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워터스의 빅토리아 삼부작. 많은 분들이 세라 워터스의 삼부작은 대개 <핑거 스미스>와 <벨벳 애무하기> 또는 <티핑 더 벨벳>을 먼저 읽고 <끌림> 마저 해치워, 말아? 망설이는 듯싶다. 당연히 나도 이 순서로 읽었다. 단 먼저 읽은 두 작품이 하도 재미있어서 망설이지 않고 선뜻 읽기 시작했을 뿐.
  그런데, <핑거 스미스>와 <티핑 더 벨벳>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한 일 년 있다가 읽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절판된 구판을 기준으로 얘기하면 딱 5백 쪽에 이르는 장편소설이다. 이 가운데 450 쪽까지는 말 그대로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얘기로 꽉 채워져 있다. 우리나라 무당은 무꾸리라고 하고, 서양 무당은 주로 하는 일이 귀신을 불러내 산 사람의 건강이나 그리움 같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거라서 좀 고급지게 영매라고 한다. 이들은 부르주아의 살롱에 작은 팀을 조직해서 조명을 어둑신하게 만들고 서로 돌려가며 손을 잡고 영매의 기운을 순환하면서 지금 영혼이 들어온 걸 느끼세요? 쇼를 한다. 보다 극적인 쇼를 하기 위해 가끔 대표 영매가 의식이 끝나면 까무러친 척을 하기도 하고, 팀 가운데 신분을 숨기고 스며든 바람잡이 영매는 적절하게 분위기를 고조시켜 바닥에 놓인 테이블이 진짜로 공중부양하게 만들기도 한다. 세라 워터스의 작품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대서양 건너 남반부, 라틴 아메리카의 글 좋은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에서도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근데 무대가 잉글랜드, 세계 고딕 소설의 본영이랄 수 있는 런던에 인접한 첼시라면 조금 더 심각해진다. 워터스가 영국인이니까, <끌림>에서 대단한 신기(神氣: 접신을 할 수 있는 기운 또는 능력)를 지닌 영매이자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셀리나 도스 양이 불러내는 영혼, 흔히 쓰는 말로 해서 ‘귀신’은 정확하게 사람의 형체를 갖고 있고 사람을 만질 수도, 사람이 만질 수도, 영매만 옆에 있으면 대화도 가능하며, 심지어 담배도 피우고, 꼬집기도 하고, 농담 따먹기도 하고, 영매한테 돈 만 더 주면 전신 마사지도 해줄 태세다.
  첫 장면부터 능력이 하도 출중해 대단한 부자 브링크 부인이 자신의 집에 도스 양을 기숙시키고, 미국에서 온 심약하지만 영매가 될 신기가 좀 있다고 생각하는 매들린 실베스터 양을 비롯해 특별 과외공부를 겸하는 어둠의 모임을 진행한다. 아니, 진행했다. 이 와중에 도스 양은 자신을 지배하는 영혼, 구레나룻이 시커먼 피터 퀵을 불러낸다. 지배하는 영혼? 그렇다. 있지 않은가. 장군신, 할매신, 칠성신, 동자신 뭐 이런 거. 이 피터 퀵이란 영혼이 영매 셀리나 도스 양을 지배하는 영혼인데 생명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무거운 몸을 버린 연후에 그리 됐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도스 양이 섬기기 시작할 때부터 좀 과격했다. 피터가 어둠의 모임에 등장하자마자 심약한 매들린이 비명을 지르면서 자빠진 채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고, 내버려두면 모임을 망칠 거 같아서 도스 양이 매들린의 입을 막았는데, 입술이 터졌는지 코피가 났는지 하여튼 피가 나기 시작했고, 경련을 하기 시작하자, 세상에나, 우리나라 귀신은 다리가 없어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반면, 서양귀신 피터는 매들린에게 후다닥 다가가서 귀싸대기를 오지게 후려쳤고, 매들린은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소음에 놀란 집주인 브링크 부인이 헐레벌떡 어둠의 모임을 하고 있는 방에 뛰어 들어오니 피터가 서 있었으며 (갑자기 귀신을 봤으니 기겁을 하지 않고 배겨?) 미국출신의 어마어마한 백만장자의 무남독녀 따님이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뻣뻣하게 자빠져 있는 걸 보고는 그만 기가 넘어가 매들린 양 옆에서 합동으로 혼절해버렸다. 그리고는 평소에 앓던 심장에 문제가 생겨 그 길로 스스로 영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런던의 부르주아가 죽고, 미국에서 온 백만장자의 딸이 피투성이가 됐으니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할 일. 도스 양 입장에선 영혼인 피터 퀵의 존재를 주장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통할까 어딜. 사망사고가 난 때가 1873년 8월 3일. 소위 과학의 시대라고 불리는 19세기 중후반에 말씀이지. 그리하여 피터 퀵이란 유령은 당연히 체포되지 않고, 기소도 할 수 없었을 뿐이니, 이제 모든 일이 전적으로 영매 셀리나 도스 양의 범죄로 여겨질 수밖에. 범죄의 목적? 당연히 총애했던 무자식 상팔자의 브링크 부인이 죽으면 거액을 상속받을 수 있을 거라는 법정의 일방적인 판단 때문이다. 판결은 여성 형무소 5년 형. 이후 1년여가 지나고 셀리나 도스는 템스 강변에 너무도 굳건하게 서 있는 고풍스런 건물인 밀뱅크 감옥 독방에서 성星급, 그니깐 형무소에서도 장군감 중범죄의 자격으로 친절한 도스 씨 생활을 하고 있던 것.

