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란을 날려라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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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조지 오웰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동물농장>, <1984> 그리고 <카탈로니아 찬가> 이렇게 세 권을 읽어보았다. <1984>는 저 까마득한 시절이라서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이제 새삼스레 다시 읽어볼 생각은 없다. <동물농장>의 독후감은 딱 한 줄, “유통기한을 넘긴 알레고리”라 썼고, <카탈로니아 찬가>의 독후감에는 그의 호전성과 시각적 착란현상을 발견하고는 필요 이상의 모진 소리를 해댔었다. 과한 비난을 한 것에 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지금도 반성하고 있지만 독후감을 새로 쓴다 해도 좋은 말은 못한다. 독자들의 찬사를 누리고 있는 소설작품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을 갖고 있는 작품들을 골라 소개하려 준비 중이다. 이 목록에 <카탈로니아 찬가>가 들어 있을 정도로 싫어한다. 돼지갈비 집 “장항선”에서 카운터를 보는 수염 난 노인 장항선이 북방 사람 갑옷을 입고 가끔 유튜브에 나와 외치는 고함이 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카탈로니아 찬가>를 생각할 때마다 “장항선”의 불친절한 카운터 노인 장항선이 생각난다니까.

  조지 오웰을 이토록 좋아하지 않으면서 또 이이의 작품을 읽은 이유는, 내 돈 주고 오웰의 책을 읽는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며 책값 역시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지만지에서 나와 결코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으나, 이 작품이 <동물농장>이나 <1984>, 심지어 <카탈로니아 찬가>보다 일찍 쓴 초기 작품이어서, 숱한 독자들이 조지 오웰, 조지 오웰,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 권만 더 읽어보자는 마음이 들었고, 한 달에 세 권 구입 요청을 할 수 있는 동네 도서관에 한 권의 여유가 더 있어서 사 달라고 신청을 했더니 고맙게도 사 주어 휘리릭, 읽었다.


  조지 오웰은 한국전쟁이 터지기 정확히 47년 전인 1903년 6월 25일에 인도의 벵골 지역에서 딸 하나를 둔 공무원 아버지와 반영반불(半英半佛: 반은 영국인, 반은 프랑스인) 엄마 사이에 둘째로 태어났다.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았고, 아버지는 무려 8년 동안 폭염의 인도에서 돈을 벌어 아이들 양육비를 보내주는 기러기 아빠로 지내다가 1912년 귀국해 살림을 합친다. 오웰은 열네 살 때 공부를 엄청 잘해 국왕 장학금을 받아 다른 곳도 아니고 이튼 스쿨에 입학해 졸업한다. 이튼을 나왔다 하면 다음 코스는 당연하게 왕립 사관학교, 또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였을 텐데, 이때부터 좀 삐딱선을 타던 오웰은 열아홉 살이 되는 1922년에 제국주의 경찰이 되어 버마로 가 거기서 경찰훈련학교를 졸업한 후 인도 제국주의 경찰 소속으로 버마, 즉 미얀마에서 근무한다.

  1928년이 되자마자 정식으로 경찰에서 뛰쳐나온 오웰은 파리로 건너가 본격적인 무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29년 말에 영국으로 돌아와서 여전히 가난한 작가 지망생으로 전전하면서 진보 문예지 “아델피”에 기고도 하고 편집장 리처드 리스 경을 만나 죽을 때까지 지속될 우정을 쌓기도 한다. 이후 갖은 형태의 개고생을 해 급기야 구빈원 구경까지 한 오웰은 1932년 4월, 런던 근교의 호손스 남자 고등학교에서 임시 교사생활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발표/출간하는데 이때부터 본명 에릭 블레어를 버리고 필명 조지 오웰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시작할 때부터 대차게 나는 전업작가를 할 것이다, 라고 문학에 목숨을 걸고 가장 비루한 삶을 살면서 글을 쓰다가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젊은 시절의 “몇 년”은, 내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무지하게 길고 지루한 시간이다) 빵을 벌기 위해 남자 고등학교 교사로 돌아오는데, 이 기간을 소설로 쓴 것이 바로 <엽란을 날려라>이다. 에릭 블레어 또는 조지 오웰 대신 주인공으로 ‘고든 콤스톡’이라는 스코틀랜드 혈통의 중산층 청년이 등장하고, 잡지 “아델피” 출판사의 편집장 리처드 리스 경 대신 잡지 “적그리스도”의 선한 발행인 이자 부유한 귀족 출신 레블스턴이 조연을 맡는다. 호손스 남자 고등학교 대신 “뉴앨비언 광고회사”에서 빵을 버는 것으로 각색을 해놓았지만, 주인공 하는 꼴을 보면 오웰과 거의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오웰의 바이오그래피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여성이, 소설의 흥미유발을 위해 서른 살에 육박하는 숫처녀 로즈메리를 등장시킨다.


