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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ㅣ 다시 읽고 싶은 명작 2
엔도 슈사쿠 지음, 김윤성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마쓰히데의 반란으로 사망하자 곧바로 배신자 마쓰히데를 제거하고 권력을 손에 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에 천주교를 박해하기 시작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어 패권을 쥐고 수도를 에도로 옮겨 260여 년에 걸친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한술 더 떠 자신의 생명이 다하기 불과 2년 전엔 1614년 모든 가톨릭 성직자들을 해외로 추방하고 포르투갈과의 모든 교역도 중단시켜버린다. 그러나 전 지구에 복된 말씀을 퍼뜨리는 것을 사명으로 했던 이들은 그 후에도 37명이 비밀리에 일본 열도에 남아 계속 선교활동에 힘을 쓰는데, 이 가운데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된 페레이라 신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페레이라 신부는 일본의 관구장, 성직자와 신자들을 통솔하는 고위 성직자로 일찍이 포르투갈에서도 신학적 재능과 용기를 인정받고 있던 사제. 그런데 포르투갈의 아시아 식민지 마카오로부터 접수한 소식에 의하면, 1633년에 일본 정부에 발각이 되어 ‘구덩이 속에 달아매는’ 고문을 받고 배교背敎,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을 선언했다는 거였다.
일찍이 고결한 페레이라 신부의 가르침을 받은 바 있는 세 명의 제자인 프란치스코 가르페, 호안테,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인 세바스티안 로드리고 신부는 바티칸에서 출발한 신부들과 별개로, 페레이라의 배교로 인해 추락한 교회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토록 강건한 페레이라가 배교를 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터이니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알아내기 위하여 일본으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이때가 1637년. 그러나 일본에서는 1년 전인 1636년 1월에 가톨릭교도들이 시마바라에서 궐기를 했다가 무려 3만5천 명의 신자 전원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져 가톨릭교도나 성직자들의 처지가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진 상태였다. 심지어 일본 땅에는 바티칸,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파견한 가톨릭 신부는 한 명도 없다고 여기기도 했을 정도. 세 명의 신부는 드디어 1638년 3월 25일에 인도함대 산타 이사벨 호를 타고 출항을 해, 7월 25일에 희망봉을 거치고, 10월 9일에 포르투갈령 인도의 고아를 거쳐, 다음 해 5월 1일에 포르투갈령 마카오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다시 중국 선원들과 선장을 고용해 어선으로 위장한 배를 타고 일본 땅에 발을 딛는데, 일행 중엔 마카오에서 만난 일본인 배교자 기치지로라는 중요한 등장인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에 도착한 신부는 두 명. 호안테 신부는 말라리아에 걸려 마카오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구덩이 속에 달아매는’ 고문이 무엇인지 보자. 일본에서만 행해졌던 특유의 고문방식인 걸로 알고 있다. 말 그대로 구덩이를 파고 안에 인분이나 가축의 배설물을 낀 후 그 위에다 사람을 거적에 둘둘 말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채 거꾸로 매단다. 머리에 오물에 닿는 건 아니다. 악취만 날 뿐.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놓으면 피가 머리로 쏠려 뇌압이 상승해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그래 귀 뒤쪽에 조그만 상처를 내서 소량의 혈액이 양쪽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몸 밖으로 나가 압력을 줄여주면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며칠 동안 죽지 않을 수 있는데, 이건 자비가 아니다. 말 그대로 고문이다. 극도의 고통, 아픔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끔찍한 ‘어려움’의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천주교를 믿다가 발각이 되어 처형을 하는 방법도 일본은 참 독창적이다. 물론 단 칼에 목을 베어 죽이는 참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순간적인 죽음이라는 은혜를 예수귀신을 믿는 독종들에게 베풀어본들 신자들의 믿음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걸 알고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카, 우리식 발음으로 소서행장小西行長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천주교에 귀의한 쥴리아도 이런 방식으로 사형에 처해졌는데(소서행장 자신이 천주교인이기도 했다.), 바닷가에 말뚝을 박고 거기에 몸을 꽁꽁 묶는다. 이 책에서 보니까 옷을 모두 벗기는 모양이다. 하여튼 그렇게 묶어놓고 그냥 내버려둔다. 밀물이 밀려올 때 수위가 목 부근에 도달할 정도의 높이로 조절하고. 그러면 하루 이틀 안에 죽지 않는다. 낮엔 무자비한 태양빛에 화상을 입고 밤엔 소금물에 절여지는 상태가 며칠 지속하면서 역시 ‘아픔’이 아니라 극도의 ‘어려움’을 견디며 죽음을 소망해야 한다.
