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간이 윌슨 창비세계문학 31
마크 트웨인 지음, 김명환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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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발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함과 동시에 돈방석에 앉고 한 십 년이 흐른 1893년 1월 2일, “이딸리아 피렌쩨”에서 3마일 들어가는 세띠그나노 마을의 빌라 비비아니에서는 원래 이름이 쌔뮤얼 랭혼 클레먼스이지만 마크 트웨인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써 팔아먹고 사는 미국 소설가가 <톰 소여…>, <허클베리…>를 제외하면 다섯 번째인 장편소설 <얼간이 윌슨>의 마지막 문장 “채권자들은 그를 강 아래로 팔아버렸다.” 가운데서도 제일 마지막 점, 피리어드를 찍기 위해 잉크를 듬뿍 묻히고 있었다.
  “독자에게 하는 귀엣말”이라 이름 붙인 서장과 21장, 그리고 마무리 장, 합해서 모두 23개의 챕터로 만든 <얼간이 윌슨>은 각 장이 “얼간이 윌슨의 책력冊曆”이라는 촌철살인의 경구로 시작한다. 이 윌슨의 책력이라는 건, 도무지 위트와 페이소스 등을 구별할 줄 아는 주민이라고는 구경하기 힘든 촌 동네에 새로 이사 온 똑똑한 변호사 데이비드 윌슨이 자신만의 경구를 써서 카드 형태로 모은 것이다. 예를 들어 1장에 소개하는 얼간이 윌슨의 책력은 이렇다.
  “진실을 말하든지 뻥을 쳐라 ᅳ 여하튼 핵심은 이기는 거다. ᅳ”

 

  3장에 소개하는 책력은 더 재미있다.
  “삶이 어떤 것인지 알 정도로 충분히 오래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가 아담, 즉 우리 인류의 첫 큰 은인에게 얼마나 크게 고마워할 빚을 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는 이 세상에 죽음이 있게 했던 것이다.”

 

  각 장 앞에 이렇게 장을 간략하게 대변할 수 있는 인용구를 앞세우는 장편소설은 숱하게 읽어봤지만, 마크 트웨인처럼 내놓고 “비틀린 유머”, 좋은 말로 하면 해학과 풍자가 풍만한 위트를 앞세우는 작가는, 본 적이 있구나.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 작가 이름도 마크 트웨인이네.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마크 트웨인은 <아서 왕…>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이 작품 <얼간이 윌슨>에서 애초에 익살극을 쓰기로 작정을 해서 희한한 익살과 유머를 혼합해 도처에 뿌려놨다. 근데 가만히 보니, 우선 나부터 그랬던 것처럼, 설마 이 부분도 농담일까 싶어 엄숙한 독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짐짓 심각하게 넘어갔다가 나중에, 아주 나중은 아니고, 문장이 끝날 때쯤 해서야, 아이고, 이게 농담이었구나, 헛웃음을 칠 때가 있다. 이런 경우를 두 번 당하면, 좋다, 삼세번은 없다, 라는 각오를 저절로 하게 된다.

 

  <얼간이 윌슨>의 무대는 미주리 주의 주도 세인트루이스에서 증기선을 타고 반나절 거리의 하류에 있는 미시시피강변의 소박한 집들이 아늑하게 모인 작은 마을 ‘도슨스랜딩’이란 곳이다. 1830년에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2월 초 스코틀랜드계 부모를 둔 젊은이로 동부에 있는 법과대학과 대학원과정을 마친 스물다섯 살의 데이비드 윌슨이란 청년이 자신의 힘으로 앞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도전정신에 충일하여 증기선에서 내린다. 미국에서, 그것도 19세기 초에, 동네 행사를 하면 남자들 4백 명 정도가 모일 정도이면 큰 동네 아닌가? 하여튼 작가의 주장대로 하면 도시 기준으로 순박한 시골 동네에 오랜만에 외지인이 살려고 이사를 오는 것이라 상당한 궁금증을 유발했단다. 그래서 어떻게 생긴 이방인인지 구경도 할 겸 많이 모여들었는데 동네 똥개들 역시 새로운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 도착한지라 윌슨에게 달려가서 좀 사납게 축하인사를 한 모양이다. 위협을 느낀 윌슨이 처음 도착한 동네에서 성질을 낼 수도 없고, 그럴 인품도 아니기도 해서 그저 농담으로 한 마디 한 것이 이랬다.
  “저 개의 절반이 내 소유면 좋겠다. 내가 가진 절반을 죽여버릴 테니까.”
  이 말을 들은 “순박한” 시골 사람들은 개의 반을 진짜로 죽이면 나머지 반도 죽을 것이고, 그럼 다른 사람 소유의 반을 물어주어야 하는 걸까, 다른 사람이 소유한 절반의 개를 죽인 책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자기들까지 궁리를 하더니, 결론으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은 멍청이 바보일 것이라고 단정해, 이후부터 윌슨을 “얼간이”라고 부르기로 합의를 봤다.
  앞에 소개했다시피 윌슨의 직업이 변호사. 그래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중심가에 사무실을 내고 간판을 걸기를,
  “데이비드 윌슨. 사무 및 법정 변호사. 측량 및 부동산 매매 등”
  근데 누가 얼간이한테 사무 및 법정 다툼을 의뢰하겠느냐 이거다. 의뢰인이 전혀, 완벽하게 윌슨을 찾지 않아 결국 윌슨은 간판에서 변호사 관련 부분을 삭제하고 이후 25년 이상을 지내게 된다. 물론 마크 트웨인의 소설이니 해피 엔드이고, 그건 윌슨이 여태 한 번도 의뢰받지 못한 변호사 신분으로 거의 최초의 사건에서 눈부신 변론을 통해 승리하는 장면으로 끝내겠다는 것이라는 건 마크 트웨인이나 저 영국의 디킨스 깨나 읽어본 독자라면 벌써 짐작을 할 듯.

