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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례기 - 창비장편소설
방영웅 지음 / 창비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임신 말기가 되면 자궁이 팽창해 방광에 압박이 가해져 자주 오줌이 마렵다고 한다. 석서방댁도 이하동문이라 똥례를 낳을 무렵 변소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똥례를 변소 바닥에 낳아놓고 만다. 당시 시골에서는 똥, 인분人糞이 귀한 비료라 따로 모아놓기 위해 큰 독을 땅에 묻고 그 위에 널빤지 두 개를 올려놓아 널빤지 하나에 왼 발, 다른 하나에 오른 발을 딛은 상태에서, 시인 김태정의 말마따나 즐거움의 안간힘을 써가며 용변을 보았다. 어느 책인지 잊었는데 인색한 노름꾼을 그린 소설 속 장면, 노름판의 긴장 속에서도 용변을 보기 위해서는 꼭 자기 집 변소까지 뛰어갔다 오는 인물을 그린 작품도 있다. 석서방댁이 이 똥독 위에 쪼그려 앉아 안간힘을 쓰다 갑자기 뭔가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어 그냥 옆으로 픽 쓰러지며 딸 하나를 낳은 덕에 아기가 세상 구경을 하자마자 똥독 속에 빠져 즉사하는 대신 변소 바닥에 떨궈 놓기는 했지만, 그곳 역시 똥 위였단다. 동네 노인들이 극성을 부리기를, 변소에서 낳은 애는 꼭 ‘분(糞)자를 넣어 이름을 지어야 좋다고, 오래 살 수 있고 복도 많다고 해서 집에서는 똥례라고 하고, 민적(民籍:지금의 주민등록)에는 ’석분례(石糞禮)‘로 올렸다. (24쪽 요약)
내가 오래전에 쓴 성석재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독후감에서 말했듯이 황만근 씨의 열세 살 먹은 어머니가 똥을 누러 변소에 갔더니 나오라는 똥은 안 나오고 똥 대신 아들 하나가 쑥 빠져서 이름을 분근(糞根)이라 지었는데 나중에 주민등록을 새로 할 때 면서기가 설마 이름에 똥(糞)이 들어갔을까, 일만 만(萬)자를 잘못 쓴 거겠지, 라고 착각해서 ‘황분근’이가 ‘황만근’이 됐다는 기억을 혹시 하실지 모르겠다.
이번에 <분례기>를 읽어보니 그동안 내가 몇 번 이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이 적어도 삼독 이상 아닌가 싶었다. 가장 오래 전에 읽은 건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초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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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반 쯤에 읽지 않았나 싶다.
두 번째는 두산출판사에서 나온 <우리문학대계>라는 전집 가운데서 읽지 않았었나 싶다. 홍익출판사 책은 아주 오래 전, 아마 60년대 말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술에 취해 있거나 누워 책을 읽고 있었던 이주사께서 하루는 희희낙락하시며 정여사에게 “아 글쎄 말이야, 구땡을 쥐고 전 재산을 걸었거든, 그래 패를 까보니까 한 놈이 그 자리에서 으악, 비명을 지르며 화투장을 던지면서 자빠지는 거야. 팔공산 두 장, 팔땡이었지. 그래 돈을 싹 긁으려는 찰라 한 놈이 화투 두 장을 휙 던지는 거거든. 그게 뭔 줄 알아? 단풍이 두 개, 장땡이야, 장땡.” 정확한 인용은 아니지만 이 대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바로 이 장면이 우리나라 근대사(아, 아, 알아, 알아. 화투장 하나 가지고 지금 너무 거창하게 나가고 있다는 건)의 TV 드라마, 영화에서 몇 번이나 차용해 쓴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지금 말하고 있는 건, 분명한 스포일러인데, 창작과비평사에서 벌써 절판시켜 이제는 찾아 읽기도 힘든 이 책에 관해 독후감을 쓰면서 굳이 숨길 이유가 없어 한 번 써본 것이고, 이 장면 역시 작품의 결말이 아니라 결말을 만들어가는 한 가지 중요한 소재에 불과하니 밝혀도 무난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례기>를 읽으며, 읽기 전에도 <분례기>를 생각하기만 하면 떠오르던 건 똥례가 용팔이 아저씨를 따라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용팔이 아저씨는 큰 키에 잘 생긴 얼굴, 놀라운 힘, 그러나 높은 음정의 고운 목소리 때문에 동네에서 고자로 소문이 났고, 벌써 마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부부간에 아이가 없는 것이 소문의 거의 확실한 증거로 알려진 인물인데, 용팔이 아저씨한테 정말 생식기가 달려 있는지 궁금한 걸 참지 못해 아저씨 오줌 눌 때 몰래 숨어 분명히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살덩이에서 오줌이 뿜어져 나오는 광경을 숨어 지켜보다가, 아저씨에게 발각이 나서 그길로 열 받은 용팔이 아저씨에게 ‘신세를 망치는’ 일을 당하는 장면, 그리고 전에 쓴 적이 있듯 지적장애가 있는 부부가 아이에게 젖을 주는 대신 남편에게 젖을 먹이는데 남편은 젖을 다 빨고 나서 꼭 “짐치, 짐치 주어.”하면서 김치로 젖비린내를 입가심하는 장면이었다. 이 두 장면은 책의 앞 쪽에 나오는 일화다.
창비는 왜 이 작품을 절판을 시켰을까. 계간 <창작과비평>이 세상에 나오고 1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감하게 신인작가의 장편소설을 3회에 걸쳐 분재하는 무리수를 두어 얻은 당대의 문제작을. <창작과비평>에 실렸을 때, 이 소설 속에 사회, 역사의식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우스운 이야기다. 한 집단, 책 속에서는 충남 예산군 일대, 지금의 예산군청 북서쪽 변두리 지역 촌 동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복원함으로써 당시 일반 농민들의 사회, 역사의식, 즉 가난한 일상생활을 유지해나가기도 허겁지겁할 판인데 어찌 사회나 역사 따위에 특별한 의식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걸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40년대 후반, 아직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온갖 차별과 계급이 횡행하고, 성적 폭력과 가정폭력 속에서 여성에게 순결과 정조를 강요했던 시기. 못 배운 사람들의 욕망과 시기와 본능 같은 날것의 삶을 이 책보다 더 잘 보여주는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는 몇 년의 세월이 지나 이문구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이문구? 왜 갑자기 이문구? 지방색 또는 지방 차별의 의미는 1도 없이 말하자면, 이문구와 방영웅이 같은 충남 출신이다. 방영웅은 예산, 이문구는 보령. 이들이 눙치는 충청도 사투리로 온갖 삶의 찌꺼기들로 만들어놓은 삶의 건강함이라는 역설을 읽으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어서.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창비는 이 작품을 하루빨리 다시 찍어야 한다. 나만 읽기 아까워서 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