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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아스와 멜리쟝드 ㅣ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12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유효숙 옮김 / 연극과인간 / 2006년 9월
평점 :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발견한 순간, 일각의 망설임 없이 집어든 것은 우습게도 원작자인 마테를링크가 아니라 클로드 드뷔시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 때문이었다. 드뷔시의 음악에 관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로맹 롤랑의 작품 <장 크리스토프>. 이제 거장 작곡가의 자리에 오른 장 크리스토프가 친구 올리비에와 함께 극장에 가서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감상한다. 1막이 끝나고 이들이 나누는 대화.
올리비에: 어떤가, 자넨 어떻게 생각해?
크리스토프: 끝까지 이런 식으로 나가나?
올리비에: 응
크리스토프: 그럼 아무 것도 없군.
올리비에: 자넨 정말 속물이네.
크리스토프: 전혀 아무 것도 없어. 음악이 없어. 반전이 없어. 앞뒤 맥락이 없어. 앞뒤 관계가 없어. 무척 섬세한 화성은 있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지.
사실 나는 드뷔시의 <펠레아스...>를 그리 잘 듣지는 않았지만, 누가 이 작품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감히 드뷔시, 인상주의 천재가 작곡한 유일한 오페라에 관해서 솔직한 의견을 내지 않았었다. 지금이야 한 마디로, 골 아파서 안 들어, 라고 하는 단계이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혹시라도 누구한테 까일까봐 비겁하게 몸조심을 했다. 뭐 당신들은 그런 적 없는가. 다 사는 게 그렇지. 그러다가 고전음악에 권위가 있는 로맹 롤랑이 <장 크리스토프>의 입을 통해 위와 같이 말하는 걸 듣고, 세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각성을 해 다른 건 몰라도 ‘감상’에 관해서는 솔직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속 좁은 사람들이 항용 그러하듯이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장애물 가운데 하나로 치부하고 있었다. 같은 프랑스 언어를 사용하는 마테를링크와 드뷔시가 서로 협의 하에 대본작업을 하고 화성을 입혀 오페라가 탄생했는데 이 과정에 두 명의 천재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라는 걸 애초에 알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희곡집을 발견했으니 어찌 순간의 망설임이 있을 수 있었을까.
먼저 드뷔시를 경험해보았으니 그것부터 이야기해보자. 드뷔시의 <펠레아스....>를 듣는 건 장 크리스토프가 얘기한대로 섬세한 화성을 듣는 일이다. 처음 장면, 숲 속 외딴 연못가에 아름다운 멜리장드가 길을 잃고 앉아 있는데, 사냥을 하다 역시 길을 잃은 골로가 도착해 멜리장드를 데리고 가는 장면까지, 마치 아련한 몽환 속을 헤매는, 여태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꿈결 같은 화성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다음이 문제다. 일찍이 옛 어른들께서 말씀하셨듯, 꽃노래도 삼세번인데 이건 세 시간에 육박할 때까지 노냥 비슷한 (것처럼 들리는) 화성이 계속되니, 객석의 관객들은 가사 또는 반수면 상태에 빠지는 것이 또 당연하다. 이런 드문 경험(오케스트라 반주에 의한 깊은 수면)을 하고 극장을 나서면서, 그래도 드뷔시의 유명한 작품 <펠레아스....>는 역시 걸작이야, 입을 털지 않으면 무식하다는 얘기를 들을 거 같아 전전긍긍하는 인종들이 모르긴 모르지만 무진장 많을 거 같다.
그런데, 오페라 대본과 거의 비슷한 마테를링크의 원본 희곡을, 원어인 프랑스 말이 아니라 우리말 번역을 읽었는데도, 놀라워라, 물론 역자 유효숙이 될 수 있는 대로 원문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몽환과 에스프리를 느낄 수 있도록 번역을 해서 그랬겠지만, 오페라를 들을 때와 유사하게 시적인 감상, 이미지즘 적 몽환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효과음도 없이 다만 배경, 즉, 연못, 바닷가 동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탑, 바다가 보이는 방과 짧고 연속적인 문장들로.
이런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1893년 초연 당시, 골로로 직접 출연까지 했던 연출가 뤼네-포는 명도가 낮은 조명을 머리 위에서 내리 비추게 했고, 반투명 막을 무대 전면에 걸어 배우들의 모든 행동과 동선이 마치 안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엽기 치정극이다. 적국의 공주와 혼인하기 위해 떠난 홀아비 왕자 골로가 도중에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 도착한 연못가에서 연못에 왕관을 빠뜨린 채 울고 있는 멜리장드를 만나 결혼하고, 멜리장드와 함께 성으로 돌아오니 엉뚱하게 동생 펠레아스와 정분이 나, 이걸 참지 못해 펠레아스를 쳐 죽인다. 멜리장드 역시 핍박당하지만 결국 딸을 낳고 죽는다는 이야기.
멜리장드를 취하는 장면은 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물귀신 이야기, 예컨대 널리 알려진 <루살카>나 로르칭의 <운디네> 이야기의 한 에피소드와 적어도 많이 유사하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불륜관계는 여지없이 단테의 <지옥>에서 지옥에 떨어져 “가장 비참할 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건 없다.” 요지랄을 하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와 많이 비슷하다. 골로는 <지옥> 장면에서는 조반니 말라테스타의 대체 인물이랄 수 있다. 한 가지 다른 건, 골로는 멜리장드의 몸을 통해 딸을 낳는 거 하나가 있지만.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은 스토리가 아니라 희곡을 읽어가면서 저절로 감응하게 되는 모호한 몽환과 신비의 색채이다. 이외에도 숱하게 많은 비유와 해석이 가능한 다중적 작품이라 읽은 사람들마다 감상이 다 다를 것이 분명하다. 1893년에 초연되고, 드뷔시가 오페라로 만들어 1904년에 초연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분명히 이미 고전 희곡의 자리에 오른 작품. 이제야 읽어 어찌 만시지탄이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