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 책만드는집 시인선 86
황훈성 지음 / 책만드는집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황훈성. 서울대 영문과 학사, 석사.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 영문학 박사. 베케트 전공 이후 죽음에 천착했다고 여기저기 쓰여 있음. 동국대 영문과 교수. 취미로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자기 시집 선물하기. 영문과 아니라도 상관없음. 내가 읽은 책도 2016년 11월 28일에 “ooo 쌤에게”라는 헌사와 함께 어지러운 사인이 그려 있음. 선물 받고 자기 이름도 안 지운 채 헌책으로 팔아먹은 사람이라도 인권보호 위해 익명 처리함. <지상에 남겨진 신발>, <운평선>, <조장>, <영시암>, <수처작주 입처개진>, 이렇게 다섯 권의 시집을 냈으나, 구글, 네이버를 아무리 검색해봐도 어떤 경로로 시인이란 타이틀을 갖게 됐는지는 절대 발견할 수 없으며, 통박으로 말하자면 지금은 속초 모처에서 살고 있는 듯하니 동국대에선 정년퇴임한 듯. 문과대 교수면 시인으로 등단하지 않고도 시집 다섯 권 낼 수 있음. 아니, 문과대 교수 아니라도 돈만 있으면 가능함.


  시라고 다 같은 시야? 문제는 품질이다.


  참 안쓰러운 사람들 가운데 한 부류가, 시를 좋아하고 자주 쓰는데, 뮤즈한테 크게 뇌물을 먹이지 않아서 그런지 시 쓰느라고 애만 쓰는 사람이다. 물론 내 주위에도 있다. 그이도 시집 한 권을 자비 출판했다. 나한테도 한 권 줘서 읽어봤더니, 전형적으로 보통사람이 쓴 시다. 무슨 뜻이냐 하면, 보통사람이 쓴 시는 낙서고, 시인이 갈긴 낙서는 시라는 말씀.
  황훈성의 시집을 열어보면, 아, 노 시인의 노작을 이리 얘기해서 외람되지만, 그만 얘기할까? 계속해?, 고민 고민하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추어 바로 윗동네, 딜레탕트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뭐 나야 시를 그저 읽기만 하는 독자에 불과하지만, 시 좀 읽다 보니까 어떤 것이 시라는 건 조금 눈치 채는 수준이라 자뻑하며 사는 인간이다.
  시는 삶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한다. 그러나 삶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삶과 시 사이에 놓인 계단 하나를 올라가든, 내려가든 하여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이런 시.



  조장鳥葬


  태곳적 그 누가
  공중의 단백질 덩어리에게
  새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을까?


  지상의 힘센 단백질 무리가
  쏘아올린 화살에 떨어지는
  공중의 약한 단백질이여
  그대는 곧 지상의 단백질 속으로 편입되리라


  그러나 서러워 마라
  지상의 단백질도
  밀도가 떨어지고
  그 수명을 다하면
  도끼로 분해된 채
  절벽 바위 위에
  순수 단백질 덩어리로 진열되리니


  공중 단백질이여,
  너의 날카로운 부리로
  지상의 단백질을 쪼아
  잃어버린 세월
  복리 이자로 환급받으려무나
  세상의 수지계산은 빈틈없이
  항상 이렇게 이루어지나니.  (전문)



  이게 시인이 생각하기에 시집의 대표작인 것 같다. 그래 자신이 직접 쓴 설명문 ‘자해서’에 첫 번으로 소개했고, 시집의 타이틀로 이름을 걸었겠지.
  조장. 사람이 죽으면 도끼로 시신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시에서는 바위 위, 또는 벌판 위에 방치한다. 그럼 사체를 청소하는 독수리vulture 같은 날짐승이 날아와 뼈까지, 오직 등뼈와 털만 남기고 싹 먹어치운다. 해골은 새들이 먹기 편하라고 큰 돌을 떨어뜨려 박살을 낸다. 그래 완전히 없어진 시신은 축복받은 징표로 여기는 장례풍습인데, 새를 통해 망자가 하늘로 전해진다는 의미란다.
  누구나 읽는 즉시 뜻을 알 수 있는 쉬운 시이기는 하지만 조장의 풍습을 복리 이자로 받는 환급이라고 굳이 알려주는 건 왜 그랬을까. 몇 십 년을 가르치는 일을 해 온 교사의식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뜻을 확실하게 전해주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학자풍의 기질이 그랬을까. 죽음과 장례의식 뿐만 아니라, 몸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마저 ‘단백질’로 체화시키는 원소화. 어째 그게 내게는 그럴 듯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의 시는 쉽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조장>처럼 읽는 즉시 시인의 주장을 알아들을 수 있다. 시인도 애초에 “나는 시를 일기로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의 잔편들을 기록해놓는.”이라 발언한다. 전에 읽은 시집, 오탁번의 《시집 보내다》에서도 말했던 것 같은데, 나이 든 시인에게 흔히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이이는 여전히 시집을 사 읽어보는 모양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 창궐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편에는 도무지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마디 하기를,



