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도리스 되리, 김라합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55년 하노버에서 출생한 도리스 되리는, 독일 펜클럽과 영화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이의 본분은 영화감독 겸 제작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아동문학과 단편소설, 몇 편의 장편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하노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되리는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 연극 영화를 공부한다. 스무 살이던 1975년 독일로 돌아와 뮌헨 TV-영화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매체에 영화평론을 게재해 조금씩 이름을 알린다.
  단편소설 열여덟 편을 묶은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원작 《Für immer und ewig: 한 평생》을 읽어보면 영화감독과 제작자답게 다분히 영화적 문법으로 작품을 쓰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한 편도 빼지 않고 감각적이다.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장면은 그대로 영화로 옮겨 놓으면 더욱 빛날 것처럼 반짝거리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런 점들이 이 책의 독자들이 후한 평가를 하게 만들었을 듯하다. 이것을 조금 바꾸어 말하면 작가가 등장인물을 조금 왜곡된 앵글로 바라보아 일상에서 벌어질 수는 있지만 사실 여간해 발견하기 힘든 별종의 성격을 갖게 만든 것 같다. 여기서 ‘것 같다.’라고 쓰는 것은, 1968년 이후의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인들을 극동 아시아 사람이 그들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책에 실린 단편소설들 몇 개의 플롯을 따 영화 <파니 핑크>를 만들기도 했다. 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열서너 살의 소녀들이 삼십대 중후반이 될 때까지의 성장단계를 따라가며, 주로 사랑과 성을 중심으로 관찰한다. 관찰은 연인들 사이에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는 오해와 상실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오해는 의식 또는 현상을 해석하는 방식의 상이성에서 시작한다. 해석의 상이성은 자연스럽게 여성과 남성의 갈등으로 확대되는데 당연히 갈등의 마땅한 해결(방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무지하게 잘난 척을 한 것 같은데, 별거 아니다. 1968년 봄에 처음으로 사랑과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파니 핑크와 이 아이의 (열세 살 여자아이의 기준으로 암소처럼 큰 유방을 장착한) 친구 안토니아가 각기 스물세 명과 서른여덟 명의 남자와 연애를 했으면서도 아직 사랑과 행복의 향방을 알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적절하고, 경쾌하고, 심지어 감각적이기도 한 연애장면, 그리고 실연에 따른 좌절의 장면을 삽입해 경묘하게 읽는 즐거움을 준다. 어깨를 견줄 킬링타임 용 소설책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을 듯.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10-29 08: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이 감독 영화만 몇 편 봤는데 골드문트 님 리뷰 보니 소설도 영화랑 비슷할 거 같군요!

Falstaff 2021-10-29 08:36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 하루 사이에 골드문트! 아주 둏습니닷!
전 영화 안 받거든요. 책 읽어보니까 영화도 본 거 같아요.

독서괭 2021-10-29 09: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ㅋㅋㅋㅋ 감각적이고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는 책인가 봅니다. 어깨를 견줄 작품 찾기 쉽지 않을 거라 하시니 혹하네요!!

Falstaff 2021-10-29 09:23   좋아요 3 | URL
딱 하나, 킬링 타임 용 작품이란 것만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ㅋㅋㅋㅋ 골드문트. 진짜 격조있지요? 뭔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10대 때 그렇게 불러달라고 아우성을 쳤는데 책 읽어본 동무들이 한 놈도 없어서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1-10-29 0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화적 문법˝을 바로 감별하실 수 있는 Falstaff님의 고품격 리뷰로 하루, 또 즐거운 자극받으며 시작합니다! <파니 핑크>의 모티브가 된 단편들도 등장한다니! 추천 감사드립니다.

Falstaff 2021-10-29 09:24   좋아요 2 | URL
아이고, 이거 추천은 아닙니다! 재미있고 가볍게 읽히지만 뛰어나지는 않은 거 같아요. 별점을 세 개 줄까, 네 개 줄까 하다가 에라,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서 네 개 줬습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1-10-29 09: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 넘나 잘 어울립니다. 특히 저 메인의 프로필 사진은 오랜 방랑 생활을 하며 맥주로 배를 채운 늙은 골드문트의 모습이랄까....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0-29 09:31   좋아요 4 | URL
ㅋㅋㅋ 그럼 이름 바꿀까요?
언제나 F 세 개를 기억할 필요도 읎잖어요?
이제 생각해보니까, 고딩 때 동무들 중에 책 읽어본 놈 있었으면 아예 까였을 듯, 자기가 골드문트 하겠다고 해서 말입죠. 진짜 헤세는 10대 시절에, 늦어도 스물다섯 까지 읽어야 제 맛입니다.
서른 넘어가서, 잠자냥님이 가재미 눈을 하고 째려보시는 <데미안>에서 말하듯 청춘이 가버린 다음엔 헤세 읽으며 그렇게 심쿵할 거 같지가 않아요. ㅋㅋㅋㅋ
전 싯다르타, 지와 사랑, 수레바퀴, 황야 이리, 다 좋았던 건 물론이고 딱 한 편만 뽑아라, 하면 싯다르타입니다만.... 으.... 이렇게 말하면서도 여태 재독하지는 않았다는 거. ㅋㅋ

잠자냥 2021-10-29 09:41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ㅋ 골드문트 찬성 ㅋㅋㅋㅋㅋㅋ 생각해 보면 10대 남자들에게 골드문트 완전 이상형, 롤모델 아닌가요? ㅋㅋㅋㅋ 방랑하면서 온갖 여자랑 잘 수 있고ㅋㅋㅋㅋㅋㅋㅋ

정말 헤세는 10대 시절에 읽으면 장난 아닌 작가입니다. 전 수레바퀴랑 크눌프에 정말 와... 폭풍 감정 이입. 이 작품들은 지금도 좋아해요(다시 읽지는 않았지만;;)

서른 넘어서 <황야의 이리> 읽었는데 그렇게 좋지 않아서 ㅠㅠ 슬펐습니다. 나의 헤세여! 하면서 말이죠. ㅎㅎㅎㅎ

문득, 방랑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그대 골드문트여~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0-29 09:54   좋아요 4 | URL
방랑하라니, 아, 불지르지 마세요. 가뜩이나 가을입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