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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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 가룟 유다. 브루투스와 함께 서양인들에겐 최악 배신의 대명사다. 아모스 오즈는 이 책 <유다>에서 가룟 유다를 현대 이스라엘 구성원의 눈으로 다시 해석하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현 지구의 이데올로기를 선점하고 있는 기독교적 종교관, 세계관을 양보하고 싶지 않은 독자에게는 마땅하지 않을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25세의 청년 슈무엘 아쉬. <유다>는 오즈가 일흔다섯 살에 쓴 소설이다. “1959년 말에서 1960년 초 겨울에 있었던 이야기다.”로 시작하는 <유다>는 이어서 주인공 슈무엘 아쉬의 현재 상황과 외모, 거주지 등에 대한 상세묘사가 이어진다. 1939년생인 오즈는 현대의 독자들은 별로 기억하지도 않을 방, 생김새, 옷장에 걸려 있거나 지금 입고 있는 옷, 가구 등에 관해서 그저 한 번의 눈길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아마 이런 소설작법의 거의 마지막 작가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듯하다.
  슈무엘 아쉬는 1959년 12월에 대학원의 석사논문을 포기한다. 몇 년 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했던 아르데나는 전에 사귀던 부지런하고 조용한 수문학자 남자친구 네쉐르 샤르쉡스키가 청혼을 하자마자 떠나버렸고, 샤하프 주식회사를 운영하다가 오랜 동업자와 소송이 붙어 패배하는 바람에 파산을 한 아버지가 더 이상의 학비와 경비를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12월 초, 노발대발하는 지도교수 아이젠슐로츠 박사에게 여태까지 지지부진하게 진행했지만 지도교수만큼은 여전히 큰 기대를 하던 논문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를 작파하고 학업마저 중단하겠노라 얘기를 해버렸다. 그리고 3주 후 연인 아르데나가 초대한 결혼식에 참석하려 하다가 지독한 천식발작이 일어나 포기하고 연말을 맞는다.
  이제 실업자가 된 슈무엘은 자신만의 삶을 꾸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 쓰던 기숙사 비품 판매를 위해 벽보를 붙이려다 구인광고 한 장을 발견한다. “마음 맞는 분 구함.” 인문학을 전공하는 미혼남으로 역사를 잘 알고, 상대방의 기분을 잘 헤아리는 세심한 대화 가능자. 저녁마다 다섯 시간 정도 학식 깊고 지적인 일흔 살 장애 남성에게 말동무를 해주는 일자리다. 무료로 숙소와 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소액의 월급도 지급하는데, 장애인은 자력으로 생활이 가능한 자라서 도우미가 아닌 말동무를 구한다는 것에 방점을 둔 광고다. 특색있는 건, 면접에 통과하면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정도. 우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이 광고에 지원하고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구원할 자가 시온에 오셔서 속히 예루살렘을 재건하기를, 5674년”
  칠십 대 장애인의 말동무가 되기 위해 다락방에 입주한 집. 대문 위엔 다윗의 방패 모양의 녹슨 쇠로 만든 아치형 장식에 이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유대력 5674년은 서기력 1913년 가을부터 1914년 봄까지의 시기란다. 사자 머리 모양의 노커가 달린 현관문엔 양각 현판이 있고, 거기엔 “주께서 지키시어 주인의 정직함을 선포하시는 예호야킨 아브라바넬의 집”이라 쓰여있다. 1959년 12월 현재의 집주인은 아탈리야 아브라바넬. 당시 집주인의 손녀. 칠십 대 장애인의 이름은 게르숌 빌드. 못생긴 편으로 키 크고 좋은 몸집을 지녔으며 한쪽으로 기운 듯 굽은 등과 매부리코, 낫을 연상시키는 턱선, 숱이 많고 부드러운 백발이 목덜미까지 덮고 있었다. 여기까지 보면 서구에서 흔히 묘사하던 전형적인 유대인과 비슷하다. 샤일록도 언뜻 생각날 정도. 그러나 한 가지를 더 보태자. 양모로 만든 서리 같아 보이는 눈썹. 텁수룩한 콧수염. 만일 빌드의 털 색깔이 검기만 하다면 최후의 만찬에서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인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성당 주임신부를 모델로 해서 그린 예수의 제자, 지옥 가장 깊은 곳에서 루시퍼의 무릎에 앉아 있는 배신자 가룟 유다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게르숌 빌드는 절대로 배신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아들 미카 빌드는 징집 제외자임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신체검사를 통과해 1948년, 유대인들은 독립전쟁이라 부르고, 아랍-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재앙”이라고 부르는 전쟁에 나가 부상한 채 홀로 고립되어 전사하고 말았다. 게르숌 빌드는 놀라울 정도의 지적 능력으로 평소 가까운 또 다른 지식인 친구들과 전화로 몇십 분씩 인용과 가차없는 비평을 섞어 지적 희롱을 즐기는 한편 밤새도록 뭔가를 쓰는 일을 계속한다. 이 노인은 슈무엘이 비록 포기한 상태이지만 그의 논문 “유대인이 본 예수”와 가룟 유다에 관한 그의 관점에 대하여 따뜻한 비판과 격려를 멈추지 않는다.
  1951년에 사망했지만 이 책의 숨은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쉐알티엘 아브라바넬. 그는 책에 한 번도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예루살렘 지역에, 아랍-팔레스타인인들과 전쟁을 통해, 무력에 의한 이스라엘을 건국한 벤구리온의 대척점에 서서, 아랍-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지속적인 공존을 통한 연합형태의 평화적 체제를 주장한 “가상의”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선의를 통해 아랍인들과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공동으로 참여하는 노동조합, 유대인 정착촌에 아랍인들의 거주 인정, 유대 학교의 아랍인 재학 등의 방법을 제시하며,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소속된 통치기관을 갖춘 독립적인 유대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가식적인 생각을 버리자고 촉구했다. 그의 평화이론은 당연히 유대-아랍의 전쟁에 돌입하자마자 배척되기에 이르고,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거의 모든 유대인으로부터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버린다. 전쟁이 끝나고 2년 후에 죽음을 맞은 쉐일티엘 아브라바넬은 자신의 모든 원고를 잘게 찢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렸으며, 문서보관소와 도서관에서조차 그의 저작과 관련 회의록은 국가 비밀로 향후 30년간 공개를 하지 못하게 묶여 있는 상황이다.