  엽란이 무얼까? 나는 엽란이 설마 이 엽란葉蘭일까,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 엽란이 맞았다. 관상용, 꽃꽂이용, 약용으로 쓰이는 상록 다년초. 영국인들, 특히 중산층 계급이 집안의 미화를 위해 창문이나 테라스에 엽란 화분을 두는 것이 1930년대 초에 굉장히 유행이었나 보다. 주인공 고든 콤스톡은 할아버지 시절엔 꽤 떵떵거리면서, 많은 이들에게 뒤로 온갖 독설과 저주를 받으며 살았지만 지금은 거의 완전히 몰락해 살아남은 열한 명의 딸, 아들이 남긴 콤스톡 가문의 유일한 남자 후손이다. 여자 후손도 딱 한 명 남았으니 고든의 다섯 살 많은 누이 줄리아. 줄리아는 가문에서 가장 총명한 고든이 콤스톡 가의 중흥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 희생만 겁나게 하다가 결혼도 못하고, 결혼은커녕 연애도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책이 끝난다. 전형적인 희망고문의 예랄까.

  고든은 주 2파운드를 받고 매케츠니 씨의 서점에서 일하며 이튼과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신사들을 우습게 아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책방 점원이 정식 직업이고 꿈은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돈도 버는 거다. 그렇다고 완벽한 무명은 아니다.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평생 친구가 될 레블스턴이 도움을 주어 첫번째 시집 《쥐》를 출간해 권위있는 잡지사의 서평에 “앞길이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젊은 마음에 앞으로 셰익스피어 만큼은 아닐지라도 예이츠나 워즈워스 수준까지는 가비얍게 올라갈 것 같았을 듯하다. 그렇지 않았으면 “뉴앨비언 광고회사”에서 주급 4파운드 10실링을 받고 일했으며, 어여쁘다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몸에서 건강한 청량미를 뿜뿜 내뿜는 순결한 로즈메리와의 사내 연애를 포기하면서 절반도 안 되는 급여의 별 볼 일 없는 책방 점원 노릇을 하겠는가. 고든이 보기엔 세상의 모든 건 전부 돈으로 귀결한다. 돈과 교양. 영국 같은 나라에서 돈 없이 (유명 사교)클럽에 가입할 수 없는 것처럼 돈 없이는 교양적인 인간이 될 수도 없다.

  이 고든 콤스톡은 책이 시작할 때부터 궁상의 극을 달린다. 1934년, 스물아홉 살인데, 담배갑에는 겨우 네 개피가 남아 있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시를 쓰지 못해 하류 중산층 정도가 거처하는 아파트에 돌아가 시를 쓸 때까지 담배 피우고 싶은 걸 참아야 하는데 문제는 오늘이 수요일이고, 금요일까지 들어올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거다. 누나 줄리아한테 또 돈을 얻기엔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도무지 못할 짓이고. 하여튼 독자로 하여금 짜증을 유발할 정도로 가난의 장면이 계속된다. 이런 거 어디서 봤다.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굶주림>에 비하면 고든 콤스톡의 가난은 아이들 장난이다. 애초에 고든의 돈,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에 대한 저항은 돌아갈 피난처, 뉴앨비언 광고회사가 있었던 상태. 사실 함순의 <굶주림>도 하도 굶어서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는 와중에도 자기 주머니에 들어온 돈을 더 형편이 어려운 노파에게 건네 주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등장하지만 애초에 허망하게 끝날 수밖에 없는 고든 콤스톡의 어리광에 비할 바는 아니다.

