 사용하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자기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있다. 여불위와 한신의 길일까, 혹은 장량의 선택일까? 사실 그건 뻔하다. 권력을 손에 쥐기도 힘들지만 놓기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려운 법. 이 독후감을 읽는 분들도 그의 행적을 한 번 따라가보시면 어떨까?
재미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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