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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상점 1 ㅣ 비꽃 세계 고전문학 22
찰스 디킨스 지음, 김옥수 옮김 / 비꽃 / 2019년 8월
평점 :
아, 진짜 찰스 디킨스는 안 읽으려 했다. 그런데 똑같은 결심을 도대체 몇 번이나, 연속적으로, 줏대 없이 하는 건가. 나, 정말 이 단어 쓰기 싫은데 한 번만 더 쓰자. 또다시 각오를 꺾고 디킨스를 읽다니, 자괴감이 든다, 자괴감이.
그런데 이번에 김옥수가 번역한 디킨스, <골동품 상점>을 읽으면서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디킨스의 문장이 상당히 길다. 소위 만연체의 전형인 걸 새삼스레 느끼게 했다. 그리하여 책꽂이에 꽂혀 있는 디킨스를 몇 권 뽑아 확인을 해보니, 맞다. 문장이 길다. 어떤 책은 디킨스의 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쉼표를 찍는 지점마다 한 문장으로 만든 의심이 들기도 했다. 같은 동사로 끝나는 문장이 연속해서 다섯 번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그렇다. 디킨스는 이럴 경우 쉼표를 찍는데, 어순이 우리와 다른 영어 문장일 경우 쉼표 앞에 다른 각운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서술어가 쉼표 앞에 놓일 경우가 많아 역자가 편의상 쉼표 대신 마침표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 마음 같으면 인용을 하고 싶지만 다른 출판사의 책을 좋은 의미가 아닌 용도로 인용하는 건 내키지 않아서 그만둔다.
김옥수는 이런 경우에, 원문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긴 문장의 맛을 살리기 위해, 마치 긴 문장으로 악명이 높은 <백년의 고독>을 번역하는 사람이 겪었을 듯한 고민을 한 거 같다. 마르케스보다는 길지 않지만 그래도 상당한 길이의 문장을, “원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쓴 장면이 곳곳에서 보인다. 새삼스레 여러 역자의 디킨스를 찾아보고 문장이 정말 길다고 인식한 것인데, 왜 김옥수의 경우에만 그게 인상적으로 남았을까. 김옥수의 다른 책, <한글을 알면 영어가 산다>에 나오는 글을 잠깐 보자.
“원문 문장이 참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풍자는 너무나 대단한 나머지, 나는 찰스 디킨스 문학세계에 푹 빠지게 됐다. 그리고 ‘비꽃 출판사’를 설립해, 찰스 디킨스 선집 10권 출간을 시작으로, 고전 작품을 모두 새롭게 번역해서 출간하는 목표를 세웠다. ‘원작을 정확히 해석해서 우리말 어법에 충실하게 담는다’가 기본원칙이다. (중략) 우리나라에서 고전이 딱딱하고 재미도 없다면 그건 원작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다. 제대로 번역한 고전은 독자에게 평생 감동으로 남는다. 그게 고전의 힘이다.”
<한글을 알면…>의 저자 김옥수는 자부심을 갖고 책을 냈을 터. 아주 사소한 실수 말고는 교정 교열도 매우 좋다. 내가 영어 원본을 보지 않았으니 원작을 정확히 해석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런 건 번역서를 읽는 독자에겐 복불복이며, 독자는 역자를 믿어야 한다. 믿는 게 좋다. 근데 나를 계속 어지럽게 만든 건, 똑같이 긴 문장을 번역한 디킨스인데, 왜 김옥수를 읽고 나서야 디킨스의 문장이 길다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되었을까, 하는 거였다.
수준 높은 번역이다. 사용한 우리말이 탄탄하다. 역자 스스로가 디킨스의 글 세계가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대단한 풍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게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디킨스와 다른 점이었다. 나의 디킨스는 당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그린 빅토리아 시대 인기 작가였던 것. 물론 전문가와 취미 생활로 책 읽기를 즐기는 독자 사이의 메꾸지 못하는 간극, 골짜기라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취미 독자에게, 자신과 비슷한 시각을 가졌으면 하고 바랄지언정 그걸 요구할 수는 없는 법.
아니면, 혹시 모른다, 다른 디킨스 번역자는 김옥수와 다르게 독자가 원문이 길다는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읽기 편한 우리말로 바꾸어놓았는지. 실제로 김옥수의 우리말 디킨스를 읽으면서, 원본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역자가 고생했음을 독자가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일상적이지 않은 문장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드물지 않은 빈도로 독자가 문장을 읽으면서, 읽기를 잠시 중단한 채, 문장을 분석해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확인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다른 역자의 디킨스에서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일. 어느 것이 좋다, 덜 좋다. 바람직하다, 아니다, 는 토론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 경우에는, 여전히 디킨스를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작가로 인식하기 때문에, 읽는 문장의 분석 없이, 즉각 뜻을 이해하고 싶다. 거기다가 정확한 이해를 하기 위해 앞에서 이미 읽은 문장을 한 번 더 확인하기는 더욱 싫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을 번역하는 데 들인 노력은 인정하지만, 결과물은 나하고 맞지 않았다.
