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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끄나의 아가씨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윤준식 옮김 / 예니 / 1998년 6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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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이라도 다 읽는 수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은 서로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고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고 해서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다. 이들 가운데 좀 사나운 성깔을 지닌 스페인계 사람들이 모여 산 곳이 힘 깨나 쓰는 인간들한테 밀려, 밀려, 또 밀려서 악만 남은 상태로 저 안데스 넘어 태평양 연변에 길게 퍼져 살게 된 칠레가 있다. 칠레 사람들이, 특히 남자축구 국가대표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데, 이들의 용감무쌍함은 정말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1879년, 조선이 제물포항을 열고 불과 3년 후에, 볼리비아하고 칠레가 한 판 붙게 됐다. 이때 태평양 극동 볼리비아 해안의 바로 위에 페루 해안이 펼쳐져 있었고, 볼리비아와 페루는 거의 형제국과 다름없어서 페루는, 볼리비아와 연합하면 2개 국가의 연합군이 그깟 칠레 하나를 못 이길까 싶기도 하고 그러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참전을 했다가 둘 다 쌍코피가 터지게 된다. 페루는 전쟁에 져서 타크나, 이 책에선 따끄나 주를 1929년까지 근 45년간 칠레에 양도해야 했으며, 볼리비아는 태평양 해안을 전부 가져다 바쳐야 해서, 지금 볼리비아는 바다에 면해 있지 않으면서 해군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로 찌그러졌다. 해군을 유지하는 이유가, 언젠가는 치욕을 갚고 해안을 되찾으리라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라지만, 불행하게도 당시에 잃은 황무지에 (며칠 전에 독후감 쓴 조지프 콘래드의 <노스트로모> 무대와 매우 비슷하게) 세계 최고의 매장량을 갖춘 구리와 니켈 광산이 있어서 현재 칠레 경제의 절반 가까이 부담하는지라, 볼리비아가 북한에 이은 다음 순서로 핵폭탄을 개발해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는 한은 거의 희망이 없어 보인다. 라틴 아메리카 3국은 1879년에서 1884년까지 있었던 전쟁을 “태평양 전쟁”이라고 부른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1981년 작품인 <따끄나의 아가씨>의 첫번째 무대가 바로 이 당시다. 페루가 괜히 참전했다가 젊은 청년들만 골로 보내고 따끄나 주를 통째로 가져다 바친 초기에 당시 기준으로는 여성들의 전성기이자 결혼 적령기를 지나고 있던 마마에 아가씨가 있었으니 바로 표제의 “따끄나의 아가씨”이다. 이 아가씨를 낳다가 어머니가 그만 세상을 떴고, 몇 년 후 아버지까지 한 많은 세상살이를 접으면서, 그것도 염병을 한다고 자신의 남은 돈 전부를 깨끗하게 빚잔치 하는 데 몽땅 쏟아 넣어, 나중에 “마마에”라고 불릴 소녀 엘비라는 빨간 빈 손의 고아 처지로 떨어져버린다. 친척들이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어 매우 부유하고 친척에게 활수하지만 청결 강박증이 있는 숙부 메넬라오와 숙모 아멜리아가 아이를 거두어 따끄나 주의 주도 따끄나 시의 저택에서 자신들의 딸 카르멘과 함께 키워 드디어 결혼을 시키는 시점에 왔다. 조카라고 해도 친딸 카르멘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교육시키고, 잘 먹이고 입혀 상당히 아름답게 키운 것은 물론이고 결혼을 위하여 웨딩드레스를 비롯한 신부 옷과 혼수품은 전부 유럽에 주문해 직접 조달한 것이었는데, 신랑감이 바로 칠레 군 장교 호아킨이었다. 문제가 발생한다. 호아킨은 따끄나에 주둔하면서 엘비라와 약혼을 했고, 이 전에는 물론이고 약혼 중에도 세 아이를 둔 서른살의 유부녀 까를로따 여사와 뼈와 살이 타는 불륜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던 거였다. 호아킨은 매일 저녁 엘비라와 만나면서 깊은 페팅을 요구하지만 교육을 잘 받은 엘비라는 혼인 전에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버텨 약혼자의 김을 빼놓기만 한다. 그러나 혼인 전전날. 혹은 그보다 조금 먼저, 난데없이 엘비라 앞에 등장한 까를로따 여사. 자신과 호아킨이 얼마나 속궁합이 잘 맞는지를, 결혼 후에도 호아킨이 엘비라와 관계하면서도 자신의 몸을 떠올리리라는 것을 상세하게, 그러나 질투심 넘치고 그만큼 표독하게 설명을 하고 돌아갔고, 결국 엘비라는 결혼 전날 밤, 유럽에서 배 타고 도착한 웨딩드레스에다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확 질러버리고 만다. 자기 손도 함께 타는지도 모르고.
