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론 - 전면완역개정판 카이로스총서 41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 지음, 김만수 옮김 / 갈무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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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필립 고트리프 폰 클라우제비츠는 1780년에 태어나 약간의 학교 교육을 받고 12세에 입대한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완전히 소년병이지만 당시 유럽의 명문가에서는 흔한 일이었으며, 이런 전통은 20세기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이어져 13세인가 14세의 소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도 군사학교에 입학해 다니다가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2학년 과정을 마친 다음에 중퇴를 하고 만다. 그의 첫 장편소설 <도시와 개들>에 실탄 사격을 포함한 각개전투 훈련 장면도 나온다.

  더구나 클라우제비츠의 소년기로 말하자면 아홉 살 때인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여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유, 평등, 그리고 인권 사상이 주변국으로 전파되는 것을 틀어막기 위하여 1792년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연합군을 결성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일 당시였다. 혁명의 분기점은 1793년.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머리통이 몸과 분리되자마자 영국의 지원(약속)을 받아 왕당파 랑뜨낙 후작의 지휘 아래 저 유명한 방데 내전이 벌어지고 (빅토르 위고의 마지막 작품 <93년> 참조), 영국 해군의 지원을 받은 왕당파 프랑스 해군이 툴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성공하지도 못한 채 공화군의 코르시카 촌놈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테, 프랑스어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장군으로 승진시키기만 한다. 이런 와중이었으니 그간 숱한 전쟁 끝에 건강한 남자들은 이미 다 죽어 자빠진 터에 12세면 어떻고 13세면 어떤가, 그저 배꼽 아래에 꼬다리만 달렸다 하면 총과 칼을 주고 전쟁터로 밀어 넣을 수밖에.

  실제로 클라우제비츠는 13세에 마인츠에서 처음으로 전투에 참여했고, 이후 몇 년 간 라인 전투에 투입되어 복무한다. 그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소위 출세가도를 달렸다면 당대의 고전인 <전쟁론>을 쓸 지성을 갖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6세 때인 1796년부터 1801년까지 좀 한가한 부대에 배치 받아 거의 독학으로 프랑스 혁명과 전쟁사, 정치 등을 공부하다가 1801년에 베를린 군사학교에 입학해 04년엔 수석으로 졸업한다. 그러나 상대는 당대 최고의 전략가인 보나파르트. 클라우제비츠는 1806년에, 마렝고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더불어 나폴레옹의 3대 승전이라고 일컫는 예나 전투에 프로이센의 아우구스트 왕자의 부관으로 참전했다가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쌍코피를 줄줄 흘리고 포로로 잡히는 바람에 파리에서 1년을 머물며 견식을 높이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온갖 전쟁터, 심지어 러시아 군대에 합류해 대 나폴레옹 전까지 두루 겪은 클라우제비츠는, 아는 것이 많은 인간들이 가끔 그렇듯이, 자기가 속한 군대에서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해서 전선에 배치되는 영광과 거리가 먼 베를린 일반 군사학교의 교장으로 12년 동안 근무하는데, 여기서 이 <전쟁론>의 대부분을 집필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12살 소년병이 50세의 완숙한 나이가 된 1830년, 보병 출신 클라우제비츠는 드디어 폴란드의 브레슬라우에 있는 포병부대 감독관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적군의 총탄이 아니라 고열과 설사로 북유럽을 덮었던 콜레라에 걸려 몇 날 며칠 동안 피똥을 싸다가 1831년, 쉰한 살의 나이로 숟가락을 놓고 만다. <전쟁론>을 미완성 유작으로 남겨 놓은 채. 하긴 당시에 쉰한 살이면 살 만큼 살긴 했다.


  클라우제비츠는 19세기 초의 시각으로 “현대전쟁”과 “최신 전쟁술”에 관한 책을 썼다. 원래 해군이 되고 싶어했던 보나파르트와 달리 오직 육군 경험만 있는 클라우제비츠 입장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병력은 보병, 포병, 기마병, 이렇게 세가지였다. 소총은 1분에 8발 정도를 발사할 수 있었고, 규격이 비슷해서 적군으로부터 탈취한 대포에 아군의 포탄을 장전해 발사할 수도 있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이젠 클라우제비츠가 주장하는 전략, 전술, 전투, 전투력, 방어, 공격 같은 것이 거의 쓸모가 없어졌다는 거다. 지금은 GPS와 항공기, 미사일을 통해 오차 1미터 미만의 정밀 타격으로 목적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괴하고, 전세계의 TV 시청자들이 파괴와 학살의 장면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시대 아닌가 말이지. 이 당대의 고전은 옛 시절,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교련 수업을 받던 때에나 어울릴 텍스트. 하지만 색인까지 1,128쪽, 정가 55,000원. 본전 생각나서 꾸역꾸역 다 읽었다.