골동품 상점. 이게 만일 런던의 뒷골목, 검은 진흙탕과 허물어져가는 이웃 목조건물, 맨발의 아이들만 뛰어다닌다면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늙은 유대인 페이건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골동품 상점으로 위장한 소매치기 집단의 왕초와 장물아비를 겸한 인물. 그러나 <골동품 상점>의 트렌트 노인은 유대인이 아니다. 다만 조금 있던 재산을 손자 프레드 트렌트에게 탕진했다. 그래서 자기가 아끼고 아끼는 사랑하는 손녀 넬리를 위하여 합당한 부를 물려주려고 궁리를 할 수밖에. 트렌트 노인이 찾은 해법으로, 처음엔 자기 돈으로, 자기 돈이 떨어지자 역겹고 흉측한 외모도 모자라 거인 같은 머리통과 얼굴을 한 난쟁이 고리대금업자 다니엘 퀼프에게 돈을 꾸어, 밤이면 밤마다 커다란 골동품 상점엔 열네 살 먹은 손녀 넬리만 남겨둔 채 어디론가 외출을 해 밤새도록 섰다와 도리짓고땡을 선택한 주책없는 늙은이다. 그런데 찰스 디킨스가, 작품 초반에 주인공 인근에 잘 나가는 아스팔트 깔아놓은 적이 있나? 당연히 트렌트 노인은 날마다 주머니를 탈탈 털리고, 날마다 퀼프에게 금화 몇 개를 빌어서 급기야 골동품 가게는 물론 가게 안의 모든 물건까지 악당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된다.
퀼프는 천하의 악당. 원래 디킨스는 몸에 ‘흉한’ 장애가 있는 장애인과 유대인에게 악역을 전담시키는 악습이 있는 바, 이 책도 예외가 아니라서 퀼프의 특기이자 취미는 자신과 아무런 인연이 없더라도, 관계가 있으면 더 좋지만, 하여튼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다. 이이가 아직 본색을 드러내기 전에 노인은 손녀 넬리를 데리고 금요일 새벽같이 이미 가게를 점령한 퀼트와 그가 고용한 변호사 브라스가 잠든 사이에 골동품 상점을 떠나 시골로, 시골로, 목적지도 없이 피신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선하지만 도박에 미친 트렌트 노인과 착한 넬리가 이야기를 꾸려가는 첫 번째 팀.
말로 하기 힘든 악당 퀼프는 브라스와 그의 동생 샐리 샘슨을 고용해 아직 상당한 재산이 있어 그걸 갖고 도망했다고 믿는 노인을 찾아내고자 연대를 맺는다. 이게 두 번째 팀. 그러나 노인이 빈털터리인 것을 알고 손녀 넬리를 오빠의 친구인 스물한 살 정도의 좋은 체격에 잘생긴 청년 딕 스위블러와 결혼시키고, 남은 부채를 스위블러에게 받아내기 위해 딕을 브라스의 법률사무소에 불러들인다. 이들이 연출하는 퀼프 주연의 허황한 코미디를 구경하는 것도 뺄 수 없는 재미이지만 꼭 기억하시기를. 19세기 코미디라 박장대소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걸.
골동품 상점에서 잔심부름을 해주던 봉두난발에 완벽한 들창코의 사환 키트. 키트는 노인과 넬리를 존경하고 주인아씨로서 사랑하다가 그들이 떠나버린 다음엔 올바르고 선하게 지낸다. 이때 길에서 만난 갈랜드 씨의 당나귀를 매개로 좋은 인연을 맺어 갈랜드 씨 댁의 하인으로 들어가 하녀 바버라와 애틋한 사이가 된다. 여기에 갈랜드 부부의 아들 아벨과 아벨이 도제로 근무하는 사무실의 공증인, 그리고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다가 이제 귀국한 정체 모를 신사 (위대한 유산의 매그위치? 좀 다르다. 신분은 알려줄 수 없다.)가 세 번째 팀을 이루어 노인과 넬리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하면서, 퀼프를 위시한 악당 그룹을 소멸시키려 한다.
내용은 이 정도면 될 듯.
그러나 우리가 알던 찰스 디킨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건 결말이다. 내가 읽은 거의 모든 디킨스는……, 이후 몇 줄 썼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옳겠다, 싶어서 싹 지우고 공백으로 놔둔다. 하여튼 당신이 디킨스에게 관심이 있다면 매우 색다른 결말이리라. 궁금하시면 사 읽으시라. <골동품 상점>은 현재 비꽃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이 유일한 선택이다. 아니면 헌책을 사야 한다.
이젠 정말로 디킨스, 안 읽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