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이관우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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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까지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유대계 작가인지 몰랐다. 1897년에 발표했지만 이후 수십년 동안 외설물, 심지어 포르노그라피의 혐의를 쓰고 판매 및 공연 금지를 당한 극작 <라이겐>, 말년 작품으로 정말 많은 등장인물이 출연하는 장편소설 <트인 데로 가는 길>을 읽었음에도, 그저 이이의 작품에는 유난히 유대인들이 많이 등장하는구나, 싶었을 뿐, 작가 자신이 유대계인 줄은 생각도 안 했다. 유대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업이 음악가, 연주자, 그리고 금융업이라고 칭하는 고리대금업이라 그랬는지 아버지, 아트루어 본인, 그리고 동생, 게다가 외갓집까지 모두 다 의료 전문인 집안인 것 하나 가지고 설마 작가가 유대인일까,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거 같다. 왜 이렇게 설레발을 치느냐 하면, 지금 독후감을 쓰는 중편소설 <죽음>에서는 등장인물이 유대인이냐 아니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 아버지 요한 슈니츨러 씨가 후두학 전문의고 아르투어가 젊은 시절에 아버지의 조수, 시쳇말로 새끼의사를 몇 년 했다는 거, 그리하여 호흡기 질환과 구태여 결핵이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이 비슷한 질환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꽤 많이 관찰할 수 있었고, 심지어 숨을 거두는 장면도 목격을 했을 터라, <죽음>을 쓰는데 작지 않은 도움을 받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죽음>은 1892년 완성해서 1894년 잡지에 세 번에 걸쳐 연재를 하고, 1897년 출판한 중편소설이다. <트인 데로 가는 길>에서도 짧게 이야기한 바 있지만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은 없을 것이 틀림없는 바, 여태까지 의사 짓을 하게 만든 아버지가 1893년 숨을 거두는 바람에 이제 청진기를 벽난로에 던져버리고 불을 확 싸지른 슈니츨러는 그 해에 당장 자신을 도발적인 극작가로 이름이 나게 만든 <라이겐> (혹은 <윤무>)를 발표한다. 한 해가 지나고 1894년에 <죽음>을 유명 잡지에 연재하자 이번엔 그를 실력 있는 산문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고 하니 당시 기준으로 대단하기는 대단한 작가였던 모양이다. <죽음>은 당연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을 내는데, 작품의 플롯도 대단히 간략하여, 폐병 환자의 마지막 1년을 그렸다.


​  이 작품에 방점을 찍는 것은, 죽어가는 작가, 게다가 19세기에는 결핵이나 매독으로 죽는 것에 일종의 매력 또는 판타지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하는데, 작가나 독자로 하여금 뭔가 하여간 애틋한 감상을 기대하게 만드는 반면, 직접 폐병으로 인한 죽음의 장면을 목도한 적이 틀림없이 있을 슈니츨러는 독자의 기대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적어가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죽음이란 건 미모의 여배우가 창백한 화장을 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통통한 얼굴을 하고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와중에도 할 말은 꼬박꼬박 다 한 연후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하고 죽지 않는다. 세상의 어떤 연인도 아름답게 이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누구도 고운 모습으로 죽지 못하는 게 인생이고 인간이다. 그래서 죽어가는 혹은 이미 죽은 사람더러 가끔 “정 떼려고” 이런 모습, 저런 행동을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지

  등장인물은 딱 세 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머지는 전부 엑스트라. 스무 살에 시작해 스물한 살에 막이 내리는 아름다운 아가씨 마리. 마리는 몇 살인지 모르지만 아직은 젊다고 해야 할 작가 펠릭스와 동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펠릭스는 자신의 이름 felix 처럼 행운이 따라붙기는커녕 결핵으로 보이는 폐병을 앓고 있고, 이를 어릴 적에 죽마를 함께 타고 지낸 의사 친구 알프레트에게 치료를 맡기고 있었다. 주연은 마리와 펠릭스, 알프레트는 조연이다. 이렇게 세 명이 이야기를 꾸려간다.

  알프레트가 자신의 최선을 다해 펠릭스를 치료하는 건 환자 본인도 알겠는데, 점점 병세가 나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알프레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좋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완치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만 내놓는 데 의심이 든 펠릭스는, 어리석게도 (작가의 아버지를 빙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대학병원의 교수 의사 베르나르트 박사를 찾아가 정밀검사를 받는다. 베르나르트 박사는 대학병원 의사들이 늘 그렇듯이, 이 때가 1890년인데, 당신의 남은 생명은 1891년 1월에서 2월까지니까 미리 각오하고 있으슈, 라고 진실을 말해버렸다. 작품의 시작점은 1890년 5월. 한창 봄을 즐길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빈이 위도 47도 지역에 위치해 있으니 해만 떨어졌다 하면 팔뚝에 오소소한 소름이 돋는 쌀쌀한 날씨다. 아직 그렇지는 않지만 저녁 어스름에 공원 벤치에서 마리 혼자 펠릭스를 벌써 30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오늘따라 우중충한 표정으로 등장한 펠릭스는 나름대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프라터(그냥 도심에 있는 아름답고 넓은 공원 정도로 생각하자)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더니 밥상을 앞에 놓고 갑자기 “뜨겁게 흐느끼면서” 울기 시작했다. 마리 입장에서 “내가 흠모하는, 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기”인 펠릭스 때문에 밥맛이 똑 떨어졌다. 그러다가 드디어 펠릭스가 마리한테 고백을 하는데, 앞으로 자신 앞에 남은 생은 1년에 불과하다고, 자긴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것.

