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맆티콘 - 삶과 죽음의 세장면
막스 프리쉬 지음, 김형국 옮김 / 전남대학교출판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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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립티콘”을 우리말로 하면 “세 폭 제단화” 기독교의 제단 뒤쪽에 그려진 세 폭짜리 그림이란 뜻이다.

 

트립티콘


  막스 프리쉬의 희곡 <트립티콘>도 이 형식에 맞추어 모두 세 장면으로 되어 있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가운데 그림이 제일 크고, 제1과 제3 화의 사이즈가 작다. 이 희곡도 1장면과 3장면을 합한 것보다 제2 장면의 분량이 조금 더 길다.
  작품의 주제는 죽음. 또는 사후세계. 1장면은 70대 남자가 죽어 장사를 지내고 많은 조문객이 과부를 위로하기 위해 집을 방문해 차려놓은 식사를 하며 애도를 표한다. 고인이 평소에 앉아 있던 흰 의자엔 죽은 고인이 앉아 있으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 2장면은 죽음 이후의 세계다. 새벽, 아침, 오전, 오후, 저녁, 황혼, 밤의 구분이 없는 저승일지언정 봄이 왔다는 걸 죽은 이들이 다 알고 있다. 고인들은 이승에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의 나이로 고착되어 있어서, 고서점을 운영하던 노인의 아버지는 영국계 정유회사 셸의 제복을 입은 젊은 모습으로 여전히 늙은 아들에게 낚시질 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한다고 타박을 한다. 이 젊은 아버지 옆에는 휠체어에 몸을 실은 뼈만 남은 할머니가 있으니 바로 젊은 아버지의 아내, 고서점 주인 영감의 엄마다.
  3장면은 암에 걸려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이는 프랑신느와 이이의 아직 죽지 못한 연인 로제. 한때 서로 사랑했지만 결국 이별을 해야 했던 커플. 이들 사이에 놓인 죽음이란 거대한 장벽을 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이미 죽은 프랑신느가 다시 살아올 수는 없는 일이니, 속주머니에 품고 있는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로제가 프랑신느 있는 곳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
  어떤 그림일지 대강 보이실 듯. 새로운 것도 없고 기발한 점도 없다. 다만 3장면에서 죽음이란 방식으로 결별을 완성한 커플이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것이 좀 서늘한 정도.

 

  이제 막스 프리쉬의 3대 소설, <슈틸러>, <호모 파버>, <내 이름은 간텐바인>을 읽었고, 희곡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안도라>와 <트맆티콘>까지 마쳤으니 이걸로 된 듯하다. 적어도 당분간 다시 프리쉬를 찾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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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22 0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치오의 이 세폭제단화가 이 소설과 연관이 있나요?

Falstaff 2021-10-22 08:59   좋아요 2 | URL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트립티콘‘이 뭔지 몰라서, 혹시 독후감 읽는 분들께서도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봐 트립티콘이 이런 거다, 라는 의미에서... ^^;;;

coolcat329 2021-10-22 09: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형식은 뭔가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을거같네요.
1장은 이승 2장은 저승 3장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과거 회상.
저 혼자 생각해봤네요.
양쪽 그림이 가운데 그림에 꼭 맞게 포개지듯 뭔가 이 희곡에도 그런 맞아떨어지는게 있을거 같아요.
마지막 당당한 문장 아휴~부럽습니다.
저는 슈틸러 갖고 있는데 참 손이 안가네요.

Falstaff 2021-10-22 09:26   좋아요 2 | URL
슈틸러는 그래도 재미있는 편일 텐데요. ㅋㅋㅋㅋ
천천히 읽으셔요. 취미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실 필요 1도 없습니다. ^^

유부만두 2021-10-23 15: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뜬금 댓글 입니다;;;;

전에 팔스타프님께서 ‘서부전선 이상없다’ 민음사판을 혹평 하셨더랬는데요, 집에 있어서 읽기 시작했어요. 아 … 이대로도 좋은데, 더 좋았어야 했단거죠??

Falstaff 2021-10-23 16:17   좋아요 1 | URL
민음사 판이 아니라 열린책들 판입니다. 2014년 말에 저는 열을 받아 열린책들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항의를 합니다만, 아직 한 마디의 답변도 받지 못했습니다.

++++++++++

에리히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없다> 라는 훌륭하기 그지 없는 책을 이제 막 완독했습니다. 읽기가... 라기 보다는 읽어내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레마르크의 필력이야 어디 한점 까탈을 잡을 수 있을까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최고의 텍스트로 최악의 책을,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열린책들이란 훌륭한 책방에서 찍었을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교정 교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제가 내린 결론으로, 한국 소재 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외국인이 교정 교열을 담당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2. 이런 개판 무인지경의 교열작업을 했음에도 정말로 책을 내기 전에 어떤 책임자도 스스로 마지막 정독을 해보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3. 책이 나온 다음 번역작업을 한 홍성광 씨 역시 자기가 직접 번역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책이 나왔을까, 혹시 무슨 실수라도 없었을까, 조금도 궁금하지 않아 한 번도 자기가 번역한 책을 들춰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홍성광씨가 책을 보았다고 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지요. 이런 정도로 엉망인 책이 자기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시중에 돌아다니게 놔두었으니까요. 이 사람이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번역한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도 의외입니다.
4.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며, 이 책에 의하여 심하게 훼손한 출판사 열린책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전량 회수를 권유합니다. 손실을 피할 수 없겠으나 출판사의, 한 기업의 자존심이 있다면 완전한 재교열 후에 제 2판을 찍어 다시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5. 마지막으로, 여태까지의 의견 또는 비판이 마땅하지 않으시다면 반론을 하시기 전에 꼭, 먼저 <서부 전선 이상없다>를 다 읽은 다음에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부만두 2021-10-23 16:18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열린책 이에요, 제 오타입니다;;;;

유부만두 2021-10-23 16:21   좋아요 0 | URL
아직 전 초반이라 괜찮다 느끼는건지;;; 다른 번역판 무엇으로 가야하나요? ㅠ ㅠ

Falstaff 2021-10-23 16:26   좋아요 0 | URL
다른 번역판도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ㅠㅠ

유부만두 2021-10-23 16:31   좋아요 0 | URL
아...이런...

서부전선 망했네요

Falstaff 2021-10-23 16:57   좋아요 1 | URL
우리글의 특징은
초성(자음), 중성(모음), 종성(있을 경우에 한해서. 자음) 이런 순서로 나열되지 않습니까. 근데요, 이 책을 열독하시다보면,
모음, 자음. 이런 순서의 문자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ㅋㅋㅋ

제 의견은, 그래도 댁에 책이 있으면 읽는 편이 더 낫다, 입니다. 텍스트가 정말 훌륭하잖아요. 얼마나 훌륭한지는 읽어보시면 저절로 동의하실 듯합니다.

유부만두 2021-10-23 17:23   좋아요 2 | URL
계속 이어서 읽고 있습니다. 아, 좋은데요?! 계속 나오는 콩 이야기도, 그 선생 이야기나 훈련소 이야기도, 왜 이제야 이 소설을 읽는지 후회막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