 

  도슨스랜딩 마을에 가장 권위가 있는 사람은 40세 가량의 요크 레스터 드리스컬 지방판사다. 버지니아 출신 혈통이라는 것에 무지막지한 프라이드를 가진 천생 신사이며 명예와 영광, 이것들을 합해 완벽한 신사로 평생을 마치겠다는 종교를 신봉하는 인물이다. 대체로 정의로운 선역을 하지만 밝은 지혜를 가졌다고는 보기 힘든 인물이고, 슬하에 자식이 없다. 몇 년 후에 아내를 잃어 홀아비가 되고, 가정 살림을 돕기 위해 누이이자 역시 슬하가 허전한 과부 레이첼 플랫 부인과 함께 저택에서 산다.
  이이보다 다섯 살이 적은 친동생 퍼시 노섬벌랜드 드리스컬 씨는 많은 아이들을 두었지만 홍역, 후두염, 성홍열 등으로 모두 잃고, 서른다섯쯤 되는 1830년 2월 1일에 아들 토머스 아 베켓 드리스컬을 본다. 그러나 노산 때문인지 아이가 나오고 일 주일도 되지 않아 산욕으로 아내를 잃어버린다. 자신은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준 투기 사업을 하느라, 같은 2월 1일에 아들 발레 드 샹브르, ‘몸종’이란 뜻이지만 발음하기에 근사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이름 지은 아들을 낳은 노예 록새나에 맡겨버린다.
  근데 록새나, 이 흑인 노예는 말이 흑인이지 흑인 DNA는 겨우 1/16밖에 없고 나머지 15/16은 백인 혈통이다. 뿐만 아니라 아들 발레 드 샹브르, 그냥 체임버스로 줄여서 부르는 아들은 1/32가 흑인이고 31/32가 백인이라서 겉으로 보면 완벽한 백인이지만 그놈의 노예에 관한 법률 때문에 흑인, 깜둥이로 불리며 언제라도 지옥 같은 “강 아래” 미국 남부지역으로 팔려갈 수 있는 팔자다. 게다가 체임버스의 친아버지가 누구? 역시 빛나는 버지니아 출신의 최고급 혈통을 가진 쎄실 벌리 에식스 대령이다. 이 대령은 딱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동네의 중요한 인물로 소개할 때, 다른 한 번은 체임버스의 진짜 아버지임을 밝힐 때다.

 

  작품의 스토리는 전형적으로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 퍼시 드리스컬 씨의 집에서 노예들이 도둑질을 했고, 주인은 열 받아 노예들을 집합시켜놓고 누가 도둑질을 했는지 자수하지 않으면 모두 지옥 같은 남부, 강 아래 쪽으로 팔아버리겠다고 위협해 정말로 훔치지 않은 록새나를 제외한 나머지가 두 손을 싹싹 빌며 죄를 고백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마음 좋은 드리스컬 씨는 화가 누그러져 강 아래가 아닌 주변지역으로 팔아버리는 정도로 벌을 마감한다.
  록새나는 그러나 자기의 귀한 아들이 나중에 백인 주인에 의하여 강 아래로 팔릴 수 있음을 자각하고, 아들과 함께 물에 빠져 죽을 생각을 하다가, 31/32가 백인인 자기 아이가 주인의 아들과 전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발견하고 둘 다 홀딱 벗긴 다음에 옷을 바꿔 입히고, 요람도 바꾸어 눕힌다. 그리하여 주인이자 상속권자는 노예가 되고, 깜둥이 노예가 미래의 주인이자 상속권자로 신분이 바뀌게 된다.
  이후는 막장 드라마에 충분히 익숙한 우리나라 TV 시청자들에게 새삼스레 스토리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재밌다. 충분히 즐길 만하고 무엇보다 시간 죽이는데 완벽한 책이다. 거기다 마크 트웨인이 입담이 현란하기는 하지만, 선뜻 권하게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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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25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형적으로 우리나라 아침드라마라니. 완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뿅!

Falstaff 2022-01-25 12:06   좋아요 2 | URL
그래도 19세기 말재주라서 재미는 있지만 기대하시는 것처럼 ˝완전˝ 재미나지는 않을 듯합니다.

stella.K 2022-01-25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골드문트님의 말씀을 믿숩니다!ㅋㅋ

Falstaff 2022-01-25 15:18   좋아요 2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coolcat329 2022-01-25 1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저 이 책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해학과 풍자가 재밌는 막장 소설이군요. 좋네요~^^

Falstaff 2022-01-25 20:24   좋아요 2 | URL
ㅋㅋㅋ 책꽂이에 있으면 무조건 읽으셔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