  마리의 마음이 찢어진다. 그리하여 다음날 날이 새자마자 아직 영업 개시도 하지 않은 알프레트한테 쫓아간 커플은 의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요구한다. 알프레트는 냉정한 베르나르트 박사하고는 다른 종류의 의사라서, 여전히 완치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펠릭스는 자신이 1년 안에 죽을 것임을 안다고, 마리는 나를 잊고 다른 남자를 찾아가야 한다고 어리광을 부린다. 이 말 듣고 가만히 있거나, 어떻게 내 마음을 그리 잘 알아? 나한테 유산 좀 남겨줄 수 있어? 그럼 영원히 자기를 잊지 않을 텐데, 라고 말하는 여주인공은 없는 법이라서, 순간적으로 확 돌아버리며 이렇게 외친다.


​  “독약 좀 주세요. 나는 이 사람보다 1초도 더 오래 살고 싶지 않아요. 이 사람이 그걸 믿도록 해야겠어요.”


  지금 당장 벌컥벌컥 독약 한 사발 들이켜 칵 죽어버리겠단다. 나는 이것이 진심이라는 걸 이해한다. 의사 알프레트도 알았다. 그리하여 의사는 커플에게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의 여행을 처방한다. 신선한 공기와 편안한 휴식이 둘을 다시 온전한 상태로 되돌려 놓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프레트 자신 역시 회생 또는 생명 연장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들은 오스트리아 동남쪽, 스위스나 이탈리아일 수도 있는 호수에 바짝 접한 작은 집을 빌려 숙박을 하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건강에 관한 한 이름처럼 펠릭스(felix:행운)하지 않았지만, 펠릭스한 집안 태생이라 노동하지 않고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룸펜 인텔리겐치아 부르주아다. 그래 앞 문단에서 마리한테 재산 좀 유증해주는 것이 어떤가 운을 떼어봤던 건데, 여태까지도 그랬고 심지어 진짜로 죽을 때까지 비슷한 이야기 한번 꺼내지 않는다. 그래, 달리 부자겠니? 이런 구두쇠 노랭이 기질이 있어서 부자겠지.

  이제 이야기는 간단하다. 이들 커플에게 남아 있는 것은 병이 깊어짐에 따라 아름다운 죽음과 아름다운 이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과, 삶에 대한 집착, 홀로가 아닌 ‘나 혼자’ 죽음을 맞아야 하는 두려움, 그리고 이런 환자를 직접 돌보는 간병자가 느껴야 하는 복잡한 심정. 사랑에서 애정으로 갔다가, 결국 정 밖에 남지 않게 되는 과정. 나중엔 그나마 있던 정도 싹 사라지는 비정한 죽음 또는 이별의 과정이다. 스스로 독약을 청했던 마리가 정말 자신과 함께 죽어줬으면 하는 펠릭스와, 자신이 처음엔 그렇게 주장했지만 결코 환자와 함께 죽고 싶지 않아서, 혹시 환자가 자기 모르는 사이에 독약을 물에 타 먹이거나 흉기로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마리.

  그래. 그렇게 죽고 이별하는 거다. 아름다운 이별과 아름다운 죽음은 세상에 없다. 꼭 책을 읽어야 아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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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2-20 08: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ㅠㅠ
죽음은 실재의 극치라서 감히 아무도 닥치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하는듯요. 그래서 은유하고 미화하는듯요
과정속에서 마리의 마음의 변화는 이해하겠는데, 펠릭스는....^^

Falstaff 2022-12-20 15:43   좋아요 1 | URL
죽어가는 마당인데 펠릭스의 마음 역시 이해 못할 것도 없더라고요. 처음 마음엔 그러했지만 진짜 죽을 거 같으니까 혼자 죽기가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러니까 누구든지 죽은 다음에 애닲아 하지 말고 있을 때 잘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

stella.K 2022-12-20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죽은 자는 말이없다만 알고있는데 이 사람 책이 좀되더군요. 그런 걸 보면 거의 모든 작품에서 죽음을 다루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프로이트도 오스트리아면서 의사잖아요. 이 양반 프로이트에게서도 영향을 받지않았을까요?

Falstaff 2022-12-20 15:46   좋아요 1 | URL
프로이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프로이트도 슈니츨러도 과하게 섹스 오리엔티드 된 세계관에 사로잡히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이 양반 작품이 많지만 몇 개 읽어보니까 이젠 내돈내산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yamoo 2022-12-27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와 슈니츨러는 아주 잘 알고 있던 사이는 아니였지만 프로이트가 슈니츨러의 작품을 매우 흠모했고, 자신이 힘들게 쓰고 있는 임상 이론서들과 달리 그 내용을 절묘하게 작품에 잘 녹여내어 재미있는 우화로 쓰는 능력을 매우 매우 부러워하고 질투까지 했다고 합니다. 정신분석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꽤 유명한 이야기..

슈니츨러의 <사랑의 묘약>은 그 단면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죽음>은 제가 안봐서 모르지만, 여기에도 정신분석적인 모티브를 아주 잘 차용하고 있을 거 같습니다. 슈니츨러는 당시 정신분석 이론에 꽤 정통했었다고 합니다..

슈니츨러의 거의 모든 번역본을 모으고 있습니다만, 아직 죽음은 소장하지 못했는데, 이참에 주문해야 겠습니다. 과거에 나온 거의 모든 슈니츨러 작품들을 모으다보니, 한가지 기가 찰 노릇이 같은 작품을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제목으로 냈다는 거...심히 열받았었습니다~ㅎ

Falstaff 2022-12-27 11:55   좋아요 0 | URL
아, 프로이트가 슈니츨러를 흠모.... 그렇군요.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합니다. ㅎㅎㅎ
죽음, 슈니츨러 작품 가운데서도, 그래봐야 세권 읽었을 뿐이지만, 괜찮더라고요. 내돈내산을 안 할지언정 계속 파볼 생각입니다. 도서관 다니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