기독교가 생겨서 로마에 터를 잡은 이래 기독교도들과 성직자들은 종교적 박해가 있을 때마다 기꺼이 목숨을 내던졌다. 이들이 순교하는 장면은 헨릭 시엔키에비치가 쓴 <쿠오바디스>에 잘 묘사가 되어 있다. <쿠오바디스>의 마지막 무렵에 사도 베드로는 환란을 피해 로마를 빠져나와 캄파니아 평원에서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향하는 그리스도를 본다. 그리하여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물었다가 베드로가 로마에서 도망하니 내가 한 번 더 십자가에 매달리려 간다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가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다. 베드로가 이를테면 초대 교황 아닌가? 그러면, 줄곧 의심이 들었던 것인데, 어떻게 해서라도 기독교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을 해야지, 그저 순교의 길을 택하는 것이 조금 마땅하지 못했다. 일단 살아야 다음을 도모하는 것이지 죽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일. 그리하여 기독교의 순교 역시 죽음 말고는 다른 아무 방법이 없다는 확신이 들어 마지막 방편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때,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때 해야지, 무조건 목숨을 포기한다고 다는 아닌 거 같다.
일본에서는 기독교인들을 구별하기 위해 나무판에 동판으로 새긴 그리스도나 성모의 그림을 박아 넣고, 사람들에게 발로 밟으라고 시켰다고 한다. 누군지도 모르고 밟는 자들은 그냥 백성이고, 죽으면 죽었지 못 밟겠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틀림없이 기독교인이란다. 이걸 성화판聖畵版이라 했고, 밟는 행위를 답회踏繪, ‘그림을 밟음’이라 했단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그림을 밟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위협하는데, 당신 같으면 밟겠는가, 안 밟겠는가. 난 종교가 없어서 그런지 밟아야 할 거 같다. 내 아이들이 망설이다가 곤란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밟으라는 신호를 보낼 거 같다. 내 자식이 죽는다는데 그럼 죽어라, 하는 것이 옳은가.
책의 서문에 나오는 이야기니까 서슴지 않고 말하겠다.
당신이 가톨릭 신부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신자 다섯 명을 ‘구덩이 속에 달아매는’ 고문에 처하고 하루 밤을 꼬박 새운 다음, 이제 언제 죽을지 촉박한 시간을 다투고 있는데, 일본의 관헌이 당신에게 배교하라고, 그리스도의 얼굴을 밟으라, 그냥 시늉으로 발바닥만 한 번 댔다가 떼기만 하면 당신은 물론이고 다섯 명의 신자도 살려주겠다고 할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 다섯 명을 죽이고, 아니, 순교시키고 자신의 종교를 지키겠는가? 그러면 다시 다섯, 또는 여섯 명을 같은 고문에 처할 것이 틀림없는데도? 좋다. 당신은 그렇다 치고, 만일 당신의 자리에 그리스도가 섰다면, 자신의 얼굴을 밟으라고 했을까, 아니면 너도 함께 순교하라고 했을까.
이 책을 쓴 이가 엔도 슈사쿠다. 내가 읽어본 것 가운데 직접 기독교와 순교에 대하여 쓴 첫 작품이다. 이이가 던지는 질문은 대단히 무겁다. 자신을 은전 30냥에 팔아먹은 유다를 예수가 용서를 했을까, 아니면 너는 네 길을 가라, 라고 하며 화를 냈을까. 슈사쿠는 결론을 지어준다. 당연히 여기서 그걸 밝힐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