  한국의 난해 시


  남산 산책길
  장님 부부가 튤립 화단 앞에 서 있다
  꽃을 어루만지며
  이게 무슨 꽃이오?
  향기를 맡으며
  이게 무슨 꽃이오?
  주위를 둘러본다
  표지판을 어루만지며
  “점자도 넣었다면
  무슨 꽃인지 알 텐데 참“


  표지판의 화초명은
  “화단에 들어오지 마세요”
  점자를 거부한
  한국의 난해 시처럼,  (전문)



  시의 내용도 알겠고, 내용에 동의한다. 근데 말입니다. 시가 너무 직설적 아녜요? 난해시도 문제입니다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씀하시면 그래도 시가 되는 건가요?
  나는 살면서 시를 좋아하고, 그래서 많이 읽고, 또 쓰는 사람들을 우러러본다. 정말이다. 조금의 비아냥거림도 없고, 숨김도 없고, 속으로 우습게 알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진심으로 말 하건데 우러러본다. 시를 쓰면서 세상을 사는 일이 어떻게 가벼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미 은퇴한 듯한 노학자의 시를 읽으면서, 여태까지 쓴 것처럼 좋지 않은 감상을 얘기한 것에 좀 안 된 느낌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황 선생이 거짓 감상을 바랄 것 같지 않아 솔직하게 써버렸다.
  황 선생께선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시고 살기를 축원한다. 그러나 이해해주시라. 앞으로는 선생의 시를 더 읽지 않을 것 같노라 말씀드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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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1-02-23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시종일관 유머스러운 필체에 이끌려 끝까지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우선 저는 저 시집을 읽게 된 동기가 궁금하네요 ㅎㅎㅎ 아마도 자비출판된 시집인 것 같은데 말이죠. 글을 쓰는 것도 자유고 읽을 선택을 하는 것도 독자의 자유아니겠어요. 가끔 제 책을 두고 이런 종류의 비판을 받는 (아니 더 혹독하게) 경우가 종종있는데 쓸 자유, 읽을 자유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게의치 않게 되더라구요 .ㅎㅎ 독자마다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까요. 여아튼 글 재미나게 잘 읽었고 저도 저 분의 시집을 한번 찾아보고 싶네요...

박균호 2021-02-23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 이 분에 대한 글이 많네요. 그냥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또 어떤 인연이든간에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정이 많은 분 같네요. 시인 타이틀이야 뭐 요새 밤 하늘 별 만큼 많은 것이 시인 등단 경로 아니겠어요? 그런 경로를 통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네요 ㅎㅎㅎ 제가 시를 평가할 위인은 아니어서 그건 패스하고 죽음을 가르치지만 삶을 사랑하고 재미나게 사시는 분 같아요.
https://blog.naver.com/u-jeong/221314630258

Falstaff 2021-02-23 09:48   좋아요 3 | URL
옙.
인생을 아주 건강하게 사시는 분 같습니다. 자녀들에게 책 많이 읽으라고 가끔 잔소리를 하시지만요. ㅋㅋㅋ
지금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대청에 오르신다니, 이 글 읽고 맞짱 한 번 뜨자고 하시면 전 죽은 몸 아닌가 싶습니다. 흑흑흑....

잠자냥 2021-02-23 0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복리 이자로 환급 ㅋㅋㅋㅋㅋ 아 미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제 타입 시는 아니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쉽다고 좋아할 그런 시일 수도 있겠어요.

Falstaff 2021-02-23 09:49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그럼요. 이분 검색해보면 이 시집 선물받고 좋아서 사진 찍어 올리고 그런 사람들, 제자들 찾을 수 있어요. 다 인생이지요 뭐. ㅋㅋㅋㅋ

hnine 2021-02-23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단백질이 무슨 죄랍니까 .
그래도 재미있는 시네요.

Falstaff 2021-02-23 10:37   좋아요 2 | URL
예. 조장도 그렇고, 한국의 난해시도 그렇고 재미있는 시이긴 한데, ㅋㅋㅋ
아이고, 뭐라 얘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