  조지 오웰은 고든 콤스톡의 상황에 기대 끊임없이 주장한다. 나만의 방과 연 수입 5백 파운드가 없었다고. 방과 1년에 5백 파운드가 없이 글을 쓰기 위해 이렇게 고생했었다고. 오웰이 청년기에 겪은 젊음 특유의 객기를 폄훼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이런 모진 경험을 각오하고 창작, 또는 자신의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젊음의 용기를 가상하게 생각한다. 비록 내 아이들과 내 친척이 그렇게 한다면 혀를 끌끌 차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겠지만. 그렇게 힘든 일이다. 자신을 걸고 일을 하는 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오웰이지만 작품 속 주인공이 지나온 길을 직접 경험해본 오웰의 용기도 새삼스럽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리속에서 떠오른 인물은 에인 랜드가 쓴 <파운틴 헤드>의 주인공 청년 하워드 로크. 기본적으로 하워드 로크는 건장하고 튼튼한 반면에 <엽란을 날려라>의 주인공 고든 콤스톡은 “좀이 먹은 듯 얼룩덜룩한 얼굴”에 “뼈대가 가냘픈 작고 연약한 몸, 불만 섞인 투의 동작”을 숨기지 못하는 젊은이다. 오웰은 당시 사람으로 매우 키가 큰 185cm 정도였지만. 하워드 로크는 건축가로 일하지 못할 때는 직접 공사판의 인부로, 채석장 잡부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는 불굴의 투사였지만, 고든 콤스톡은 자신이 적으로 규정하는 ‘돈’의 폭력, 또는 흐름 속에 몸을 맡겨 스스로를 포기해버리는 단계에 접어든다. 왜 이런 결론으로 치닫는지는 스포일러의 위험 때문에 차마 밝히지는 못하겠고.....까지는 아니다.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괜찮은 돈벌이. 이게 콕스톡의 질곡인 동시에 든든한 퇴각처였던 거다.

  재미는 있지만 오직 읽는 재미일 뿐이다. 그러나 조지 오웰을 좋아하지 않는 내 말을 믿지 마시기를 바라며 할 수 있는 건, 특별하지 않다는 거. 굳이 찾아서 읽을 필요가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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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1-11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저도 이 책 비슷한 시기에 지만지에서 나온 서보 머그더 책하고 같이 도서관에 신청해서 받았는데요. 앞에만 읽다가 결국 반납했어요. 다시 읽을지는 모르겠어요…. 조지 오웰 아주 어릴 땐 대단한가 싶었는데 읽을수록 제 취향은 아니더라고요. 저는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너무 투명한 정치성이 버겁더라고요. 좀 촌스런 느낌….. (제가 이렇게 느끼는 작가류에 또 루쉰이 있습니다)

Falstaff 2022-11-11 13:57   좋아요 3 | URL
지만지 오웰은 비추, 서보는 강춥니다! ㅎㅎㅎ 책값 비싸니까 오히려 처음부터 도서 신청해서 읽어야지, 이렇게 마음먹게 되고요, 그래서 더 편하더라고요. ㅋㅋㅋㅋ
오웰은 하여튼 제 눈 밖에 나서 도서관에 책이 있으면 모를까 더는 안 읽을 겁니다.
루쉰은, 홍상수 <생활의 발견> 올드, 올더, 올디스트 버전 같아서 역시 안 읽습니다. ㅋㅋㅋㅋㅋ

테레사 2022-11-11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인생,위건부두로 가는 길.. 두권을 읽었어요.근데 저는 이 두권이 다 좋았어요.하하..소설은 명서믈 듣기만해도 제 취향이 아니라 패싱하였던 기억..

Falstaff 2022-11-11 13:59   좋아요 0 | URL
파리 런던이 이 엽란하고 비슷한 류의 소설이라는 얘긴 들었습니다. 그것도 궁상맞나요? 그것도, 위건도 안 읽어봤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파리 런던 좋으셨으면 엽란도 재미나게 읽으실 듯합니다!

테레사 2022-11-1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인생은 일종의 수기같던데..아닌가..오웰이 직접 겪은 일을 엮은 것이고 위건은 르포르타쥐..장르입니다.

Falstaff 2022-11-11 19: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전 파리-런던 하고 위건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게 수기 또는 르포군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hnine 2022-11-12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아직까지는 조지 오웰을 좋아하는 사람이랍니다.
다 찾아 읽는다고 읽었는데, 엽란...은 아직 안 읽었고,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인생은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가물가물하네요.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확실하게 읽었는데, 테레사님 말씀처럼 소설 아니라 르뽀 같은 책이지요. 기자 출신 경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글이었어요.
긴 글 다 읽아보니 골드문트님이 조지 오웰 싫어하신다는거 맞나? 하는 생각이...^^ 싫어하는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셔서요 ^^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2-11-12 09:20   좋아요 0 | URL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유명해도 자신과 맞지 않는 작가가 있잖습니까. 저는, 기가 막히게 잘 쓰는 지는 분명히 알겠는데, 좋아하게 되지 않는 유명한 소설가가 한 명 있습니다. 헤밍웨이 말입지요. ㅎㅎㅎ
오웰(이 양반은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이나 헤밍웨이나 지들이 기껏해봐야 작가, 소설가 밖에 더 됩니까. 전 소설 소비자고요. 독자가 싫으면 싫은 것이지만, 오웰은 헤밍웨이와는 달리 좋아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싫답니다. <카탈로니아 찬가>가 결정적이었는데요, 그건 나중에 페이퍼 한 번 쓰겠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