 

  이제 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다. 마거릿 프라이어.
  얘한테는 애인이 있었다. 지금은 없다. 이름이 헬런인 엑스 애인은 마거릿을 버리고 대신 하나밖에 없는 마거릿의 남동생이자 재산신탁대리 변호사인 스티븐의 아내로 들어왔다. 그러니까 왕년의 애인이 현재의 올케. 이걸 아는 또는 나중에 아 알고 있었구나, 라고 눈치를 채는 사람이 무뚝뚝한 자기 엄마. 헬런이 학자인 아버지의 수업을 들었고, 여기서 마거릿과 친해져 연인이 되었다가 자연스레 집에 들락날락 하는 과정에 스티븐하고 또 눈이 맞았으니 이건 팔자다, 팔자. 거기다가 하나 더. 자신을 그리도 아꼈던 학자 아버지가 이탈리아로 연구방문을 떠나려 계획할 때, 마거릿과 헬런이 함께 가기로 결정해놓고, 막 출발하려 할 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병사로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마거릿이 당한 스트레스에 번호를 붙여보자면, ① 아버지의 죽음, ② 헬런이 자기 곁을 떠나 남동생과 결혼해 아들까지 하나 쑥 뽑아놓은 일, ③ 이탈리아 가기로 해놓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철없는 여동생 프리실라가 이탈리아에 신혼여행 가겠다고 노처녀인 마거릿에게 조잘대는 것 등등이다. 이미 ②에 이어 ①의 단계를 지났을 때 마거릿은 이딴 세상 살아서 뭐하냐 싶어 천국에 이르는 약물인 모르핀을 벌컥벌컥 들이켜 천국의 아름다움을 만나기 일보직전에 지옥을 경험하는 것 같은 위세척을 한 바 있는 신경증 환자로, 이의 치료를 위해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밀뱅크 감옥의 주요 간부로 있는 실리토 씨의 권유로 여자 감옥을 방문해 수감자들의 교화를 위해 면담을 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로 한다.
  그러니 마거릿의 봉사 도중에 자연스럽게 영매 셀리나 도스 양을 만날 수밖에.
  독자는 처음부터 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는 세라 워터스가 19세기 심령학에 한 표를 던지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사실은 애초에 심령학은 구라일 거라고 단정할 만큼 까진 독자들이라도, 셀리나와 마거릿이 무려 450 쪽에 달하도록 계속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니 두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하나는, 이러다가 정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가 되는 거 아냐?
  또 하나는, 결국 심령학이니 영매니, 영혼의 등장이니 다 구라일 텐데, 그렇다면 이거 전개 과정이 너무 지루한 거 아냐?

 

  이리하여 나는 이 책을 읽어보실 분께서 만일 <핑거 스미스>와 <티핑 더 벨벳> 또는 <벨벳 애무하기>를 읽으셨다면 한 일 년 정도 묵혔다가 첫 장을 열어보시기 권한다. 만일 나처럼 두 작품을 읽고 곧바로 덤비면, 바로 위에 이야기한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 생각은 확실하게 들 것이며, 그렇다면 그게 어떤 생각이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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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03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 명심하겠습니다. ^^

Falstaff 2021-06-03 11:16   좋아요 1 | URL
걍 건너 뛰셔도 좋습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1-06-03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끌림이지만 별로 안 끌려요. ㅋㅋ

Falstaff 2021-06-03 11:17   좋아요 2 | URL
옙. 이거 헌책 사서 망정이지 새책 샀으면 뎡말 후회할 뻔했습니다.
헌책이라도 만원이니 속은 좀 쓰리고요, 안 읽으셔도 전혀 관계 없어요! 에휴....

새파랑 2021-06-03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3개주셔서 일단 보관 안하는걸로 ㅎㅎ 감사합니다~!!

Falstaff 2021-06-03 11:40   좋아요 1 | URL
ㅋㅋㅋ 잘 하셨습니다!

coolcat329 2021-06-03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 책인데 만 원주셨다구요? ㅠㅠ
속이 좀 쓰리셔도 빅토리아 삼부작 완독이시니 위안삼으시길요~
이렇게 가끔 걸러지는 책이 나오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집니다.

Falstaff 2021-06-03 14:02   좋아요 3 | URL
흑흑.... 좋으시겠습니다. 흑흑흑....
예. 2월 12일에 알라딘 서울대역 점에 상품상태 ˝상˝을 주문해서 만원 주고 샀습니다. 이거 잠자냥 님 표현대로 진짜 번트 치고 아웃된 기분입니다.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6-03 14:04   좋아요 2 | URL
아...만 원! 중고치곤 진짜 넘 바가지네요 ㅠㅠ 신간 최상도 만. 원 조금 넘는데요...
근데 내용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잠자냥 2021-06-04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 님 이번 주말은 고메중화짬뽕(7봉지 사셨다면서요!)에 소주 마시면서 <티핑 더 벨벳>보시는 겁니까? ㅋㅋㅋㅋ 극락이 따로 없군요.

Falstaff 2021-06-04 11:36   좋아요 1 | URL
짬뽕에 쐬주는 맞는데요, 벨벳은 아이가 와야 다운을....
ㅎㅎㅎ 유선 pay tv에서도 없고, 네이버에서 다운로드도 안 되고 다른 통로를 거쳐야할 거 같아요. 알라딘은 dvd도 품절.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