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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유재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5월
평점 :
세 번째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 1980년대, 90년대에 읽고, 시간이 흘러 대표적 조르바 팬이었던 이윤기가 죽어 드디어 그리스어 원전 작품의 직역이 감행돼 또다시 읽었다. 들은 이야기라서 정확한지 풍문인지 모르겠지만 이윤기 씨가 그리스어를 공부한 이에게 자신 살아생전엔 <....조르바>는 번역하지 말아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몰랐는데 이번 유재원 번역의 후기에 보면, 여태까지의 <....조르바> 번역이 그리스어→영어→한국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불어→영어→한국어였단다. 내가 지금 고 이윤기의 다단계 중역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유재원의 이번 번역이 나오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조르바>를 읽기 위해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했을 것이었을 터이니. 후기를 보면 고 이윤기와 유재원이 미노타우로스의 섬 크레타에 있는 카잔자키스의 묘를 방문해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소주와 마른 오징어를 놓고 절을 두 번 반 했다는 일화도 적어 놓았다. 그만큼 고 이윤기도 특별히 이 작품을 아꼈다고 한다.
20대에 한 번, 30대에 한 번, 50대가 저무는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읽는 <그리스인 조르바>. 책을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 헤세가 생각났다. 헤세는 한 살이라도 젊어서 읽어야 제맛인데, <그리스인 조르바>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게 공감하는 종류의 작품이다. 주인공 조르바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63세의 노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화자 ‘나’와 나누는 다양한 대화를 읽으면서, 젊은 시절이었다면, 이런 주책없는 늙은이를 봤나, 혀를 끌끌 찼을 장면이, 이번엔 키득거리면서 즐거운 유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다. 그렇다고 앞으로 10년 정도 세월이 더 지나, 또다시 읽어볼 생각은 없다. 그리하여 이번의 일독이 내 평생 마지막 <....조르바>가 될 터.
앞선 두 번의 <...조르바>에선 없던 프롤로그가 붙어 있는 것이 놀라웠다. 그것이 다단계 중역의 과정에서 발생한 것인지, 우리나라 출판사의 편집자가 이딴 건 빼버리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롤로그가 붙어 있다는 점 하나만 가지고도 이번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유재원 번역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아쉽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프롤로그를 편집과정에서 삭제했으면 혹시 마지막 장인 26장도 아예 빼버렸거나 대폭 축소해버린 건 아닐까? 고 이윤기 번역의 열린책들에서 나온 <....조르바>는 해설까지 합해서 482쪽. 문학과지성사는 본문만 539쪽, 해설까지 587쪽. 이런 생각이 조금은 타당할 정도로 페이지 수에서 차이가 난다. 프롤로그는 겨우 10쪽에 불과하니.
유재원은 번역보다 더 힘들고 피를 말리는 과정으로 문학과지성사의 편집자 김은주 팀장이 이끄는 교정과 수정, 표현 다듬기 과정이었다고, 한쪽, 한줄, 한 낱말, 한 글자, 심지어 행간까지도 독수리처럼 매서운 눈매로 잘못을 짚어냈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오타는 나온다. 내가 발견한 것이 네 번. 몇 쪽 몇 행에서 나오는지 가르쳐 드리려다가 관둔다. 그래야 매의 눈을 가진 편집팀이 한 번 더 완벽한 교정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처음부터 끝까지 팔 것이니까.
오늘 독후감에선 내용 소개가 없다. 독서 자체가 삼독이었으며, 원래 유명하게 소개된 작품이라 내용에 관해서 말을 더 보탤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 보너스. 조르바의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