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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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르 클레지오가 부계는 영국, 모계가 프랑스. 그래서 영어와 불어 둘 다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뭔가 정치적으로 수가 틀려서 프랑스 말로만 작품을 쓰겠다고 작정을 했다, 이렇게 들은 거 같은데 아닌 모양이다. 하, 여태까지 그런 줄 알고 잘난 척하고 막 그랬으니 진상을 아시는 분들이 들었을 때 속으로 얼마나 욕을 바가지로 해댔을꼬.
  르 클레지오는 엄마는 남프랑스의 니스, 아빠는 프랑스의 북서쪽 브리타뉴의 남쪽 해안에 있는 모르비한 사람들이란다. 다만 부계 쪽에 프랑수아 알렉시 르 클레지오 할아버지가 처자식을 솔가해서 1798년에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 동쪽, 인도양 왼쪽에 있는 작은 섬 모리셔스로 이주해 거기서 계속 살았다가 몇 년 가지도 않아 영국이 섬을 통채로 프랑스한테 빼앗아 졸지에 영국인이 된 거였다. 영국은 모리셔스 섬의 프랑스 언어와 풍습 등을 계속 사용하고 누려도 좋다고 승인을 해서 그냥 눌러 살았단다. <아프리카인>을 읽어보면 1960년대 모리셔스가 독립을 하게 되어 J.M.G 부친의 영국 국적이 말소되고 한 방에 모리셔스 국적으로 갈아탄다. 그리하여 현재 J.M.G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와 모리셔스의 국적을 다 가지고 있는 이중국적자이며, 스스로 모리셔스를 ‘작은 아버지 나라’라고 부른다나. 이래서 르 클레지오의 작품 속에 모리셔스 섬이 자주 나오는 거였다.

 