두번째 장면. 1950년 정도. 어느새 호칭이 엘비라에서 ‘마마에’로 바뀐 따끄나의 아가씨는 여전히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이며, 사촌동생 카르멘과 그녀의 남편 뻬드로와 함께 산다. 여기서 약간 숫자의 오류가 발생하는지, 아니면 내가 아는 태평양 전쟁과 칠레의 페루 침공 역사 사이에 또 뭐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어느새 마마에는 백살 가량을 먹어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걸음과 눕기조차 스스로 할 수도 없는 지경까지 와서 조카 에밀리아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처지가 됐다. 뻬드로도 이젠 뻬드로 할아버지로 불리며 가운데 중中을 쓰는 중등도 치매에 시달리고 있다. 하여간 세 명의 노인이 다 살아 있으며, 뻬드로-카르멘 부부의 중년 자녀 아구스띤, 세사르, 에밀리아에 이르러 집안의 부는 어느새 홀랑 빠져나가고 노인들을 부양하기에도 버벅거리는 상태다.
아구스띤은 장가도 들지 못했고, 네 자녀를 부양하며 세 명의 노인을 돌보는데도 가세를 보태야 하는 세사르는 차라리 아구스띤이 부러울 정도인데, 정작 한심한 건 에밀리아. 에밀리아는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자마자 남편 새끼가 도박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니 러시안 룰렛을 감행하는 바람에 총알 한 방에 머리통과 뇌수가 허공에 흩뿌려지는 참사를 겪게 된다. 이 유복자가 거처를 리마로 옮겼고, 무대에선 같은 무대의 한 쪽을 사용하는 시인 지망생이었다가 지금은 작가, 극작가를 겸하는 벨리사리오. 독후감 읽는 분들께 미안하다. 주인공이 이제야 나타났다. 당시 벨리사리오는 페루에서 주로 삼촌들의 도움으로 법과 대학을 다니며, 졸업을 하기만 하면 변호사가 되어 집안을 중흥시키겠다고 말로만 호언장담하면서 실제로는 허황스럽게 시인이 될 생각만 하고 있는 상태로 언제나 엄마와 친척들의 넘치는 기대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벨리사리오는 자신의 변호사 운운을 이유로 공부하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라도 하라는 삼촌들의 말을 단칼에 못들은 척했으니. 자, 이제 슬슬 감이 잡히시지? 벨리사리오의 가족사, 예컨대 러시안 룰렛을 하다가 엉뚱하게 골로 가고 만 아빠를 둔 것 같은 건 요사 특유의 맹랑한 과장이더라도 법과대학을 다니며 집안을 중흥시킬 것이라는 친척들의 기대감을 받아온 것 등을 감안하면, 다분히 요사 스스로의 이야기다.
아니나 달라. 세번째 장면은 1980년의 리마. 벨리사리오의 작업실이다. 이제 제일 연장자 따끄나의 아가씨 마마에와 뻬드로 할아버지, 카르멘 할머니는 다 돌아갔고, 아구스띤과 세사르, 에밀리아가 그들의 자리를 대신 꿰차고 있을 듯한 시간. 이렇게 벌써 세대는 세 바퀴를 돈 상태에서 벨리사이로는 자신의 가계를 소설로 쓰며 지나간 인물들을 소환한다. 이렇게 1880년대, 1950년과 1980년, 그리고 또 필요하다면, 물론 실제로 1880년과 1950년 사이의 시점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은 무대를 둘로 나눈 두 세트에서 자유자재로 변주된다.
얼핏 읽으면 <따끄나의 아가씨>는 평생 처녀로 살다 죽은 마마에의 한 생애와 사랑 이야기라고 읽힐 수 있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그것보다, 어떤 방식으로 허구, 즉 이야기가 탄생하는지를 설명하는 요사 식 서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두번째 경우에 더 힘을 주고 싶기도 하다.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작가 벨리사리오가 다 밝힐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가 쓰는 것이 픽션이니까. 픽션은 현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실제적 불만, 그것을 콕 집어서 뇌의 작용으로 새로운 화학변화를 일으키는 결과물이니까. 그것을 위해 실생활은 후세의 작가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다양한 방식으로 망각과 혼돈의 구덩이를 군데군데 파 놓은 것이기도 하다. 지나간 “사실”이 진리인가? 아닐 걸? 사실을 꾸며 새롭게 보이게 하는 “이야기”, 그게 진리이며 진실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라고? 아니면 말아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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