  평화를 주장하고, 아랍인과의 공존을 모색하다가 국가와 민족의 배신자로 찍힌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의 친딸이 슈무엘을 게르숌 빌드의 말동무로 고용한 45세가량의 미인, 아탈리야 아브라바넬. 게르숌 빌드의 아들이자 독립전쟁에서 전사한 미카 빌드를 남편으로 맞았으나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한 채 과부가 된 여인이다. 아탈리야는 한 번도 아버지의 정을 표현하지 않은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의 정치이념인 아랍인과의 평화공존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결코 입 밖으로 발음하지 못할 숙명을 안고, 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조금 괴팍한 최고의 지식인인 시아버지와 불임의 운명을 지고 산다. 여기에 동거인으로 합해진 유대인 예수-유다 전문가이자 주인공인 슈무엘 아쉬. 이들이 민족의 배신자 가룟 유다와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에 관한 깊은 사색을 만들어낼 것임은 처음부터 명백하다. 물론 과정은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아모스 오즈의 마지막 작품 <유다>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아모스 오즈의 바이오그래피를 알았더라면 좋을 뻔했다.
  아모스 오즈는 1939년 5월 팔레스타인 위임통치국의 예루살렘에서 아모스 클라우스너 Amos Klausner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부계 클라우스너 가문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 인근의 농부였으나, 아버지 예후다 클라우스너는 빌니우스 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공부하고 교수를 꿈꾸던 인텔리였으며, 오랜 세월을 유대 국립도서관과 유대 대학도서관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폴란드(현재는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제분소 소유자의 섬세하고 잘 교육받은 딸로 프라하의 샤를 대학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했지만 30년대 대공황을 만나 학업을 중단했다.
  오즈의 아버지는 16~17개의 언어에 능통했고, 어머니 역시 7~8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나 이스라엘의 공용어인 히브리어엔 능숙하지 못해 부부간에는 폴란드어와 러시아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러나 오즈에겐 새 히브리어만 사용하도록 종용한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의 히브리 문학과 학과장이었던 백부 요셉 클라우스너를 비롯한 가족 거의 모두가 우익인 보수 민족주의 입장에 있었고, 심지어 극우 노선의 헤루트 정당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 오즈는 열네 살에 집을 나와 시온주의자 노동자의 자격으로 훌다 키부츠에 들어가고 거기에서 클라우스너라는 성을 버리고 오즈로 개명한다.
  이런 오즈에게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 1967년의 6일 전쟁에서 골란 고원 전투에 참전한 일이다. 이스라엘은 단 6일 만에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의 코를 깨뜨리고 승리를 쟁취하긴 했지만, 이 전쟁을 통해 오즈는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땅이기 전에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곳에서 유대-아랍의 평화를 지속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두 개의 국가”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평화주의자로 변신한 오즈는 실제로 신문 ‘다바르’지에 “조상들의 땅”이란 기사를 게재하고, 1978년에는 “피할 수 없는 분쟁도 추악한 분쟁”이라 글을 쓰며 “즉시 평화” 단체를 구성해, 투쟁과 전쟁을 생존수단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삼는 이스라엘 국민과 정부로부터 “배신자”라는 호칭을 부여받는다.
  즉 작품 <유다>의 안 보이는 주인공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정치적 인간으로 아모스 오즈 본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해석은 아니다. <유다>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줄은 몰랐겠지만 이제 죽음의 침상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던 오즈는, 아랍인과의 공존이라는 평화 주장과, 그로 인해 자신이 받을 수밖에 없던 “배신자”라는 멸칭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려 50년 동안 평화와 공존을 주장했던 노 작가의 마지막 화해를 위한 역작. 그것이 소설 <유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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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9-09 1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벌써(!) 중고로(최상 등급으로) 나왔기에 냉큼 샀습니다요.