  르 클레지오의 아버지 르 클레지오 씨가 젊은 시절에 작은 식민지 섬 모리셔스에서 모종의 사고를 치고 섬을 떠나 영국으로 간다. 어떤 사고인지는 책에도 다른 자료에도 안 나와 있어서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시는 섬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 아버지는 런던에서 공과대학을 다니다가 다시 의과대학으로 전과를 했는데, 여차해서 향토장학금(변방의 부모가 보내주는 학비와 생활비)이 끊기는 바람에 졸업 후 조건이 있는 장학금을 받을 수밖에 없었나보다. 게다가 전공으로 한 것이 열대지역의 풍토병 같은 거라서 처음엔 카메룬 산악의 반소 지역 병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연애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이때 결혼 초기였고, 아내와 함께 부임한 신임 의사는 산악지형인 카메룬에서 극도로 안전하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며, 멀고 먼 곳까지 부부가 함께 말을 타고, 때로는 걸으며 왕진여행을 다니는 동안 첫째 아이를 임신한다.
  아무리 평화롭다 해도 척박한 아프리카에서 출산을 하긴 어려워, 어머니는 임신한 몸으로 해산을 위해 고향마을 남프랑스의 니스에 와 J.M.G와 그의 형을 출산한다. 아이를 낳을 때 아버지도 휴가를 받아 먼 길을 떠나 이들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던 건 물론이다. 그러다가 이들 가족의 행복에 금이 간 건 2차 세계대전의 발발. 프랑스 사람들은 독일이 아무리 세도 프랑스 중부지역에서 전쟁이 끝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나치 군대가 물밀 듯이 쳐내려와 현역 영국 의무장교의 가족은 고향 니스를 떠나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이때 나이지리아에서 근무하고 있던 아버지는 처자식 걱정에 날 지새는 줄 모르고 있다가 하루는 결심을 한다. 내가 직접 프랑스에 가서 처자식을 데려오고 말리라! 그는 군인정신에 충일하여 나이지리아에서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대상, 낙타 대상은 아니고 트럭 대상의 한 자리를 빌어 알제에 도착,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니스로 가 장인, 장모는 모르겠고, 아니, 안되겠고, 장인, 장모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처자식만 달랑 데리고 오겠다는 오진 꿈을 꾼다. 그러나 장대한 원정길 도중 알제리 근처 야영지에서 자기 몸을 거부하는 오아시스 물을 마셨다가 아래·위로 거의 모든 수분을 따 뽑아내고는 어처구니없게 체포당해, 어느 군대에 체포당했는지는 몰라도 다시 나이지리아로 회군(그렇다, 군인 아버지였으니까 ‘회군’이란 용어를 용서하기로 하자!)하기에 이르렀으니 참 가상한 남편, 아빠였다.
  그리하여 처자식이 다시 나이지리아에서 아버지를 상봉했을 때가 1948년. 전쟁은 아버지를 어떻게 말로 하지 못할 만큼 피폐시켰던 건 사실이다. 아버지는 그동안 아프리카 사람들, 이 가운데서 성인 남자가 여자와 아이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어떻게 훈육하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두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프리카 성인 남자와 거의 비슷하게 아이들을 엄하게 훈육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땅에서는 성질 더러웠던 J.M.G도 생전 처음 나뭇가지로 만든 회초리가 자기의 종아리를 그렇게 따끔하게 갈길 수 있다는 걸 아는 기회를 갖기도 하고, 팔꿈치가 식탁에 닿기만 하면, 설마 진짜로 이러지는 않았겠지만,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기기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왕진 여행이 잦던 아버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하면, J.M.G 형제는 다른 아프리카 검은 아이들과 똑같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진 채, 치누아 아체베의 고향에서, 치누아 아체베의 작품처럼 “사바나의 개미언덕”을 향해 지평선에서 자기네 집이 안 보일 때까지 뛰어가 몽둥이로 흰개미 언덕을 퉁퉁 두르려 속이 찼는지 아닌지 알아보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어린아이들 특유의 공격성으로 개미언덕을 무차별 파괴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그저 일화 몇 개를 소개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아프리카인을 자칭한 아버지에게 아프리카란 무엇이며, 그의 아들인 자신에게는 또 무엇인지, 어떤 것을 아프리카라고 하는지 저 먼먼, 1940년대부터 60년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독립을 쟁취했거나 얻어낸 시기까지를 흑백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색에 잠기는 일이다. J.M.G는 참 묘한 방법으로 한 시절 완고하고, 겁나고, 심지어 공포스럽기도 했던 아버지에 대한 정과 사랑을 표현한다. 전쟁으로 인한 고립과 고독, 불안, 걱정, 의료장비와 약품의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의 의사라는 상황. 이런 모든 것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홀로 남은 유럽인에게 한꺼번에 몰아닥친 것. 한 번 유럽을 떠나 은퇴하기 전까지 아프리카를 벗어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초상이 쓸쓸하게 그려져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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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6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6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6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1-08-26 10: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전적인 소설인가보군요? 아버지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저는 잘못하면 항상 긴 자로 손을 맞곤 했던게 생각납니다. 넓은 면으로는 제법 버티니 옆?으로 때리셨던 충격과 공포😳

Falstaff 2021-08-26 10:48   좋아요 3 | URL
예. 아버지가 느꼈을 고독과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상상하면서, 사진과 곁들여 잔잔하게 써놓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부모라는 짐을 어깨에 올려놓는 거 같아요. 그게 회초리가 됐든, 30cm 대나무 자가 됐든. 아니면 늦게 들어와 잠에 빠진 아이들을 굳이 깨워 먹게 했던 스펀지 케이크이든 (제 얘기 아닙니다) 간에 말이지요.

coolcat329 2021-08-26 11: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파란만장한 아버지의 애잔하면서도 쓸쓸한 이야기로군요.
저는 우선 강추하신 <황금 물고기>를 읽어야하지만 이 책도 그 다음으로 꼭 읽고 싶네요.

Falstaff 2021-08-26 12:07   좋아요 3 | URL
이 책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읽으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바람돌이 2021-08-27 0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Falstaff 님 서재에서는 항상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한편으로는 좀 부담스럽기도 해요. 아니 이런 작가가 하고 아 이 작가도 읽어야 하는구나라면서 책탑만 쌓여간다는.... ㅎㅎ

Falstaff 2021-08-27 08:21   좋아요 1 | URL
호호호.... 고맙습니다.
이 책은 특히 작가가 자기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바람에 출생부터 유년기까지가 다 나와 있어서 바이오그래피를 더 상세하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