  이 책의 전제사항은 문명국과 문명국 간의 전쟁이다. 쉬운 이야기로 유럽 국가 간의 정치적 다툼을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 왕실과 귀족 등의 계급이, 한편으로 죽어 자빠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탈을 피할 수 없었던 평민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은 채, ① 적의 국경에 있는 영토 일부를 점령하든지 ② 적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이쪽의 어떠한 평화협정에도 따르게 하려는 목적으로 적에게 무제한적 폭력을 무자비하게 구사하는 행위이다. 유럽 인종들 가운데 소위 명예를 아는 귀족이나 부르주아의 경우, 흔히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선택하는 것이 결투이듯, 전쟁이란 나라 간 대규모로 확대된 결투일 뿐이다. 그렇게 인식이 박혀 있으니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툭하면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겠는가 말이지.

  다른 전제사항은 적도 아군과 마찬가지로, 아니면 적어도 상당히 유사한 수준의 전투력과 군대의 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이다. 즉, 카를 폰, 귀족들만 쓸 수 있는 관사 von에서 보듯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전쟁은 문명적인 인간들 간의 다툼일 뿐, 유럽 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벌어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살육, 점령, 식민통치 전쟁에 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클라우제비츠의 생각으로 말씀드리자면 아직 인간으로 진화하기 직전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포유동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이 책에서 당시의 현대 전쟁에 관하여 서술을 했으니 훌륭한 최고 지휘관의 모델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가 프로이센 사람이라 예의상, 그리고 사실 전쟁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기도 한 18세기의 전쟁 영웅 프리드리히 2세, 프로이센에선 프리드리히 대왕이라 숭앙하는 전쟁광을 첫번째 모델로 했고, 당연히 19세기에 가장 많은 인간의 목숨을 거두어 간 인간, 혁명이란 춤은 프랑스 인민들이 추었지만 혁명의 영광을 홀랑 따먹어버린 코르시카 촌놈 출신의 자칭 황제 부오나파르테를 두번째 모델로 삼았다. 이들이라고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아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전쟁의 결과와 그 결과를 만든 원인에 초점을 맞춰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의 위험, 육체적 고통, 불확실성, 우연, 최고 지휘관의 재능, 전쟁 천재의 활약, 전쟁 중의 지성 등을 설명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클라우제비츠가 이제(19세기 초엽)는 다시는 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당시의 마라톤 전투가 일어날 수 없다고 했듯이, 2백년 후인 지금은 다시는 프리드리히 2세의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나 보나파르트의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 이제 전쟁이라고 하면 이미 죽고나서 근 80년이나 흐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경구가 훨씬 더 와 닿는다.


  “3차 세계대전에서 어떤 무기가 사용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4차 세계대전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돌과 나무 막대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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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6-28 0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연 써주신 글을 읽어 보니
18-19세기 당대의 전쟁론은
드론이며 각종 최첨단 현대
무기가 등장한 현재에 적용
시키기가 무리이지 않나 싶
습니다.

그저 왕년의 고전으로 보면
될 듯 합니다.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는
확실히 운빨이 쵝오였던 사
내인가 봅니다.

Falstaff 2022-06-29 06:04   좋아요 1 | URL
오, 나폴레옹은 운빨보다 전쟁을 통해 한 세기에 가장 많은 젊은이들을 살해한 천재적인 사이코패스로 기록되어야 할 거 같아요. 이때 건장한 남자들이 몰살을 당해서 프랑스 남자의 씨알이 작아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바람돌이 2022-06-28 10: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값을 보니 본전생각이 안날수 없을듯요. ㅎㅎ 저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보는것도 재밌긴 하겠는데 역시 분량은 확 부담이네요. ㅎㅎ

Falstaff 2022-06-29 06:05   좋아요 1 | URL
이 책은 권해드리고 싶지 않네요. 무엇보다도요, 지루합니다. ㅎㅎㅎ

그레이스 2022-06-28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값 아까워서 읽어야하는데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주저하게 되는 책이예요!^^

Falstaff 2022-06-29 06:06   좋아요 1 | URL
그러니 안 사고 도서관 가시는 게 제일 좋습니다. 사서 안 읽는 것보다 얼마나 좋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