Falstaff 2021-09-09 10:53   좋아요 3 | URL
전 새 책 샀는데요, 출판사 제공 도서 우짜구 해서 김이 좀 샜습니다.
좀 더 기다렸다가 중고 최상으로 살 걸 그랬습니다. 흑흑....

미미 2021-09-09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유다>여서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가 생각났는데요. 읽어보니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이네요! 오즈와 같은 생각이 배신자로 까지 낙인찍힌다는것도 너무 안타깝구요. 꼭 읽어볼래요!

Falstaff 2021-09-09 11:21   좋아요 3 | URL
ㅎㅎㅎ 백자평에 언질을 했듯이 쉽게 휙휙 넘어가는 작가는 아니더라고요.
다 읽으면 읽기를 잘 했다, 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

mini74 2021-09-09 15: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의 미카엘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은 조금 결이 다르네요. 작가님이 배신자취급을 당했군요. 저도 중고 최상급을 기다려야 하나요. ㅎㅎ

Falstaff 2021-09-09 15:44   좋아요 1 | URL
읍! 나의 미카엘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아우.....
전 그 책, 길지도 않은데 읽느라 아주 혼이 났습니다. 다른 책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가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가 아주 좋더군요. 그 책 아니었으면 아마 <유다>를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ㅎ 역시 여러가지 감상이 있어야 좋습니다!!!

mini74 2021-09-09 15:4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남자들은 이 책 싫어하더라고요. 욕 많이 먹는 한나ㅠㅠ

그레이스 2021-09-09 15: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뎌 리뷰를 쓰셨네요
무게가 다르네요
쉽게 읽어갈 수 없다고 하신 이유를 알겠네요
다시 한번 깨달은 것!
책을 받았을때 읽어야한다. 미루지 말고!

Falstaff 2021-09-09 15:45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맞습니다. 사면 읽어야 해요!
때려 치우더라도 읽다가 때려 쳐야 합지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