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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의 별빛
라픽 샤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2월
평점 :
품절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신방과에 입학한 후 동기들끼리 신문이며 잡지를 만들던 때가 있었다. 오랫동안 분주했지만, 인쇄가 된 후엔 항상 한구석이 아쉬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사를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라기 보다 신문이라는 성과물을 만들어내는데 치우쳤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꿈이 기자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빵집에 데려다 놓고 일을 시키길 원한다. 여기까진 으레 "소설이 그렇지"라는 생각을 했다. 적당한 번민과 갈등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스스로의 강한 의지로 딛고 일어서는 모습만 보여주는게 아니었다. 한없이 여리고 별로 처세에도 밝지 못한 주인공에겐 연로하지만 지혜로운 살림 할아버지와, 현 정권의 허실을 파헤치는 기자 근성으로 똘똘 뭉친 하비브 아저씨, 그리고 무모하지만 반드시 필요할 때 용기를 낼 줄 아는 친구 마무드가 있었다. 세대를 넘어 이들은 독특한 끈으로 연결된 친구이다. 시리아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저 이라크 근처에 있는 나라일 뿐...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그들도 우리처럼 무수한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 불쌍한 국민들만 고통을 당했다는걸...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가 되고픈 주인공과 현실을 아주 잘 풍자하는 능력을 가진 마무드가 딴지 잘 거는 하비브 아저씨와 함께 양말 신문을 만든다. 싸구리 양말 속을 채우는 신문으로 둔갑해 배포되었기에 그들은 양말 신문이라 불렀다. 양말 신문은 삐이라로 뿌려지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삐이라를 주워다 파출소에 갖다 주고 빵 쪼가리를 얻어먹었는데... 바보같다.)
무엇보다 우리와 비슷한 시대를 겪었던 주인공이 아주 동화같은 필체로 그런 상황을 그렸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의 눈물 콧물 찍찍 흐르게 하는 가슴에 통증 나는 시대물과는 사뭇 달라서,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갑자기 이 책의 저자가 또 어떤 책을 썼나 너무나 궁금해져서, 지금 바로 2권을 주문했다. 좀머씨 아저씨와 비슷한 느낌이면서 조금 더 긴 이야기,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라고 해석하고 싶다. 책 값도 별로 비싸지 않으니,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